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오백장군
- 지옥이라니?
- 코드 레드 텐? 리퍼, 제대로 파악한 거 맞나?
팀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무전을 통해 들려왔다.
다들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지만, 그 말을 한 것이 백유현이다 보니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였다.
그 때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에 대해 박성진이 물어왔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 예. 판단은 변하지 않습니다. 코드 레드 텐입니다.
- 알겠다. 일단 리퍼, 대기해! 저번처럼 혼자 움직이지 말고.
- 알겠습니다.
꽈르릉-
그 순간 저 멀리서 하늘을 쪼갤 듯 거센 번개가 내리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보이는 거대한 실루엣...
그것은...!
[마고할미]
[다른 말로 설문대할망이라고 불린다. 탐라를 창조한 설문대할망은 죽어 소멸되었지만, 악신의 힘으로 다시 부활한 상태. 탐라(耽羅)를 창조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창조물을 스스로의 손으로 파괴하려는 악신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신화 속의 설문대할망은 착한 신이었지만, 악신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도 악신으로 부활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망유계의 망자들이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선신(善神)으로 분류된 신들조차 타락하게 만들 정도로.
게다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번쩍-
다시 내리꽂히는 벼락 아래 수도 없이 서 있는 실루엣.
처음에는 성산일출봉에 있는 작은 봉우리들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하나 같이 거대한 형체로 우뚝 서 있는 그것들은 바로 오백이나 되는 장군들이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설문대할망을 호위하듯 서 있는 그들.
그들은 수도 없이 많은 원귀들을 짓밟은 채 서 있었고, 허리춤에는 거대한 칼집이 매달려 있었다.
[오백장군]
[설문대할망의 오백 명의 아들. 그들은 자신들의 어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다닌다. 상당히 강력한 무력을 소유하고 있으니 주의할 것]
‘음...’
백유현은 싸늘하게 그곳을 바라보았다.
설문대할망만 있어도 골치가 지끈거리는데, 그를 따르는 오백장군이라니!
게다가 문제는 그들의 레벨이었다.
설문대할망의 레벨은 180대.
그리고 오백장군들은 대략 140에서 160대로 다양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가 아니다.
무식할 정도로 많은 숫자.
그러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옥, 무간에서 백유현은 167레벨까지 올리고 나왔다.
엄청나게 노력해서 만들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역시나, 망유계의 망자들은 더욱 빠르게 치고 나왔다.
무간지옥에서의 수련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레벨이라니...
애초에 불멸자로 환생하는 거라 당연한 일이었지만, 만약 백유현이 없었더라면 다른 각성자들이 어떻게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
“여기다, 여기!”
“저, 저기 좀 봐! 소문이 사실이었어!”
그 때, 백유현의 뒤쪽으로 차량들이 속속들이 도착하더니 일단의 사람들이 내렸다.
그들은 내리자마자 성산일출봉 쪽을 가리키며 흥분한 표정으로 외쳤다.
“야, 얼른 세팅해! 특종이다, 특종!”
“시팔, 뭐하고 있어! 우리도 얼른 방송 준비해!”
그들은 바로 기자들과 현장 리포터들이었다.
제주도, 성산일출봉에서 엄청난 광경이 목격되었다는 말에 부리나케 모여든 것이었다.
본대는 지금 서울에서 날아오고 있을 것이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제주지국의 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촤라라랏!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그러다 한 기자가 백유현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그를 가리키며 외쳤다.
“엇? 여기 백유현 군이 있다! 어서 찍어!”
“진짜 백유현이다! 찍어!”
다시 수도 없는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백유현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잠깐만! 백유현이 여기 와 있다는 건 알파 팀도 온다는 뜻이잖아? 어서 연락해! 공항에 취재팀 가라고!”
“야, 우리도 서둘러! 이거 특종 뺏기겠다!”
기자들은 서로 난리를 치며 방송국에 연락을 하고, 사진을 찍고 난리도 아니었다.
“저기, 기자님들.”
그 때, 백유현이 조용히 말했다.
“응? 왜 그래요?”
기자들 몇몇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진 찍고 그러는 건 좋은데요. 저 같으면 차에 올라타서 시동 먼저 걸 것 같은데...”
“그게 무슨...?”
기자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릉-
그 때, 백유현은 간장과 막야를 꺼내들었다.
“못 들었어요? 어서 도망가라고요!”
“예? 도대체 왜...?”
기자들은 별 다른 일도 없는데 자꾸 도망가라는 백유현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 때였다.
“크아아악!”
“아아악!”
“사, 살려줘!”
콰르르륵-
해변 쪽에 가까이 다가가 있던 기자들 몇이 갑자기 넘어지면서 뭔가에 끌려 들어가듯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뭐, 뭐야!”
“지현아!”
“이게 무슨 일이야!”
파앗-
그 순간, 백유현이 허공을 날았다.
촤앗!
그리고 기자들의 발목을 잡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들의 팔를 사정없이 베어냈다.
그는 바로 기자들의 뒷덜미를 잡고 바깥으로 밀어냈다.
“꾸에엑! 쿨럭! 쿨럭!”
“가, 감사합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기자들은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뭐야! 백유현 군,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가라고 할 때 가세요. 특종보다 목숨이 중요하다면.”
기자들의 물음에 백유현은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의 눈에는 보였다.
성산 앞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물귀신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그 뿐만 아니었다.
육지에 있던 원귀들도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강효, 문광! 기자들을 보호해!”
“명을 받잡나이다.”
그의 심언에 강효와 문광이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백유현에게 복속된 차사들도 적당하게 위치를 잡으며 흩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막아설 수 있는 시간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원귀들은 지독스레 많았고, 놈들의 원한은 너무도 깊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산 사람이라면 분명히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 할 것이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가 있었다.
