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암부(暗府)
[무간(無間) 지옥에 현현(顯現)하였습니다]
[현현(顯現)의 대가로 지옥 망자들의 원한이 당신에게로 집중됩니다]
[무간 지옥, 삼회차가 시작됩니다]
[염라의 아패(牙牌)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지금부터 망자들을 처치하고 얻는 경험치에 30% 의 경험치를 더 얻습니다]
[제한조건 : 무간 지옥에 있을 시]
[무간 지옥의 문이 앞으로 25일 1시간 02분 15초 동안 개방됩니다]
[그 후에는 이승으로 강제 송환됩니다]
[이승의 현재 시각 : 17시 11분 12초]
[예상 강제 송환 시각 : 17시 14분 27초]
[지옥, 무간 재개방 시간이 앞으로 240시간(열흘) 남았습니다. (이승 기준)]
무간이 열렸다.
‘일단...’
백유현은 주저 없이 타임 뱅크를 열었다.
[타임 뱅크, 400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지금 무간에 들어왔으니 다음 무간 지옥은 열흘 후에 열린다.
하지만 백유현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으로 판단하건대, 한 번 들어왔을 때 제대로 레벨업을 해야 될 필요성을 매우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그는 240시간을 투자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조셉의 성격 상, 타임 뱅크 공유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테니까.
240시간.
즉, 10일 정도가 더 추가되었다.
[무간 지옥의 문이 앞으로 35일 1시간 02분 15초 동안 개방됩니다]
[타임 뱅크 효과 적용]
35일로 늘어났다.
이 정도면 충분한다.
이미 백유현은 무간지옥의 상당한 지역까지 뚫어놨으니까.
‘다음은 사자육전.’
백유현은 바로 사자육전을 열었다.
“클클, 오랜만이오. 도령.”
그를 보며 도척이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
다 썩은 그의 치아가 오늘 따라 유독 시커멓게 보였다.
“무혼단, 다섯 개 주세요.”
하나에 800 육편인 무혼단 다섯 개를 주문한 백유현이었다.
지금 소지 육편은 49,850개.
하지만 백유현은 일부러 육편을 남겨두었다.
나중에 쓸 일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대비해두려는 것이었다.
“클클, 그러시오. 그런데 재미있는 물건을 차고 있구려.”
도척이 완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금백산이라면 어찌 만져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오.”
역시 사자육전의 주인이라 그런지, 도척은 저승불 야장, 금백산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했다.
“망자의 완갑이라...금백산 그 자의 손이 닿으면, 꽤나 물건이 될 것 같은데...킁, 그런데 이게...아까부터 무슨 냄새지?”
그 때 도척은 인상을 찡그리며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걸어오며 백유현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는 한참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이 냄새는!”
백유현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척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대의 흉포한 뱀...그 뱀의 독특한 체취가 느껴지는구려. 어허, 어찌 도령에게서 이런 냄새가 나는 거요?”
놀랍게도 도척은 브리트라의 어금니에 대해서 냄새만으로 파악을 해냈다.
사자육전의 주인이라서 그랬다고 보기에는 너무 뜻밖의 능력이었다.
“놀란 표정이군. 어떻게 알았냐고 묻고 싶은 모양이오? 이곳은 모든 죽은 이들의 부장품이 있는 곳이오. 설마, 고대에 살았던 그 뱀이 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이곳에 있지 않겠소? 물론 그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무언가가.”
맞다.
브리트라는 고대의 악신 중 하나.
놈은 영웅에게 퇴치당하며 죽었었다.
이미 죽었던 전설의 악신이 이번에 부활했다가 다시 백유현에게 죽은 것이니, 놈의 전리품 또한 이것 하나가 아닐 것이다.
“내가 볼 때는 도령이 갖고 있는 것도 놈의 어금니라고 생각 되는데 맞소?”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척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쯧, 그럴 줄 알았소. 자, 한 번 보시오.”
