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118화 (118/166)

118. 추락

산 밖으로 나온 일행은 바로 본국에 연락을 취했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면(永眠)하고 있어야 할 아서 왕과 그 무리들이 부활했고, 불멸자를 잡아먹는 새로운 변종이 등장했다.

페르세포네를 구출해야 하는 임무만 없었어도, 백유현조차 몰랐을 일이었다.

바포메트는 괜히 페르세포네를 납치해서 자기 무덤을 판셈이었다.

“후우, 일단 귀국하라는군. 자세한 얘기는 와서 하자고. 일단 런던 쪽도 제법 정리가 된 모양이야. 로스차일드 가문도 내로라하는 집안이니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우리나라부터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던데?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잖아.”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래서 돌아간다. 노블레스 멤버스 연합에서 이번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파악한 후 논의하기로 했으니 일단 그쪽 판단에 따르자.”

노블레스 멤버스 국제 연합에는 상당한 실력자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아마 그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제대로 분석하고 바로 피드백을 해줄 것이다.

“잠시만요.”

그 때 백유현은 안개가 걷힌 주변을 돌아보며 묵묵히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음...”

일행들도 그 광경을 보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안개가 짙게 깔려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안개가 걷히고 나니, 그 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것이었다.

어딜 보나 사람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불멸자들에게 육체를 빼앗긴 자들, 그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죽은 자들...

바포메트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시체들 또한 지하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니그로르.”

스스스-

백유현의 나직한 부름에 거대한 사신, 니그로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페르세포네를 안전한 곳에 옮겨 놓은 모양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로드.”

“이쪽은 헬(Hell)의 영역이지?”

“그렇습니다.”

백유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신들을 불러서 이들의 영혼들을 정중하게 저승으로 데려가. 죄 없는 자들이야.”

니그로르 역시 주변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로드.”

“그리고.”

백유현은 다시 니그로르를 바라보았다.

시커멓게 빛나는 니그로르의 두 눈이 그를 마주했다.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씀드려줘.”

니그로르는 잠시 백유현을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데스께서는 그러하실 것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고마워. 니그로르.”

“별 말씀을. 그럼.”

니그로르는 거대한 몸을 일으키더니 등을 돌렸다.

그의 어깨에 걸쳐진 커다란 낫이 쇳소리를 냈다.

영혼을 추수하는 자.

그것이 바로 니그로르와 같은 사신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파앗-

니그로르의 옆으로 수많은 사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은 수많은 시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영혼을 이끌어 냈다.

처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들은 슬피 울며 그들의 인도를 받아 저승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들이 저승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백유현은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두 눈을 감고 명복을 빌더니, 눈을 뜨고 말했다.

“가죠.”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느껴졌다.

백유현이, 눈앞의 수많은 죽은 이들을 위해 위령(慰靈)을 했다는 것을.

아마도 그들은 그래도 마지막 길은 편안하게 떠났을 것이다.

일행은 그렇게 공항 쪽으로 움직였다.

이곳, 영국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로 인해 무거워진 마음으로.

전용기가 영국의 밤하늘을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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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몇 시간 전, 영국에서 알파 팀이 출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영국 공군이 국경지역까지 직접 전용기를 호위했고, 각 나라의 상공을 지날 때마다 그 나라의 전용기가 다시 호위를 섰다.

영국에서의 엄청난 사건은 이미 사방으로 다 퍼져나갔던 것이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알파 팀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에 대해서, 이미 세계 전체에 쫙 퍼진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불멸자를 잡아먹는 변종 망자가 출현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큰일이군요.”

일행이 한국으로 날아오는 동안에도, 대통령의 주재로 국가안보회의는 고조된 분위기에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진행됐었다.

바로 지금, 하나의 보고서가 올라오기 전까지는.

대통령은 손가락 끝으로 탁자를 톡- 톡- 두드리다가 말했다.

“그러니까...전남 지역과 경북 지역, 충청, 강원...곳곳에서 각성자들이 갑자기 주변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들도 자살하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겁니까? 그게 한 번, 두 번도 아니라는 거고.”

“맞습니다. 대통령님. 처음에는 신고 되었던 김철중이라는 각성자는 워낙 평소에도 조울증이 심했기에 정신질환으로 그런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현증이 발병했다고 하더라도, 살인수법이나 자살한 모습이 워낙 끔찍하여...”

“슬라이드 준비됐습니까?”

“예, 지금 막 파일이 도착해서 세팅 완료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네.”

보좌관이 잠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매우 끔찍한 사진이 들어 있으니 미리 양지해 주십시오.”

팟- 팟-

그리고 슬라이드가 떴다.

“으윽...”

“으음!”

슬라이드가 올라올 때마다 국가안보회의에 배석한 장관이나 수석들은 절로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이건 보통 살인 사건과는 전혀 달랐다.

내장이 몽땅 끄집어져 있었고, 심장은 갈기갈기 찢긴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가 하면, 뇌가 사라진 시신도 있었고 아예 장기 전체가 사라진 시신도 있었다.