우르릉-
성산일출봉에 서 있던 오백장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들의 호들갑이 그들을 자극한 것일까?
아니면...
‘나를 보고 있어!’
백유현은 그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정확하게 깨달았다.
그들은 이미 백유현을 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박성진은 홀로 싸우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급변했다.
“리퍼, 적과의 교전에 돌입합니다. 반복합니다, 리퍼, 적과의 교전에 들어갑니다.”
- 뭐! 단독행동은...
“이미 적이 움직였습니다. 사람들을 보호하려면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 이런! 알겠다! 우리도 서둘러 가고 있으니 버텨라!
“예, 코드 원.”
백유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한 발짝 걸어 나갔다.
쿠릉-
그 동안, 오백장군도 깊은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며 건너오고 있었다.
수많은 물귀신 떼들이 그들에게 밟혀 죽어갔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음머어어-”
순간 브라만이 흥분한 듯, 콧김을 거칠게 뿜어냈다.
수많은 망자들이 이미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고, 브라만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곳은 내가 막아낼 것이니, 너는 어서 가서 네가 할 일을 하도록 해라.”
그 때, 척준경의 혼령까지 백유현의 몸 안에서 빠져나왔다.
귀신을 잡는 데는 도가 튼 그다.
그리고 그가 있다면 뒤는 믿고 맡길 수 있다.
기자들은 이미 차를 타고 빠져나간 뒤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상황.
차사들은 그들이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싸움은 오로지 백유현 혼자 치러야 한다는 뜻.
예전 같으면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막아내 주겠어.’
파지지직-
콰르륵!
간장과 막야.
두 절대신검에서 각기 뇌전과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파각-
그리고 백유현은 땅을 거칠게 밟더니,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촤아앗-
거대한 폭풍날개가 그의 몸을 힘차게 밀어냈다.
콰콰콰쾃!
하늘 높이 치솟은 그의 두 눈에 바다를 건너오는 오백장군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보며 백유현은 두 개의 검을 교차해서 들었다.
이것은 달과 태양이 서로를 잡아먹으며 생긴다는 금혼식.
그 시작을 알리는 자세였다.
쿠오오오오-
두 개의 절세신검과, 한 때 무신이라 불리며 이 땅을 지켜냈던 절대강자가 만들어낸 검식이 합쳐지며 거대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앗!
번쩍-
그리고 한 순간, 허공에서 엄청난 광채가 뿜어지더니 수도 없이 많은 칼날의 그림자가 아래쪽을 향해 덮쳤다.
콰콰콰쾃!
하나, 하나가 능히 목숨을 거두어 갈 수 있을 만큼 위험한 힘!
최강의 검식이 펼쳐졌다.
스릉-
오백장군들도 그 힘을 느끼고는, 백유현의 공격을 막아내려 검을 뽑아들며 힘을 발출했다.
콰콰쾃!
그들이 뿜어낸 오백 개의 기운은 어마어마한 기세로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엄청난 기세!
콰콰콰콰쾃!
허공에서 뿜어진 수백 갈래의 금빛 광채와, 아래에서 솟구친 오백 개의 기세가 서로 충돌했다.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었고, 두 힘은 서로 충돌하며 소멸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백유현이 발출한 금환식의 힘이 오백장군의 기세를 모조리 집어삼키며 내리꽂힌 것이었다.
번쩍-
달이 태양을 잡아먹어 온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태양의 남은 잔해가 금빛으로 이글거린다 하여 금환식(金環蝕)이라 이름 붙여진 현상.
한 때 척준경이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적을 베어나갔을 때의 모습이 마치 그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했다.
그 절세의 검술이 수천 년이 지나 백유현을 통해 발현되었던 것이었다.
촤아아앗!
간장과 막야를 통해 펼쳐진 금환식은 매서운 기세로 오백 장군을 집어 삼켰다.
오백장군의 돌덩이와도 같은 피부를 박살을 내고, 갑주를 찢어버렸으며 그들의 머리와 가슴, 팔, 다리 가릴 것 없이 모조리 꿰뚫고 지나간 것이었다.
“크어어어-”
“끄르르!”
설문대할망의 자식이자, 그녀를 호위하는 호위신장인 오백장군들은 금환식 한 방에 치명타를 입고 바다 속으로 침몰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가르며 건너는 물귀신들과 오백장군들이 있었다.
대략 절반이 금환식에 의해 수장(水葬)되고, 절반 정도는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살아남아 백유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백유현이 다시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콰콰콰콰쾅!
“크어어억!”
“크허억!”
갑자기 그 오백장군들 가운데서 맹렬한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폭발이 어찌나 격렬했던지, 허공에 떠 있던 백유현도 그 후끈한 열기를 느꼈을 정도였다.
백유현은 폭발 속에서 몸부림치는 오백장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것 참...”
그 때, 무전 하나가 들어왔다.
- 여어, 아직 괜찮지?
천무현이었다.
- 죽어라 날아왔는데도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서 반칙 좀 썼지. 좀 괜찮았냐?
백유현은 다시금 미소 지었다.
그는 아마 천리통을 쓴 모양이었다.
“뭐, 그럭저럭요. 후후.”
- 뭐? 이 녀석이! 아주 멋있었습니다! 하는 거다. 이런 때는. 아무튼...이제부터 제대로 시작해볼까?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오백장군에게 가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더 멀리, 더 거대한 존재에 가서 멎어 있었다.
“캬아아아-”
설문대할망.
자식들의 죽음으로 분노한 거대한 악신(惡神)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