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K-666
“그럼 큰일인데? 악신의 부활이라면...”
박성진의 심각한 말에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저희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그래, 그러는 것이 좋겠다. 네 말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박성진은 옆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팀원들이 다 모이면 K-666으로 들어간다. 일단 팀원들이 오는 동안 장관께 연락을 드려야겠군. 아무래도 정부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할 테니 말이야. 둘은 주변을 경계하도록 해. 특히 유현이의 눈이 필요할 거야. 여기서도 악신이 나타난 것을 보면, 다른 곳도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해산.”
박성진, 천무현과 헤어진 백유현은 강효의 상태를 살폈다.
“강효, 괜찮아?”
강효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까지는...버틸 만 하옵니다. 소주.”
“상처...가 깊어. 강효.”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옵소서.”
“어느 정도나 지나야 하는 거야?”
“대략 한 달이면...”
백유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길어. 방법이 없어? 문광?”
“그것이...한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때 강효가 문광을 툭 쳤다.
그를 바라보는 강효의 눈길이 매서웠다.
“괜찮아. 말해 봐.”
백유현의 말에 문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옥의 인면초(人面草)를 먹이면 차사들의 상처 회복에 크게 효험을 보옵니다.”
“그건 어떻게 구하는 거지?”
“소주...저는 괜찮사옵니다.”
강효가 백유현을 만류했지만, 백유현은 문광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문광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인면초는 각 지옥의 깊숙한 곳에서만 자라나는 꽃이옵니다. 허나 그 곳에 가려면...”
“무간에도 있다는 거지?”
“예...소주.”
백유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어.”
“소주...인면초가 서식하는 곳은 무간에서도...”
차사, 강효가 또 한 번 백유현을 만류했지만 백유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더 이상 말하지 마.”
그리고 그는 종속된 차사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망자들의 기척을 추적하도록 해. 문광, 명부의 차사들에게도 협조를 구하고.”
“명을 받잡나이다.”
차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좋아. 강효. 너는 일단 명부로 돌아가 있어. 아무래도 그곳이 회복하는 데는 더 낫겠지?”
“소주...소인은...”
“명령이야. 강효. 가서 회복해.”
강효의 마음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백유현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명령이라는 말에 강효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곧 그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명을...받잡나이다. 소주.”
파앗-
그리고 그는 귀문을 열고 사라졌다.
백유현은 그 장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조금만 기다려. 강효. 내가 낫게 해줄게.’
무간이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전에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때, 팀원들의 무전이 들려왔다.
- 응답 하라. 여기는 쉴더. 다들 어디에 있습니까?
- 여기는 에피오네. 도착했어.
- 코드 원, 기다리고 있었다. 소드 맨은?
- 도착했습니다. 코드 원.
- 좋아, K-666 앞으로 집결한다. 바로 치고 들어가자.
박성진의 무전에 빠르게 대답이 돌아왔다.
- 라져.
- 접수.
백유현도 대답을 하고는 움직였다.
일단 망자들의 준동도 문제이긴 했지만, 벌써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팀-엑스 대회 또한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바로 K-666 터미널 앞에 집결했다.
“유현이, 금정산 싹 정리했다면서?”
“그렇게 됐어요.”
백유현이 멋쩍게 웃었다.
“하여튼 멋지단 말이야. 그런데 그 놈, 불멸자였다며? 너 대단하다.”
“그러게, 우리 막내 힘들었겠네. 후후.”
김수향도 백유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에 대한 브리핑은 조금 있다 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은 움직여 볼까? K-666 터미널, 절대 만만치 않다는 건 알고 있지? 특히 이번 경우에는 감마 팀까지 같이 하기 때문에 신경들 잘 써야 할 거다.”
“걱정 마십시오. 대장.”
“저 역시 준비 끝입니다.”
팀원들은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박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도시라 불리는 K-666이다.
그리고 저 멀리, 먼저 도착해서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감마 팀이 보였다.
그들의 레벨대는 약 100레벨에서 120레벨 사이.
하지만 알파 팀에 비해서는 실력 차이가 확실히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경험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니까.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박성진 팀장님.”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사내 하나가 나와서 손을 내밀었다.
그는 120레벨의 탱커, 유한재였다.
