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천리통
세 개의 화살표는 곧 멈추었다.
그리고 그 앞, 하나의 괴망령이 있었다.
아니, 괴망령이라고 부르기에는 강력한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는 존재.
[무명(無名)을 발견했습니다]
[불멸자, 염라의 포고 완료 대상]
[망자, 무명 : 망자였던 그가 불멸자가 되었다. 불멸자로서의 이름은...]
그런데 뒤를 이어 뜬 안내 창을 보며 백유현은 눈살을 와락 구겼다.
불멸자가 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불멸자의 이름이 뜻밖이었다.
‘상류(相柳)!“
[상류 : 중국, 요나라 시절에 나타났던 거대한 뱀. 아홉 개의 사람 머리가 달려 있으며, 놈이 지나간 곳은 독기(毒氣)로 인해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알려졌다.]
상류.
이른 바 악신(惡神)이다.
사실 이제까지 인간들과 계약을 한 불멸자들은 죄다 선(善) 아니면, 중립(中立)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시바는 파괴의 신으로 알려져 있긴 했지만, 본래 그의 성격을 따져보면 선(善)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망자, 무명이 다른 망자들을 잡아먹고 탈태(脫態)한 모습은 바로 악신으로 알려졌던 존재.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컸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망유계의 망자들이 이쪽으로 와서 불멸자가 된다면, 고대의 악신으로 변모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컸으니까.
그 순간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특별 포고- 조건 변경]
[염라 : 고대의 악신, 상류를 소멸시켜라]
[임무 완료 조건 : 고대의 악신, 상류의 소멸.]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10 포인트, 염라와의 친밀도 80, 망자의 완갑, 검은 그림자 장포]
[염라가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세 시간입니다]
[임무 정보 : 망자, 무명이 이미 불멸자가 되었다. 놈이 더욱 강해지기 전에, 놈을 소멸시켜라.]
염라의 임무 내용이 변경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보상 내용이 더욱 좋아졌다.
단, 임무 완수 시간이 확 줄어든 것 또한 눈에 띄었다.
어쨌든 만난 이상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츠르르-
그 순간, 상류로 변한 무명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끔찍하게도 사람의 모습을 한 아홉 개의 머리가 동시에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를 낸 것이다.
‘징그럽게.’
백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는 막야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놈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꼿꼿하게 세운 놈의 몸뚱이는 대략 아파트 5층 높이 정도 되어 보였고, 따라서 그 위압감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 일반적인 각성자들이었을 경우였다.
백유현은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 존재.
우우웅-
막야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놈은 불멸자.
즉, 고대의 악신 중 하나였다.
아직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예전의 힘을 다 되찾진 못한 듯했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강효, 문광!”
“하명하시옵소서!”
“사냥을 시작하자!”
백유현의 짤막한 말에 두 차사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존명!”
파앗-
그리고 둘은 양쪽으로 갈라졌다.
펄럭-
그 뒤를 따라 수십 위(位)의 차사들이 따라서 움직였다.
이것은 망자를 사냥하는 싸움이 아니다.
무려 신을 사냥하는 싸움.
그 신의 힘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다고는 하나, 신과 차사, 신과 인간의 힘은 애초부터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힘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바로 ‘각성자’.
164.
조셉의 네임 태그로 떠오른 상류의 레벨이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더욱 오를 것이다.
그 전에 결판을 내야 했다.
파앗-
백유현의 몸이 가볍게 바닥을 찼다.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신 대 인간, 그리고 인간을 따르는 차사들의 싸움.
파아앙-
백유현의 등 뒤에서 폭풍 날개가 미친 듯 휘돌았다.
그 순간, 백유현은 공간을 격해 상류에게 바로 접근해 들어갔다.
놈의 아홉 개의 머리 중 하나가 끔찍한 표정을 짓더니 괴성을 내질렀다.
“끼에에엑!”
순간, 다른 머리통에 달린 눈알들이 동시에 백유현을 향했다.
피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 모습은 매우 끔찍한 것이었고,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광경은 이미 무간 지옥에서 수도 없이 봐왔던 것이다.
백유현은 침착하게 막야의 손잡이를 꽉 틀어잡고 놈의 약점을 훑었다.
놈의 약점은 저 머리통 하나, 하나가 아니었다.
그가 간파한 약점은 단 하나.
“강효!”
그 외침에 따라, 강효와 문광, 그리고 차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상류를 공격해 들어갔다. 바로 놈의 시선을 완전히 분산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의 공격은 필사의 공력이 담긴 공격.
