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중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 ?4권 끝-
“이 자식! 누가 네 탈퇴 받아준대?”
그리고 팀원들은 몇 시간 후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울릉도를 덮었던 폭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까닭이었다.
주세광은 백유현을 보자마자 타박했다.
“인마! 이런 일이 있었으면 형한테 말하면 못하게 막아? 그걸 왜 혼자 다 하려고 그래. 섭섭하게.”
“그건 세광이 말이 맞다. 이런 일일 수록 같이 해야지. 팀인데.”
박성진이 거들었다.
“호호, 요 귀여운 꼬맹이가 제법 남자답네? 이런 대형 사고도 칠 줄 알고.”
“죄송해요...”
김수향이 웃으며 백유현의 어깨를 툭- 치자 백유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 팀원들은 웃고는 있었지만, 그 뒤의 표정을 백유현은 눈치챈 것이다.
걱정.
그랬다.
팀원들은 백유현을 무척 걱정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날씨도 안 좋은데 다들 무리해서 온 것이겠지.
“너 없으면, 사냥이 재미없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김현성까지 불쑥 거들었다.
백유현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네...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그런데 무현이 형 말이 정말이에요? 다들 팀-엑스 대회 포기하시기로 했다고...”
“포기가 아니야.”
박성진이 굵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건 포기라고 부르는 게 아니지. 보이콧이라는 좋은 뜻이 있거든.”
“맞아. 지금 세상이 엉망진창인데 자기들 위신만 세우는 데 혈안이 된 협회 놈들 장단에 놀아날 필요는 없지. 오히려 유현이, 네가 정말 현명한 선택을 한 거다.”
“그래. 우리가 괜히 힘 뺄 필요는 없잖아. 기분 더럽게. 어차피 잡을 거, 우린 우리 방식대로 화끈하게 잡으면 되니까.”
그 때 박성진이 다시 나섰다.
“정부에서도 이미 허가한 사안이야. 대한민국은 이번 팀-엑스 대회 출전을 정식으로 보이콧했다.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라지. 대통령께서도 그런 뜻을 강력하게 내비치셨으니, 그 쪽은 그렇게 정리가 될 거다. 아, 그리고.”
박성진이 뭔가를 꺼내서 나눠주었다.
손목시계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전자식 시계바늘이 돌아가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박성진이 그 시계를 보여주며 버튼 하나를 눌렀다.
딸깍-
파앗-
그러자 시계 안쪽의 내용이 확 바뀌며 지도 모양이 되었다.
그 지도 위에는 붉은 점이나 녹색 점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이번에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E-와치다. 불멸자들은 물론, 국가재난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시 표시가 되지. 그 중 붉은 점들은 우리 알파 팀에 구조 요청을 보내는 신호다. 녹색 점은 비교적으로 약한 몬스터들이나 불멸자의 출현을 나타낸다. 즉, 우리는...”
박성진은 붉은 점을 확대하며 말했다.
“이런 신호를 따라간다. 다들 알겠지?”
파앗-
순간, 붉은 점 하나가 사라졌다.
울릉도.
그 위에서 점멸하던 점이었다.
“이곳은 정리되었으니 다시 움직여 보자고.”
박성진은 가방에서 E-와치를 꺼내 팀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다음 목표는 울산이다. 아, 그리고 정부에서 극비리에 우리를 위한 전용기와 전용헬기를 내주었으니, 필요할 때는 그것을 타고 움직이도록 하자.”
“예, 알겠습니다.”
울릉도를 뒤덮고 있던 시커먼 구름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백유현도 E-와치를 차고는 자세히 바라보았다.
40 밀리 정도의 크기를 가진 시계창에는 수많은 점들이 점멸하고 있었다.
다만 붉은 점은 제한적으로 한국 내에서만 반짝이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보와 연계된다고 하니, 아마 국내에서는 가장 빠른 정보력을 가졌을 것이다.
파앗-
그 때 백유현의 눈앞에 임무 보상창이 떠올랐다.
[뼈 무덤의 정보 입수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선제 임무 완료로 인한 추가 보상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임무는 뼈 무덤의 정보를 입수하는 것까지였다.
그런데 게넬을 소멸시켰으니, 그에 대한 추가 보상이 주어지는 모양이었다.
‘좋네?’
선제 임무 완료로 인한 추가 보상이라니...
