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팀-엑스 대회
- 이번에 제주도에서 나타난 설문대할망은...
-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었으나, 치우 알파 팀의 적극적은 대처로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냈습니다.
- 이에 정부에서는 전국에 대 불멸자 대응센터를 마련, 긴급하게 비상사태에 대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 불멸자 대응센터에는 각성자 뿐만 아니라, 최첨단으로 무장된 재래식 병력 또한 같이 투입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게 되었지만, 여당과 야당에서는 이례적으로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제주도 성산일출봉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설문대할망의 등장은 전국을 들쑤셔 놓기에 충분했다.
“이것 봐! 제주도에 불멸자가 나타났었대!”
“설문대할망이라며? 제주도 설화에 나오는 창조신 아냐?”
“와, 진짜 끝장 날 뻔 했네! 크기 좀 봐! 제주도가 살아남은 게 용하다, 진짜!”
기자들이 퍼뜨린 자료들을 보며 국민들은 패닉에 빠졌고, 정부에서는 서둘러 그 대응책을 마련했다.
여, 여당도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대처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에서 끝나지 않았다.
세계각성자협회.
카오스 터미널의 출현 이후, 과거 UN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 협회에서도 이 일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불멸자들이 등장하는 일은 비단 한국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불완전한 채 부활한 불멸자들의 등장은,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과거, 먼 고대에 존재했던 악신(惡神)의 모습 그대로.
물론 그 가운데는 선한 신으로 분류되는 신들이 돌변한 모습들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악신이 부활한 경우가 많았다.
“이 일에 대해서는 협회 차원에서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미적거리다가는 그대로 먹혀 버리고 맙니다. 저희 미국에서는 이번 일과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강력한 화력을 갖춘 타격팀을 운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본 역시 불멸자들의 부활을 막아낼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저희의 도움이 필요한 국가가 있다면 어디든 지원할 것입니다.”
각 국가의 대표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이 국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는 흑심이 서려 있었다. 자위대의 출병이 금지된 일본에서도 이번 기회를 노려 은근슬쩍 자위대와 각성자 지원팀을 한데 묶여 해외 파병을 하겠다는 의지를 비췄고, 중국에서도 노골적으로 그런 식의 의도를 내비쳤다.
여기서도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긴 불멸자가 나타나면서부터 더욱 심각해진 외교전이다.
그러니 올림픽이고 월드컵이고 다 사라지고, 그 자리를 팀-엑스 대회가 차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말입니다. 그 전에 논의되어야 할 것이 팀-엑스 대회의 개최 여부입니다. 급변하는 이런 상황 속에서 팀-엑스 대회를 강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접수되고 있습니다. 각 대표님들은 어떠십니까?”
의장이 말하자, 각 국가 대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팀-엑스 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리이지 않겠습니까? 연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깟 국가 대항전이 뭐가 중요하다고요.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위기 상태 아닙니까? 서로 협력해서 이 위기를 헤쳐 나가야지요!”
분분한 여러 의견이 나오는 와중에, 중국 대표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다 괜찮은 의견이지만...오히려 이 기회를 살려보는 것은 어떻겠소?”
“무슨 말씀입니까?”
중국 대표 왕이가 두 눈을 빛내며 다른 대표들을 바라보았다.
“그깟 터미널 정복전 말고, 불멸자들을 잡는 것으로 종목을 바꿔보는 건 어떻겠냐는 거요. 가령...어떤 나라에서 불멸자들을 많이 잡나. 이런 식으로 말이오.”
각국의 대표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대통령이나 수상은 아니었지만, 각 국가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만큼 상당한 권한이 있었다.
사실 그들은 외교라면 이골이 난 전문가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 대표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불멸자들이 완벽하게 부활했다면 그 말이 씨도 안 먹혔겠지만, 불완전하고, 매우 불안정하게 부활한 불멸자들이 다수였다.
처음에는 각 국가에서도 그들을 상대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한두 번 잡다 보니 이제는 자신감이 꽤 붙은 상태였다.
그래서 왕이가 이런 과감한 제안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 때 러시아 대표가 손을 들었다.
“미스터 왕이의 의견에 동감하오. 오히려 이런 기회를 살린다면, 더욱 박진감 넘치는 대회가 될 것이오. 러시아는 찬성하오.”
“뭐...러시아도 그러하시다면 일본도 찬성하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 국가가 그리 나오자, 다른 국가 대표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거 봐라? 자신 있다 이건가?’
‘물러서면 꼴이 사나워지겠어. 절대 물러나서는 안 돼.’
대표들은 눈치를 보며 상대방들의 의중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틈을 타서 왕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그렇게 한다면 더욱 경쟁적으로 불멸자들도 잡고, 또한 대회도 더욱 박진감 넘치게 진행이 될 테니 손해 볼 건 없잖소? 경쟁을 한다고 해서 불멸자들을 안 잡자는 것도 아니고. 아니오?”
“프랑스, 찬성합니다.”
“영국, 찬성합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거의 동시에 찬성을 하고 나섰다.
