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인면초
K-666의 공략은 끝이 났다.
사실 많은 부분이 남아 있긴 했지만, 알파 팀의 박성진은 일단 균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파앗-
그들이 균열 바깥으로 나오자, 잠수정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수많았던 물귀신들은 죄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브리트라가 죽자, 그 영향력에서 벗어난 것이다.
팀원들은 서둘러 잠수정에 올라탔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곳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었고, 이번에는 진짜로 죽는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수많은 위기를 겪어온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면 엄청나게 심각했다는 얘기다.
쿠쿠쿠쿠-
잠수정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은 곧 부산항에 도착했다.
“음머어어!”
그들을 반기는 것은 한 마리의 소였다.
거대하고도, 험상궂은 표정이 매력적인 하얀 소.
그런데 녀석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마치 강아지처럼.
“어? 브라만!”
“음머!”
브라만은 백유현의 모습이 보이자 바로 달려들었다.
“큭큭! 야, 왜 이래? 아, 간지러워!”
브라만은 긴 혀를 내밀어 백유현을 핥으며 꼬리를 격하게 흔들어댔다.
이전까지 시크했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그런데 백유현은 녀석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위기의 상황에서 떠올랐던 상태 창.
그 안에서 브라만은 겁도 없이 시바에게 고함을 내질렀으니까.
백유현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런 듯했지만, 백유현에게 그 의미는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더욱 웃겼던 것은, 여신 칼리가 브라만의 그 당돌한 고함 소리에 응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브라만은 원래 시바의 것이 아니라 칼리의 것이 아니었을까?
난디가 시바의 소라면, 브라만은 칼리의 소...
그러니 시바가 그렇게 절절 매지 않았나 싶었다.
아무튼 브라만의 격한 환영이 끝나고, 일행은 부둣가에 섰다.
죽다 살아난 감마 팀은 더욱 숙연하고 긴장한 표정이 되어 있었고, 알파 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이번에는 엄청나게 힘든 싸움을 벌였던 것이었다.
‘겨우 살았다’ 라는 말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들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박성진은 첫 마디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휴식 좀 취하고, 팀-엑스 대회를 준비하도록 하죠. 아, 오늘 있었던 일은 우리끼리만 아는 걸로 합시다.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닌 것 같으니.”
“예, 알겠습니다.”
팀원들도 이번 사건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고 있었다.
이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 아니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이슈가 될 만한 문제.
여기서 함부로 입을 놀렸다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다.
박성진은 그 점을 명확하게 짚은 것이었다.
“그럼 감마 팀은 팀장님의 인솔 아래 움직이시고, 알파 팀은 저 좀 봅시다.”
이제 팀-엑스 대회를 준비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불과 며칠 후면 그들은 팀-엑스 대회를 준비할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때에는 알파 팀부터 레벨 5 이하의 베타 프로젝트 팀까지 몽땅 모여 가상 훈련에 돌입해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후우, 정말 덕분에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네요. 몸은 좀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감마 팀은 알파 팀의 팀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나서, 다들 백유현에게로 모여들며 한두 마디씩 건넸다.
사실 그가 아니었으면 이번에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K-666 터미널을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백유현이 목숨을 걸고 브리트라를 잡아준 덕분에 그들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백유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목숨의 은인을 바라보는 눈빛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선에는 어느덧 경외심마저 깃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대한민국 각성자들의 정점, 그리고 전설이라 불리는 김현성.
그 김현성을 뛰어넘은 단 한 명의 존재를 그들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었으니...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기대하겠습니다.”
“저희도 열심히 노력해야겠네요. 이번처럼 짐짝이 되지 않으려면.”
그들을 바라보며 백유현이 멋쩍게 웃었다.
“다들 잘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감마 팀원들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감마 팀장이 나서서 말했다.
“이런 든든한 팀과 같이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아무튼, 저희도 가서 훈련을 더해야겠습니다. 들었지? 우린 이제 휴식 없다. 이번에도 우린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다들 이의 없으리라 본다.”
그런데 그 말에 감마 팀 전원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가 쉴 틈이 어디 있습니까?”
“맞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훈련하고 또 훈련해야지, 쉴 틈 따윈 저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감마 팀원들을 바라보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백유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백유현이 손을 맞잡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덕분에 앞으로 나가야 하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회 때 뵙겠습니다.”
“예. 저도 기다리겠습니다.”
“가자.”
감마 팀은 다시 알파 팀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유현이, 인기 좋은데? 크크!”
“인기 좋을 만하지. 우리 막내...이번에 진짜 고생했어! 누나가 정말 예뻐해 줄게!
“어휴, 수향 누나 징그러워!”
천무현과 주세광, 김수향이 서로 어울리는 사이 김현성이 소리 없이 다가와 백유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다. 유현아.”
백유현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싸움에 그가 없었더라면, 브리트라에게 제대로 타격을 입힐 단 한 순간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현성 선배님.”
“형이라고 해. 무슨 선배.”
“그래도...”
“형이라고 불러. 그러야 더 빨리 친해지지.”
그 때 박성진이 끼어들었다.
