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약점 포착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최종 보스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제노사이드 피스트는 굉장히 강력한 보스 몬스터.
그런데 백유현은 상상을 깨는 전혀 색다른 방법으로 놈을 잡아낸 것이다.
“와...저런 방법이 있었네요!”
“그것보다 더 대단한 건...저 가속도를 버텨낸 신체 능력이야. 저건 도대체...!”
감마 팀의 탱커인 유한재가 혀를 내둘렀다.
탱커는 신체 능력치, 그 중에서도 방어력과 상당한 연관이 있는 근력(筋力)에 특히 민감하다. 방어력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근력에 모든 스탯치를 투자하는 탱커도 있을 정도로, 방어력과 근력은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아는 것이다.
지금 백유현에게 가해졌던 가속도가 얼마나 끔찍하게 강력한 것이었으며, 그것을 버텨낸 백유현은 더욱 더 대단하다는 것을.
사실 유한재 본인이라 하더라도 그 무시무시한 힘을 이겨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저 아이...정말 괴물이야!’
검을 쓰는 모습을 봐도 대한민국 최강의 검사인 김현성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방어력도 매우 뛰어난데다가, 비행까지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한데 모아 위기를 돌파해내는 능력은 발군이다.
누가 저런 식으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려 하겠는가?
설령 생각을 했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자신의 몸이 완전히 박살날 수도 있는 위험을 그는 이겨내고 공격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리고 천무현 역시 눈살을 찌푸린 채, 백유현의 뒷모습을 조준경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백유현이 허공으로 치솟았을 때 그는 걱정을 했었다.
저번, 상류와의 싸움에서 백유현은 거의 죽었다 살아났었으니까.
‘저 녀석...어디까지가 한계인 거냐?’
그 장면을 직접 봤기 때문에 이번의 공격이 가진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이다.
백유현은 그 때의 미숙함을 완벽하게 채워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 성공의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그의 검은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베어냈고, 일행에게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김현성도 못한 일을 백유현이 해낸 것이다.
‘후우...무서운 자식 같으니.’
그러면서 천무현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대단한 놈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 리퍼, 전진 중. 커버 바랍니다.
리퍼와 소드 맨이 전진하고 있었다.
라이플 천무현과 머스킷 주준호가 나머지 블랙 피스트들을 죄다 정리해서, 박성진도 곧 합류할 예정이었다.
천무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오케이. 징표는 유효하다. 어서 따라가라.
저 멀리 찍혀 있는 징표.
그것은 일행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 최고 속도로 전진한다.
그리고 다시 팀에 합류한 박성진이 무전을 보냈다.
이제는 팀의 스타일이 바뀌었다.
리퍼 백유현과 소드 맨 김현성이 앞장서서 길을 열었고, 박성진은 김수향을 보호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
최악의 걸림돌을 제거했으니, 이제는 빠르게 브리트라에게 접근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 11시 방향. 거리는 약 12 킬로미터. 지원 하겠다.
- 오케이, 접수.
천무현과 박성진은 긴밀하게 무전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파악했고, 나머지 팀원들도 그 무전에 따라 영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천무현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럴 리가!’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몇 번이고 조준경 안에 보이는 장면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급히 무전을 날렸다.
- 코드 원! 목표에 찍힌 징표가 사라졌다! 반복한다, 목표에 찍힌 징표가 사라졌다!
징표가 사라졌다는 말의 의미는 두 가지.
하나는 시간이 다 되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 이런! 투명화(透明化) 계열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건가!
투명화.
즉, 땅 속을 파고들거나 허공에 녹아들거나 해서 아예 흔적을 지워버리는 몬스터들의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반적인 생물들만 봐도 그렇다.
의태(擬態)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니까.
그만큼 위장에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 생명체들도 많다.
그런데 브리트라는 불멸자다.
그런 존재가 마음먹고 자취를 감춘다면?
- 정지. 자리에서 대기해.
박성진은 바로 쩌릿쩌릿한 감각을 느끼며 자리에 멈춰섰다.
놈이 사라졌고, 징표 역시 사라졌다.
그냥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놈은 분명 뭔가를 노리고 있다.
자신의 영역이나 다름 없는 이곳에서 무엇을?
이 자연스러운 의문에 대한 해답은 단 하나다.
- 라이플, 정밀 수색을...
박성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콰아아앙-
“크윽!”
“아악!”
박성진과 김수향이 서 있는 곳에서 엄청난 진동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박성진이 방패를 들어 충격을 막아보려 했지만, 거대한 힘에 그대로 휩쓸려 그대로 밀려 났다.
미친 듯 날아드는 돌덩이에 김수향은 몸 곳곳을 관통당한 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흐윽!”
이건 K-666에 진입했을 때 발생했던 지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신의 분노가 서린 지진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지진!
- 소드 맨, 리퍼! 괜찮나!
- 소드 맨, 양호. 코드 원, 에피오네는 어떻습니까?
- 코드 원 피해는 미미하다. 에피오네의 피해는...
박성진의 안타까운 눈길이 김수향을 향했다.
그는 방패를 들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지만, 바로 갈 수는 없었다.
땅을 뚫고 나온 브리트라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리트라의 온 몸은 거대하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수도 없이 솟아 있었고, 두 눈에서는 피가 쏟아질 듯 붉은 혈광이 번뜩였다.
무시무시한 사신(蛇神)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보는 이의 심장을 절로 멎게 하고, 혼마저 놀라 도망치게 한다는 무시무시한 모습.
