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땅의 정령왕
[조셉의 스페셜 퀘스트를 완료하여 보상이 주어집니다]
[신체 능력치 5가 주어집니다]
[엑스칼리버의 칼집이 주어집니다]
[엑스칼리버의 칼집 : 칼집의 능력을 발동시키면 10초간 체력 회복 속도가 400 퍼센트 증가합니다]
[흡혈에 면역이 됩니다]
[비비안의 눈물이 주어집니다]
[비비안의 눈물 : 호수의 정령, 비비안의가호를 얻습니다. 단 2회에 한하여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백유현의 눈앞에는 창이 떠올라 있었다. 임무 완료창이었다.
“아이야.”
그런데 그 때, 아서 왕이 다가오며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백골만 남은 얼굴이었지만, 텅 빈 두 눈에서 뿜어지는 것은 살기가 아닌, 미안함과 부드러움이 섞인 감정이었다.
“예, 왕이시여.”
백유현이 고개를 숙이자, 아서 왕이 다가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말했다.
“고맙다. 내 그릇된 분노를 잠재워줘서. 멀린 경.”
“왕이시여.”
백유현을 보며 고마움을 표하던 아서 왕이 뒤를 돌아보며 멀린을 불렀다.
멀린 역시 이전과는 다르게 매우 온화한 모습으로 다가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소년에게 내릴 정당한 상이 없겠소? 이 소년은 그것을 받아도 마땅하오.”
멀린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습니다. 왕이시여. 소년이 아니었다면, 그릇된 분노의 악령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이미 비비안과 정체 모를 귀인에게서 엑스칼리버의 칼집과 비비안의 눈물을 얻은 듯하지만...그것으로 부족하오. 엑스칼리버는 한 번 뽑힌 이상, 다시는 칼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하여, 멀린. 소년에게 무엇을 주실 수 있겠소?”
멀린이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제게 고대용의 마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해주어도 되겠습니까?”
아서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오.”
멀린 또한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의 존재들이 나타난 지금, 네게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뿐인 것 같구나. 고대용, 기가로노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마법을 얻는 자는 모든 정령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죽은 몸. 정령에게 죽은 자의 마법은 어울리지 않지. 그래서 이 마법을 너에게 전해주마.”
그 말에 백유현은 크게 두 눈을 떴다.
‘정령...!’
요즘 같은 세상에 정령이라니!
그런데 눈앞에 서 있는 비비안을 보니 그 말도 썩 어울리지 않는 듯싶었다.
게다가 불멸자들도 나타나는 마당에 정령 정도라면.
멀린이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정령들은 상당수가 소멸했지만, 그래도 살아남아 이 세계의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단다. 그 존재들을 불러낼 수 있는 계약의 언어, 룬어를 전이해줄 것이다.”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착하구나. 마음을 열어라. 그리하면 룬어는 스스로 네 마음 속에 각인될 것이다.”
“예.”
마음을 여는 일은 백유현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심언(心言)을 나누는 일에 관해서는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으니까.
백유현이 조용히 두 눈을 감자, 멀린이 그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파앗-
그러자 그 두 손에서 희뿌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그대로 백유현의 머리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그그극!
백유현은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이미지들은 백유현이 처음 보는 존재들이었다.
‘이 자들이 정령...!’
불꽃의 모습을 한 존재, 물방울의 모습을 한 존재...
수많은 존재들의 이미지가 생전 처음 보는 글자들과 어우러져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그 과정은 오래 지속되었다.
팟!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이미지가 일순간 사라졌다.
“흐읍!”
백유현은 두 눈을 번쩍 뜨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눈앞에는 멀린과 아서 왕이 여전히 서 있었고, 다른 팀원들도 보였다.
그리고...
‘...!’
백유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외, 수많은 존재들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었다.
“끼룩?”
“케루룩!”
저만치, 땅 속에서 머리만 불쑥 내밀고 있는 붉은 몸뚱이의 존재들과, 물위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존재들...
그리고 화가 난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존재...
‘아...아름답다!’
그 수많은 존재들이 겹쳐서 노닐고 존재하는 광경은, 말 그대로 아름답다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고대의 힘이 발현됩니다]
[엘리멘탈 마스터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엘리멘탈 마스터(elemental master) : 자연계의 정령과 오래 전 계약한 자의 피를 이어 받은 존재. 아마 당신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대마법사 멀린의 표식이 당신에게 옮겨졌습니다]
[표식의 이전에 따라 고대용 기가로노스의 계약 또한 전승(傳承)됩니다]
[불과 물, 공기와 흙의 정령이 당신을 따릅니다]
[각 정령계의 왕들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숲의 정령은 멸족하여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다]
[지하의 정령은 멸족하여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다]
....
불과 물, 공기와 흙의 정령들과의 계약이 백유현에게 전승되었다.
하지만 그 밑으로 수십 종족의 정령들은 이미 멸족한지 오래되어 계약이 소멸된 상태.
“전승이 완료되었구나. 명심하여라. 정령들은 부리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하는 존재라는 것을.”
멀린은 부드럽게 말하더니, 다시 아서 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왕이시여. 소년에게 정당한 상을 내렸사옵니다.”
아서 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오. 경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오. 그럼...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봐야 하겠군. 안 그렇소?”
멀린 역시 아서 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응당 그래야 할 것입니다.”