백유현은 어쩔 수 없이 김현성을 형이라고 불렀다.
“고맙습니다. 현성 형.”
김현성이 씩 웃었다.
“덕분에 나도 많은 자극을 받았다. 고맙다.”
“야, 유현아! 이리 와봐! 이 누나가 예뻐해준다니깐?”
김수향이 백유현을 강제로 끌고 가고, 둘만 남은 김현성과 박성진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박성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
“괜찮아?”
“뭐가요?”
박성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널 앞질러 가는 거 괜찮으냐고.”
박성진이 아니면 대한민국 그 누구도 김현성에게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김현성이 희미하게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고 말고 할 게 뭐 있겠어요. 오히려 든든한 동료가 생겨서 좋은 일이죠.”
“서운할 텐데.”
“그런 거 없습니다. 어차피 대한민국 최고니 뭐니 하는 거, 마음에 안 들었다니까요? 좋네요. 저런 친구가 나타나줘서.”
“그래, 너라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잊지 마라. 넌 여전히 알파 팀의 에이스다. 뭐, 저 녀석도 이제 에이스지만.”
김현성이 피식 웃었다.
“그런 게 어딨습니까? 에이스가 둘이라니. 저 녀석만 하세요.”
“아니야, 이번에 깨달았어. 너희 둘이 나란히 달리는 모습...그것만큼 든든하고 흐뭇한 장면이 없다는 걸. 사실 누가 에이스든 무슨 상관이겠어? 둘이 같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자, 가자. 아직 할 일이 많으니.”
“예.”
김현성과 박성진은 다른 팀원을 향해 움직였다.
“자, 알파 팀 잘 들어라. K-666은 공식적으로 공략 성공한 것으로 보고될 거다. 물론 그 안의 각본은 알아서 잘 짜여서 나갈 거고. 하지만 다들 긴장 놓지 마라. 지금까지 없었던 일들이 시작되었다.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우리 알파 팀은 늘 어디든 지원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
“알겠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대한민국 치우, 알파 팀이 아니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이제 곳곳에서 벌어질 테니까.
“우리의 목표를 수정한다. 우리는 팀-엑스 대회 우승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회 우승을 하면 좋지만, 그쪽에 너무 힘을 싣지는 말라는 얘기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와 협의를 해서 최대한 빠르게 지원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겠다.”
고대의 악신이 부활했다.
사실 지금 팀-엑스 대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 곧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질 고대 악신들의 준동이 더욱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반적으로 아는 것은 알파 팀밖에 없었다.
“정부에서 꽤 바쁘겠군요. 사람들 입 막으랴, 정보 수집하랴...모든 게 쉽지는 않겠어요.”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정부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적이 나타나면 잡는 게 일이고.”
“베타 팀에도 협조 요청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도 차선책으로 커버는 해줄 듯싶은데.”
주세광의 말에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다. 베타 팀의 김준호 팀장이라면 잘 해 낼 수 있을 거다. 아무튼 다들 그렇게 알고 조심히 행동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해산한다. 서울에서 다시 보자.”
“예!”
얘기를 마친 박성진은 다시 백유현에게 다가왔다.
“유현아.”
“네.”
“이 부근, 더 보이는 건 없지?”
“네...아직은요.”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다. 여기서 할 일은 다한 듯싶으니, 올라가자.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네.”
백유현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에서만 벌써 두 마리의 악신이 부활했다.
그런 일이 과연 이곳, 부산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분명, 전국 어느 곳에서든 동일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막아야 해.’
망유계의 망자가, 이쪽 세계의 망자들을 잡아먹고 힘을 키우고, 몸집을 불린 후 고대의 악신으로 부활한다.
즉, 불멸자가 되는 것이다.
그 후의 벌어질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불멸자가 된 놈들이 인간들과 계약을 맺게 되었을 때다.
본래 악한 의도로 부활한 놈들이 인간들을 가만히 둘까?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놈들의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지구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일은 절대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렇기에 놈들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악신들의 특징은, 놈들은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것.
즉, 레벨이 순식간에, 또한 급속도로 높아지는 것이다.
사실 불멸자들이니 그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놈들을 잡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야말로 완전한 신의 모습이 되었을 때, 놈들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그 전에 잡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백유현은 할 일이 있었다.
“저는 조금 있다가 올라가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올라와라.”
“이번에도 그 소 타고 오는 거야? 그 소, 엄청 탐나던데. 크크!”
백유현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나중에 보자, 유현아!”
“예!”
알파 팀도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후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백유현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잠시, 그의 두 눈은 형형하게 빛을 발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불렀다.
“문광.”
그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
그것은 바로...
“무간(無間)의 문을 연다.”
“명을 받잡나이다.”
무간으로 들어가는 것.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도 그랬지만, 강효를 고칠 수 있는 인면초를 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들어가야 했다.
콰콰콰쾃!
백유현이 무간지옥의 문을 열자, 거대하고 음산한 구멍이 생겨났다.
그 앞에 선 백유현은 잠시 구멍을 노려보더니 그대로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간지옥.
시간의 흐름이 거의 정지된 그곳으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