이렇게 되자, 다른 나라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
“미국,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오! 그럼, 다른 논의는 미뤄두고 팀-엑스 대회의 새로운 종목을 놓고 논의를 시작합시다!”
불멸자도 잡고, 흥행도 하고.
꿩 먹고 알 먹자는 식의 의견에 대부분의 대표들이 동의를 했다.
하지만 이미 물밑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음은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의 운명을 걸고 벌어지는 팀-엑스 대회의 변경 사항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논의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고, 다음 날이 되어도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팀-엑스 대회에 대한 규칙이 정해진 것은 3일이 흐른 뒤였다.
그 소식이 전파를 타는 순간, 세계가 크게 술렁였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
“미쳤군.”
박성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우리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겠다는 거잖아요. 진짜 미친 새끼들 아닙니까?”
주세광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 놈들 대가리에 구멍을 내버리고 싶네요. 이런 상황에서 팀-엑스 대회가 강행되는 것도 웃긴데, 그것도 모자라 새로운 규칙? 허, 참...!”
천무현은 그답지 않게 거친 언사를 내뱉었다.
김수향과 김현성은 묵묵히 있었지만, 눈빛은 살벌했다.
‘후우...’
백유현도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알파 팀이 이렇게 분노한 것은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새로운 팀-엑스 대회의 규칙.
그것은 단순했다.
누가 더 많이 불멸자들을 사냥하느냐?
거기에 더해 마치, 금,은,동메달처럼 등급이 매겨진 불멸자들을 누가 더 많이 사냥하느냐? 라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것으로 결판낸다는 것이다.
단, 먼저 잡고 있는 불멸자들에게 난입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구원요청이 와서 도와주는 것은 구원해준 팀에게 점수가 돌아간다.
불멸자들과 싸워서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싸웠어야 할 일이니까.
이전까지의 팀-엑스 대회에는 최소한의 안전을 생각한 규칙이 있었고, 그로 인해 서로간의 위험을 상당히 줄였지만 이번은 다르다.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이 대회의 규칙을 만든 자들은 각성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의 목숨을 가지고, 한가롭게 팀-엑스 대회나 열려는.
“이번엔 열 명이 나간다.”
한참의 정적이 흐르고, 박성진이 시퍼런 불꽃을 피워내는 눈빛으로 말했다.
매우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 라는 그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눈빛이었다.
이번 팀-엑스 대회에서 정해진 새로운 규칙.
그것은 열 명 제한의 팀원이었다.
레벨 제한 없음.
그리고 5레벨 이하 제한 없음.
그렇게 수정된 규칙이었다.
“후우...”
주세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나가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자동 실격.
판은 이미 벌려졌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면,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알겠습니다. 여섯 명은 우리고 나머진 넷은 뽑았습니까?”
“베타 팀 셋과 감마 팀 라이플 하나.”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고의 조합이다.
사실 베타 팀도 아슬아슬한데, 감마 팀의 탱커나 딜러들이 따라가 봐야 별 의미가 없으니까.
힐러도 사실 의미가 없다.
어차피 탱커나 딜러에게 접근이 가능해야 힐을 해줄 텐데, 감마 팀의 힐러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러니 원거리 저격이 가능한 라이플을 데려가는 것이 맞다.
그나마 불멸자의 시선이라도 돌릴 수는 있을 테니까
“좋습니다. 사냥은 언제부터 시작입니까?”
“사흘 후다. 이제부터는 뭉쳐서 다녀야 할 거야. 따로 움직일 여유도 없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베타 팀장, 그리고 감마 팀장과도 연락 해놓겠습니다.”
“그래, 세광이는 그렇게 진행해. 나머지는 최대한 체력 아껴두고.”
“네.”
나머지 알파 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렇다고 불멸자들을 안 잡을 수도 없다.
반드시 잡아내야 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유현이.”
“네, 대장님.”
박성진이 백유현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현성이와 네 역할이 클 거다. 같이 제대로 보여줘라.”
백유현이 희미하게 웃었다.
“네. 대장님.”
“좋아, 해산!”
유쾌하지는 않은 기분을 뒤로 하고 알파 팀원은 해산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백유현은 오랜만에 차에 타서 생각에 잠겼다.
그 동안 백유현이 그토록 참가하고 싶어 했던 팀-엑스 대회.
하지만 이제는 조건이 바뀌었다.
‘내일 퀘스트를 깨러 가야겠네.’
하지만 염라의 퀘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내일, 그는 일본의 터미널을 깨고 올 생각이었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그이니,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간이 열리면...암부로 간다.’
암부에 가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시편(尸片).
엄마를 살릴 수 있는 시편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시편을 다 모으거나, 염라와의 호감도를 올리거나.
어찌 되었건 둘 다 수행할 생각이었다.
- 팀- 엑스 대회가 새로운 규칙으로 바뀌었다고 하지요? 이송이 리포터를 연결하겠습니다. 이송이 리포터, 팀-엑스 대회의 새로운 규칙은 어떤 것인가요?
- 네, 이송이 리포터입니다. 새롭게 변경된 팀-엑스 대회의 규칙은...
라디오에서는 새로운 팀-엑스 대회에 대한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