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전진
오더가 떨어졌다.
파앗-
알파 팀의 핵심 멤버가 움직였고, 라이플 천무현이 그들을 주시하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그 옆에서 주준호 역시 조준경에 한 눈을 갖다댄 채 미동이 없었다.
타앙!
그런데 어느 순간, 둘의 총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퍼펑!
그와 동시에 박성진 일행에게 덤벼들려던 블랙 피스트라 불리는 두 마리의 고릴라 형(形) 몬스터가 피를 뿌리며 날아가 처박혔다.
놈들의 이마에는 정확하게 구멍이 나 있었고,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 명중! 조심들 하시고요!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으니까. 그건 ‘왕’에게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하죠. 전방 300미터 앞, 보스 몬스터가 있어요.
- 오케이, 라이플. 잘 했어!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몰려들고 있음을.
“자, 다시 한 번 놀아볼까?”
박성진의 입가에 굵은 미소가 떠올랐다.
쿠오오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것이 전설로 불리는 탱커, 박성진의 힘!
콰아앙!
“와라!”
그는 방패를 그대로 내리꽂으며 거칠게 소리쳤다.
쿠쿠쿠쿠쿠!
그의 전신에서 폭발하듯 뿜어진 기운은 그대로 사방으로 뻗어나가 수많은 몬스터들을 도발했다.
“키아아아악!”
“캬아악!”
놈들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미친 듯 달려오기 시작했다.
박성진은 씩 웃으며 무전을 날렸다.
- 자, 잔챙이들은 내가 잡아둘 테니, 소드 맨, 리퍼...알지?
- 움직이고 있습니다.
- 저 역시.
역시 소드 맨, 김현성과 리퍼, 백유현은 박성진이 방패를 들어 올렸을 때부터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저 앞쪽에서 일렁이고 있는 거대한 실루엣이었다.
- 내가 왼쪽, 너는 오른쪽으로 가자.
- 네!
김현성의 차분한 어조에 백유현이 대답했다.
“와...역시 움직임이 다르네요!”
“그러게...탱커는 탱커대로...딜러는 딜러대로...완벽한 호흡이야. 매번 봐 왔어도 소름이 돋네.”
감마 팀의 조경준과 유지혜, 그리고 팀장 장호영이 혀를 내둘렀다.
그들이 보기에도 알파 팀이 보여준 지금의 움직임은 완벽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적절한 시기에 터져 나온 탱커, 박성진의 도발, 거기다 그 도발에 발맞춰 완벽한 타이밍에 짓쳐 나간 두 딜러의 움직임.
교과서도 이런 교과서가 없었다.
그리고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대한민국 전설이라 불리는 김현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 나가고 있는 저 소년이었다.
“아, 이제야 기억났다! 저 아이...어디서 봤다 했더니! 자이언트 스콜피온을 잡고 사라졌던 그 녀석 아닌가요?”
조경준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장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데 그 때도 대단했지만...지금 움직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얼마나 지났다고.”
“엥? 아, 그러고 보니! 백유현이라고 했었죠? 그 때 그 아이 이름도.”
유지혜 역시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 치우 팀의 알파 팀원이죠. 후후.”
그 때 옆에서 주세광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상당히 강력한 불멸자와 계약을 했나보죠? 그 동안 급성장한 걸 보니...”
주세광은 처음으로 시바를 봤을 때를 떠올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시바.
어떤 등급으로도 측정이 불가하다 하여 오메가 등급으로 분류된 파괴의 신.
“물론 그 말도 맞지만...”
그런 시바와 계약한 존재가 바로 백유현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녀석은...
주세광의 두 눈이 묘한 빛을 뿜어냈다.
“이미 그 전부터 녀석은 충분히 강했습니다. 그리고 말이죠. 더 놀라운 것은.”
주세광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도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저 녀석, 도저히 어디가 끝인지를 모르겠어요. 부럽고도 무서운 자식 같으니.”
그 말에 옆에서 천무현도 한 마디 더했다.
“그건 저도 동의. 그래서 지금도 기대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최악일 정도로 위험한 이런 상황에서도. 후후.”
둘의 말만 들어봐도, 백유현에 대한 알파 팀원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감마 팀원들은 놀란 표정을 거두지 못하며 백유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전설이라 불리는 김현성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한 채.
파파팟!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백유현은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촤앗!
라이플이 미처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번뜩이는 막야의 칼날은 그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베어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 소드 맨, 2시 방향. ‘킹’이 있습니다.
- 오케이, 접수.
둘은 빠르게 움직였다.
꽈르릉-
쏴아아아-
갑자기 비가 미친 듯 쏟아지고, 사방이 어두웠지만 백유현의 뛰어난 안력은 이미 그 속을 꿰뚫고 있었다.
“문광.”
“차사, 문광!”
“그쪽은 별일 없지?”
심언(心言)으로 오가는 대화.
베이스 캠프에서 감마 팀원들과 주세광, 천무현을 보호하고 있는 문광은 바로 답을 해왔다.
“접근하는 몇몇 망자들이 있어 소멸시켰사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심려치 않으셔도 될 것 같사옵니다.”
강효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명부로 돌아간 지금, 문광의 역할은 매우 큰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몫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좋아, 그쪽은 맡겨둔다.”
“성심을 다하겠나이다!”
파앗-
문광과의 대화를 끝낸 백유현이 더욱 빠르게 눈앞의 실루엣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쿠워어어어!”
그의 접근을 눈치 챘는지, 거대한 실루엣이 이쪽을 바라보며 포효를 내질렀다.