그 역시 대한민국에서는 내로라하는 각성자 중 하나였지만, 치우 팀 내에서는 겨우 감마 팀의 팀장밖에 하지 못할 정도로 치우에 속한 각성자들은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박성진도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뭘요, 사실 조금 긴장은 하고 있었습니다. 악마의 도시라니...말만 들어도 등줄기가 서늘하지 뭡니까?”
그가 엄살을 떠는 것이 아니다.
K-666 터미널은 그만큼 악명이 높았으니까.
각성자 레벨 대응 148레벨에 랭크된 터미널이다 보니, 최고 레벨이 120인 감마 팀에서는 절대 도전이 불가능한 터미널이었다.
“자, 인사들 하지. 다들 알겠지만.”
“반갑습니다. 감마 팀 장호영입니다.”
“감마 팀 주준호입니다.”
“감마 팀 유지혜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감마 팀 조경준입니다.”
다섯 명의 팀원.
이제부터 알파 팀이 품고 가야 될 각성자들이었다.
“그럼 들어가기 전에 규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성진은 그들을 보며 주의해야 할 사항을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는 감마 팀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그리고 박성진의 말이 끝나자, 그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하나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의 앞과 뒤에는 저희 알파 팀이 있다는 것을요.”
“알겠습니다.”
“자, 그럼 출발할까요? 현재 시각 08시 59분. 치우의 알파 팀, 감마 팀 합동 훈련을 시작합니다. 장소는 K-666 터미널, 일명 악마의 도시.”
박성진은 짧게 브리핑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이동합시다.”
K-666 터미널은 해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특별하게 제공하는 잠수정을 타고 들어가야 했다.
그것부터가 다른 터미널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악명을 가지게 된 이유였다.
잠수정에 나눠 탄 팀원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바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그들의 눈에 저만치 앞에서 거무스름하게 일렁거리는 기분 나쁜 균열의 입구가 보였다.
- 긴장하세요. 악마의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후우...”
감마 팀이 탄 잠수정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들은 곧 내려야 했다.
도전에는 늘 용기가 필요한 법.
이미 바다 속에 내린 알파 팀의 인도에 따라 그들도 잠수정에서 내렸다.
파앗-
그리고 그들은 균열로 향했다.
그런데 그들 뒤를 따르던 백유현은 어느 순간부터 눈살을 와락 찌푸리고 있었다.
“키이이-”
균열을 중심으로 모여든 수많은 물귀신들이 보였던 것이었다.
마치 해초와 같은 긴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귀신들.
차사들이 팀원들을 호위하고 있어서 망정이었지, 아니었다면 바로 달려들었을 것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많은 귀신들이 균열 입구에 모여 있는 것은 절대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 코드 원. 리퍼입니다.
- 코드 원, 응답. 리퍼, 말하라.
- 느낌이 좋지 않으니 최대한 주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주변은...
백유현은 눈살을 찌푸린 채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새 물귀신들이 더욱 많이 몰려와 있었다.
썩은 두 눈알을 뒤룩거리며 일행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끔찍했고 또한 역겨웠다.
- 물귀신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 후우, 코드 원. 알아 들었다. 일단 균열로 들어간다. 그 후 생각하자.
- 예.
짧은 무전이 끝나고, 그들은 K-666의 균열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균열을 향해 몸을 던졌다.
파앗-
스쿠버 다이빙 복장을 한 그들을 맞아 주는 것은 쥐 죽는 듯 고요한, 그러면서도 매우 음산한 폐허의 도시였다.
거대한 도시이자, 무덤과도 같은 곳.
“와우, 분위기 죽이네.”
주세광이 스쿠버 다이빙복을 벗으며 말했다.
“후, 저번에 왔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더 음산해진 것 같네요.”
천무현 또한 눈살을 찌푸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터미널 안쪽에 감도는 음산함은 정말이지 소름이 절로 끼치는 것이었다.
“알파 팀, 약속된 대로 감마 팀을 호위한다. 이제부터는 실전처럼 훈련을 진행할 것이니 다들 각오 단단히 하고.”
“라져!”
알파 팀은 재빠르게 포지션을 잡았다.
쉴더인 주세광이 앞으로 가고, 코드 원 박성진이 대열의 중간에 꼈다.
