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아발론
청와대.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는 청와대에 모든 시선이 쏠려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반드시 둘 중 하나의 반응이 나온다.
원망이던지, 찬사던지.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극찬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대처한 청와대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극히 이례적으로, 언론에서도 거의 대부분 그런 식의 기조를 보였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라 전체에 퍼졌고, 그로 인해 지지율이 사상 최고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
그것이 가능하게 된 상황에는 ‘알파 팀’이 있었다.
알파 팀이 없었더라면 절대 해낼 수가 없었던 일들이었으니까.
그 알파 팀을 청와대에서 초청했다.
하지만 이번 초청은 알파 팀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알파 팀에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부른 것이라 봐야했다.
“아...그렇습니까?”
대통령을 직접 대면한 알파 팀은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참이었다.
박성진 또한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요청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우리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면 요청들을 받아들일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갈수록 사상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이런 상황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의 말에는 미안함과 간곡함이 들어 있었다.
“요청을 해온 나라가 어디라고 하셨지요?”
그때, 백유현이 입을 열어 물었다.
대통령 및, 참모진의 시선이 일순간 그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백유현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데 일등공신이 바로 백유현이었으니까.
그는 어느덧 알파 팀의 핵심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중국, 미국, 일본...그리고 영국과 러시아...그 외 서른 곳이 넘는 국가에서 요청을 해왔습니다.”
옆에 있던 안보수석이 대통령 대신 대답했다.
백유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잠시 저희끼리 의논해도 될까요?”
대통령 또한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얼마든지. 자리가 필요하다면 옆 회의실에서 의논하셔도 됩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알파 팀은 백유현을 따라 옆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일이야?”
팀원들도 갑작스런 백유현의 행동에 궁금증이 일었던 참이었다.
“저희 영국으로 가는 게 어떻겠어요?”
“영국? 왜 영국이야?”
백유현은 E-와치를 조작해서 영국 지도를 띄웠다. E-와치는 홀로그램으로 화면을 확대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팀원 전체가 볼 수 있었다.
“이곳에 볼일이 있어서요.”
그가 가리킨 곳은 영국의 UK-2992 터미널이었다.
“응? 여긴...?”
“맞아. 여기...유명한 곳이잖아?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아서 왕의 유물을 발견했다던 곳. 아발론 말이야.”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수많은 시간 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아서왕이 최후로 잠든 섬, 아발론이 발견되었다는 지역이었다.
인구 7천명의 작은 지방이었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아발론의 존재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해서 유명해진 곳이었다.
그 전에도 암암리에 알려졌던 곳인데, 로스차일드의 영향력이 더해지니 그 유명세가 엄청나게 확장된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발견되었다는 멀린의 용반지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염의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이 그것이었는데,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각성자 중 하나가 그 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UK-2992 터미널은 바로 그 글래스턴베리에 위치해 있었다.
“아발론이라...이곳에 볼일이 있다고? 이 UK-2992 터미널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 텐데?”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로스차일드 가문이 사적으로 소유한 터미널이죠. 그 정도 정보조사는 해봤어요. 하지만 꼭 가야 해요. 그리고...”
백유현은 E-와치를 조작해 붉은 점들이 뭉쳐 있는 광경을 띄웠다.
“마침 이 근처에 불멸자들이 대거 출몰했다는 경고도 떠 있고요.”
박성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니까...이 상황을 이용해 로스차일드 가문의 개입을 원천봉쇄하겠다?”
“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안 올 기회죠.”
“그렇군. 어차피 한 곳에 구원을 가게 되면 다른 곳은 버려야 하니. 이왕이면 볼일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맞겠지. 중국이든 일본이든, 우리한테 예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좋다. 영국으로 정하자.”
박성진이 마음을 정하자, 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세광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래, 어차피 우리도 유현이 없으면 별로 할 게 없으니 네가 가자는 대로 가는 게 맞지.”
천무현도 손을 번쩍 들었다.
“좋아, 나도 찬성!”
“우리 꼬맹이가 좋다면야. 후후!”
팀원들도 전격적으로 찬성했다.
“고맙습니다.”
백유현은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가 영국에 가려는 이유는 단 하나, 페르세포네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데스와의 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럼 대통령님께 전달하자고. 어차피 움직일 거면 얼른 움직이는게 낫겠지.”
알파 팀은 다시 대통령 집무실로 돌아갔다.
“얘기는 잘 되셨습니까?”
대통령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았다.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저희는 영국을 우선 돕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로스차일드 가문과 연을 맺어두면 앞으로 좋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이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라. 나쁘지 않지요. 오히려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그쪽이 훨씬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판단하셨을 테니 믿고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대통령은 뒤를 보더니 말했다.
“영국, 리처드 수상에게 연결하세요.”
“예, 대통령님.”