왠지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임무 완료 보상으로 신체 능력치 10 포인트, 염라와의 친밀도 400, 시편(尸片) 5 조각을 획득하였습니다]
[선제 임무 완료 보상으로 신체 능력치 20 포인트, 염라와의 친밀도 700, 게넬의 검게 변색된 손가락뼈를 획득하였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1단계 차사 군령(軍令)의 권능을 얻었습니다]
[차사 군령(1단계) : 차사들에 대해 군령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1단계에서는 오십 위의 차사들이 군령에 따릅니다.]
염라와의 친밀도가 무려 1,100이 올랐다.
그러자 또 하나의 창이 떴다.
[염라와의 친밀도가 올라 권능, 1단계 사력(死力)을 얻었습니다]
[사력(死力) 1단계 : 위급한 순간, 잠재된 능력을 격발하여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1단계 사력은 3분 동안 지속되며, 모든 능력치가 30퍼센트 증가합니다]
[염라와의 친밀도가 5,000이 되면 권능, 황천보(黃泉步)를 얻을 수 있습니다]
[황천보(저승 걸음) 1단계 : 일순간 귀문을 열어 황천으로 이동합니다. 그 순간의 모든 데미지를 회피할 수 있습니다. 1단계에서는 단 두 걸음 동안만 걸을 수 있습니다]
염라의 새로운 권능, 사력이 주어졌다.
그리고 다음에 주어질 권능은 황천보.
설명을 읽어보니 무시무시한 권능이었다.
모든 데미지를 일순간 회피할 수 있다니.
비록 두 발짝 걷는 동안만이지만, 그것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한 번의 치명상은 무조건 피하는 것이었으니까.
‘그건 그거고...사력이라...’
사력이라는 권능도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이제까지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으니까.
사력은 그것을 완벽하게 보완해주는 능력이었다.
설명만으로는 매우 도움이 되는 능력으로 보였다.
‘일단 써보면 알겠지. 그리고 게넬의 검은 손가락뼈는...흐윽!’
백유현은 손가락뼈를 꺼내들었다가 갑자기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 짧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는 것이 느껴졌던 것이었다.
힘을 끌어내 겨우 진정을 되찾고는 있었지만, 손가락뼈를 집는 순간 지독한 공포가 몰려들었다.
마치,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컥 멎어버리는 듯.
“후우...”
백유현은 손가락뼈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물건일까?
[게넬의 손가락뼈]
[누군가의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
[암부의 만신(萬神)이라면 사연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암부의 만신? 무당 말하는 건가?’
암부에 가려면 일단 무간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아쉽지만, 이 뼈에 대한 사연은 그 때 알아봐야 할 듯했다.
“백유현! 가자!”
그 때, 천무현이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백유현은 정신을 퍼뜩 차리며 외쳤다.
“예!”
울산에서 붉은 빛이 환하게 비추는 것으로 보아, 강력한 불멸자가 출현한 모양이었다.
“먼저 가지 말고, 헬기 타라! 같이 가자.”
“예...”
박성진의 말에 백유현은 헬기에 올라탔다.
투타타타타-
대한민국 정부에서 내준 최고 사양의 헬기가 떠올랐다울릉도에서 육지까지는 헬기가 그들을 실어 나를 것이고, 그 뒤는 전용기를 타게 될 것이다. 브라만을 타고 이동하는 것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팀원들과 같이 간다는 것이 큰 메리트였다.
투타타타-
헬기는 동해바다를 가르고 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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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과거, 조선업으로 유명했던 울산에서는 이미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울산 전역을 괴이한 바다 생명체들이 튀어 나와 사람들을 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러서지 마라! 맞서 싸워!”
타타타타-
사방에서 각종 화기가 불을 뿜었지만, 바다 생명체들의 질긴 근육과 단단한 비늘을 뚫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급히 달려온 각성자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었지만, 각성자들 역시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바다 생명체들은 기이하게도 엄청나게 강했던 것이었다.
물고기의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거대한 두 개의 팔이 있고, 뱀처럼 몸통으로 기어 다니긴 하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생명체였다.
나가(Naga)
놈들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몬스터, 나가들이었다.
삼지창을 들고 사람들을 찔러 죽이고, 독이 있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사람들의 시체를 뜯어 먹는 괴물들.
더욱 문제는 놈들 사이에 끼어들어 있는 킹(King) 나가들이었다.
