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귀환
문제가 생겼다.
동굴에 돌아오니, 나가르주나는 이미 모습을 감춘 상태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동굴 벽에 한 글자만 남아 있었다.
통(通).
백유현은 그 글자를 보며 굳은 표정이 되었다. 통이라는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고, 일행의 자취를 나가르주나가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일행을 찾으려면 이 산맥 전체를 샅샅이 뒤져야 한다는 뜻이다.
백유현이 난감해 하고 있자, 제피가 다가와서 불쑥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백유현은 그를 보고는 무심코 대답했다.
“일행들을 잃어 버렸어. 그런데 찾을 방법이 없네.”
“이 산에서 잃어버린 거야?”
“뭐...그렇겠지? 같이 비행기를 타고 있다가 추락했으니까.”
“아하, 그래?”
그 말에 제피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씩 웃었다.
“그런 거면 내게 맡겨! 친구들이 도와줄 거야.”
“친구들? 아...!”
백유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탄성을 내질렀다.
제피는 짐승을 다스리는 힘이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보지 않았던가.
제피를 구하려 새카맣게 밀려들던 짐승들을.
“잠시만. 이런 일은 칼루크에게 물어보는 게 빠를 거야.”
그리고 제피는 두 눈을 감고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눈을 뜨고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찾았대! 인도해준다고 하니 나가자, 형!”
백유현도 밝은 표정이 되었다.
“그래? 어서 가보자!”
둘은 다시 동굴 밖으로 나섰다.
하늘에는 방금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독수리들이 맴을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녀석들은 백유현과 제피가 나오자,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에 일행이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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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마! 너 괜찮아?”
“이 짜식, 살아 있었구나! 아씨, 진짜 걱정했잖아!”
“우리 꼬맹이, 어쩜 더 멋있어진 거 같네?”
백유현은 제피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일행과 조우하는데 성공했다.
일행들은 백유현을 보고는 격하게 반겼다.
“다들 괜찮으세요?”
백유현도 반가운 마음이 왈칵 솟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왜 이리 울컥한 지.
“그럼! 우린 이 안에서 꽤 낭만적으로 지냈다고. 뭐, 너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하긴 했다만. 하하!”
주세광이 웃으며 말했고, 천무현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요 귀여운 아기는 누구야? 어머, 어쩜 이리 귀여울까?”
그 때 김수향이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제피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이번에 같이 다니게 된 녀석이에요. 이름은 제피라고 하고...짐승들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있어요.”
“헉! 그럼 너 또 불멸자와 만난 거야?”
백유현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뭐, 그렇게 됐네요. 애초에 비행기가 추락한 것도 그 이유였으니까요.”
“뭐...?”
백유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일행을 향해 그 간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말을 들으며 일행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건 자신들이 추락한 것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절망적인 이야기였으니까.
“이런...! 그럼 신들이 현신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전혀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었네?”
“그러게. 신들이 현신해서 뭔가 든든하다고 여겼는데 유현이 말을 들어보니, 오히려 더 위험해졌잖아? 자신들끼리 싸우게 된다니...!”
주세광과 천무현은 서로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나머지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도 들리네. 아직 주신(主神)에 가까운 불멸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김현성이 말했다.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서 왕이나 나가르주나 같은 불멸자는 엄밀하게 따지면 주신 급은 아니지. 아마 나가르주나가 경고한 것은, 주신 급의 불멸자가 현신했을 때의 이야기일 테니...아무튼 고생했다. 유현아. 일이 무사하게 잘 끝나서 다행이야. 그건 그렇고...”
박성진은 비행기의 조종석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쯤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아까 E-와치와 비행기 통신기를 연결해서 구조신호를 보냈거든. 다행히 작동은 하고 있어서 기대를 걸고 있다만 아직 연락이 없네.”
“대장...이런 산꼭대기에서 우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좌표도 없고, 그저 구조요청만 했을 뿐인데...”
일행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이 아무리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대자연의 힘에서는 미력할 뿐이었다.
히말라야의 추위와 강풍 앞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간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었으니...
“응? 아래로 내려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건가 봐, 형?”
제피가 두 눈을 굴리더니 백유현에게 넌지히 말했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순 없으니까.”
“아, 그럼 진즉 말하지. 내가 도와줄게! 검은 늑대 오나이의 무리라면 어렵지 않을 테니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성진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늑대라고?”
“응! 수염 난 큰 형아! 오나이라면 덩치도 커서 괜찮을 거야. 힘도 아주 세거든!”
“설마...우리를 태우고 간다고? 늑대가?”
“응! 조금만 기다려 봐!”
그리고 제피는 두 눈을 감고 집중을 했다.
한참 후 그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오나이가 온대! 길도 알고 있댔어.”
“뭐...?”
일행이 반신반의한 표정을 짓는 순간, 가까이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서둘러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인간의 과학이 발달하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하는 이유가 있었다.
늑대가 사람을 태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일곱 마리의 늑대를 보는 순간, 그 궁금증은 싹 사라졌다.
“와씨, 순간 움찔했네! 저런 크기의 늑대들이 있었다니!”
“진짜 크네요. 몬스터들은 그렇게 많이 봤어도, 저렇게 큰 늑대를 보니 이상하게 무섭네.”