촤라라랏-
그 순간 사자육전의 풍경이 갑자기 바뀌더니 예전에 백유현이 본 적이 있는 장소가 펼쳐졌다.
‘여긴?’
막야를 얻었던 그곳이었다.
6등품 무기들이 있던 그곳.
그런데 여길 왜 데려 온 것일까?
저벅, 저벅.
도척은 어딘가로 걸어가더니 하나의 물건을 들고 나왔다.
‘엇!’
백유현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브리트라의 어금니와 똑같이 생긴 이빨이 도척의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훨씬 세월이 오래되었는지, 시커멓게 변색이 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삭아 있는 부분도 보였다.
“놈을 사냥한 영웅도 결국 죽음을 맞이했지. 그래서 이 물건은 그 영웅과 함께 같이 묻혔다오. 덕분에 이 사자육전에까지 흘러 들어왔지만. 그런데...”
도척은 갑자기 그것을 땅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쩌엉-
말릴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다 삭아 보이는 그 어금니는 조금의 손상도 입지 않고 멀쩡했다.
도척이 손가락 하나를 턱에 갖다대고 말했다.
“이것이 문제란 말이지. 봉인(封印). 이 망할 물건에는 봉인이 걸려 있다오. 아마 도령이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 그러할 것이오.”
맞다.
백유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저승의 야장이라면 방법이 있을 거라 했습니다.”
도척이 피식 웃었다.
“크크, 금백산? 어림없는 소리요. 그 자는 물론 뛰어난 야장이지만, 그의 힘으로는 절대 이 봉인을 깰 수가 없지. 나 또한 수천 년 동안 방법을 찾아봤지만 절대 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소. 봉인을 풀어야 더 비싸게 팔아먹던가 하는데 말이오. 쯧.”
도척의 말에 백유현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럼 애써 불멸자 브리트라를 잡아 놓고도 그 전리품을 쓸 수가 없단 말인가?
“그런데...얼마 전에 우연하게 한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클클.”
그 때 도척이 두 눈을 살짝 빛내며 말했다.
“이미 저승의 업(業)을 다하고 사라진 줄 알았던 금백산의 스승, 무초관이 지옥 어딘가 숨어 있다는 얘길 들었소. 그 자라면 충분히 이 봉인을 풀 수 있지. 다만, 그의 성격이 괴팍한데다가 그들이 있는 곳은 엄연히 암문(暗問)을 열고 갈 수 있는 암부(暗府)의 영역이라 이곳의 존재는 갈 수가 없지. 그래서 방법을 앞에 놔두고 궁금해 죽을 지경이 된 거요, 나는. 클클!”
도척은 백유현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백유현은 그 눈빛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러니, 나보고 대신 가달라?”
“클클, 그렇소. 그럼 그만한 대가를 치러드리지. 이 이빨의 봉인만 풀어준다면 말이오.”
백유현이 가만히 그를 노려보고 있는 사이,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도척의 청탁(請託)]
[도척 : 독사의 어금니, 이 이빨의 봉인을 풀어주시오]
[임무 완료 조건 : 독사의 어금니 봉인 해제]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10, 사자육전 특등품 전시관 개방, 특별한 지옥 유충 다섯 마리, 호의도 150 증가]
[도척의 청탁을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열흘입니다]
[임무 정보 : 도척 역시 악신, 브리트라의 어금니를 가지고 있다. 그 봉인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무초관이 알고 있다고 한다. 그를 찾아 봉인을 풀자]
‘음...’
백유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곧 그는 마음을 정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임무는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어쨌든 도척이 아니었다면, 그 역시 브리트라의 어금니에 걸린 봉인을 풀지 못했을 테니까.
이건 기회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흐흐, 좋소, 좋소! 내 기분이 좋으니 무혼단 다섯 개를 특별 가격에 더 드리지. 클클! 한 개당 삼백 육편 씩, 천오백 육편 내시오.”