놈들에게는 네 개의 팔이 달려 있었고, 각 팔에는 금강저나 거대한 칼이 들려 있어 걸리는 것을 모조리 베고 짓뭉갰다.
원래는 악마나 귀신들을 때려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성스러운 무기인 금강저로 사람들을 후려쳐 죽이는 모습은 매우 공포스러웠다.
“놈들을 막아!”
“지원은 없는 거야! 이러다 다 죽고 말겠어!”
“젠장, 이쪽 부상자다! 응급팀 어서 좀!”
전차가 불을 뿜고, 개인 화기가 끊임없이 탄환을 토해냈지만 나가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놈들은 그 어마어마한 화력을 버티면서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케에에엑!”
그 중에서는 맞다 못해 몸이 터져 나가는 나가도 있었지만, 끔찍하게도 옆에 있던 나가들이 모조리 몰려들며 그 살점을 뜯어 먹었다.
더욱 끔찍하면서 놀라운 일은, 살점을 뜯어 먹은 나가들의 육체가 더욱 강해졌다는 점이다.
즉, 죽여 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
강해진 나가들은 이제는 개인화기 정도는 끄덕도 없을 정도로 버텨내고 있었고, 전차의 포탄 역시 그들을 죽이는데 무력(無力)함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대나 각성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지선을 만들고, 겨우 그 저지선을 지켜나가는 수밖에.
부아아앙-
그 때, 거대한 세단 몇 대가 당도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내렸다.
“호오, 흥미롭군.”
“팀-엑스 대회의 첫 무대가 바로 여기라니. 재미있게 되었어.”
“여어, 저 놈들을 방패막이로 삼으면 되겠는데? 크크!”
그들은 바로 일본의 각성자 팀, 아마테라스였다.
아마테라스 팀원들은 무기를 꺼내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저 놈들 일본 놈들 아냐? 설마, 저것들!”
“병식 형, 저 새끼들 우리를 미끼로 쓰려는 생각인 것 같은데요? 나가들이 힘이 빠지는 틈을 타서 잡아보겠다는...!”
“미친! 개새끼들이 완전히 쳐 돌았구먼!”
팀-엑스 대회가 시작된 이상, 국가 간의 매너나 양심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각 국가들끼리 양해가 된 이상, 불멸자를 잡기 위한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는 타국에서 사냥을 할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비록 이번 팀-엑스 대회를 보이콧했지만, 타국의 각성자가 국내에 들어와서 불멸자들을 사냥하는 것은 막지 못했다.
그것은 불멸자들을 세계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협약에 서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 각성자들이 울산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부우웅-
그런데 또 몇 대의 차량이 도착했다.
“여기가 나가라쟈가 나타난 곳인가!”
“어서 잡으러 가자고! 저기 일본놈들도 있으니!”
“저 놈들에게 밀릴 수는 없지. 어서 가자!”
이번에는 중국이었다.
각 국가별로 팀을 나눠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는 무수한 노림수가 있었다.
나가들의 왕인 나가라쟈는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는 불멸자다.
말하자면 올림픽의 금(金)에 해당하는 불멸자.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종류다.
그런 불멸자가 가까운 곳에 있는데 포기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은 발 빠르게 울산에 모인 것이었다.
척-
그리고 또 하나의 팀이 등장했다.
“허, 미친...저 새끼들 여기가 지들 안방인가?”
주세광이었다.
그는 일본 각성자들과 중국 각성자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그냥 싹 다~ 죽여 버리면 어때? 대장. 호호호!”
김수향이 웃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웃음에 미소를 보일 수가 없었다.
“장전할까요? 일단 저 놈들부터 죽여 놓고 시작하게.”
천무현은 정말로 총알을 장전했고, 박성진은 피식 웃었다.
“팀-엑스 대회는 불참했는데 어쩌나. 저 놈들은 다 때려잡게 생겼으니.”
박성진의 말에 팀원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박성진이 눈빛을 달리하며 말했다.
“사냥을 시작할까?”
김현성과 백유현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됐습니다.”
“좋아...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어차피...쟤네들도 이 정도는 각오하고 왔을 테니까.”
스릉-
백유현과 김현성은 검을 꺼내들었다.
박성진이 씩 웃더니 한 마디 내뱉었다.
“시작.”
파앗-
그리고 두 사람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