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86화 (86/166)

86. 광혈마, 무초관

“네 놈은 누구더냐?”

한참 백유현을 노려보던 노인이 말했다.

“백유현이라고 합니다.”

“산 사람이 왜 여길 온 게냐? 이곳은 저승, 그 중에서도 잔혹한 귀신들이 모여 있다는 암부(暗府)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백유현은 노인의 말에 그리 대꾸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노인의 시선이 백유현이 차고 있는 망자의 완갑과 브리트라의 어금니가 들어 있는 작은 가죽 가방을 훑고 지나간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크흠...”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 질문에 아직 답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어르신.”

그 말에 노인이 입맛을 다시더니 말했다.

“쯧, 고 놈, 정말 끈질기구나! 그래, 맞다. 내가 금백산이다. 네 놈이 이곳에 온 것은 필시 그 완갑을 강화시키려는 생각이겠지?”

“네.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하겠냐는 물음.

그 말에 금백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존심을 건든 듯했다.

“그까짓 물건을 강화시키는 것이야 눈 감고도 가능하지. 크흠! 그래서, 대가는 가져 왔느냐?”

대가.

역시 대가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사자육전을 이용하려면 도척이 좋아하는 육편(肉片)이 필요한 것처럼.

그럼 금백산은 뭘 요구하려는 것일까?

“쯧, 그럴 줄 알았다. 대가도 없이 내게 뭘 해달라는 것이냐?”

“어떤 대가가 필요한지요?”

금백산이 백유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오석(烏石)을 가져오너라.”

“오석이라 하심은...?”

그 때 창 하나가 떠올랐다.

[오석(烏石)]

[저승불의 열기를 조절하는데 쓰이는 돌이다. 매우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보통 인간이 들고 있으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금백산은 달아오른 쇠를 식힐 때 물 대신 오석을 쓴다. 오석에는 수명이 있어 몇 번 사용하고 나면 소멸된다]

‘그랬군!’

금백산이라면 욕심낼 수밖에 없는 물건이다.

전설의 야장인 그라면 반드시 필요한 물건.

그렇다면 이 질문은 어떨까?

“그런데 어르신,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무초관 어르신을 찾고 싶어서입니다. 도움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따앙-

그 순간, 쇠를 두드리던 금백산이 손을 멈추고 형형한 눈빛으로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형형하다 못해 살기마저 서려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누굴...찾아?”

적대감이 가득한 목소리.

‘심각하군.’

백유현도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는 것을 깨닫고는 대답했다.

“무초관 어르신을 찾아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카앙!

금백산의 손에 들려 있던 망치가 모루를 박살내고 튕겨 날아갔다.

“그 이름을...감히 입에 올리다니...네 놈이 죽고 싶은 게로구나?”

그의 두 눈에서는 시뻘건 혈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백유현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척...’

이러니 도척이 그렇듯 비굴하게 청탁을 해왔지.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백유현은 표정을 바로 했다.

어차피 도척이 아니더라도, 이 상황은 반드시 한 번은 맞이했어야 할 상황이었다.

브리트라의 어금니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눈앞의 금백산이 아니라, 그의 스승인 무초관이었으니까.

“그 분의 행방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있으신지요?”

자신이 살기까지 뿜어내며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데도, 어린놈이 물러서지도 않고 오히려 더욱 태연하게 대꾸한다.

이곳 암부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보통 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배짱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 간수들을 불러 네 놈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도 있다.”

아까 수도 없이 몰려들었던 간수들을 일부러 들먹거린 것이었다.

그런데 백유현은 여전히 태연했다.

“제가 그들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셨다면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누구도 다치질 않길 바라고 있는 겁니다.”

금백산은 그 뒤에 생략된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

이 영악한 어린놈은 ‘누구도’라는 범주 안에 자신까지 넣고 있었던 것이었다.

즉, 다치기 싫으면 무초관의 행방을 어서 말해라- 라는 뜻.

‘이놈 보게?’

꽤 오랜만에 보는 당돌한 놈이다.