즉, 허(虛)는 허이되, 순간적으로 실(實)이 될 수 있는 공격이라는 뜻이었다.
아무리 상류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공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놈의 머리통이 일제히 다른 방향을 바라보더니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콰아아앗!
순간 아홉 개의 아가리에서 진득한 독액이 쏟아져 내렸다.
파드득!
그 독액은 모든 것을 녹여 버린다는 무서운 독성을 지닌 점액질.
차사들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파앗-
그런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백유현이 허공에서 내리꽂혔다.
순간적인 접근에 상류의 머리통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미 백유현은 눈앞까지 다가온 상태.
번쩍-
그리고 한 줄기 검광이 그어졌다.
“키아아악!”
‘이런, 얕았다!’
아홉 개의 머리통들의 뿌리가 합쳐진 한 곳.
그 한 곳을 향해 백유현은 검을 그은 것이었다.
푸하악!
파스스스!
시퍼런 독액이 뿜어지며 지상의 모든 것을 녹여냈다.
차사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독액의 비를 피해내기에 분주했다.
독액을 뒤집어쓴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지상에서는 아무것도 남아나질 않았다.
고대의 악신, 상류의 악명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독액은 모든 것을 쓸어버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놈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백유현이 내지른 검이 상류의 두꺼운 가죽을 뚫어내지 못한 것이었다.
막야의 무시무시한 절삭력과, 칼날 바람까지 덧씌워진 것을 생각하면 상류의 방어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었다.
“키야아악!”
그 공격은 오히려 상류를 더욱 흥분케 만들었다.
상류의 아홉 개의 머리통은 아가리를 떡 벌리며 백유현을 향해 짓쳐들었다.
콰앙-
“크윽!”
콰당탕!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허공에 떠 있던 백유현은 공격을 피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공격에 휩쓸려 땅바닥에 처박혔다.
“으윽!”
“소주!”
막야를 들어 막아냈음에도 놈의 공격은 무시무시했다.
백유현이 고통 가운데 눈을 들어 보니, 놈의 머리위에 쓰여 있는 숫자가 바뀌어 있었다.
172.
놈의 레벨이 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으로서의 각성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뜻.
그리고 그 속도는 가히 무서울 정도였다.
방금 전만 해도 164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172가 되었다.
이래서야 놈을 잡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건 진정한 타임 어택.
놈이 더 성장하기 전에 잡아내야 한다.
‘모든 힘을 다해...잡아주겠어!’
“키에에엑!”
그런데 아홉 개의 머리통이 다시 아가리를 떡 벌리며 백유현에게 짓쳐 들었다.
그 속도는 번개가 번쩍- 하는 것이 떠오를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그 때였다.
쐐애애애애앳-
콰앙-
“키에엑!”
뭔가 저쪽 편에서 날아들더니, 백유현을 향해 달려들던 상류가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었다.
그 순간 무전이 들어왔다.
- 어이, 리퍼!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
라이플, 천무현이었다.
백유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브라만을 타고 이십 분 만에 여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뒤로 시간이 흘렀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왜 천무현이 이곳에 있는 것일까?
- 놀랐지? 막내야. 크크! 너도 엄청난 불멸자와 계약을 했겠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특히 원거리 계열에서는 아주 최강의 불멸자지. 덕분에 천리통(千里通)을 쓸 수 있는 것이고.
- 천리통요?
문자 그대로 하면, 천리 끝에서 꿰뚫는다는 뜻인데 그게 도대체 뭘까?
- 그래. 몰랐겠지만 나에게는 비행(飛行)의 능력과 함께 천리통이 가능한 권능이 있거든. 천리통이라는 건 말이야...
끼릭-
그 순간 무전을 통해 천무현이 장전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크에에엑!”
정신을 차린 상류가 백유현을 덮쳐오고 있었다.
백유현이 입술을 깨물고 대응하려는 찰나였다.
콰앙-
“키에엑!”
또 한 번 상류의 머리통에서 폭발이 일었다.
그 솜씨는 매우 훌륭해서, 상류는 미친 듯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 이런 거지. 지금 나는 양산 부산대학병원 상공을 지나고 있는 중이고.
- 크크, 우리 막내 완전 놀랐겠네? 원래 저 녀석이 저걸로 알파 팀에 들어온 거거든. 비행하면서 최장거리 저격이 가능해서. 지금까지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번엔 주세광의 목소리였다.
