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대규모 빙의
문제는 일본이었다.
울산과 천안 두 곳에서 아마테라스 대표팀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되자, 그들은 즉각 진상조사팀을 파견하는 한편, 대한민국 정부에 항의를 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울산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각성자들이 서로 싸우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나가라쟈의 폭주 때문에 자료가 아무것도 남아 있질 않아 확인해드릴 수 없습니다.”
외교부에서는 딱 잡아뗐다.
울산에는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는데 하나 같이 중국 각성자들과 일본 각성자들이 사냥감을 놓고 서로 죽일 듯 싸웠다고 진술한 것을 들이밀며 우긴 것이다.
게다가 CCTV도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유독 중국과 일본, 양국의 각성자들만 한국의 알파팀이 그랬다고 우겨대고 있으니...
더욱 미스테리 한 것은 천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팀-엑스 대회를 탈퇴하기로 공표한 상태입니다. 이번에 일본의 각성자들이 천안에 와서 불멸자 코이나를 자극하여 폭주시킨 것은 엄연하게 외교법에 저촉되는 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들은 외교부에 어떠한 협조서한이나, 협조요청을 해온 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것은 그렇다 치고...”
“그렇다 치고- 라고 해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대사님. 우리 알파 팀이 일본의 오사카에 가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으면 좋으시겠습니까? 꼭 그런 예를 들지 않아도, 관광비자로 입국한 자들이 그런 식으로 난동을 부린 것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외교부 차관의 단호한 말에 주한 일본 대사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참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것은 사과를 드리겠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합니다.”
주한 일본 대사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외교부에서 요구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남의 나라에서 사냥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국제각성자관리법에 위반되는 것이니까.
‘후우...’
외통수다.
대사는 두 눈을 천천히 뜨며 말했다.
“공식적인 사과문 작성하겠소.”
“좋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그 점에 관해서는 수사팀이 움직이고 있으니 결과가 나오면 바로 공유하겠습니다.”
“우리 경시청에서도 사람을 보내 자초지종을 알고 싶소.”
대사의 말에 외교부 차관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고속도로에서...운전을 잘못해 가드레일을 박고 차가 뒤집어진 사고입니다. 그 뒤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나, 워낙 컴컴한 시간인데다가, CCTV도 없고 인적도 하나도 없었던 도로. 블랙박스는 파괴되었고, 그 어떤 흔적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경시청에서 사람이 온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우리 각성자들이 분명 한국의 소년을 봤다고 했소.”
외교부 차관이 희미하게 웃었다.
“한국의 소년요? 왜, 울산에서도 한국의 소년에게 당했다고 하던데...일본의 각성자들은 그리 약한가 봅니다?”
“이것 보시오...차관!”
“증거도 없이 이리 찾아와서 다짜고짜 고압적으로 따지는 행동, 몹시 불쾌하군요. 저희 땅에서 일본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왜 그 일을 우리 한국의 각성자들과 연관시키는 지는 이해를 할 수가 없군요. 아무튼 수사 결과가 나오면 명명백백하게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일본 대사가 묵묵히 차관을 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알겠소. 기다리겠소.”
그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차관이 피식 웃었다.
“속 시원하네.”
막 방 안으로 들어서던 비서관도 미소를 지었다.
“언제 저 놈들에게 이렇게 큰 소리 쳐봤겠습니까? 속이 아주 시원합니다.”
“중국 대사도 노발대발하던데, 장관께서 잘하고 계시겠지?”
“장관님이 어디 경험이 한두 해겠습니까? 세계각성자연합에 계실 때도 하도 상대들을 애를 먹여서 별명이 ‘그것’인데 말입니다. 중국 대사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차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대통령께서는 이런 일이 반복될까 걱정 많으시던데...박 팀장하고는 연락이 되었나?”
“예, 안 그래도 곧 들어온다 합니다.”
“그래, 그럼 그 때 얘기를 좀 해봐야겠군. 아, 그리고 백유현이라고 했지? 그 아이.”
“예, 차관님.”
차관이 희미하게 웃었다.
“거 참, 물건이란 말이야. 흔적을 아예 싹 지워버렸어. CCTV는 물론, 아예 자신이 있었다는 흔적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니...수사팀도 꽤 골치 아프겠어.”
혹시나 해서 수사팀에는 이런 기밀 내용이 내려가진 않았다.
그런데 날고 긴다 하는 형사들로 이뤄진 수사팀도 백유현의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울산에서는 시민들과 군인, 각성자들이 입을 모아 일본 각성자들과 중국 각성자들이 서로 싸워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천안에서는 아예 증거가 없다.
스키드 마크를 조사해보니 운전 부주의로 운전 기사가 바로 가드 레일을 받은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왜 일본 각성자들이 그 따위 몰골로 도로에 쓰러져 있는지는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
알파 팀의 팀장, 박성진이 연락해오기 전에는.
“아무튼 우리도 우리 힘을 다해 우리 국민 보호해야지. 어흐, 속 시원하네. 나 좀 쉴게.”
외교부 차관은 만족한 듯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팀-엑스 대회는 보나마나였다.