저번에는 항우라는 놈이 찾아와 이곳을 뒤집어 높더니, 이번엔 이런 어린 꼬맹이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둘.

한 놈은 죽어 귀신이 된 전설적인 무신.

한 놈은 살아 태연하게 암부를 찾아든 어린놈.

그리고 항우는 이곳의 최강자를 찾아 물었고, 눈앞의 이 녀석은 이곳의 최고 야장을 찾아 묻는다.

‘허어...업보로다.’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왜 그 때 일이 겹쳐 보이는지.

사실 금백산이 스승의 이름을 듣고 화를 낸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스승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의 스승 무초관은 쇠에 미쳐 결국 주변을 모조리 피로 물들이기까지 한 광인(狂人)이었다.

금백산의 등 뒤, 목덜미 부근에서 꼬리뼈까지 길게 나 있는 커다란 흉터도 그래서 생긴 것이었다. 무초관은 쇠를 식히기 위해 오석을 대신할 것을 찾다가 급기야 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의 주변에는 끔찍한 살육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궁극적인 단금법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곳 암부(暗府)는 언뜻 보면 질서가 없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암부의 지배자는 철저한 업보의 작용에 의해 암부를 다스렸고, 무초관은 그 업보의 결과에 따라 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자를 찾아?’

이건 둘 중 하나다.

무초관이 누군지 모르거나, 알면서도 그걸 감내할 자신이 있거나.

“하나 묻겠다.”

금백산은 백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그 자를 만나면 반드시 죽는다. 그래도 갈 생각이냐?”

백유현은 금백산을 잠시 마주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제가...”

백유현은 잠시 텀을 두었다가 말했다.

“그를 죽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그 말에 금백산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와락 찌푸려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뭣? 크크크, 크하하하핫!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크하하하!”

저런 미친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란 말인가!

도대체 무초관이 어떤 존재인줄 알고!

“이 놈...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네 놈, 정말 죽을 수도 있다. 그 자는...”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 주십시오. 그 뒤는 제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금백산이 백유현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톡- 톡-

그는 손가락 하나로 작업대를 치더니 불쑥 말했다.

“죽어 귀신이 되어도 나를 원망하진 말아라. 피에 미친 귀신, 광혈마(狂血魔)가 바로 그다.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라 볼 수는 없으며, 사악한 악귀가 되어 있지. 그가 사는 곳은 바로 저 곳, 혼을 태워 피워낸 혼불이 타오르는 골짜기다. 그 뒤는 네 말대로, 네가 알아서 하여라.”

백유현은 금백산이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 멀리서 시커먼 불빛 하나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불을 태우는데 색이 시커멓다니...

뭔가 기이했지만, 금백산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 듯했다.

‘악마가 되었다...라.’

백유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궁극의 단금법을 얻기 위해 수많은 자들을 죽여 그들의 피로 쇠를 식혔고, 결국 자신이 원했던 궁극의 단금법을 얻어낸 야장.

‘그 힘,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 쓰게 될 거야.’

그러니 무초관이 최고의 야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렇듯 쇠에 미쳐 살았으니.

“알려 주어 감사합니다. 어르신.”

금백산이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차피 말려도 기어이 찾아가 뒈질 놈인 듯하여 알려준 것뿐이니 너무 고마워하진 말아라. 그 자를 만나면 나를 원망하고, 후회할 것이니.”

백유현도 그를 바라보며 마주 웃어 보였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럼.”

백유현은 곧바로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무초관의 행방을 알게 되었는데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쿠오옷!

백유현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금백산은 묵묵히 그 자취를 좇더니 불쑥 말했다.

“쯧, 오랜 만에 혼불이 타오르겠구나...업보로다, 업보야.”

야장으로서의 실력은 사실 자신과 무초관은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무초관을 이미 넘어섰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날붙이에 관한 단금질은 무초관이 훨씬 앞섰다.

그가 단금질한 날붙이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예기를 뿜어냈고, 상대를 압도했다.

