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코드 레드
콰아앗-
콰직-
검은 광채가 허공을 찢는다.
키이이잉-
막야의 귀신 울음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음산하고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키에에엑!”
“케엑!”
이곳은 잔혹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악마의 도시, K-666 터미널.
백유현은 수도 없이 몰려드는 독사(毒蛇)들을 대가리를 잘라내고, 또 잘라냈다.
독사라고 해서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니었다.
놈들의 크기는 작은 아기를 친친 감아 한 입에 삼켜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컸고, 그런 독사가 수천, 수만마리가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소드 맨 김현성과 리퍼, 백유현의 칼날 아래 놈들은 조금도 그들의 근처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타앙-
쐐애애애앳!
콰콰콰쾅!
그리고 뒤에서 연신 날아드는 가공할 파괴력의 클러스터 밤은 독사들을 순식간에 녹여 버리기에 충분했다.
타앙-
그런데 그 뒤를 따라 한 발의 총성이 더 들려왔다.
쿠쿠쿵!
방금 전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의 폭발이 독사들 사이에서 일어났지만, 그것도 꽤나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 감마 팀, 머스킷, 참전합니다.
감마 팀과의 공통 무전 채널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다.
감마 팀에서도 원거리 딜러가 있었다.
레벨 100의 주준호.
그 역시 국가대표 사격 선수 출신으로, 저격 실력은 정평이 나 있었다.
그가 합세하자, 싸움이 더욱 수월해졌다.
“좋아, 징표를 따라 어서 전진한다! 서둘러!”
박성진의 말에 알파 팀은 계속 해서 움직였다.
사신(蛇神), 브리트라답게 독사들은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게다가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겨났다.
“크워어어!”
몬스터들이 갑자기 출몰한 것이었다.
‘이런! 자극을 받았어!’
놈들의 눈동자들이 죄다 뒤집혀 있는 것으로 봐서는, 불멸자 브리트라의 정신 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브리트라는 자신의 권속들과 몬스터들을 이용하여 알파 팀의 접근을 막는 한편, 계속해서 성장하려는 것이었다.
놈의 완전한 성장이 이뤄지면, 이곳은 폭파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대악신 브리트라가 현세에 현현(顯現)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부산 전체가 놈의 영향권에 들어가겠지.
그 거대한 아가리에서 벗어날 존재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운이 좋아 놈이 일본으로 방향을 틀면 좋겠지만, 태풍도 아니고 그럴 리는 없다.
대악신이 된 브리트라가 현현하면 그야말로 세계는 종말 위기에 놓일 수도 있었다.
그냥 악신과 대악신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니까.
그래서 막아야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놈의 부활로 큰 위기에 처할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 라이플, 머스킷! 일단 원거리에서 놈들을 견제해! 우리는 바로 치고 들어간다!
- 라져 댓!
- 카피!
둘의 대답이 동시에 들렸다.
타앙-
탕-
콰콰콰쾅!
“키에에엑!”
안으로 파고들고 있는 알파 팀을 향해 달려들던 몬스터들 몸뚱이 위에 강력한 폭발이 일었다. 놈들은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몸부림를 쳤지만, 그들에게는 구원은 없었다.
불에 타서 녹아들어가고, 파편에 관통되어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가는 몬스터들이 부지기수였다.
독사들도 마찬가지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에 녹아들고, 소드 맨과 리퍼의 칼날에 모가지가 뎅겅 날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그 사이, 알파 팀은 징표를 따라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예전의 지도는 이제 완전히 쓸모가 없어진 줄 알았는데, 다행히 커다란 구조물이나 산 같은 것은 그나마 예전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박성진은 그를 통해 대충 위치를 파악해냈다.
‘A119 지역! 조금만 더 가면 A-1 강이 나온다!’
대규모 지형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래도 A-1, 즉 알란 강으로 명명된 드넓은 강까지 모습을 바꾸진 않았을 것이다.
강을 건너면 단단한 바위로 된 산맥이 이어져 있다.
지진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고 단단한 곳인지라, 그곳까지만 가면 그래도 방향을 잡을 수는 있을듯했다.
아직 길은 찾을 수 있다.
“가자. 목표는 A-1 리버다.”
A-1 강까지는 대략 10킬로미터 남았다.
각성자들에게는 10킬로미터는 금방이었다.
“잠시만요.”
그 때, 백유현이 박성진을 멈춰 세웠다.
“응? 무슨 일이야?”
“지형...살피시던 것 맞죠?”
“그래. A-1 리버를 기점으로 다시 방향을 잡아 보려고.”
“스파이 캠 켜겠습니다. 영상 동시 전송 모드 활성화 시키고 정찰 다녀오겠습니다.”
“정찰?”
- 왜 멈춰 있어요?
그 때 천무현의 무전이 들려왔다.
- 리퍼가 정찰을 다녀오겠다는데?
박성진의 대답에 천무현이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그의 음성이 다시금 이어졌다.
- 믿어보세요. 그 녀석.
천무현까지 그런 말을 하니 박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백유현이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천무현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시간은 3분. 그 동안 영상 전송하겠습니다.”
그리고 백유현은 조셉을 불러냈다.
“이 부근, 위험 요소 다 체크해줘. 조셉.”
“크크, 안 그래도 준비 중이었다고요. 자, 대가는 아시죠?”
조셉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소울 스톤을 말함이었다.
“그래. 당연히.”
심언(心言)으로 이뤄지는 말이라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가 없었다.
웬만하면 조셉에게 길을 찍어달라고 하고 싶은데, 그것은 조셉에게 상당한 무리가 가는 일.
안 그래도 ‘약점 포착’ 같은 권능을 빌려 쓰고 있는데 길잡이까지 맡길 수는 없었다.