그 엄청난 위압감 앞에서 박성진은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언제고 브리트라가 덮칠지 모르기에, 그의 움직임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겨우 김수향의 근처에 다다른 박성진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 제길...에피오네 피해는 약 40 퍼센트 정도. 팔과 다리를 관통 당했다. 라이플, 시간을 벌어줄 수 있나?
힐 클라우드가 허공에 떠 있었지만, 그 구체들이 김수향에게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박성진은 그 시간을 벌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천무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조금 정도라면...충분히.
끼릭-
철컥-
천무현은 탄환을 바꿔 삽입하더니 다시 조준경에 눈을 갖다댔다.
조준경에 거대한 브리트라의 머리통이 꽉 차게 들어왔다.
“죽여 버려.”
주세광의 말에 천무현은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그리고 어느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며 탄환이 발사되었다.
콰콰콰쾃!
천무현이 가진 것 중에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탄환과 권능이 합쳐진 단 한 발이 허공을 찢고 날아갔다.
그것만 명중하면!
천무현이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였다.
“...!”
조준경을 바라보던 천무현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브리트라.
조준경 너머로 보이는 놈의 눈동자가 똑바로 이쪽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파파파팟!
콰쾅!
브리트라의 전신에서 거대한 가시들이 쏟아지듯 발사되었다.
천무현이 발사한 탄환은 그 가시들과 충돌하여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져 버렸다.
쐐애애애앳!
“세상에...!”
무수한 가시들이 하늘을 시커멓게 덮으며 날아오는 것을 바라보던 일행들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가시 하나가 마치 장창(長槍)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크기인데다가, 그에 실린 위력은 상상초월.
“내 뒤로!”
주세광이 빠르게 달려 나와 방패를 펼쳤다.
그리고 탱커, 유한재가 그 뒤를 받쳤다.
혹시 모를 상태를 대비해서였다.
콰콰콰쾃!
하지만 그들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위력이 아닌 듯보였다.
탱커, 박성진이 아닌 이상...
아니, 박성진이라도 온전히 막아낼 수 있을까 싶은 최악의 위기가 펼쳐져 있었다.
“크으!”
새카맣게 날아드는 가시들을 보며 천무현이 이를 악물었을 때였다.
파앗-
그의 조준경 안에 누군가 들어왔다.
거대한 폭풍의 날개를 활짝 펼친 채,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있는 소년.
“백...유현!”
기이이잉-
백유현이 들고 있는 막야에서 거대한 회오리가 일었다.
이것은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힘을 끌어낸 것이다.
콰콰콰콰쾃!
그 소용돌이가 하나, 하나 예리한 칼날이 되어 커졌을 때 백유현은 가시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번쩍-
그리고 허공을 수도 없이 베어내며 수많은 광채가 뿜어졌다.
일몰(日沒).
태양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극강의 검술이 펼쳐진 것이다.
유지혜의 버프와, 때 마침 발동된 염라의 권능, 단죄가 합쳐진 무시무시한 위력의 일몰이 감마 팀에게 날아들던 가시들을 집어 삼켰다.
그 광경을 감마 팀과 천무현, 주세광은 숨까지 멈추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백유현의 요격이 성공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바뀐다.
콰콰콰콰쾃!
“와아아아!”
일몰의 거대한 힘이 가시들을 집어 삼키고 저 높은 허공 끝으로 사라진 순간, 일행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일몰의 힘이 가시들을 모조리 분쇄해버렸던 것이었다.
일몰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공간에서 날아드는 가시들도 무수히 많았지만, 그것은 이미 상관이 없었다.
콰콰콰쾅!
그 순간 일행의 주변으로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수많은 가시들이 날아와 꽂히기 시작했다.
쿠쿠쿠쿵-
거대한 장창과도 같은 가시들이 바닥에 꽂히는 요란한 소리와 그 광경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했지만, 이미 일행을 둘러싸고 주세광과 유한재의 쉴드가 펼쳐져 있어 큰 타격은 없었다.
- 리퍼, 괜찮아?
천무현의 무전에 백유현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아직까지는요. 라이플, 뒤를 부탁합니다.
천무현이 굳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오케이. 맡겨 둬라. 한 방 제대로 맞았으니, 이쪽에서도 갚아줘야지.
파앙-
백유현이 다시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의 모습은 브리트라의 거대한 머리통 앞에서 다시 나타났다.
[조셉의 권능, 약점 포착이 발동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몇 개의 붉은 원이 떠 있었다.
그 중에서 단 하나.
브리트라의 아가리 속에 표시된 붉은 원은 유독 짙었고, 거대했다.
신화 속에서의 브리트라의 약점은 바로 입 안.
지금 현현(顯現)한 브리트라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었다.
‘넌, 죽었어.’
179.
또 한 번 브리트라는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백유현은 그에 개의치 않았다.
놈의 약점을 포착한 이상, 싸움은 해봐야 하는 법.
철컹-
그는 막야를 바로 잡았다.
- 리퍼, 공격 시작하겠습니다. 지원을 바랍니다.
지상에서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에피오네, 김수향은 상처를 회복할 시간을 벌었다.
“이 자식이, 감히 날 열 받게 했겠다...그 대가는 치러야지?”
스릉-
김수향 역시 두 자루의 단도를 꺼내들었다.
그녀 역시 보조 딜러.
특히 화가 난 상태에서의 그녀는 공격력이 강해졌다.
에피오네의 특성 덕분이었다.
- 소드 맨, 위치 확보. 리퍼, 마음껏 공격해라.
백유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 그럼.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