129. 철옥진경
파앗-
[염제 신농의 황포의 힘이 발현되었습니다]
[주변 반경 백 미터 안의 모든 식물이 황포의 힘에 반응합니다]
[성장 속도 증가, 성장력 증가, 효능 배가]
[황포의 힘이 주변을 뒤덮습니다]
콰지지직-
와드드득-
황포가 가진 신통력.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끼아아아아악!”
“끄아아악!”
황포의 능력이 발현되자, 주변은 온통 원귀들의 끔찍한 비명으로 가득했다.
머리를 쥐어뜯는 원귀, 피눈물을 흘리며 바닥을 헤매는 원귀...
백유현을 둘러싸고 모여들었던 수많은 원귀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인 채 이를 갈고, 또 갈았다.
그들 사이로는 갑자기 훌쩍 커버린 산혼초가 무수하게 서 있었다.
그냥 키만 큰 게 아니다.
산혼초에서 풍겨나는 지독한 악취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서, 악귀들은 아예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캬아아악!”
악귀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산혼초의 영향력 바깥으로 나가려 무진 애를 썼다.
바닥을 벅벅 긁고, 다른 악귀들의 팔 다리를 잡아끌면서 먼저 나가겠다고 발악을 하는 놈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연상케 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조차 없다.
이곳은 지옥.
만약 죽는다 해도 다시 되살아나 고통을 받아야 하니까.
이 지독한 고통 속에 원귀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광경을 보며 백유현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걸 어쩌나? 원귀들이 다 도망가네?”
나직하게 뇌까린 백유현은 두 자루의 검을 꺼내들었다.
“자, 흑령. 끝을 볼 시간이야.”
파앗-
백유현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내달렸다.
눈 깜빡할 사이에 흑령의 눈앞에 당도한 그는 사정없이 흑령의 목덜미를 향해 검을 날렸다.
촤앗-
조셉의 약점포착.
비록 아직 1단계지만, 적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는 충분했다.
파각-
간장의 칼날이 흑령의 목덜미를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놈의 목덜미의 근육이 워낙 두꺼워서 제대로 파고들진 못했다.
약점포착은 되었지만, 제대로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는 더욱 큰 힘이 필요했다.
콰아앗!
그런데 그 순간, 흑령 역시 지지 않고 거대한 주먹을 날려 왔다.
실제로 보면 순간적으로 날아드는 주먹인지라, 피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백유현의 몸은 마치 여유롭게 호숫가를 거니는 듯 평온함마저 느껴졌다.
스윽-
백유현은 살짝 흔들리며 흑령의 주먹을 피해냈고, 그 순간에도 반격을 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촤앗-
“쿠억!”
순식간에 옆구리를 베인 흑령이 크게 몸을 뒤틀었다.
막야의 날카로운 칼날은 사정없이 흑령의 옆구리를 파고들었고, 이번에는 제대로 놈에게 대미지를 주는데 성공한 것이다.
크게 휘청거린 흑령의 뒤를 완벽하게 잡아낸 백유현은 두 자루의 검을 그대로 놈의 어깻죽지에 박아 넣었다.
“크와아악!”
흑령이 경기를 하듯 몸을 뒤틀었다.
파지지직!
순간 간장에 깃든 힘 중 하나인 뇌신(雷神)이 발동해서 흑령을 강력한 뇌전으로 감싸 안았다.
“끄어어억!”
강력한 뇌전에 휩싸인 흑령은 눈을 까뒤집었다. 하지만 백유현은 알고 있었다.
‘멀었어!’
도대체 어떤 식으로 탈태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실패했다.
간장과 막야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가공할 힘을 가진 병기지만, 흑령의 가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두꺼웠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검으로 베고 찌르는 것이 어렵다면, 계속 파고들어 피해를 주면 될 일.
“모여!”
부아아아앗-
백유현의 명령에 사방에 퍼져 있던 지옥철갑벌 수천 마리가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목표는 저 놈. 사정 봐주지 말고 몰아쳐라!”
부아아아-
벌들이 미친 듯 날아들어 흑령을 뒤덮었다.
흑령의 단단한 근육과, 그를 둘러싼 두꺼운 가죽이 상당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해도 지옥철갑벌의 단단한 턱은 쇠도 갉아 먹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그리고 놈들은 한 번 피 냄새를 맡으면 죽어라 파고들 정도로 집요하다.
피에 미쳐 있는 놈들이라, 놈들의 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
“쿠오오오!”
역시 놈들의 강철턱에 노출된 흑령은 미친 듯 발광하기 시작했다.
지옥철갑벌들은 먹잇감을 먹으면 먹을 수록 더욱 강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놈들도 본능적으로 먹잇감을 찾아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것이다.
그 집요함에 이번에는 흑령이 당했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야!’
그런데 흑령이 이렇듯 쉽게 잡힐 리가 없다고 판단한 백유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놈도 산혼초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거야.’
염제 신농의 황포로 인해 강화된 산혼초의 독기가 놈까지 침범한 것이다.
직전의 독기였다면 버텨냈겠지만, 배가된 산혼초의 독기 서린 악취는 놈으로서도 상당히 치명적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점을 백유현은 놈에게 칼을 찔러 넣으면서 눈치 챘었다.
‘자, 가볼까?’
흑령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화된 순간, 백유현이 허공을 날듯이 움직였다.
그리고 때 아닌 칼날 폭풍이 불어닥쳤다.
콰콰콰콰쾃!
두 자루의 검이 내지르는 미친 귀신의 울음소리와, 칠흑의 단창이 허공을 가르며 내뿜는 시린 한기까지.