놈의 두 눈은 시뻘건 혈광으로 가득했고, 강렬한 적의(敵意)가 느껴지고 있었다.
괜히 악마의 도시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본래대로라면 C-2 구역에 있어야 할 제노사이드 피스트(genocide fist)로 보인다. 놈의 주공격 스타일은 양 주먹을 이용한 가격. 높은 빈도수로 바위를 집어던지기도 하니 충분히 주의할 것!
지금 뒤쪽에서 블랙 피스트들을 도발해서 막아내고 있는 박성진을 대신해, 주세광이 보스 몬스터의 정보를 분석해 무전으로 알려왔다.
아주 단순한 정보였지만, 이 정도 정보만 해도 충분했다.
백유현과 김현성은 빠르게 움직여 거대한 실루엣과 마주했다.
대략 아파트 5층만한 고릴라 형(形) 몬스터가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앞에 선 두 사람은 검을 고쳐 쥐었다.
싸움에 임하기 전, 검사들이 보이는 독특한 버릇.
- 리퍼, 내기할까?
그 때 다이렉트 콜로 무전이 들어왔다.
김현성이었다.
그 말에 백유현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 내기 좋죠.
- 조건은 단순하게. 누가 저 놈의 숨통을 끊는지.
- 좋습니다.
마지막 일격을 누가 가하는지에 대한 내기다.
백유현도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그럼...
김현성의 살짝 검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 시작.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둘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파앗-
한 사람은 왼쪽으로, 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쐐애애애앳!
앞을 향해 짓쳐들던 백유현의 눈앞이 순간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거대한 주먹이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파각!
백유현은 급히 방향을 틀었다.
콰콰쾅!
순간 그의 몸을 스치며 제노사이드 피스트의 주먹이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반경 수십 미터의 땅이 움푹 꺼졌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터터턱!
그리고 주먹에 ‘스친’ 백유현 또한 뒤로 튕겨나 겨우 자세를 잡고 버텼을 정도로 그 힘은 대단했다.
백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괜히 제노사이드(절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었다.
그 순간, 제노사이드 피스트를 향해 하나의 그림자가 빠르게 쇄도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파각!
“크워어억!”
그리고 그 그림자는 무리하지 않고, 제노사이드 피스트의 오른 쪽 발목의 아킬레스건을 베고 지나갔다.
물론 단박에 힘줄이 끊어지진 않았지만, 제노사이드는 상당한 고통을 느꼈는지 크게 몸을 일으키며 몸부림을 쳤다.
백유현은 그 광경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들린 막야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질 수 없지.’
선공(先攻)을 성공시킨 것은 김현성이다.
하지만 제노사이드의 숨통을 끊는 것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파각-
그는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김현성이 상대의 약점을 조금씩 공략하며 무너뜨리는 스타일이라면, 백유현은 아예 약점을 만들어 부숴버리는 스타일이다.
콰콰콰쾃!
그의 등 뒤에서 요란한 폭풍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는 어느새 허공 높이 솟구쳤다.
상류를 공략할 때와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제노사이드가 마지막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을 끌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콰콰콰콰쾃!
허공 높이 치솟아 오른 백유현은 점처럼 작아진 목표물을 노려보았다.
단 한 방,
이것으로 놈의 숨통을 끊는다!
‘준비는 됐다.’
이미 상류와의 싸움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힘을 견딜 수 있는지 파악했다.
지금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정도다.
그렇다면...
콰아앗!
생각을 마친 백유현은 주저 없이 검을 아래로 하고 낙하했다.
쐐애애애앳-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무시무시했지만, 백유현은 그마저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콰콰콰쾃!
“어엇!”
“저, 저게 가능해?”
그가 갑자기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내리꽂히는 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저 녀석 괜찮으려나? 저번에도 저러다가...”
특히 천무현은 상류 때의 백유현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충돌한다!”
사람들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쾃!
허공 높은 곳에서부터 떨어져 내린 백유현이 막야와 하나가 되어 제노사이트 피스트와 충돌하기 바로 직전.
“크워어어억!”
제노사이드도 위험을 감지했는지 크게 포효하며 백유현에게 주먹을 내리꽂았다.
쐐애애앳-
콰콰콰쾃!
주먹이 빠른지, 검이 빠른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
번쩍-
그 순간, 허공을 찢어발기는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거대한 태양을 쪼개버리는 듯, 강렬하게 뿜어져 나온 시커먼 섬광(閃光).
그리고 그 섬광을 덮쳐 든 거대한 주먹.
쿠쿠쿠쿠-
주변에 자욱한 먼지 구름이 일어나 그 뒤 상황이 보이질 않았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백유현...”
사람들은 걱정이 섞인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간 투시경을 통해 보이는 광경은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했다.
검이 제노사이드를 가르고 지나갔을지, 아니면 주먹이 백유현을 박살을 냈을지...
- 여기는 소드 맨.
그 때 무전 하나가 날아들었다.
백유현의 것이 아닌, 소드 맨 김현성의 것이었다.
왜일까?
사람들은 와락 불길함이 엄습하는 것을 느끼며 무전에 집중했다.
다시 무전이 이어졌다.
- 제노사이드가...
꿀꺽-
마른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제노사이드가 쓰러졌다. 반복한다. 제노사이드가 쓰러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전에 무전이 이어 날아왔다.
- 리퍼는 무사하다.
“헉! 이게 진짜로 됐다고?”
“와...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김현성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백유현은 간단하게 해치웠다.
그것도 아무도 보여주지 못했던 방법으로.
그 때 새로운 무전이 날아들었다.
- 리퍼, 제노사이드를 쓰러뜨렸습니다. 계속 전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