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98화 (98/166)

98. 해골 억압자, 게넬

세르게이의 암살은 예상대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도 러시아 각성자관리국 내에서 일어난 암살이라니!

사방에 수도 없이 달린 CCTV를 통해 범인을 파악한 러시아 정부는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해 항의를 해왔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오히려 사건 발생 시간에서 이십 여분 후에 서울에서 찍힌 그 ‘범인’의 CCTV를 들이밀면서 큰소리를 쳤다.

“백유현 군을 범인으로 몰려면 제대로 된 근거를 가져오시란 말입니다!”

“아니, 이것 좀 보십시오! 본국의 각성자관리국에서 찍힌 백유현의 모습이...”

“그럼 이건 뭡니까? 그로부터 고작 이십 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서울에서 찍힌 유현 군의 모습입니다. 삼각김밥과 생수 하나를 들고 편의점을 나서는 모습이 정확하게 찍혀 있는데 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설마, 러시아와 저희 대한민국 사이를 순간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비행기로 와도 이십 분 내로는 못 옵니다. 대사님께서는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허어, 거 참!”

러시아 대사는 민머리를 긁적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 역시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로 대한민국의 외교부장관을 만나러 온 것인데, 오히려 면박만 당하고 있으니...

“원본을 주십시오!”

그러다 그는 상당한 외교적 결례가 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원본.

즉, 지금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증거물로 내밀고 있는 그 CCTV의 원본을 말하는 것이었다.

외교부장관 정세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고 계신지 아시지요?”

러시아 대사는 입안이 마른 듯, 연신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지만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번 일로 대통령에게 상당히 강한 압박을 받아온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바로 CCTV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원본을 요구하는 것뿐이었다.

“할 수 없잖소! 우리 러시아의 CCTV 기록이 잘못 되었을 리는 없으니.”

정세현 장관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되었을 수도 있지요. 그쪽이 해킹당했는지 아닌지 어떻게 그리 확신하십니까?”

“아, 아니...장관...”

“됐고, 원본 드리지요. 다만, 지금의 발언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지셔야 할 겁니다. 더군다나 팀-엑스 대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 자국의 각성자에 대한 모략은 저희로서도 간과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크흠...”

할 말이 없어진 대사는 그저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보십시오. 보안실에 말해두었으니, 그 시각, 백유현 군이 찍힌 수십 개에 달하는 CCTV 원본을 다 넘겨 드릴 겁니다.”

“고, 고맙소.”

정세현 장관은 그를 날카롭게 바라보더니 몸을 돌렸다.

러시아 대사는 황급히 일어나 보안실로 향했다.

그가 입수한 자료는 러시아 본국으로 전해졌고, CCTV 영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러시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조작흔적없음’

즉, 백유현은 분명 사건 시각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 있었던 것이다.

그 점이 확인되자 러시아는 엄청난 위기에 몰렸다.

팀-엑스 대회를 앞두고 괜히 타국의 각성자를 범인으로 몰아 전력에 해를 입히려는 음모였다는 둥,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러시아 정보국이 벌인 자작극이라는 둥...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며 러시아를 압박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들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르게이가 각성자관리국 내에서 암살당해 버린 탓에 사기가 완전히 땅에 떨어진 러시아 대표팀이었다.

암살자가 그들을 노린다는 생각에 늘 경계하고, 예민하게 굴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그 사건은 일단락 되어갔다.

팀-엑스 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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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현은 허공에 솟아 올라 저 멀리 보이는 울릉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맞았다.

정부에서도 조사팀을 급파해서 분석한 결과, 울릉도에 정체 모를 불멸자가 나타났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백유현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강해.’

그리고 놈은 무척이나 강했다.

설문대할망보다 더욱 강력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소주. 다녀왔사옵니다.”

그 때, 차사 강효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유현은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떻게 됐어?”

“예, 소주. 생사부에는 적힌 바로는 울릉도에 대략 칠천여 명의 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옵니다.”

울릉도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보느라 그는 강효에게 울릉도를 관할하는 차사의 생사부에 적힌 내용을 알아오라 시킨 것이다.

그것은 불법도 아니었고, 명부의 법도도 어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숫자를 들은 백유현은 두 눈을 와락 구겼다.

칠천여.

울릉도 전체 인구가 만 명 정도인 것으로 봤을 때, 엄청난 수치다.

백유현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 있더니 말했다.

“정확한 숫자가 필요해.”

“현재까지 칠천사백이십 명의 망자가 발생했사옵니다.”

백유현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이천육백 명 정도가 남아 있다는 뜻이네. 즉...아직 저 아래에 살아 있다는...”

강효가 고개를 숙였다.

“소인도 그리 사료되옵니다.”

백유현은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지금도 여전히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강효는 침묵을 지켰다.

‘시간이 없다는 뜻이야.’

사실 이제 와서 팀-엑스 대회에 연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보다는 지금도, 울릉도의 주민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시급한 문제였다.

백유현은 바로 마음을 정했다.

‘대회 따위,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박성진은 대회를 앞두고 몸 상태를 철저히 관리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하루 전이니, 대장으로서 내릴 수 있는 당연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백유현은 그에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장님.”

백유현은 무전을 열었다.

- 리퍼, 현재 위치가 울릉도로 나오는데 무슨 일이야?

팀원들에게는 GPS가 달려 있기 때문에 박성진은 바로 그의 위치를 파악해낸 것이다.

“저, 팀 탈퇴하겠습니다.”