그 이유는 금백산도 잘 알고 있었다.

단금질 하는 데 쓰이는 핏물 때문이었다.

핏물에 스민 원혼들의 지독한 원한이 날붙이의 칼날에 맺혀 만든 예기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후우...지옥 귀신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을 반가워해야 하나, 안타까워해야 하나...알 수가 없구나.”

수많은 간수들을 때려죽이며 왔던 항우조차, 결국 반죽음이 되어 쫓겨났다.

그런데 저 여려 보이는 아이가 도대체 광혈마를 맞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힘이 있어 보인다고 해도, 광혈마는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늘.

카앙-

금백산은 망치를 주워들고 다시 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인간 아이야 이제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놈이 살고 죽는 것은, 놈의 업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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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앗-

공중에 떠올라 있던 백유현은 눈앞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혼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이라고 해도, 그곳까지의 거리는 꽤 되었다.

불꽃의 색이 시커먼 것은 백유현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멈춰선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 끼아아악

- 께에엑!

혼불 안에서 들려오는 지독한 비명소리.

저 불이 정말로 혼을 태워 일으킨 불꽃이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완전히 미친놈이었구나...’

금백산의 말대로 무초관은 제대로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단금질 할 때의 냉매로 쓰는 피, 그리고 혼을 태워 일으킨 혼불.

그래서 그는 지금 만족하고 있을까?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얻은 그 기술로?

백유현은 허공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마음을 정하고 땅 위로 내려섰다.

척-

어쨌든 상관없다.

그가 브리트라의 어금니에 대한 봉인만 풀어내 줄 수 있다면.

거친 산길을 걷는 그의 두 눈에 수많은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특이했다.

이 산에 뿌리라도 내린 듯 그 자리에 고정되어 울부짖고,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었다.

- 죽어 버려! 캬악, 퉤!

- 모조리 씹어 먹을 거야, 모조리! 키헤헤헤!

사방에서 들려오는 저주와 원한 섞인 욕설.

아마 무초관에 의해 죽은 수많은 망자들일까?

그런 망자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즉 혼불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많았고 더욱 거칠고 사나워졌다.

백유현조차 그들이 뿜어내는 원독에 몸서리를 쳤을 정도였다.

척-

그리고 그는 도착했다.

시커멓게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 혼불 앞에.

그 앞에는 한 명의 노인이 등을 보인 채 앉아 있었다.

광혈마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매우 평온해 보이는 뒷모습이.

백유현은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무초관 어르신 되십니까?”

그리고 노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

순간 백유현은 눈을 찌푸렸다.

지독한 원독으로 물들어 있는 두 눈동자, 그리고 푸른색으로 변색되어 있는 얼굴.

그리고...

“신선한 피 냄새가 나는구나. 크흘흘!”

희열에 젖어 내뱉는 그 한마디.

백유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막야를 빼들었다.

“역시 이럴 수밖에 없는 건가...”

그리고 그는 뒤로 돌아섰다.

- 키에에엑!

- 캬아악!

수도 없이 몰려든 망자들.

놈들은 아까 올라오면서 봤던 망자들이었다.

134.

142.

122.

...

간수들 보다는 약했지만, 그래도 꽤 높은 레벨의 망자들이 수두룩하게 몰려와 있었다.

아마 백유현을 잡아 무초관에게 바치려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떴다.

[추방자들의 왕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추방자들의 왕이 당신에게 임무를 줍니다]

[추방자들의 왕의 임무 의뢰]

[추방자들의 왕 : 피에 미친 악귀를 제압하라]

[임무 완료 조건 : 광혈마, 무초관 제압]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20, 오석 3,000개, 시편(尸片) 2 조각, 암부의 거주자 명칭 획득]

[추방자들의 왕의 의뢰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열흘입니다]

[임무 정보 : 광혈마, 무초관을 제압하자. 그러면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떠오른 창을 보며 백유현이 희미하게 웃었다.

‘재미있네.’

좋다.

그러면 주저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 와봐!”

백유현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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