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네임 태그
콰쾅-
콰드득-
브라만이 날뛰고 있었다.
무엇이 녀석을 흥분시켰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보고 있자니, 백유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저 녀석! 아무리 봐도 즐기고 있는 거 같은데?’
“음머어어어어!”
브라만.
녀석의 뿔에 걸린 망자들은 뭐가 됐든 걸레조각이 되어 찢겨져 나갔다.
한 놈이 박살이 나면 브라만은 신이 난다는 듯 다음 놈에게 달려들며 머리로 들이받았다.
“음머어!”
콰당탕! 콰직!
거대한 흰 소의 난동을 막을 망자는 없었다.
사방에서 몰려들던 망자들은 브라만의 난동에 의해 수도 없이 박살이 났고, 브라만은 더욱 신나서 날뛰었다.
파스스-
그리고 그 때, 백유현의 눈앞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손에 칼을 쥔 척준경이었다.
“내, 여기를 맡아줄 것이니 후손은 가서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렇게 말하는 척준경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 역시 손이 근질거리는 듯했다.
이 수많은 망자들이라면 그의 갈증을 충분히 풀어줄만 할 것이다.
백유현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예, 장군! 뒤를 부탁드립니다.”
척준경이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콰콰쾃!
그리고 저 만치서 거대한 태양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이 척준경의 쌍검(雙劍)에 의한 일몰.
그 거대한 힘이 망자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백유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가자.”
파스스-
마침 조셉이 시공간에 각인시켜 놓은 화살표가 뜨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라진 차사 셋의 행방.
강효와 문광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명을...받잡나이다.”
그 어느 때보다 살의가 서린 음성.
파앗-
그들은 화살표를 따라 쾌속하게 움직였다.
수많은 망자들이 그들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
파캉!
카앙-
수많은 불꽃이 튀며, 날카로운 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아비규환의 현장.
염라의 권능, 호령(號令)으로 불러낸 수호 차사들, 그리고 이 부근에 있던 일반 차사들이 끝도 없이 밀려드는 망자들과 싸우는 중이었다.
화살표가 향하는 쪽으로 갈수록, 금정산 일대는 망유계의 망자들로 인해 득시글거렸다.
거기다 커다란 공동묘지가 있었는지, 이 쪽 세계의 부유령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부유령들은 입을 벌리며 내빼려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발은 마치 족쇄라도 매여 있는 듯 굼뜨기 그지없었다.
콰득-
콰직!
부유령들 뒤에서 망유계의 망자들이 달려들어 입으로 생살을 찢고, 피를 쭉쭉 빨아마셨다.
망자가 망자를 잡아먹는 해괴한 광경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곳곳에 망자들을 잡아먹고 덩치를 불린 거대한 괴망령(怪亡靈)들이 수도 없이 보였다. 이미 이 금정산 일대는 망유계의 망자들에게 먹힌 지 오래되었던 것이었다.
파앗-
그 때, 창 하나가 떠올랐다.
[불멸자, 조셉의 권능 ‘네임 태그(Name Tag)’를 자각했습니다]
‘조셉의 권능?’
백유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난 데 없이 조셉의 권능을 자각한단 말인가?
[권능의 주인 : 조셉]
[권능 : 네임 태그]
[네임 태그 : 모든 사물에는 말입니다, 이름이 붙어 있는 법이거든요. 이름을 알면 그 대상을 상대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지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뭐, 이름이 꼭 문자여야 하는 법은 없지요. 가령...이런 것처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순간, 백유현의 눈앞에 수많은 숫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79, 100, 120...65?’
그것은 망유계의 망자들 머리위에 떠 있는 숫자였다.
백유현은 그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이 뭔지 단박에 이해했다.
‘레벨!’
조셉의 센스였다.
그는 시공간에 화살표를 박아 넣는 것도 모자라, 망자들의 레벨까지 표시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숫자에는 다양한 색깔이 넣어져 있었다.
