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헬 게이트
털썩-
바포메트가 쓰러졌다.
파아아-
그와 동시에 백유현은 영체 상태에서 다시 육체로 돌아갔다.
“후우...”
강렬한 경험이었다.
시바가 전이한 루드라의 잔악무도는 마치 강력한 마약을 투여한 것처럼, 엄청난 쾌감을 주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손에 그 저릿한 맛이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은 맛볼 수가 없었다.
- 케에에엑!
바포메트의 몸에서 산양 머리를 한 영체 하나가 빠져나와 허공으로 빨려들듯 사라지고 있었다.
진짜 바포메트까지 소멸한 것이다.
[하데스의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사라진 페르세포네를 흔적을 찾아라- 임무를 완료하여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무 완료 보상으로 신체 능력치 30 포인트, 지하세계의 왕과의 친밀도 1,000, 검은 뼛조각 20개가 주어집니다]
[검은 뼛조각 : 죽은 이를 살릴 수 있는 뼛조각. 100개를 모으면 죽은 자의 혼을 되살릴 수 있다. 육체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200개의 뼛조각이 더 필요하다]
[추가보상으로 ‘검은 사령(死靈)’의 소환 권능이 주어집니다]
[검은 사령의 소환 : 사신 중 특수한 힘을 가진 검은 사령을 소환할 수 있게 됩니다. 종속(從屬)적이며 종신(終身)적인 계약을 할 수 있습니다]
‘검은 뼛조각!’
다른 것보다 백유현의 눈길을 잡아끄는 단어가 있었다.
검은 뼛조각.
마치 염라의 시편(尸片)과 마찬가지로 죽은 이를 되살릴 수 있는 힘이 깃든 물건이었다.
‘시편과 같이 쓸 수는 없는 건가?’
아쉬움이 있다면, 염라의 시편과 하데스의 검은 뼛조각을 혼용해서 쓸 수 없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혼용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가능해요.”
백유현은 그 목소리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셉! 괜찮은 거야?”
조셉이었다.
그는 극도로 피곤한 모습이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좋아져 있었다.
백유현의 말에 그는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손에 든 뭔가를 흔들어 보였다.
액체가 든 작은 물병이었다.
“크으...저도 일단은 불멸자니까요. 이런 걸 구해뒀었지요. 바포메트만 사라지면 바로 마시려고...”
“그게 뭔데?”
“타락한 영체의 정수(精髓)라는 건데...그 어떤 상처도 낫게 하고, 기력을 회복시키죠. 슬슬 약효가 듣나 보네요. 후우...”
아닌 게 아니라, 조셉의 상태는 점차 좋아지고 있었다.
“일단 페르세포네를 깨우는 게 어때요? 다행히 바포메트가 죽어서 죽을 걱정은 없지만, 하데스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근데 조셉, 아까 너...검은 뼛조각하고 시편하고 같이 쓸 수 있다고 한 거 맞아?”
조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래에도 그렇게 쓴 전적이 있으니까요. 단, 등가교환은 안 됩니다. 어느 한쪽을 손해 보는 것은 감수해야 해요.”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시편과 검은 뼛조각을 같이 쓸 수 있다는 것이.
“자세한 건 염라나 하데스에게 물어봐야 할 겁니다. 따로 계약이 필요할 수도 있고. 죽은 이를 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백유현이 말했다.
“그건 각오하고 있어.”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제단을 바라보았다.
붉은 옷을 입은 페르세포네는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모종의 술법을 쓴 모양이었다.
바포메트가 죽었어도 그 술법의 효력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니, 어지간히 지독한 술법인 듯싶었다.
하긴 바포메트 자신이 검은 미사의 주관자이다 보니, 제물을 이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그 때, 하데스가 백유현을 주시하고 있다는 창이 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창이 이어서 떠올랐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의 심면(沈眠)을 풀어주길 원합니다]
[응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보통 방법으로는 그녀를 깨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백유현은 조셉 쪽을 흘끗 봤다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자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한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다시 창이 생겨났다.
[지하세계의 왕 : 페르세포네를 깊은 잠에서 깨워라]
[임무 완료 조건 : 페르세포네가 깨어남]
[임무 완료 보상 : 지하세계의 왕과의 계약, 지하세계의 왕과의 친밀도 2,000, 검은 뼛조각 20개, 권능, 영혼의 단죄]
[지하세계의 왕이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열흘입니다]
[임무 정보 : 바포메트의 사악한 술법에 의해 잠든 페르세포네를 깨워야 한다. 하데스에 의하면, 저승꽃과 지옥참살자의 피를 섞어 만든 영약만이 그녀의 잠을 깨울 수 있다고 한다. 하데스의 권능, 헬 게이트(Hell Gate)를 이용하면 저승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데스의 권능, 헬 게이트가 전이됩니다]
[전이 중. 권능, 헬 게이트 42 퍼센트 전이 완료]
[전이 중...]
[전이 완료. 권능, 헬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헬 게이트 권능을 얻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백유현이 바라보니, 검은 해골에 다 낡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거대한 사신 하나가 서 있었다.
사신은 백유현을 보며 머리를 숙여 보였다.
“로드시여.”
검은 사령이었다.
차사들처럼, 놈도 백유현에게 종속된 존재였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물었다.
“이름은?”
“니그로르(nigror)입니다.”
백유현은 다시 물었다.
“네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뭐지?”
그 말에 니그로르가 고개를 들더니 두 동공 깊숙한 곳에서 형형한 빛을 발하며 대답했다.
“대적자들의 모든 죽음, 그리고 고통. 두 가지입니다.”
