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폐쇄 계단
철벅, 철벅.
코를 찌르는 악취가 넘치고 있었다.
계단.
아래로 끝도 없이 이어진 그 계단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백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다.
원래 이런 상황이 펼쳐져 있었고, 그 상황은 매우 끔찍했다.
머리가 통째로 뜯겨져 나간 시체도 있었고, 잡아먹히다 버려진 듯,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조각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뭐야, 도대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내, 냄새! 너 방귀 꼈냐!”
그런데 옆에서 노움 몇이 툭 튀어나오더니 코를 감싸 쥐며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이건 내 똥 냄새보다 더욱 지독하다! 토...토할 것 같다!”
노움들은 서로를 보며 손가락질 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백유현은 그들이 그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유황! 분명히 유황냄새야!’
사실 유황 냄새는 얼마 전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잠시 사라졌다가 지금은 엄청나게 짙어져 있었다.
노움들이 저러는 것도 당연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땅의 정령이라면 유황 냄새에는 이골이 났을텐데?’
백유현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유황냄새는 화산이 있는 곳이면 너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땅의 정령인 노움들이 유황 냄새를 맡고 토악질까지 한다?
뭔가 앞뒤가 안 맞았던 것이었다.
“꾸루륵!”
그런데 유황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노움만이 아니었다.
브라만은 이 좁은 계단은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려 낑낑대다가 녀석도 갑자기 벽에 대고 구토를 시작했던 것이다.
“브라만...”
백유현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괜찮지?’
분명 유황 냄새는 무척 역했다.
하지만 구토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구토를 하고 있는 브라만이나 노움들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
마치...중독(中毒)된 것처럼.
그 때 옆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멈춰라! 비상(砒霜)이 섞여 있다!”
척준경이었다.
“비상이요?”
백유현은 예전에 책에서 봤던 정보를 떠올렸다.
비상(砒霜).
극독에 들어가며, 과거에는 이것을 이용해 독약을 만들기도 했었다.
비상으로 만든 독약을 먹는 순간, 즉사할 정도로 위험한 독.
백유현은 그제야 노움들과 브라만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차렸다.
공기 중에 유황 냄새와 더불어 비상이 독기가 섞여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라면 백유현은 왜 괜찮은 지 설명이 되었다.
백유현은 만독불침의 몸이었으니까.
“크윽...소, 소주...! 이런 극독은 처음 보옵니다!”
그런데 차사, 강효와 문광, 그리고 또 다른 차사들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음? 이건 또 무슨!’
영체인 차사들이 독에 당할 리가 없다.
독기가 그들에게 침범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차사들은 중독된 것처럼 비틀거리고 있었다.
백유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급히 외쳤다.
“다들 뒤로 빠져! 어서!”
“크윽!”
강효와 다른 차사들은 재빨리 뒤로 빠져나왔지만 이미 그들의 안색은 매우 좋지 않았다.
“흐이이익! 피, 피 난다!”
“흐에엑! 무...무섭...다!”
노움들도 한 바탕 난리가 났다.
백유현이 보니, 놈들의 두 눈에서는 진득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코에서도 피가 흘렀고, 입가를 따라서도 시커먼 피가 흐르다 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음머어어어!”
하지만 브라만은 어지러워만 할 뿐, 피를 흘리거나 하진 않았다.
“비상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학령초(鶴靈草)에 학정홍(鶴頂紅), 장독까지...! 무시무시한 독이 모조리 모여 있구나! 크윽!”
척준경조차 갑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코에서 주루룩 피를 흘렸다.
“어르신!”
“비...빌어먹을! 영체(靈體)인 우리에게조차 독기가 침범하다니! 이 아래 있는 놈이 어떤 놈인지 몰라도, 상당한 자다. 몸조심 하여라, 후손아!”
척준경 역시 독기에 깊이 당했는지 그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어르신, 어서 위로 올라가십시오!”
척준경이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비....비겁한!”
“강효, 너희들도 어서 올라가!”
“예...소...소주!”
강효와 문광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차사들도 그 자리에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어서!”
“예...!”
강효와 문광은 차사들을 부축해서 위로 사라졌다. 척준경도, 노움들도, 브라만도 위기를 느꼈는지 계단 위로 재빨리 올라갔다.
더 이상 있다간 내장이 녹아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올려 보낸 백유현은 매섭게 계단 아래를 노려보았다.
‘어떤 놈이...!’
무려 하데스의 부인,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자다.
그런 자가 보통 놈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이렇듯 지독한 독기를 다루는 자라니...!
백유현은 노라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타임 어택이 시작된 거군.’
페르세포네는 비록 인간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녀는 데미갓이기도 했다.
거기다 더해 오랜 시간을 저승에서 살아온 존재.
그러니 어느 정도 독기를 버틸 수 있다고 해도, 아마 한계가 곧 닥치게 될 것이다.
노라스는 그 점을 경고한 것이다.
‘서둘러야겠어! 이 정도 독기라면 어쩌면 그 전에 페르세포네가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백유현은 그 어떤 독도 통하지 않는 만독불침의 몸이라 크게 타격은 받지 않았지만,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어떤 동료들의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차사들도, 사신들도, 척준경이나 브라만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잠잠한 무전이 신경 쓰였다.
어느 순간부터 무전이 뚝 끊긴 것이다.
‘알려야겠어.’
하지만 알파 팀이 이쪽으로 내려와선 안 된다. 알릴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던 백유현은 주변을 돌아보더니 방법을 찾아냈다.
‘입구를 봉쇄한다.’
유황냄새가 다시 나기 시작한 곳의 벽을 무너뜨려 진입자체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아니면 알파 팀이 독기를 흡수하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늦는다.