어떤 놈은 녹색, 어떤 놈은 노란색, 어떤 놈은 빨강색.
그리고 어떤 놈은 보라색.
녹색은 비교적 레벨이 낮은 망자들에게, 노란색은 대략 80~90대의 망자들에게, 진초록은 90~110대의 망자들에게, 파랑색은 110에서 130, 빨강색은 130에서 140, 보라색은 140대 이상.
그리고 드물게 검붉은 색의 레벨 표기가 되어 있는 놈들이 있었다.
그런 놈들의 레벨은 대부분 150 이상.
엄청나게 강하다는 뜻이었다.
‘고생 좀 하겠는 걸?’
백유현은 조셉의 센스를 두 눈으로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좋다.
이런 권능이라면 언제든지 대환영이다.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지 않고, 영리하게 싸울 수 있으니까.
놈들의 머리 위에 레벨이 떠오르니, 백유현은 한결 상황을 파악하는데 수월해짐을 느꼈다.
‘저 놈들이 지휘관 역할을 하고 있어!’
검붉은 색의 레벨 표기가 된 괴망령들.
놈들의 지시에 따라 망자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었다.
즉, 놈들은 ‘군대’를 이루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저번에도 느끼긴 했지만, 이놈들은 절대 그냥 망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 아주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세계에 침습한 존재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식의 움직임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균열 속의 몬스터들도 무서운 존재들이지만, 이놈들은 더욱 더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영리하고, 영악하며 상황 파악도 빠르고 강하다.
금세 적응하며, 아예 생태계를 바꿔놓고 있을 정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유현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냥은 안 놔둬.’
백유현이 싸늘하게 놈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놈들을 무력화시키려면, 150 레벨 대 이상의 괴망령들을 잡아내야 했다.
스릉-
백유현은 막야를 빼들었다.
150레벨대면 그에게도 힘이 부칠 수 있는 상대다.
하지만 놈들을 잡아내야 하급 망자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강효.”
“하명하옵소서.”
“차사들과 함께 나를 보호해.”
강효가 고개를 숙였다.
지금 백유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파앗-
백유현이 허공을 갈랐다.
펄럭-
그 뒤를 따라 수많은 차사들이 장포를 펄럭이며 내달렸다.
“소주를 호위하라!”
“존명!”
강효의 말에 차사들이 부채꼴로 확 퍼지면서 백유현을 감싸는 진형을 이뤘다.
카앙-
촤앗!
백유현을 향해 달려들던 망자들이 차사들의 검에 의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수는 수백, 수천.
수십 기의 차사들은 그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백유현을 단단하게 지켜냈다.
그들 역시 명부의 차사들.
염라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존재들인 것이다.
파앗-
그 순간에도 백유현은 괴망령 하나를 향해 쇄도해 들어가고 있었다.
다른 망자들을 집어 삼키고 자라난 거대하고도 끔찍한 망령.
놈의 머리 위에는 검붉은 색으로 152라는 숫자가 떠올라 있었다.
그에 반해 백유현의 레벨은 132.
무려 20의 차이가 나지만 상관 없다.
콰콰콰쾃!
백유현의 힘은 레벨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무엇이라도 잘라내는 희대의 명검, 막야에 폭풍의 신 루드라의 칼날 바람이 서렸다.
그 둘의 조합이 베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루드라의 칼날 바람은 막야의 칼날을 보호하며 더욱 더 예리하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공중으로 떠오른 백유현의 눈앞에 괴망령이 서 있었다.
놈은 백유현을 발견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꾸에에에에-”
“크르륵!”
“키에엑!”
그 괴성에 주변의 망자들이 몽땅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놈들의 두 눈에서는 번들거리는 살기가 뿜어졌고, 입에서는 썩은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먹잇감을 갈구하는 갈증.
놈들은 피에 굶주려 있었던 것이었다.
백유현은 그런 놈들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모두 다...’