그리고 힐러이자 보조 딜러인 에피오네 또한 대열 속에 합류를 했고, 천무현과 소드 맨 김현성은 뒤쪽에, 백유현은 앞쪽에 배치가 되었다.
백유현이 앞쪽에 배치가 된 것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이었다.
- 리퍼, 부근에 뭐가 보이나?
그 때, 박성진의 다이렉트 콜이 들어왔다.
아까 백유현이 말했던 것이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백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보이진 않았다.
바깥쪽에는 이상할 정도로 물귀신들이 몰려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쪽은 오히려 평온한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은 백유현이 잘 알고 있었다.
- 아직입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차사들을 보내두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요.
- 좋아, 우리는 불가능한 탐색이야. 네가 잘 해줘야 한다.
- 예, 알겠습니다.
박성진은 다시 전체 무전을 날렸다.
- 조심히 이동한다. 이동 구역은 A-110 방향. 레벨대가 낮은 몬스터가 서식하니, 그 쪽부터 둘러서 가자. 라이플, 경계 모드. 쉴더 역시 마찬가지. 감마 팀은 절대 개별 행동하지 말고 따르도록.
- 라져.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그들은 천천히 움직여 A-110 지역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르릉-
그 때였다.
매우 약하긴 했지만, 아주 분명한 진동이 느껴졌다.
- 음? 쇼크인가? 이런...
- 모두 대비해. 쇼크든, 더블 카오스든...엇? 저건 뭐야?
박성진이 오더를 내리다 말고 놀란 외침을 터뜨렸다.
저 쪽, 그러니까 검게 물든 하늘 저 편에 엄청나게 거대한 뭔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었다.
‘저건...!’
백유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터미널이 갑자기 크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크윽!”
“대열 이탈하지 마! 감마 팀 보호하고!”
“대열 지켜!”
지표면이 완전히 뒤집힐 정도로 강력한 충격파가 터미널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쇼크인가!”
박성진이 부릅뜬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한 번 크게 뒤흔들린 이후로 주변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그런데 그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콰콰콰콰쾅!
주변이 포탄이라도 떨어지는 듯 미친 듯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땅이 뒤집히고, 산이 무너졌으며, 바위가 쪼개지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구겨지고 박살이 났다.
“크으윽!”
“으악!”
초입 부분에 있던 일행들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고 뒹굴 정도였다.
콰콰콰콰쾃!
그리고 엄청나게 강력한 지진파가 또 한 번 주변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
콰쾅-
그와 동시에, 일행이 들어왔던 균열의 차원문이 뭔가에 거칠게 충돌한 것처럼 한 순간 크게 출렁이더니, 금세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엇! 안 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했다.
균열의 출입문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박성진이 달려가는 순간, 그의 눈앞에서 거대한 기둥이 솟구쳤다.
콰쾅!
“크윽!”
“팀장님!”
그 거대한 기둥은 마치 산과 같은 위용을 뿜어내며 균열의 출입문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문이 막혔어!”
문이 막히면 돌아갈 수가 없다.
알파 팀이건, 감마 팀이건 인상이 완전히 구겨졌다.
그것은 백유현도 마찬가지였다.
터미널을 미친 듯 뒤흔들던 지진파는 멈췄지만, 입구가 막혔고 모든 것이 변했다.
더 이상 그들이 탐색해서 지도를 그려두었던 K-666 터미널이 아닌 것이다.
이곳은 완전히 새로운 터미널, 새로운 악마의 도시였다.
[남은 시간 07:59:55]
[시간이 경과되면, 균열은 폭발합니다]
그리고 모두의 눈에 똑같은 창이 떴다.
“하...빌어먹을!”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알파 팀, 감마 팀, 정렬!”
그 순간 박성진이 외침을 내질러 팀원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당황해선 아무것도 안 됩니다. 일단 방법을 찾아봅시다. 아시겠습니까?”
역시 백전노장의 일갈은 제대로 먹혔다.
“예, 팀장님!”
그런데 박성진은 백유현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백유현은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백유현, 뭐야?”
“팀장님...”
“무슨 일이야?”
백유현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이곳에...악신이 하나 더 있었어요. 놈의 이름은...”
백유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덟 카르마의 혼종, 브리트라...”
그는 하늘 저편을 바라보았다.
“세상을 멸망시킬 거대한 뱀이라고도 불리는 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