콰앙-
백유현은 바로 자리를 잡고 벽을 무너뜨렸다.
그렇다고 해서 깊게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백유현의 힘이라면 언제든 뚫고 나갈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브라만. 여길 막아.’
그리고 마음 속으로 브라만을 불렀다.
“음머어어!”
곧 브라만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영특하니, 백유현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해줄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래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진검승부를 할 때였다.
‘서두르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파앗-
백유현은 아래쪽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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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태산이었다.
독에 녹아버린 몬스터들의 잔해가 널려 있었고, 그 고기를 먹으려 왔던 벌레들도 모조리 죽어 있었다.
그리고 잘근잘근 씹힌 고기 조각들이 널려 있었고, 썩은 피가 풍기는 냄새 또한 지독하게 퍼졌다.
계단은 어느 순간 끝이 나 있었고, 그는 커다란 홀 안으로 들어섰는데 홀 안 가득 죽음의 냄새가 지독스럽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백유현은 어둠 가운데서도 기이한 것을 발견했다.
‘붉은 천?’
보드라운 비단으로 만들어진 천 조각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페르세포네의 찢긴 옷자락]
[페르세포네가 끌려가면서 남긴 옷 조각입니다. 그녀의 독특한 체취가 남아 있습니다]
페르세포네의 옷자락이 맞았다.
‘저건...?’
백유현은 옷자락이 남아 있는 쪽 옆에 뭔가 짓이겨진 채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고개를 숙인 채 죽어 있는 남녀였다. 몬스터들의 시체만 득시글거리는 이곳에 남녀의 시체라니.
남녀는 이미 독기에 침범당해 살과 가죽이 녹아있었고, 겨우 사람이라는 것과 입고 있는 옷으로 남녀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오른손에는 검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음.’
백유현은 손을 뻗어 반지를 주워들었다.
[종복의 반지]
[저승의 시종들의 반지입니다]
[하데스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럼 이 자들이?’
아마 페르세포네를 돕던 종복들이었던 모양이었다.
지금은 이렇듯 처참한 모습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크르르르...”
그런데 백유현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노리고 뭔가가 다가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왔나보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자루 검을 빼들었다.
그를 중심으로 홀의 사방에서 몰려드는 기괴한 괴물들.
죽은 이들의 가죽과 뼈를 가지고 만든 듯, 매우 흉측하고 오싹한 외양을 가진 놈들이었다.
생김새는 늑대를 닮았지만, 두 눈에서 뿜어지는 살벌한 기운은 늑대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런 놈들이 수십.
‘쉽지 않겠어.’
놈들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숫자들을 보며 백유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157.
162.
149.
...
이곳을 지키는 몬스터치고는 꽤 강하다.
그리고 백유현에게는 사신도, 차사도, 브라만도 척준경도 없는 상황.
오로지 혼자 싸워야 하는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지만.’
백유현은 두 눈을 매섭게 빛냈다.
놈들이 거리를 좁혀 오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얘기일 수도 있었으니까.
“캬아악!”
놈들이 덤벼 들었다.
번쩍-
그 순간, 백유현이 놈들 사이로 스치듯 지나쳤다.
그와 동시에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검은 광채!
“캬아앙!”
촤촤촤촷!
그 검은 광채는 백유현을 덮치던 모든 몬스터들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사방으로 육편(肉片)이 튀고, 핏물이 뿜어졌다.
철컹-
뒤를 볼 것도 없었다.
이미 백유현은 모든 것이 깨끗하게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저벅.
백유현은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모든 것이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한 지금, 그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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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행은 아까부터 눈살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응? 뭐라고?”
“음머어어어!”
백유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백유현의 흰 소만 계단에 남아 있었다.
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은 어딜 봐도 통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래쪽으로 이어져 있어야 할 부분은 무너진 벽의 잔해가 뒤덮고 있었고, 그 앞을 브라만이 단호하게 지키고 있었다.
“아니, 얘가 아까부터 뭐라고 하는 거지?”
“음머어! 푸륵!”
브라만도, 놈과 대화하는 사람들도 답답한 지금이었다.
“무전이라도 터지면 좋겠는데...무전이 완전히 나가 버렸으니.”
답답한 것은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박성진은 주의 깊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서 있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저기 계단을 덮고 있는 벽의 잔해를 보면,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이 확실하고.”
주세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 누군가는 유현이일 테고요. 문제는 녀석이 왜 그랬는지인데...”
“기다려보자고. 유현이가 그냥 이렇게 일을 벌일 녀석이 아니니까.”
박성진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좀 쉬자고. 녀석이 나온 뒤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니.”
“예, 그럽시다!”
“저는 위쪽을 감시하고 있을게요.”
천무현이 보초를 자청했고, 다른 일행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물과 육포를 씹었다.
“음머!”
그런데 일행이 그 자리에 앉자, 브라만도 다가와서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박성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커다란 눈망울에 뭔가 애절함이 섞인 모습에 박성진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이거 달라고? 이런, 소가 육식을 하다니, 못 쓰겠는데?”
박성진은 브라만이 자신의 손에 들린 육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 한 조각을 던져 주었다.
“음머어어어!”
브라만은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육표를 낼름 삼켰다.
“음머어!”
그리고 또 다시 애잔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박성진을 바라보았다.
“어휴, 못 말리는 녀석. 여기 있다. 다 먹어라.”
박성진은 육포를 죄다 던져주었다.
녀석도 쉬지 않고 싸웠으니 배가 고플만도 했다.
우적거리며 육포를 집어 삼키고 있는 브라만을 보며 박성진은 생각에 잠겼다.
‘백유현...괜찮은 거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백유현이 결정한 일이고, 박성진은 그를 존중하고 싶었다.
동시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 아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