- 난 아직 충청도 지나고 있어. 가려면 한참이네. 무현아, 유현이 지금 뭔가 힘든 거 같아 보이는데 잘 좀 도와줘라.
- 라져. 후후. 위성을 통한 무전이 이렇게도 좋을 수가 있군요. 어디서나 깨끗하게, 맑게!
- 알파 팀의 특권이지 뭐. 대한민국 정부에서 밀어주는 알파 팀 아니겠어?
- 자, 리퍼! 방심하지 마라. 놈, 일어났다.
천무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류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백유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예, 라이플. 지원 부탁합니다.
- 걱정 마. 너는 내가 지킨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지원이 생겼다.
‘기대를 저버릴 순 없지.’
백유현은 가만히 상류를 바라보았다.
이미 약점은 간파했다.
놈의 아홉 개의 머리통들이 뭉쳐 있는 목 부근을 날리면 끝이다.
“강효, 문광.”
“하명하시옵소서!”
“다시 놈의 시선을 돌려줘.”
“존명!”
그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온전한 복종만이 있을 뿐이고, 온전한 이행만이 있을 뿐이다.
파앗-
그들이 다시금 내달렸다.
독액으로 질척거리는 대지 위를, 그들의 주인의 명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린다.
그리고 백유현도 싸늘하게 상류를 바라보았다.
‘한 번으로 안 되면...’
콰콰콰쾃!
막야에 거대한 칼날 바람이 휘돌았다.
‘두 번으로. 두 번이 안 되면.’
파앗-
그의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허공을 찢어발기며 그가 상류에게 짓쳐 들었다.
“세 번! 널, 반드시 쓰러뜨리겠어!”
콰콰콰콰콰-
폭풍 날개가 그 한계까지 백유현을 밀어 올렸다.
백유현은 피부가 찢겨 나가고, 근육이 뒤틀리는 기괴한 고통 속에 빠져들어 있었다.
방금 전 그가 부족했던 것은 ‘힘’.
찢고 나가는 그 힘이 부족해서 놈의 약점을 베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힘을 키워내는 것은 바로 ‘속도’.
한계까지 치달아 올린 비행 속도에, 최대한의 힘을 실은 사휘.
그것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이었다.
‘크으!’
이미 블랙아웃이 시작되었다.
엄청난 가속도에 신체에 무리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백유현은 멈추지 않았다.
그를 향해 날아드는 놈의 거대한 아가리들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그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번쩍-
허공에 거대한 섬광이 일었다.
“크에에엑!”
상류가 그 거대한 몸을 곧추 세우며 미친 듯 발광했다.
그 순간 백유현은 정신을 잃고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소주!”
강효와 문광이 재빨리 달렸다.
차사들도 그 뒤를 따랐다.
“키에에엑!”
상류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백유현을 노려보더니 그대로 그를 향해 대가리를 쳐 박았다.
“소주!”
차사, 강효와 문광이 크게 외쳤지만 그들의 속도로는 상류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백유현이 놈의 아가리에 삼켜지기 직전, 허공을 찢는 맹렬한 소리가 들렸다.
쐐애애애애앳!
파각!
콰쾅-
“키에엑!”
상류의 머리통 하나를 정확하게 꿰뚫고 지나간 탄환 한 발.
그것이 백유현의 생사를 갈랐다.
푸하아악!
그리고 뒤늦게, 상류의 목 부근에서 엄청난 독액이 뿜어져 나왔다.
콰앙-
그와 동시에 정신을 잃은 백유현이 땅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크으! 소주를 보호하라!”
강효가 먼저 몸을 날렸고, 문광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차사들이 일제히 몸을 펼쳐 그들을 덮었다.
콰드드득-
파스스스!
차사들 위로 무시무시한 독액이 쏟아졌다.
하지만 차사들은 자신들의 몸이 녹아내리는 것도 아랑곳없이 백유현을 보호했다.
“크으...!”
그 안에 깔린 강효와 문광이 피눈물을 흘렸다.
차사들이 죽어가는 것을 느껴서도 그랬지만, 백유현의 맥박과 호흡이 잡히질 않았다.
그는 무리해서 상류를 베어내는 바람에, 허공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고 추락했고 그게 엄청난 치명상이 된 듯했다.
“소주...! 제발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소주!”
차사들의 몸이 녹고, 백유현은 숨을 쉬지 않았다.
두 수행 차사들은 미친 듯 절규하며 백유현을 두드렸다.
하지만 백유현은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