중국과 일본 각성자들이 개 맞듯 맞은 것을 보면, 뭐 볼 것도 없는 대회였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 해서 늘어나는 불멸자들이었다.
그들은 옛 성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악(惡)으로 가득 차서 부활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서 정부든, 노블레스 멤버스든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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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깨갱했네.”
“그래야죠. 지들이 한 짓이 있는데.”
박성진과 주세광, 그리고 나머지 팀원들도 티브이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 ...이에 일본 정부는 피해를 입은 대한민국 천안시의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여 깊은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 저희 일본에서는 이번 일에 깊은 통감을 느끼며, 사후 보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그냥 모른 척 하기에는 일본 각성자들이 천안에서 벌인 일이 워낙 악질이었기 때문에 일본 수상이 직접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유현이, 다시 봤다? 일본 애들 완전히 아작 났던데?”
“그러게 말이야. 왜 그렇게 독하게 손을 쓴 거야?”
“그러지 않으면...다시 기어오르려 할 테니까요.”
팀원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백유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짓을 하고도 전혀 반성이 없었던 놈들이었어요. 그런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간 우리를 분명히 우습게 볼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런 놈들에게는 매가 약이죠.”
“그것 참...역시 재미있는 놈이야. 너.”
주세광이 피식 웃었다.
“하긴, 유현이 말도 맞다. 이제까지 팀-엑스 대회에서도 늘 그랬지. 저 야비한 자식들은. 쌍으로 털어서 좋긴 하네. 중국 애들이랑 일본 애들, 꼴 보기가 싫었거든.”
“그나저나, 일본이나 중국만 노리고 있는 게 아닐 텐데요? 이번에 보고서에 따르면, 유독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만 불멸자 출현 빈도수가 높던데...게다가 그 등급 또한 상당히 높고요.”
천무현의 말에 박성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계속 해서 온다는 얘기지. 미국이든, 러시아든...어디든.”
“후우...우린 놈들을 막아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불멸자를 막아야 하는 걸까요.”
“불멸자들을 처리해준다는데 그걸 막을 이유는 없지. 다만, 우리나라의 시민들이나 각성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막아야 하는 것이고. 차관께도 그런 점을 말씀드리고 왔어. 대통령님도 그에 대해서 심각하게 우려하시고 계신 것 같고.”
주세광의 기지개를 켜더니 벌떡 일어났다.
“아음! 이상하게 E-와치에서 알림이 안 뜨니 심심해 죽겠네요.”
“그러게? 벌써 하루 동안 알림이 안 뜨네.”
‘흠...’
백유현도 E-와치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그는 몇 시간 전, 무관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무관도에 나타났다는 불멸자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싹 사라져 버린 듯.
그것을 증명하듯, E-와치에서도 아무런 알림이 없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임무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 잡았다면 임무가 사라졌을 텐데...그것도 아니고. 영국으로 가야 하나?’
분명히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없다.
이런 해괴한 상황이 벌어지다니...
삐빅- 삐빅-
그 때, 갑작스럽게 E-와치에서 미친 듯 알림이 울렸다.
“엇, 드디어!”
“서울 강서구? 근처잖아?”
“그 근처 무슨 터미널이 있지?”
주세광이 재빨리 터미널을 검색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터미널이 없는데요?”
“뭐야, 그럼?”
터미널 없이 발생한 불멸자.
이런 경우에는 십중팔구 불멸자의 등급이 매우 높았다.
“땀 좀 빼겠네.”
주세광이 중얼거렸다.
“음?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이 점들...왜 이래?”
그런데 김수향이 눈살을 찌푸리며 E-와치를 가리켰다.
아닌 게 아니라, 강서구에 찍힌 붉은 점은 하나가 아니었다.
점들은 마치 증식이라도 하는 듯,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불멸자들이 이렇게 많이 부활했다고? 고장 난 거 아냐?”
“내꺼도 그런데? 이거 무슨 일이지?”
그 때, 어디론가 통화하던 박성진이 다가왔다.
“고장이...아니다.”
“예?”
“그럼 무슨 일이?”
박성진의 표정이 상당히 무거워졌다.
“빙의(憑依)야. 그것도 주민들에게.”
“예...?”
백유현도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대규모 빙의라니.
그런데 빙의라고 해도 E-와치가 울릴 정도인가?
국가재난센터에서 발하는 경보가 반영되는 E-와치다.
붉은 점은 불멸자들이 출현했을 때 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점들이 죄다 불멸자라는...
“아니, 이제 더 이상 주민들이라 부를 수가 없겠지. 그들은 모두 몬스터 화(化)되었다. 모조리 불멸자에 필적하는 힘으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어!”
“한 사람, 한 사람이...전부요?”
삐이이-
그 때 E-와치가 더욱 큰 소리를 냈다.
“이게 뭐야!”
“세상에...!”
E-와치의 화면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 일본, 러시아...미국.
수많은 나라에서 붉은 점이 미친 듯 번쩍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한국처럼, 수도 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박성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이런 빙의라니...!’
백유현도 이를 악물며 E-와치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라면...
그의 두 눈이 매서운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