그의 몸이 허공에서 한 번 크게 휘돌았다.
콰콰콰쾃!
칼날 바람이 그의 몸을 휘감고 솟구쳤다.
순간 백유현의 두 눈이 번쩍 빛을 발하더니, 그는 막야를 그대로 내리쳤다.
‘죽어 버려!’
쿠쿠쿠쿠쿠-
번쩍-
주변의 대기가 마치 뜨거운 열기에 끓어올라 증발하듯 미친 듯 뒤틀리더니, 그 사이를 비집고 수많은 광채가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쾅!
일몰.
태양을 쪼개 베어 버린다는 검.
그 검의 그림자에 수많은 망자들의 몸이 찢기고 조각나서 흩어졌다.
하지만 백유현은 그를 놀리려던 것이 아니었다.
파앗-
그는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며 우두머리격인 괴망령의 눈앞으로 쇄도했다.
“크어어어!”
괴망령이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도끼칼을 휘둘렀지만, 백유현은 이미 가볍게 그를 피한 뒤였다.
번쩍-
파각-
그리고 한 줄기 검은 섬광이 그어졌다.
“크엑!”
단단한 호심갑(護心鉀)이 쪼개지며 놈이 크게 비틀거렸다.
놈은 기괴하게 비틀린 손으로 가슴을 막았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진녹색의 액체가 끊임없이 뿜어지고 있었다.
사휘가 먹혀들었지만, 놈의 단단한 갑옷과 가죽을 뚫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백유현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대로 다시 짓쳐들어갔다.
놈의 약점은 완벽하게 잡아냈다.
한 번이 안 되면 두 번으로 승부를 보면 될 일.
번쩍-
죽음의 광휘가 번뜩였다.
파각!
그리고 막야의 거친 칼날이 괴망령의 가슴팍을 완전히 찢어 발겼다.
푸하악!
엄청난 피와 체액이 뿜어지며 괴망령이 푸들푸들 몸을 떨었다.
백유현은 다시 검을 고쳐 잡고 그대로 그어 올렸다.
촤앗!
그 순간, 괴망령의 머리통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단단한 가죽과 근육으로 이뤄진 놈의 목이었지만, 칼날 바람으로 강화된 막야는 마치 두부 자르듯 베어낸 것이다.
콰당탕!
목을 잃은 괴망령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마치 먼지처럼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크웨엑!”
“크웩!”
그러자, 그 주변에 있던 망자들이 모조리 혼란에 빠졌다.
일부는 백유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차사들을 공격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우두머리가 죽자 단체로 대혼란에 빠져 어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역시 그랬어!’
놈들은 분명 우두머리에게 조종을 받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우두머리의 조종에서 벗어난 놈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짐승과도 같은 것.
놈들은 혼란을 겪다 못해, 자기들끼리도 공격하는 기괴한 모습까지도 보이고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로 상대를 물어뜯고, 손톱으로 쥐어뜯고...
아비규환이 있다면 딱 이 순간이 아니었을까?
“축생도(畜生道)를 보는 듯하옵니다.”
그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강효가 나직하게 말했다.
백유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축생도.
놈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딱, 짐승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모습이 인간형인 것으로 보아, 짐승의 망령들은 아닌 듯했다.
다만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놈들은 상당한 하급(下級)의 존재라는 것.
즉, 놈들을 통제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으면 이렇듯 자기들끼리 싸우다 자멸해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목표는 단 하나.
백유현의 눈이 허공에 각인된 화살표를 향했다.
세 개의 화살표는 동일한 곳을 향해 있었고, 그곳에 아마 ‘놈’이 있을 것이다.
불멸자가 되어 한껏 거만해진 ‘무명(無明)’이.
‘반드시 잡아내겠어!’
백유현의 두 눈이 번뜩였다.
펄럭-
그리고 그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금정산의 아수라장은 놈을 잡아야 정리가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