황소의 크기를 가뿐하게 넘어서는 늑대들이 이쪽을 잠자코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어서 타, 형들! 오나이가 가까운 마을에 데려다 준대.”
“후,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 일단 타자, 다들. 아마 본국에서도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대장!”
일행은 놀란 것도 잠시, 그들이 해야 할 일을하기 시작했다.
일행이 탄탄한 늑대들의 등에 올라타자, 제피가 크게 외쳤다.
“오나이, 가자!”
“우우우우-”
제피의 외침에 화답이라도 하듯, 오나이가 길게 울더니 그대로 내달렸다.
콰콰콰쾃!
깊게 쌓인 눈 따위는 상관조차 없다는 듯, 녀석들은 비탈을 가로지르고 바위 사이를 뛰어 넘으며 쾌속질주를 했다.
그런데 그 등에 타고 있는 일행은 전혀 흔들림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속도에, 상당한 안정감을 주는 늑대들의 질주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 불빛이 보였다. 네팔의 한 마을이었다.
오나이를 비롯한 늑대들은 그 마을이 보이는 산등성이에서 멈춰섰다.
인간들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고생했어, 오나이!”
제피는 오나이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녀석의 코를 어루만졌다.
오나이도 혀를 내밀어 제피를 핥더니 다시 길게 울었다.
“우우우우-”
그러자 다른 늑대들도 길게 울부짖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산 위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히말라야의 산등성이를 저렇듯 쉽게 타는 늑대들이 있었다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후우, 진짜 색다른 경험이군. 코끼리나 낙타는 비교도 안 돼!”
주세광이 혀를 내두르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박성진이 그를 보며 조용히 웃더니 말했다.
“어서 가자. 저곳에 가면 방법이 나올 거다.”
“그럽시다.”
일행은 바쁘게 걸음을 놀렸다.
환하게 불이 켜진 마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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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대한민국 국가안보회의 상황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알파 팀이 사라진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의 흔적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미국의 도움을 받아 위성사진을 확인해 봐도, 히말라야 부근을 뒤덮은 강력한 눈보라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네팔 정부와 연계를 해서 수색 작업을 진행하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전례 없는 강력한 폭풍에 네팔 정부에서도 난색을 표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하나의 신호가 잡혔다.
“대통령님! 네팔 정부에서 공식 협조 요청이 왔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시그널 코드가 잡혔다고 합니다!”
E-와치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고유한 시그널 코드가 내장되어 있다.
그것으로 구조 요청을 보내면, 시그널 코드가 같이 발신되면서 구조 요청자의 신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뭐라고요! 어서 연결하세요!”
“예, 대통령님!”
대통령조차 뜬 눈으로 밤을 지세며 상황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도중에 들려온 소식이었다.
그리고 네팔 정부와 연결된 직후, 또 다른 소식이 날아들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아아...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수화기를 붙잡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수화기 저 너머로 들려온 소식은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것이었다.
대통령은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네팔에 보낼 새로운 전용기 준비하세요! 알파 팀이 모두 생존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말이십니까!”
“어서 서두릅시다! 관계 부처는 이에 대한 일을 최우선으로 진행하세요!”
상황실은 순식간에 엄청나게 바빠졌다.
알파 팀이 돌아온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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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팀은 새롭게 지원된 전용기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히말라야에서 겪은 일이 마치 꿈만 같았다.
백유현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그들은 그곳에 갇혀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티폰이라니...
제우스조차 패배의 치욕을 감수해야 했던 상대, 티폰이 히말라야에서 부활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겠군.”
박성진은 앞일을 예감하고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평온한 시간이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앞으로 이런 시간이 전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좀 더 즐겨봅시다. 난 이 와인으로 하겠어!”
주세광이 옆에 있던 와인을 꺼내들며 잔에 따랐다.
“좋지, 와인! 아직 도착하려면 시간이 남았으니 다들 마셔보자고. 정도는 즐겨도 돼! 우리는.”
히말라야에서는 죽다 살아났고, 영국에서도 상당히 힘든 싸움을 겪었다.
그러니 와인 한 잔의 사치 정도는 부려도 된다.
박성진의 말에 일행은 조촐한 술자리를 벌였다. 제피와 백유현에게는 시원한 콜라가 주어졌다.
“옹? 이게 뭐야? 까만 물이네? 먹어도 되는 거야?”
제피는 콜라를 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유현은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마셔 봐. 색다른 느낌일 거야.”
“자, 건배!”
그리고 다들 건배를 시작했다.
꿀꺽-
“우와앗!”
콜라를 마신 제피는 두 눈을 부릅떴다.
“키야아! 죽인다! 형, 나 이거 더 줘!”
뒤늦게 콜라의 맛에 눈을 뜬 제피였다. 녀석은 뒤로도 쉴 새 없이 콜라를 마셔댔다.
“와하하핫! 저 녀석 콜라에 취하는 거 아냐?”
일행은 녀석을 보며 한바탕 웃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약간의 여유.
그들은 그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잊고 즐겼다.
앞으로는 더 이상 오지 않을 시간임을 알고 있기에.
그 동안 전용기는 대한민국 상공으로 진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