이 주변은 그 기세에 억눌려 아무것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뿜어지는 살기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주변의 산혼초들이 모조리 시들어 버릴 정도였다.
“하앗!”
콰직-
그 미친 칼춤의 끝에, 백유현은 막야를 손에 쥐고 그대로 흑령의 가슴팍에 박아 넣었다.
탄탄한 근육이 한 차례 칼날을 꽉 무는 것이 느껴졌지만, 백유현의 힘에는 당하지 못했다.
“끄르...!”
그리고 막야가 놈의 가슴근육을 지나, 늑골 사이를 천천히 파고들더니 결국 놈의 심장에 다다랐다.
“끝이야. 흑령.”
콰직!
막야의 날카로운 칼끝이 놈의 심장을 사정없이 파고들어 파열시켰다.
울컥-
흑령은 온통 망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피를 토해내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후우...’
정말 때 아닌 곳에서, 때 아닌 일격을 받아 이번에는 백유현도 상당히 긴장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사자육전에서 방법을 찾아냈고, 그게 통했다.
[염라의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임무 완수의 보상으로 신체 능력치 30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염라와의 친밀도가 600 올라갑니다]
[염라와의 친밀도가 5,000이 넘어 염라의 권능, 황천보(黃泉步)가 전이됩니다]
[권능, 황천보 전이 중]
[전이 완료]
[황천보(저승 걸음) 1단계: 일순간 귀문(鬼門)을 열어 모든 대미지를 회피할 수 있습니다. 1단계에서는 두 걸음 동안만 걸을 수 있습니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걸음걸이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보상을 받는 도중, 황천보의 전이가 완료되었다는 창이 떴다.
‘황천보라...!’
그것은 순간적으로 모든 대미지를 회피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었다.
1단계에서는 단 두 걸음 동안이지만,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공격은 모조리 무효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메리트가 있었다.
그리고 주어진 다음 보상.
[철옥진경의 해서(解書)를 얻었습니다]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철옥진경.
도대체 이게 뭐기에 흑령 같은 축생도의 짐승이 옥졸들을 때려죽이고 다른 지옥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일까?
어쨌든 상당히 범상치 않은 물건임은 틀림 없었다.
백유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철옥진경의 해서 제 1장]
[모든 지옥의 죄인들은 성불(成佛)할 권리마저 구속당한 채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는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자비에 반하는 것으로...]
백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철옥진경의 첫 장에는 이런 저런 얘기가 나왔는데, 그 마지막 부분에 쓰인 하나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地藏菩薩).
석가모니불의 사후, 그가 다시 도래할 때까지 중생을 살피는 역할을 맡은 존재였다.
지장보살은 특히 지옥에 친히 강림하여, 지옥의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무던하게 애를 쓰는 존재로 알려져 왔다.
따지고 보면 명부의 주인인 염라와 가장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자.
그런데 철옥진경의 저자가 바로 지장보살이었다니!
그리고 임무의 보상으로 철옥진경의 해서를 선뜻 내준 염라도 대단했다.
[...하여, 지옥의 중생들을 성불시킬 수 없다면 이 지옥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 이 진언(眞言)을 남기노니, 연이 닿는 자는 진언을 깨달아 고통에서 벗어나라]
해서에는 뒤로 갈수록 놀라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구원하지 못하면, 차라리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돕겠다는 지장보살의 신념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책.
그리고 뒤로 가면서 백유현은 흑령이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산혼초의 고통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진언(眞言)은 마음으로 전해지는 바, 진언을 접하는 자는 누구든 읽지 않고 깨닫게 될 것이며, 사념치 않고 체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철옥(鐵獄)에서 벗어나는 진언이라 하여 철옥진경이라 명명하는 바, 지옥에서 고통 받는 뭇 중생들은 깨달아 성불하길 바라는 바이다]
바로 이것이 그 비밀이었다.
고통을 견디는 힘.
‘아니...이것은...’
그런데 뒤를 읽어 내려 갈수록 백유현은 그것만이 철옥진경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오히려!’
그가 놀란 눈을 뜬 순간, 상태창 하나가 다시 떠올랐다.
[철심체(鐵心體)를 깨달았습니다]
[철심체 1단계가 적용됩니다]
[철심체 1단계 : 철심체가 발동되면 유효 시간 동안 느끼는 모든 고통의 반을 한시적으로 지워낸다. 지워진 고통은 찰나 간의 고통으로 나뉘어 평소에 살아가는 생(生)에서 느끼게 된다. 단계가 올라가면 지워내는 고통의 양이 늘어난다. 1단계의 철심체 유지 시간은 10분이며 단계가 올라가면 역시 유지 시간이 늘어난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 10의 고통을 받았다 치면 이걸 5로 줄이고 다른 5의 고통을 순간적으로 지워 버리되, 지워진 5의 고통은 평생 살면서 매우 짧은 시간의 고통으로 쪼개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찰나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니 아예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5의 고통만 느끼고 끝난다는 뜻.
아까 흑령이 산혼초의 고통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인 듯했다.
그리고 지장보살의 안배 덕분에 글을 모르는 흑령조차도 자연스럽게 철옥진경의 오의를 체득하게 된 것이고.
‘앞으로 쓸모가 많겠는데?’
어떤 고통이든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엄청난 효과였다.
지장보살이 얼마나 중생들을 아끼고 안타까워 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자, 일단...산혼초들을 좀 더 담자.’
염제 신농의 황포에 깃든 신통력으로 엄청나게 자란 산혼초들을 부지런하게 꺾어 무한낭에 담는 백유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