“보시다시피...살인수법이 너무도 잔혹하여 그저 미쳤다고만 보기에는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게다가.”

딸깍-

보좌관이 다음 장면으로 넘겼다.

“우욱!”

사람들은 그 뒤에 이어진 장면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메스꺼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장면에는 한 사내의 모습이 찍혀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자신의 손가락으로 귀와 눈을 모조리 찢고, 뽑아 낸 후 커다란 못으로 자신의 머리통에 못을 박아 죽은 사진이었다.

“보통...자살은 저렇게 할 수가 없지 않나요? 저건 자살이라고 보기에는...”

“자살이 맞습니다. CCTV에 모든 것이 찍혀 있었습니다. 김철중은 수십 명을 끔찍하게 살해한 후에 갑자기 자신의 머리통에 못을 박아 죽는 기괴한 자살을 했는데, 사상초유의 일이라 국과수나 수사팀에서도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이 갑자기 전국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보시죠.”

다시 슬라이드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김철중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끔찍한 사진들이 줄줄이 떠올라 있었다.

“이건 도저히 정상적인 일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노블레스 멤버스 측에 자문을 요청해두었지만, 딱히 뾰족한 답변은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대통령이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묵묵히 화면을 지켜보았다.

각성자들은 이제까지 불멸자들에게 대항해 목숨 걸고 싸워온 존재들이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몇몇은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벌써 전국적으로 수십 명이 주변 사람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말이 되기도 했다.

언젠가 있었던, 몇몇 사건들을 이어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관악구...그리고 이번 영국의 사건과 유사하군요.”

단체로 빙의된 관악구 근처의 주민들, 그리고 이번에 벌어졌던 영국에서의 사건.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잔악성에 있어서는 차원이 다르지만, 분명 그 사건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파 팀이 필요한 것이겠고...정확하게 말하면 그 백유현이라는 소년이 말이지요.”

“예. 아무래도 그 소년이 와야 이번 사태가 풀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초자연적인 사태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 백유현 군과 같은 능력자가 아니면 절대 이 상황을 풀어나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불멸자들이 부활하는 것을 막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이젠 각성자들이 저런 식으로 죽어가다니...정말이지 무섭고도 섬뜩합니다.”

총칼이 통하는 상대라면 그래도 방법은 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멀쩡하던 각성자들이 모조리 미쳐서 주변인들을 학살하고, 온갖 엽기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백유현 군이 오기까지.”

“비행이 순조롭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대략 여섯 시간 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도착하면 얼른 가서 데려 오세요. 지금 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국가안보회의는 사실 문제점들을 확인하는 수순밖에 되질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은 지금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삑- 삐빅-

“대통령님, 큰일 났습니다!”

그 때, 갑자기 보좌관 하나가 대경실색한 모습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이중 삼중으로 보안된 곳이었지만, 그 보좌관은 매우 큰 정보를 들고온 듯했다.

“뭡니까?”

보좌관은 급히 콘솔로 가더니, USB 스틱 하나를 넣고는 바로 띄웠다.

“이것 좀 보십시오!”

- 이 놀라운 광경은, 주변 국가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당장 대서양 근처의 국가들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으며,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저것은?”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보좌관이 입술을 꽉 깨물며 계속 뉴스를 진행시켰다.

- 과거, 신의 저주를 받아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던 아틀란티스 대륙이 지금 대서양의 한복판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광경입니다!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전설의 대륙이 지금, 떠오르고 있습니다! 다국적군으로 이뤄진 군대가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으며...

“아틀란티스 대륙? 아니, 그게 무슨...!”

“CNN의 특종 보도입니다. 엠바고가 풀려서 이제야 이 영상이 퍼지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CNN의 특종이라면 거짓일리가 없다.

그리고 이미 다른 저명한 뉴스채널에서도 아틀란티스 대륙의 재등장에 벌떼처럼 몰려가서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좋은 소식은 아니겠군요.”

대통령이 손을 깍지 끼며 침중하게 말했다.

“예...아틀란티스 대륙이 올라온 직후, 경계선을 쳤던 함대 십 수개가 박살이 났고, 헬기나 전투기가 행방불명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지금...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아틀란티스 대륙뿐만 아니다.

사실 화면의 저것이 전설의 아틀란티스 대륙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삐삐삐삐삐-

그 때 갑자기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것은 노블레스 멤버스 국제 연합과 연결된 경고등이었다.

보좌관 하나가 그쪽으로 가서 콘솔을 조작하더니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대...대통령님!”

“말씀하세요.”

“중국...에서 대붕(大鵬)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대붕이요? 그 전설속의 새가?”

“예, 그...그런데! 그 대붕이...지금!”

대통령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어쨌다는 겁니까?”

보좌관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마침 그 쪽 영공으로 진입한 우리 전용기를 공격했다고...”

“뭐라고요!”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장관이나 수석들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전용기가 추락,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서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합니다.”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전용기에는...

알파 팀이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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