강렬한 대답이었다.
누구든 백유현에게 대적하면 다 죽여 없애겠다는 소리였으니까.
‘강효보다 강해 보이네.’
아직 강효는 품계가 올라가지 않은 상태라 앞으로도 발전의 여지가 있지만, 냉정하게 지금 상태로만 따지면 니그로르가 훨씬 강했다.
“좋아. 니그로르. 너와 계약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계약의 인을 맺으시면 되옵니다.”
“계약의 인이라.”
백유현은 눈앞에 떠오른 하나의 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모양대로 수인을 맺었다.
파앗-
[종속자, 검은 사령 니그로르와 계약을 하시겠습니까?]
[대가는 없으며, 계약이 완료되면 니그로르는 종속적으로, 종신적으로 당신의 종복이 됩니다]
‘좋아.’
팟-
백유현의 소리 없는 대답에 눈앞의 창이 사라지고 또 다른 창이 떠올랐다.
[니그로르와의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검은 사령, 니그로르가 종복이 되었습니다. 검은 망령의 조각을 모아, 니그로르의 등급을 올릴 수 있습니다.]
[니그로르의 현재 등급 : 1]
“로드의 뜻대로, 대적자들에게 죽음을.”
니그로르가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좋아. 니그로르. 일단 페르세포네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자. 헬 게이트를 여는 것은 그 뒤야.”
“알겠습니다.”
니그로르가 일어서자, 놈의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했다.
그리고 그는 페르세포네를 가볍게 앉고는 성큼 입구 쪽으로 향했다.
이미 독기는 사라졌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더 이상 없었다.
백유현은 조셉을 바라보았다.
“같이 갈거야?”
조셉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불멸자는 불멸자의 일을 해야지요. 후후. 오늘의 일을 교훈 삼아서 말이죠.”
“그래. 몸 조심 해.”
“아, 그런데 백유현 군.”
“할 말 있어?”
조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불멸자를 잡아먹는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그 시기 또한 미래에 비해 훨씬 빨라졌어요.”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예...더욱 문제는 과거의 악신들이 망유계의 망자들에게 사냥당하고 있다는 것이죠. 아, 더 이상 얘기했다간 저는 추적자들에게 또 쫓기게 될 거에요. 아무튼 조심하시길. 그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의 전부입니다.”
“그래. 고마워.”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데 조셉이 다시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조셉을 살려주신 데에 대한 보답은 해야지요. 후후.”
조셉은 백유현을 보며 다시금 웃었다.
“앞으로는 아마 더욱 강한 존재들과 조우하게 될 겁니다. 이 능력이 백유현군에게 도움이 되길.”
파앗-
[조셉이 권능, ‘약점 포착’을 전이하려 합니다]
[응하시겠습니까?]
약점 포착.
조셉이 과거, 혹은 먼 미래까지 가서 몬스터들의 약점을 파악해 보여주는 권능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냥을 당해 죽는 미래를 보거나, 놈들의 과거를 훑어서 약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고마워. 조셉.”
“별 말씀을. 그럼 저는 일을 보러 이만.”
조셉이 싱긋 웃더니 허공으로 녹아들며 사라졌다.
[조셉의 권능, 약점 포착의 전이가 완료되었습니다]
[약점 포착(1단계) : 대상의 약점을 포착할 수 있게 됩니다. 약점이 포착되면 대상에 원이 생기며, 그 약점이 치명적일수록 원의 색이 붉어집니다. 약점 포착은 15초간 지속되며, 재사용 대기시간은 10시간입니다. 단계가 올라가면 지속 시간이 늘어나고, 대기시간이 줄어듭니다.]
조셉의 권능 중에서 상당한 효능을 가진 약점 포착이 손에 들어왔다.
아마 조셉은 아까 자신을 살려준 데에 대한 보답을 해준 듯했다.
약점 포착까지 전이 받은 백유현은 바깥으로 향했다.
쾅- 쾅-
쿠르르르-
스스로 무너뜨렸던 벽을 뚫고 올라가자, 그곳에는 일행들이 앉아 있다가 반색을 했다.
“이런, 백유현! 괜찮은 거야?”
“인마, 얼마나 걱정했는데! 괜찮아?”
팀원들은 바로 달려와 백유현을 걱정해주었다. 백유현은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바포메트가 부활해 있었어요.”
“바포메트? 그...산양 대가리를 하고 있는 놈 말이야?”
“예, 맞아요.”
주세광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그런 놈이 여기에 있었다니...! 그냥 돌아갔다면 엄청난 참상이 벌어질 뻔했군.”
박성진도 거들었다.
“유현이가 잘 해줘서 막은 셈이지. 후우, 고생했다. 유현아.”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음? 그게 무슨 소리지?”
백유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불멸자들을 잡아먹는 존재들이 나타났어요.”
“불멸자들을 잡아먹는다니?”
“말 그대로에요. 불멸자들을 잡아먹고 그 육체 안에 기생하는 자들이 나타난 거죠. 그렇게 되면...”
일행은 백유현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들 중 하나만 제대로 부활해도 세상은 끝날 지도 몰라요.”
고대의 악신들.
그 악신의 힘을 고스란히 쓸 수 있는 망자들이 생겨난다면...
바포메트 정도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놈들에게 세계가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고.
지금 상황은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망유계의 망자들로 인해 부활하는 불멸자들이 속출하고 있었고, 그를 막아낼 각성자들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불멸자들을 아예 집어 삼키는 존재들이 나타나다니...
일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앞으로의 세계는 더욱 더 예측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