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121화 (121/166)

121. 대붕

휘우우웅!

눈보라는 갈수록 더욱 강력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백유현은 그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있었다.

가루다의 깃털을 꿰어 만든 목걸이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삑- 삑-

그리고 마침내 T-1092 터미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터미널에 접근할수록 눈보라는 더욱 강해졌고, 바람은 주변의 모든 것을 사납게 갉아먹으며 그 위세를 키워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중심에는 T-1092 터미널이 있었다.

저벅, 저벅.

백유현은 조심스럽게 터미널을 향해 다가갔다.

파스스-

그 순간, 가루다의 깃털 하나가 검게 그을리며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두 개.

앞으로 다섯 시간 정도만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백유현은 어느덧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쿠오오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그림자 하나가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콰쾃!

사방으로 몰아치는 거대한 바람 사이로 그림자의 형상이 언뜻 보였는데, 놈은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거대한 거인과 같은 크기에 두 어깨에서는 연신 불과 바람을 뿜어대는 뱀 머리가 수도 없이 달려 있었다.

[광풍(狂風)의 주인, 티폰을 발견하였습니다]

‘티폰...!’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를 완전히 박살내 버린 강력한 악신.

바람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불의 힘까지 끌어다 쓴다는 강력한 존재였다.

파스스!

그런데 놈과 대면한 순간, 가루다의 깃털이 빠르게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맹렬한 삭풍에서도 버텨내던 가루다의 가호가 티폰과 맞닥뜨리자 그 힘을 빠르게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루다의 깃털의 유효 시간이 급속도로 줄어듭니다.]

[남은 시간 : 1시간 5분 21초]

유효 시간이 두 개의 깃털을 합쳐 무려 1시간으로 줄어든 것이다.

아마도 그 시간은 더욱 줄어들 확률이 매우 높았다.

“끄으으으!”

그런데 맹렬히 불어 닥치는 바람 속에서 기이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백유현이 안력을 돋우어 살펴보니, 티폰의 옆쪽에는 커다란 새장 같은 것이 있었다.

신음소리는 그곳에서 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새장 안에 갇혀 있는 한 정령이 내는 신음이었다.

작은 아기처럼 생긴 정령은 뼈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걸고 있었고, 앙증맞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콰르륵!

“아아악!”

그 순간, 새장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고 그 안에 갇혀 있던 정령이 미친 듯 소리를 치며 괴로워했다.

“캬아아아!”

“키아악!”

그런데 그 때, 사방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이건!’

백유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괴성은 정령이 비명을 지르는 것과 맞추어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백유현은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이런!’

논보라가 워낙 세차게 불고 있어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곳을 둘러싸고 수많은 마물들과 짐승들이 몰려와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놈들의 두 눈은 이미 광기와 살의에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한 마디로 살의로 미쳐버린 것이다.

“크르르르-”

“키야아악!”

‘수백...아니, 수천은 더 돼! 이 녀석들이 왜 여기에?’

그 때, 허공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키아아아악-”

쩌렁-

‘으윽!’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지상에 있던 백유현조차 두 손으로 귀를 막아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는 이 소리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녀석이 설마 대붕?’

백유현은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하늘을 가득 덮은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붕(大鵬).

거대하여 그 크기가 중국 전역을 덮는다는 전설의 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놈은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 역시 강력한 살기에 이끌려 폭주하는 중이었다.

아마 비행기를 공격한 것도 그래서인 듯했다.

‘설마 저 정령의 비명에 공명(共鳴)하고 있는 건가?’

정령의 정체가 도대체 뭘까?

그 때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짐승의 왕이 당신에게 긴급 임무를 주려 합니다]

[긴급 임무]

[짐승의 왕, 나그라 : 일곱 짐승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아들, 제피를 구출하라!]

[임무 완료 조건 : 마인, 티폰 척살, 제피의 구출]

[임무 완료 보상 : 짐승의 광체(狂體) 전이, 환수(幻獸) 타르가]

[나그라의 의뢰를 받으시겠습니까?]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하루입니다]

[임무 정보 : 짐승의 왕, 나그라의 아들을 구출해야 한다. 나그라의 다섯 번째 아들, 제피는 마인, 티폰에게 사로잡혀 그 힘을 강제로 쥐어 짜이고 있는 중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주변의 짐승들은 모두 광폭화(狂暴化)의 상태에 돌입하며, 그 여파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리고 제피 역시 힘을 다해 죽을 수도 있다. 이를 막아라]

짐승의 왕, 나그라의 임무 부여였다.

백유현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싸워야 할 티폰이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그 때, E-와치에서 하나의 경고음이 떴다.

삑- 삐삑-

기능이 완전히 소실되지는 않아서인지, E-와치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이 붉은 점은!’

이곳,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서 생성된 수많은 붉은 점들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숫자가 어마어마했고, 수천은 훨씬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 붉은 점들이 진행하는 방향에는 여러 도시들이 있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 붉은 점들은 광기에 미쳐 버린 짐승들이 틀림없었다.

놈들이 죄다 인가나 도시를 덮치려는 것이었다.

백유현은 사로잡혀 있는 제피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끔찍한 고통을 당했던지, 녀석은 완전히 탈진한 채였다.

‘저 녀석을 구출하지 못하면, 이 부근의 도시들은 모조리 끝장나! 막아야 해!’

부근의 도시 뿐만 아니다.

고립되어 있을 일행들도 위험하다.

보통 짐승들뿐만 아니라, 마물들도 섞여 있는 듯했으니까.

“강효.”

“예, 소주.”

“방벽(防壁)을 쳐줘.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사들은 현실 세계의 존재에게 물리적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가끔 월직 차사들이 그런 능력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인과율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짐승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차사들의 영력(靈力)이 통한다.