다시 대통령이 팀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빈관에서 잠시 기다리시겠습니까? 곧 전용 항공편과 물자들이 준비될 겁니다. 오신 김에 식사하시면서 좀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영국과 의견 조율하려면 두어 시간 필요할 겁니다.”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알파 팀원들은 비서관의 안내를 받으며 춘추관으로 향했다.
이미 연락이 되어 있었는지, 영빈관에는 근사한 요리가 준비되고 있었다.
“편히 드시면서 쉬시고 계십시오.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안 그래도 배가 고팠던 참이라, 그들은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곧 연락이 왔다.
“영국에서 모든 수속을 마쳤다고 합니다. 바로 성남 공항으로 모시겠습니다.”
일행은 다시 성남 공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전용 항공편이 마련되어 있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대통령 대신 배웅 나온 보좌관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들은 항공기에 올랐다.
위이이잉-
곧 항공기는 이륙했고, 그들은 빠르게 한국을 벗어났다.
‘음...’
그리고 백유현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페르세포네.
그녀의 흔적을 찾아야 했다.
----------
영국에 도착하자, 영국 정부에서 보낸 요원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바로 글래스턴배리로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 취해둔 상태였다.
이것 또한, 한국 측에서 특별히 요구한 사항으로 영국에서는 도와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라, 바로 그쪽으로 갈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도착한 글래스턴배리는 듣던 대로 상당히 한적했다.
“그런데.”
그 때, 주세광이 입을 열었다.
“기분은 상당히 더러운데?”
그의 말대로였다.
글래스턴배리 전역에는 기분 나쁜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고, 사방에서는 알 수 없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 이건가? 여기 출몰하는 불멸자들도 상당히 점잖은 모양인데?”
철컹-
주세광이 피식 웃는 순간, 천무현이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어딘가를 향해 조준을 했다.
카앙! 캉!
그런데 이미, 누군가 앞으로 뛰쳐나가 검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백유현과 김현성이었다.
“이런...상당히 거친 손님들이시군요.”
“으윽, 손목이 부러진 것 같군. 무슨 힘이...!”
김현성의 검을 막고 있는 사람은 젊은 여성이었고, 백유현의 검에 뒤로 밀려나 있는 사람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조슈아 경 아닙니까?”
그런데 박성진이 둘 중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백발의 사내는 멋쩍은 표정으로 그를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오랜만이군. 미스터 박.”
“런던에 있어야 할 분이 여긴 왜...?”
조슈아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시다시피.”
“하긴 그렇군요.”
“그런데 자네 일행...정말 무지막지하군. 하마터면 손목이 날아갈 뻔 했어.”
박성진이 백유현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위험하셨다는 건 인정합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지원이 온다고 들었는데, 자네들인가 보군?”
“맞습니다.”
“아, 소개가 늦었군. 이쪽은 엘리자베스. 영국 노블레스 멤버스 특등 각성자 중 한 명이지. 나는 MI-27의 수장 조슈아. 반갑네, 한국 친구들.”
MI-27.
영국의 첩보조직이라면 MI-5 를 들 수 있다. 그런데 터미널이 생겨나면서 영국은 몬스터와의 효율적인 전투를 하기 위해 각성자 특수첩보조직인 MI-27을 창설,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수장인 조슈아가 지금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로스차일드 가문의 각성자들이 안 보입니다?”
박성진은 이미 조슈아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별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사실 팀-엑스 대회에서 만나서 꽤 오랜 시간을 교류했던 사이였다.
“아, 그쪽은 런던에 가 있지. 이런 시골에는 볼 일이 없는 가문 아니겠나? 사실 놀랐네. 자네들이 여기에 와 있을 줄이야.”
“조슈아 경께서도 여기에 계셔서 놀랐습니다.”
조슈아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이채를 발했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우리야 하는 일이 늘 이러니까. 그런데 지원이 온다더니, 여섯 명이 끝인가?”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허어, 만만치 않을 텐데? 로스차일드 쪽의 각성자들도 죄다 빠진 상태라 자네들을 서포트 할 각성자가 부족하단 말일세.”
“적당히 보내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조슈아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한국의 재앙은 끝났다는 말을 들었네만...아무튼 부탁하네. 연락해두었으니 곧 각성자들이 올 거네.”
“알겠습니다.”
삐삐삐-
그 때 E-와치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이 보니, 붉은 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딱 타이밍 좋게 등장하는군.”
철컹-
“지원 준비 완료입니다. 대장.”
천문현의 말에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이왕 왔으니 화끈하게 놀아보자고.”
그는 무전을 켰다.
- 리퍼.
파스스-
백유현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파앗-
- 준비 완료. 리퍼, 출격합니다.
그들의 주변으로 수많은 붉은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점은 더욱더 늘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