그가 필요한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일 때 그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일단 조셉에게 말하고 나서 그는 폭풍 날개를 활짝 펼쳤다.
콰콰콰콰쾃!
“어엇!”
“와...!”
- 와씨, 뭐야, 그거!
그의 등 뒤에서 어마어마한 회오리가 일어나며, 거대한 폭풍 날개가 활짝 펴지자 사람들이 모조리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현성도, 김수향도, 박성진도...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던 주세광도, 감마 팀도 경악한 표정이 된 것이다.
천무현만이 씩 웃어 보였다.
“크크, 아직 놀라긴 일러. 저 녀석, 진짜 엄청나다고.”
콰앙!
그 순간, 백유현이 있던 자리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허공 높이 치솟았다.
콰콰콰쾃!
순간적으로 점이 되어 사라진 그를 보며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런 무시무시한 비행 능력이라니!
허공에 떠오른 백유현은 모든 광경을 스파이 캠을 통해 전송했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지만, 백유현에게는 오히려 대낮보다 훨씬 잘 보였다.
수만 군데서 번쩍이는 귀광(鬼光).
수만 귀신들이 발하는 그 귀광을 보니, 대충 지형이 어떤지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보통 인간 신체 능력을 완전히 초월한 그의 안력(眼力)은 조그만 불빛을 가지고도 지형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문광.”
“하명하시옵소서.”
백유현은 허공에 떠서 문광을 불렀다.
문광이 대답하는 소리가 마음을 통해 들려왔다.
“북동쪽, 망자 무리가 대거 접근 중이다. 사람들 안 다치게 조치해.”
“명을 받잡나이다!”
백유현이 일행에 섞여 있지 않는 이상, 귀신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전무.
그러니 일단 백유현은 선제 조치를 한 것이다.
- 코드 원. A-1 리버 쪽으로 이동합니다.
- 좋아, 영상은 적외선 모드로 잘 들어오고 있다. 샅샅이 훑도록!
- 예.
말을 마친 백유현은 그대로 A-1 리버 쪽으로 날았다.
수많은 장면이 그의 가슴 쪽에 달린 스파이 캠을 통해 팀원들에게 전송이 되었다.
그리고...
- 이런! A-1 리버...이건 더 이상 강이라고 부를 수 없겠는데?
그 거대했던 강에 흐르던 물이 죄다 어디론가 빠져버렸는지 말라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온갖 수중 몬스터들이 펄떡이고 있었다.
숨을 쉬지 못하니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백유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곳에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 코드 원. A-1 리버 쪽에 망자들 다수 발견. 죽어가는 몬스터들에 빙의 중입니다. 그쪽으로 갔다간...
그의 말이 차갑게 이어졌다.
- 전멸입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정확해야 했다.
특히 척후(斥候)의 역할은 더더욱 그랬다.
- 으음!
박성진의 침음이 들렸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던 백유현이 다시 말했다.
- 코드 원. 북서쪽 방향, 길이 있습니다.
- 북서쪽? A-1 리버에서?
- 예. 아, 그런데...그곳에는...
- 뭐가 있어?
백유현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을 발했다.
- 레벨 157의 보스 몬스터와 평균 130레벨 대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립니다. 놈들 뒤로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쪽을 공략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박성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라이플, 바짝 당겨서 지원 준비해. 머스킷, 사격 거리 가능한가?
- 라이플, 라져!
- 머스킷! 초정밀 조준경과 장거리 사격용 파츠(Parts)를 준비해왔습니다. 즉시 결합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박성진이 바로 오더를 내렸다.
- 좋아, 쾌속 돌진한다. 리퍼, 그쪽에서 합류해라.
- 예!
지상에서 일행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문광과 차사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아, 망자들이 그들을 덮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있는 몬스터들이야 어렵지 않게 처리가 가능한 종류들 뿐이었다.
턱-
시간이 흘러, 백유현은 일행과 합류했다.
“영상 잘 봤다. 이 앞이군.”
“예, 팀장님.”
“형태는 고릴라 형(形). 하지만 크기가 훨씬 크고 더 못 생겼군. 놈 옆에 있는 놈들 또한 고릴라 형태의 몬스터들이다. 다들 알지? 이렇게 생긴 놈들이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거.”
고릴라 형태의 몬스터들은 특이하게도 그 종의 특성을 상당 부분 많이 따라간다.
영악하고, 비열하며 강하면서 빠르다.
예전 제천대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웠다.
그리고 이 앞에도 157 레벨의 보스 몬스터와 놈을 따르는 130레벨 대의 몬스터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싸움이 힘들지도 모르겠군. 그럼 수향이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부탁한다. 수향아.”
김수향이 싱긋 웃었다.
“이 에피오네의 힘이 필요하다는 거야? 후후. 맡겨 둬요.”
그 순간 김수향의 전신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치료의 여신, 에피오네의 권능이 발현된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빛들은 갑자기 둥글게 뭉치기 시작하더니,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작은 구체들이 생겨난 것이었다.
박성진이 그것을 보며 씩 웃었다.
“이거 오랜 만이네. 구름 과자.”
그 말에 김수향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죠? 구름 과자라니! 신성한 에피오네의 힐 클라우드를.”
“어쨌든! 마음 든든한데? 자, 가보자. 여길 뚫어야 승산이 있어.”
박성진은 김현성과 백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특히, 두 사람. 부탁한다.”
김현성이 고개를 끄덕였고, 백유현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예, 팀장님.”
“그럼 가볼까?”
박성진은 방패를 챙겨들고 무전을 날렸다.
- 코드 원이다. 코드 레드를 발령한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마라. 여길 뚫지 못하면 우린...
그의 두 눈이 가라앉았다.
- 절대 승산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