백유현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명을 받잡나이다.”

차사들은 백유현의 주변을 둘러싸고 쫙 펼쳐졌다. 그들이 세운 벽을 뒤로 하고 백유현이 앞으로 나섰다.

티폰.

놈의 생각을 완벽하게 읽을 수 있었다.

놈은 제피를 괴롭혀 이 부근을 완전히 박살내려는 것이었다.

파직-

콰르륵!

간장에서 뇌전이 번뜩였고, 막야에서는 불길이 치솟았다.

두 자루의 검이 귀기를 뿜어냈고, 티폰이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

‘어느 때보다 빠르게 끝내야 한다.’

“키아아아악!”

하늘에서는 대붕이, 땅에서는 수천도 더 되어 보이는 짐승들이.

그리고 본체(本體)는 제우스마저 박살낸 전설의 티폰이다.

물론 그 때와 비교해서는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은 상태겠지만, 인간인 백유현이 상대하기에는 벅찬 상대.

파스스스-

가루다의 깃털이 타오르는 시간이 훨씬 더 빨라졌다.

‘그래, 어차피 그 전에 끝내야 하는데 잘 됐네.’

이제 남은 시간은 삼십 분 안으로 확 줄어들어 있었다.

백유현은 바로 티폰을 향해 내달렸다.

서걱이는 눈밭을 밟고 달리는 그의 모습이 폭풍우 속에 잠시 가려진 순간, 사방을 순간적으로 암흑 속에 빠뜨리는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번쩍-

촤아앗!

그리고 백유현이 들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이 허공을 깊숙하게 갈랐다.

파가가각!

그런데 간장과 막야는 갑작스레 생겨난 바람의 벽을 뚫어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티폰은 바람의 악신.

바람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존재다.

슈앗-

콰쾅!

‘크윽!’

그런데 더욱 문제는 티폰이 불의 힘까지 다룬다는 것이다.

‘제길!’

백유현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생각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쐐애애앳-

콰쾅!

콰당탕!

백유현은 눈 깜빡할 사이에 날아드는 불덩이를 피해내지 못하고 폭발에 휘말려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깊게 쌓인 눈이 대미지를 상당히 상쇄해 주었지만, 문제는 또 다시 날아드는 수많은 불덩이들이었다.

콰콰콰쾃!

번쩍-

수십 개의 불덩이가 내리꽂히는 그 순간, 백유현의 전신에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지는가 싶더니 그는 미끄러지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력(死力)이 발동된 것이었다.

콰콰콰콰쾅!

콰르릉-

백유현이 있던 자리를 불덩이들이 덮치며 순간적으로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쌓여 있던 눈덩이들이 해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백유현은 그 광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신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눈사태는 견딜 재간이 없다. 버텨낸다 해도 그 사이 티폰은 사정없이 공격을 가해올 것이다.

콰앙-

백유현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땅을 박차고 위로 솟구쳐 올랐다.

콰르르륵-

아슬아슬하게 그가 있던 자리를 눈덩이들이 휩쓸고 지나갔다.

콰콰콰쾃!

거대한 폭풍 날개가 백유현의 등 뒤에서 활짝 펼쳐져 있었다.

날개가 아니었다면 아마 눈사태에 휘말려 어찌 됐을 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캬아아아-”

어느 새 사방에서 수많은 새 떼들이 그를 향해 덮쳐들고 있었다.

“나와라!”

부아아아앗-

그 순간, 백유현은 크게 외쳤고 그의 주변에 악마벌들이 수도 없이 떠올랐다.

“막아!”

그리고 다시 이어진 백유현의 짤막한 외침에 악마벌들은 새떼들을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수천 대 수천.

악마벌들의 최대 강점은 그 수가 많다는 데 있었지만, 새떼들도 하늘을 새카맣게 덮을 정도로 많았기에 승부가 쉽게 나진 않았다.

게다가 새들은 벌들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악마벌들은 벌의 한계를 벗어난 존재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떼들을 완벽하게 몰아붙이진 못하고 있었다.

‘이런!’

하지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잠시나마 주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벌들을 도와줘!”

쐐애애앳!

백유현은 다섯 개의 단창을 앞으로 쏘아 보냈다.

콰콰콰쾃!

단숨에 허공을 격해 날아간 단창들이 새들의 몸통을 뚫고, 놈들의 머리통을 박살내며 어지럽게 하늘을 수놓았다.

후두둑-

단창에 당해 온 몸이 찢겨져 나간 새들의 잔해가 비 오듯 쏟아졌다.

부아아앙-

그 때, 백유현을 향해 또 한 번 수십 개의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백유현은 이를 악물며 미친 듯 회피기동을 실시했다.

그를 스쳐 간 수십 개의 불덩이는 허공 저 너머로 사라지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백유현이 반격을 가하려 간장과 막야를 꽉 쥐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를 향해 뭔가가 쏜살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피해야...’

콰아앙!

슈아아앗!

콰쾅!

백유현은 순간적으로 거대한 충격을 받고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커윽!”

온 몸의 뼈가 다 박살난 듯한 극통에 백유현은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캬아아악!”

힘겹게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곳에는 거대한 새 하나가 광기 어린 두 눈으로 백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백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대...붕!’

비행기조차 종잇장처럼 우그러뜨린 미친 괴력을 지닌 녀석이다.

이번 한 번은 운 좋게 깊숙하게 쌓인 눈 위로 떨어져서 충격이 상쇄되었지만, 또 한 번 공격을 받으면...

“아니, 그런 건...없어.”

백유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최악 따윈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티폰을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 전에...네 놈을 죽여 버릴 거니까.”

간장과 막야가 나직하게 귀신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파앗-

그리고 백유현이 움직였다.

그를 향해 덮쳐드는 거대한 폭풍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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