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88화 (88/166)

88. 인면초

카앙-

불똥이 튄다.

전설의 야장(冶匠), 무초관은 미친 듯 망치를 두들겨대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실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변해 있었고, 온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뭐든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다.

콰앙-

그러다 갑자기 힘을 모아 내리친 망치가 뒤로 튕겨 올랐다.

“크윽!”

평생 무거운 망치를 들고 쇠를 내리치던 무초관이다.

그의 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팔이 일순간 뒤로 튕겨난 것이다.

“뭐야, 이거!”

무초관이 이를 으득 갈았다.

이놈의 봉인은 갈수록 더욱 단단해지기만 하고 있었다.

“오냐,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 번 해보자!”

무초관은 악귀(惡鬼)이기 이전에, 쇠에 미쳐 살았던 야장이다.

역설적으로 뼛속까지 야장이었기 때문에, 악귀가 되었던 사내.

그는 지금 브리트라의 어금니의 봉인을 깨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 덤벼들고 있었고, 전에 없는 승부욕을 느끼고 있었다.

쿠오오오오-

망치를 다시 잡아가는 무초관의 전신에서 거대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대(大) 야장(冶匠)의 혼이 타오르는 것이었다.

화르륵-

무초관의 기운에 따라, 근처에서 타오르고 있던 혼불 역시 크게 치솟아 올랐다.

백유현도 숨을 죽인 채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초관이 저런 상태에 빠져든 지도 벌써 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봉인을 깨지 못했고, 여전히 저렇게 브리트라의 어금니와 대치중이었다.

‘대단하네. 역시 전설의 야장이라는 건가?’

백유현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무초관이 다시 한 번 기합을 내질렀다.

“흐아아압!”

콰앙-

번쩍-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환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더니 주변이 온통 거칠게 뒤흔들렸다.

쿠르르르-

백유현도 발 밑의 진동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클...”

그 때 무초관의 짤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클클클! 크하하하핫!”

무초관은 앙천대소를 터뜨리더니 갑자기 뭔가를 들고 뒤를 홱 돌아보았다.

“보아라! 이것이 내 실력의 정수다!”

그의 손에는 투명하게 빛을 내는 하나의 날카로운 비수가 들려 있었다.

백유현은 다가가 그 비수를 건네 받았다.

[브리트라의 단장검(斷腸劍)]

[검의 모양을 하고는 있지만, 살상 무기는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독사(毒蛇)들을 부릴 수 있는 악신의 권능이 담긴 단검. 들고 있으면 독사를 부릴 수 있으며, 모든 독에 면역이 됩니다.]

[신체 능력 10 퍼센트 증가]

[뱀의 지혜를 깨달아, 지력이 5 증가합니다]

[권능, 독사(毒蛇)의 탈태(脫態)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독사의 탈태(1단계) : 1분간, 인간의 육체를 벗고 영체(靈體)로 변이합니다. 한계가 개방되며, 잠재력이 극대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퍼센트 증가하며, 공격력과 공격속도가 ‘독사의 잔악함’에 영향을 받아 크게 증가합니다. 단계에 따라 지속 시간이 늘어납니다. 1단계 70초 지속]

[권능, 어둠 감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둠 감지 : 칠흑 같은 밤에서도 온기(溫氣)를 읽어내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깊은 밤이라면 더욱 더 효과가 강력합니다]

[권능, 살모사의 위기 감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10초간 순발력이 15 올라갑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3시간]

[권능, 뱀들의 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뱀들의 왕(1단계) : 2시간 동안 삼백 마리의 뱀을 소환해 부릴 수 있습니다. 소환된 뱀들은 소환자의 레벨에 따라 능력치가 조정이 되며, 최대 소환 시간인 2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단계가 오를수록 소환할 수 있는 뱀의 숫자와 시간이 늘어납니다. 또한, 주변의 뱀들이 당신을 공격할 그 어떤 이유도 없으며, 당신을 돕게 됩니다]

브리트라의 단장검을 받아든 백유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불멸자를 잡고 얻은 무구라 대단한 효과를 지녔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대단한데?’

사실 그는 놀랐다.

이 정도면, 정말이지 백유현으로서는 엄청난 힘을 얻은 셈이었으니까.

콰앙-

번쩍-

그 순간, 다시 한 번 빛이 터져 나왔다.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으니!”

그런데 이번에는 무초관이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었다.

‘음?’

백유현이 그를 바라보자, 무초관이 씩씩거리더니 말했다.

“이것 좀 보라고! 이딴 폐품을 가져와서 나에게 봉인을 풀어달라고? 쯧, 이런 건 당장 갖다 버려라!”

도척이 준 브리트라의 어금니였다.

그런데 그건 백유현의 것과 달랐다.

투명한 것이 아니라, 거무튀튀했고 이가 나가 있는 곳도 수도 없이 보였다.

백유현은 바로 또 하나의 단장검을 받아들었다.

[브리트라의 다 낡은 단장검(斷腸劍)]

[검의 모양을 하고는 있지만, 너무 낡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잘 못하다간 뱀의 분노를 일으켜, 독사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으며 검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대의 독(毒)에 중독될 수 있는 확률이 있습니다]

[권능은 사라지고, 고대 악신의 저주만이 남아 있는듯합니다]

[위험, 취급주의]

백유현은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자신의 것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데, 정작 도척의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니.

벌써부터 도척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기대가 되었다.

“뭐, 그건 임자가 따로 있으니...고생했어.”

으득-

무초관이 이를 박박 갈았다.