“가십시다. 우리의 왕국을 지키러. 착검(着劍)하라!”
아서 왕은 기사들을 향해 우렁찬 명을 내렸다.
비록 육성으로 전해지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우레와 같이 선명하고 똑똑하게 뇌리에 전해졌다.
척- 척-
기사들은 검을 절도 있게 거두어들이더니 대오를 이루어 섰다.
“진군하라! 우리의 땅으로!”
아서 왕의 외침이 울리고, 기사들은 전진했다.
아서 왕 역시 걸어가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고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아이야, 나중에 다시 보자꾸나.”
백유현은 그에게 다시 고개를 깊숙하게 숙여 보였다.
“무운을 빕니다. 왕이시여.”
아서 왕과 기사들은 저 멀리, 북쪽으로 사라져갔다.
주변에 잔뜩 드리웠던 진한 안개도 어느 순간 싹 걷혀 있었다.
“전설...이 돌아왔고...또 다른 전설이 시작되었군. 정말 놀라운 일이야.”
조슈아가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엘리자베스 역시 경직된 표정이었다.
고대 영국의 영웅, 아서 왕이 깨어났고 멀린 역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곳에, 새로운 전설을 쓴 존재가 탄생했다.
“미스터 박. 어서 돌아가게. 이제 이곳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네. 아, 그리고 이곳에서 본 것은 일단은 우리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하지.”
조슈아는 박성진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박성진이 고개를 저었다.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저 녀석이 아직 여기서 볼 일이 안 끝난 듯해서 말입니다. 조금만 더 모른 척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박성진은 백유현을 가리켰고, 조슈아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말했다.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알겠네. 자, 엘리자베스! 런던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었나? 어서 가보는 게 좋겠군!”
엘리자베스도 얼른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 그랬죠! 얼른 서둘러야겠는걸요?”
“미스터 박! 다음에 보세!”
박성진이 조슈아를 보며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조슈아와 엘리자베스가 사라지자, 주세광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 영감님, 괜한 말 하지 않겠죠?”
조슈아가 정보부 소속임을 상기시킨 것이다.
박성진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저 양반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뭐, 그런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고.”
주세광이 씩 웃었다.
“하긴 그렇죠. 그런다고 해도 별 일은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유현아, 할 일은...”
주세광은 뒤로 돌았다가 흠칫 표정을 굳혔다.
“저 녀석 주변에 저것들이 정령인가? 아까는 안 보였는데.”
정령.
일반인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녀석들이 백유현에게 몰려들기 시작하니까 마치 희뿌연 막이 백유현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팀원들이 놀라움 반, 부러움 반이 섞인 표정으로 백유현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끽? 끼끼끽!”
“응? 뭐라고?”
아주 작고 귀엽게 생긴 물방울 정령 하나가 얼굴이 새빨갛게 된 채로 손짓발짓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백유현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인...간! 여자...찾는다...?”
그런데 그보다 몸집이 좀 더 큰 험상궂게 생긴 땅의 정령이 와서 백유현을 툭툭 건드렸다.
“넌 말을 하네?”
“나...똑똑...하니깐?”
땅의 정령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몸집은 매우 작았지만,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어떤 여자를 말하는 거지?”
백유현의 머릿속에 언뜻 페르세포네가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령이 그걸 알고 있을 리가!
“그...성질 더러운...킥! 그...시퍼런...작자...말이야. 땅...아래에 있는...엉덩이도 시...퍼런.”
백유현이 와락 표정을 구겼다.
‘설마...하데스를 말하는 건가!“
그 때 정령들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마...맞다! 하...데스. 요 밑에 있다! 그...녀석!”
땅의 정령이 땅을 팡팡 치며 말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옥의 왕인데 그렇게 이름 막 불러도 되는 거야?”
땅의 정령이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나...난...지옥...에 안 간다...죽으면...흙이...되...니까.”
‘아...!’
백유현은 정령이 왜 하데스를 무서워하지 않는지 알아차렸다.
어차피 정령들은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들은 죽으면 소멸되거나, 대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니 하데스를 어디 강아지처럼 생각할 수밖에.
“그럼...페르세포네의 행방을 알고 있어?”
“그...그럼! 난....난 똑똑...하니까!”
정령이 또 다시 팔짱을 끼며 거들먹거렸다.
“어디지?”
땅의 정령이 뒤를 가리켰다.
안개가 사라지니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그리 높지 않은 야산.
“저기라고?”
“사...산이...여자를...삼...삼켰다. 그...그리고...저 산의 배...에는 또 누군가...있다!”
말대로 하자면, 산의 내부에는 누군가 있다는 뜻이고, 페르세포네는 그 안으로 끌려들어갔다는 얘기다.
“그래?”
백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앞장 서...주마! 너는...약...해보인다!”
백유현은 피식 웃었다.
아서 왕을 막아낸 자신이 약해 보인다니.
“곧...우...우리 왕이...도착...할 거...다. 가...같이 가라.”
“정령왕이?”
백유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였다.
와드득!
그의 뒤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왕이다! 자...잘 생겼다!”
땅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발견한 백유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 쪽이...정령왕?”
작은, 아주 작은 정령 하나가 서 있었다.
대략 엄지 손가락만한.
그리고 귀엽게도 어깨에는 화려한 망토를 걸치고 있었고,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있었다.
녀석은 백유현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