도척이 이렇게 선심을 쓰는 것으로 보아, 브리트라의 어금니는 엄청난 물건이 확실했다.
그가 아무리 궁금하다 해도, 이런 식으로 청탁을 해 오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이 시기에 갑작스런 특등품 전시관 개방이라니.
‘당신,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린다고.’
그렇다는 것은 브리트라의 어금니는 특등품 전시관에 어울리는 엄청난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백유현은 굳이 그걸 사지 않아도 된다.
자신에게도 하나가 있으니까.
아무튼 도척은 머리를 굴려 청탁을 했다가, 도리어 백유현에게 정보를 준 셈이 된 것이다.
앞으로 추가된 16일.
백유현은 살짝 고민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문광.”
“예, 소주.”
언월도를 든 문광이 고개를 숙였다.
“인면초가 있는 곳을 찾아내서 대기하고 있어. 난 갈 곳이 있으니까.”
이미 문광도 안다.
백유현이 어디로 가려는지.
하지만 그는 굳이 한 번 더 확인했다.
“암부...로 가시려 하십니까?”
“그래.”
문광은 무슨 말을 하려다말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소인, 따라가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소주께서는 옥체 강녕히 다녀오시옵소서.”
명부의 존재인 문광이 가지 못하는 또 다른 지옥, 암부.
그러니 백유현은 일단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문광과 차사들에게 명을 내려 인면초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라 이른 것이었다.
일단 강효를 낫게 만들면, 이 무간에서의 레벨 업은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다.
게다가 브리트라의 이빨이 가진 효능도 궁금했고.
도척이 저토록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청탁을 해온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 도령. 물건 하나 보고 가시오. 클클! 3등품에서도 상당히 좋은 물건들이 있다오.”
도척은 사자육전을 나가려는 백유현을 잡아끌며 뭔가를 내밀었다.
[진혼단(鎭魂丹)]
[이동속도를 30 퍼센트 높여주며, 모든 신체 능력치를 반 시진(1시간) 동안 5 퍼센트 증가시켜준다. 망자의 혼백을 지배해 일정 시간 자신의 것으로 부릴 수 있다]
[개당 1,500 육편]
좋은 물건이다.
비싸긴 비싸도, 상당히 괜찮다.
백유현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런 걸 굳이 사라고 내밀 정도면, 그만큼 도척도 몸이 달아 있다는 뜻이다.
도대체 브리트라의 어금니에 뭐가 있기에 그러는 것일까?
그가 분명 알고 있음에도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걸 그대로 받을 이유는 없다.
도척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급한 건 백유현이 아니었으니까.
“너무 비싸군요. 1,500 육편이라니...천천히 다녀와도 되겠습니다.”
그 말에 도척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백유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먹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인데...쯧.”
도척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리저리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백유현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좋소, 개당 800 육편에 특별히 주도록 하지. 그러니 어서 복용하고 떠나시오!”
서두른다.
그렇다는 얘기는, 뭔가 시간 제약이 걸려 있을 수도 있다는 뜻.
왜 그에 대해서 얘기를 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백유현에게 손해가 될 것은 없다.
그리고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꿀꺽-
백유현은 진혼단을 삼켰다.
“잘 다녀오시오.”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의 도척이 한 마디 툭- 내뱉은 것을 마지막으로 사자육전이 사라졌다.
“소인들 또한 길을 떠나보겠사옵니다.”
“그래.”
문광과 차사들이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이내 한쪽을 향해 방향을 잡고 날듯이 사라졌다.
백유현은 암문을 개방했다.
그그그그극-
허공이 거칠게 떨리며 시커먼 구멍 하나가 생겨났다.
지옥 안의 또 다른 지옥.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백유현은 주저없이 그 문 앞으로 성큼 들어섰다.
파앗-
그리고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암부(暗府).
또 다른 지옥이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