“네 놈, 나에게 이리 대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어차피 상관없어. 아, 그리고...다음에 올 때는 저 벽에 뭔가 잔뜩 걸려 있었으면 좋겠네. 보니까 질이 상당히 좋더라고. 갖다 팔면 그만일 것 같아서.”

“이 놈!”

무초관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백유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초관. 귀신의 피가 필요하지?”

“뭐라고?”

“귀신의 피가 필요하냐고 물었어. 그건 얼마든지 구해다 줄 수 있거든.”

“...!”

무초관은 방금 전과는 다른 표정을 지으며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당신, 사실 저 벽에 뭐가 걸려 있든 상관없잖아. 보니까 만든 지 매우 오래된 물건도 보이던데. 아니야?”

“크흠...”

무초관은 대답 없이 침음을 흘렸지만, 백유현은 이미 그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저 망치질을 하고, 또 다른 뭔가를 만드는 것이 좋았던 거니까. 그건 내가 도와주지. 단, 내가 피를 구해다 주면, 당신은 물건을 만드는 조건이야.”

“으음!”

내심을 찔린 무초관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 그가 여기서 무기를 만들어 봐야 사가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암부(暗府).

여기서 무초관은 범죄자 신세였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끈질기게 그를 좇던 척살자들도 오래 전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어차피 수요가 없는 대장간 일이었다.

그래서 무초관은 오랜 시간 망치질만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태생이 야장인 그에게 딱 맞는 일이었다.

불꽃을 피우고, 모루에 쇠를 놓고 망치질을 하는 그 시간은 그가 유일하게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었으니까.

“피는.”

한참 고민하던 무초관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한 편을 가리켰다.

“저 가죽낭에 담아 오면 된다.”

백유현이 바라보니 손때가 탄 가죽낭이 보였다.

그가 그것을 열려 하자, 무초관이 제지했다.

“어헛! 함부로 열지 마라. 잡아 먹히기 싫으면.”

“무슨...?”

무초관이 인상을 쓰더니 말을 이었다.

“그 가죽낭은 살아 있단 말이다. 함부로 입을 벌렸다간, 네 놈을 집어 삼킬 거다. 하지만 피 한 방울이면 얌전해지니 열 때는 그렇게 하도록 해라.”

“피 한 방울? 주인 닮아서 무시무시하네.”

백유현은 피식 웃으며 칼끝으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냈다.

그리고 피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가죽낭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순간, 백유현은 두 눈을 부릅떴다.

겨우 어깨에 걸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가죽낭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을 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이 없이 넓었다.

“무한낭(無限囊)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만든 거 아니다. 소월량이라는 성질 더러운 할망구가 만든 거지. 가져가라. 그곳에 피를 담아 오면 된다. 뭐, 다른 걸 담아둬도 섞이진 않을 테니 꽤 유용하게 쓰일 거다. 단, 반드시 피를 채워 가져와야 한다. 놈은 내 피에 중독이 되어 있어 내 피를 주기적으로 주지 않으면 폭주를 할 테니까.”

희한한 얘기였다.

하지만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좋은 가방이 있다니, 유용하게 쓰면 될 일이었다.

“피는 자연적으로 그 안에 모일 거다. 너는 귀신들을 잡기만 하면 된다.”

“간단해서 좋네.”

백유현이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그는 꽁꽁 싸맸던 무기들을 모조리 무한낭에 쓸어 담았다.

신기하게도 그 많았던 무기들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더욱 신기한 것은, 무한낭의 무게는 그대로인 것.

아무리 집어넣어도 무게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엄청난 물건을 얻었네...’

이거면 현실로 돌아가서도 꽤나 유용하게 쓰일 듯했다.

“그리고 그거 줘봐라.”

“뭐를...?”

“완갑 말이다. 설마 내 제자 놈을 찾아가려는 건 아니겠지? 놈의 실력은 내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망자의 완갑.

망자들을 되살릴 수 있는 힘을 지닌 물건이었다.

암부의 야장만이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물건.

백유현은 가만히 무초관을 바라보더니 완갑을 끌러 건네주었다.

무초관은 완갑을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손을 보았다.

그가 광혈마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손놀림은 섬세했고 정확했다.

“옛다. 네 놈은 이제 피만 들고 오너라.”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돌아오도록 할게.”

다음 무간이 열리는 시간까지는 괜찮을 것이다.

“그럼, 나는 이제 가야겠네.”

무초관은 그를 싸늘하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백유현은 그의 어깨에 박혀 있던 검을 뺐다.

이제 그건 필요가 없을 듯했다.

“요건 미안하게 됐어. 앞으로 잘해보자고.”

“볼일 끝났으면 꺼져라.”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지금쯤, 문광이 인면초의 행방을 찾아냈을 것이다.

‘자 그럼...’

백유현의 두 눈이 매서운 빛을 발했다.

‘가볼까?’

콰앙-

다음 순간 그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제 명부(冥府)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콰콰콰콰쾃-

그는 순식간에 무초관에게서 멀어졌다.

암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타앗-

그리고 백유현은 땅바닥에 가볍게 내려섰다.

바로 눈앞에 명부로 통하는 구멍이 열려 있었다.

백유현은 바로 그곳으로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파앗-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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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명부로 돌아온 순간, 날아드는 심언이 있었다.

- 소주,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문광이었다.

“인면초의 행방은?”

- 찾았사옵니다. 소주.

백유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강효.

이제 녀석을 회복시킬 차례였다.

- 모시러 가겠사옵니다.

이제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되었다.

무간 지옥.

이 안에서 그는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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