- 뭐? 그게 무슨 얘기야? 갑자기!

“대회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의미도 없는 대회에 목매달고 있는 사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어요. 저는 사람들을 구할 겁니다.”

- 리퍼!

“무전, 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 잠깐! 리퍼, 리퍼!

치이이익-

백유현은 무전기의 선을 뽑아 버리고는 GPS와 함께 바다 속으로 던져 버렸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대회만 준비하면서 몸을 사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속이 뻔히 보이는 대회다.

그런 곳에 가서 장단 맞춰줄 이유는 없다.

스릉-

백유현은 간장과 막야를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이번은 정말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강효, 가자.”

“존명.”

강효와 문광이 백유현의 뒤에 섰다.

그리고 차사 이십 위(位)도 그 뒤에 시립했다.

그들은 이미 준비가 되었다.

파앗-

백유현은 곧바로 저 멀리 보이는 울릉도를 향해 몸을 던졌다.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인 섬.

워낙 오는 길이 제한되어 기상이 좋지 않으면 헬기는 물론, 배조차 다가가기 힘든 섬.

그 섬에 사람들이 고립되어 있었다.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쿠웅-

그들을 구하기 위해 백유현은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절벽 끝에 내려섰을 때, 그는 곧바로 울릉도의 상황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꽈르릉-

번개가 몰아치고, 거친 빗줄기가 쏟아진다.

바다가 미친 듯 육지를 넘보며 일렁였고, 부서질 듯 밀려드는 거대한 파도는 흰색 포말 자국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리고...

“소주.”

강효와 문광이 백유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눈앞에는 망자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무덤이 열리고, 거기에서 튀어나온 망자들에 의해 죽어간 또 다른 망자들...

원한이 깊게 서린 눈빛으로 그들은 백유현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편하게 쉬게 해줘.”

백유현의 말에 강효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생사부에 이름이 올라갔으되, 명부(冥府)에도 갈 수 없이 헤매는 망자들이다.

스릉-

이미 명부에서 이곳에 대한 접근을 제한한 이상, 저들에게 쉼을 허락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 뿐.

“문광, 가세.”

문광이 언월도를 꽉 움켜쥐고는 우직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저들의 혼을 베어내고, 흐트러뜨리는 것만이 저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안식.

파각-

“키에에엑!”

그들의 무기에 의해 망자들이 하나, 둘씩 소멸을 맞았다.

그리고 백유현은 그 사이를 빠져나와 한쪽을 향해 걸었다.

‘187...’

주변이 온통 시커먼 어둠으로 뒤덮여 있고, 미친 듯 폭우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백유현의 두 눈에 똑똑하게 들어오는 숫자가 있었다.

187.

가뜩이나 음산한데, 보는 이로 하여금 심장을 덜컥 멈추게 할 정도로 극한의 음산함이 뿜어지고 있는 곳.

그곳에 떠올라 있는 레벨 표시였다.

즉, 울릉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든 장본인이 거기 있다는 뜻.

파아앗-

백유현은 땅을 박찼다.

저 멀리, ‘놈’이 있다.

어떤 놈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곳 주변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는 최악의 악신이.

놈이 바로 뼈 무덤의 주인이었고, 명부조차 그 존재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존재.

쏴아아아-

백유현은 바로 그곳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파각-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손에 들린 간장과 막야가 거친 빛을 뿜어냈다.

꽈르르릉-

주변을 환하게 태우며 내리 꽂히는 번개 아래, 어느새 백유현은 수많은 망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었다.

대부분은 살점이 죄다 떨어져 나간 백골들.

그 중에는 다른 시체의 백골들을 억지로 끼워 넣어 몸을 거대하게 만든 놈들도 있었다.

놈들의 머리 위에 떠오른 숫자는 어김없이 다른 백골들보다 높았다.

덜그럭- 덜그럭-

놈들은 재빠르게 다가와, 녹이 잔뜩 슨 도끼를 들어 그대로 백유현을 후려쳤다.

콰앙-

백유현이 가볍게 몸을 피하자, 그가 서 있던 자리가 크게 패며 금세 물웅덩이가 찼다.

그런데 그 다음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백유현의 검에 이미 온 몸이 박살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콰르르-

놈들의 몸을 이루던 뼈들이 무너져 내리고, 곧 수많은 백골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엇이든 지금의 백유현을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간장과 막야의 시퍼런 검광에 휩싸인 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백유현은 곧 거대한 뼈 무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많은 시체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든 거대한 하나의 무덤.

지독하게 음산한 기운은 바로 그곳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백유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해골의 억압자, 게넬]

[레벨 189, 불멸자]

게넬.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전승(傳承)의 서(書), 카발라.

그 중에서도 비밀리에 이어진다는 묵인(?認)의 서에 적혀 있는 악마였다.

게넬은 솔로몬의 72 악마에도 들어가지 않는 매우 특이한 악마였지만, 묵인의 서에는 게넬에 대해 매우 섬뜩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죽음을 다스리는, 죽음의...

다른 불멸자들처럼 이런 식의 묘사가 아니었다.

게넬은 죽음을 만들어내는 존재. 그리고 동시에 자신만의 지옥을 가진 악마.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재앙(災殃)인 존재가 이곳 울릉도에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야.”

백유현은 까마득한 허공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내뱉었다.

시뻘건 혈광만 뿜어지고 있는 허공이었다.

“내가 널 소멸시킬 거니까.”

백유현의 손에 들린 간장과 막야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졌다.

불멸자 게넬.

놈을 베어낼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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