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71화 (71/166)

71. 금정산

“와...”

백유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브라만.

이 녀석은 대체!

백유현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이십 분.

브라만은 그냥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놀랍게도 예전 은거기인들이 사용했다던 ‘축지법(縮地法)’을 쓰듯, 공간을 접어 버리면서 이동했던 것이었다.

브라만 자체도 엄청나게 빨랐지만, 이런 믿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공간을 접어 버리며 거리를 단축시키는 놈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제야 백유현은 녀석이 난디와 비교 당하는 것을 왜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시바라는 최강의 불멸자가 선택한 난디도 신들의 왕, 인드라를 박살내 정도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브라만 또한 그에 못지않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백유현은 난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브라만...빨리 온 건 고마운데, 이래선 너무 심심하잖아. 다른 사람들이 오려면 최소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건데.”

전용기를 타고 오는 박성진도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릴 것이다.

나머지 팀원이 다 모이려면 대여섯 시간은 더 필요할 것이고.

잠시 생각하던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브라만. 생각해보니 그냥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여기서도 망유계의 망자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보리수나무 잎사귀도 모을 겸 근처를 좀 둘러보고 올까?”

브라만을 움직이려면 보리수나무 잎사귀가 필요했다.

그리고 차사, 강효와 문광의 봉인을 풀려면 혼의 조각이 필요했고.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가지 다 ‘망자’들을 잡아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강효.”

“하명하시옵소서.”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부탁이시라니, 감당하기 어렵사옵니다. 무슨 명이든 내려주시옵소서.”

백유현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망자들이 자꾸 나돌아 다니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아서 말이야. 여기 부산에도 그런 놈들이 많을 텐데, 차사들을 풀어서 동향 파악 좀 해주면 좋겠어.”

강효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것이라면 어렵지 않사옵니다. 안 그래도 대왕의 명을 받은 차사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것이오니, 바로 물어보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러더니 강효는 허공에 대고 하나의 수인을 맺었다.

파아앗-

그러자 그의 앞에 수십 기의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며 나타나더니, 곧바로 백유현을 향해 일제히 부복했다.

“소주를 뵙습니다.”

그들은 일반 차사들이었다.

강효는 고개를 끄덕이며 넌지시 말했다.

“소주께서 너희들이 수집한 망자들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니, 어서 말해보아라.”

“명을 받잡나이다.”

그 말에 차사들이 앞으로 나서며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명부의 기밀이었지만, 백유현은 염라와 계약한 소주.

그에게 있어 감출 기밀은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차사들의 보고를 들으며 백유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 공동묘지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망유계의 망자들이, 명부에 소속된 부유령이나 지박령들을 잡아먹는 경우도 있었사옵니다.”

“균열의 근처에 망자들의 흔적이 남아 추적중이나, 행방이 묘연하여...”

“산 자에게 빙의를 시도하려는 망자를 추격, 도주시키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역시 행방이 묘연한 관계로...”

그들이 보고하는 내용은 절대 그냥 넘길 문제들이 아니었다.

특히 망유계의 망자들이 이 세계의 망자들을 잡아먹었다는 대목에서는 백유현도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산 자에게 빙의하는 것도 모자라, 망자들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심각하군.’

역시 서울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이러다간 전국에, 아니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갈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백유현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강효, 놈들이 이 쪽 세상의 망자들을 잡아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강효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 경우는 태고서부터 있었사온데, 그렇게 되면 더욱 강한 망자가 탄생하게 되옵니다. 옛 큰 악귀들이 그렇게 탄생한 존재들이온데, 문제는...”

“문제는?”

“그게 반복이 되었을 시, 놈들은 향신(鄕神, 시골의 작은 신) 혹은 반신의 경지에 올라 처치하기가 힘들 수도 있사옵니다.”

“음...”

어쨌든 놈들이 신, 즉 불멸자가 된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잠시 머리를 굴리던 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 불멸자라고?’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최악의 상황.

불멸자.

놈들이 만약, 이 세계의 망자들을 흡수하여 힘을 얻고, 그로 말미암아 불멸자가 된다면?

‘계약이 가능해진다!’

아니,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강효의 말을 들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닌 듯싶었다.

놈들이 이 쪽 세계에서 신, 즉 불멸자가 된다면 인간들과 계약을 맺는 것은 불가능보다 가능에 더욱 무게가 실렸으니까.

“혹시 지금 그래서 망유계의 망자들 중, 불멸자가 된 존재가 있어?”

“아직 파악 중이오나, 명부의 관할 지역에서 지금까지는 없는 걸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백유현은 자신의 할 일을 찾은 듯했다.

망자들을 잡아먹으며 힘을 키우고 있는 망유계의 망자들...

놈들의 속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만 놔두면 위험해질 것이다.

‘그 전에 싹을 잘라야겠어.’

놈들이 더 강해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했다.

“지금, 그 중에서 가장 강한 놈이 아까...대저 쪽에 있다고 그랬지?”

“예, 소주. 헌데 그건 어인 일로...”

“잡으려고.”

“예?”

“놈들이 신이 되기 전에 잡겠다는 얘기야. 가만 놔뒀다간 불멸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백유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옆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조셉.”

조셉이 백유현을 보며 싱긋 웃었다.

“역시 영리하시군요. 사실 그 문제는 미래에서 매우 크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죠. 뭐, 그건 정확하게 말씀드릴 순 없지만...지금 유현 군이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그겁니다.”

조셉의 두 눈이 묘한 빛을 발했다.

“망유계의 망자들, 특히 다른 망자들을 잡아먹는 망자들을 잡는 것. 비단 놈들이 불멸자가 되는 것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놈들을 잡다 보면 유현 군에게 분명 도움이 되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뭔지는 저조차도 알 수 없지만, 그걸 얻은 유현 군과 얻지 못한 유현 군의 미래는 판이하게 달라지지요. 그러니, 꼭! 얻으세요.”

“그게 뭔지 알고?”

“정확하게는 저도 모른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한 가지 단서는 있습니다. ‘여덟 카르마의 혼종’을 찾아내면 됩니다. 아주 지독스러운 망자죠.”

“여덟 카르마의 혼종...”

“자, 임무를 드리죠.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시침핀 기억나시죠? 이번에는 좀 더 재미있는 물건을 걸어볼까요? 후후, 마음에 드실 겁니다. 미래의 당신도 그랬으니까.”

조셉의 임무.

그는 언제나 뭔가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모양이었다.

파앗-

그 순간, 백유현의 눈앞에 하나의 임무 창이 떠올랐다.

[스페셜 퀘스트(Special Quest)]

[조셉 : ‘여덟 카르마의 혼종’을 잡으세요!]

[임무 완료 조건 : 여덟 카르마의 혼종 소멸]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12 포인트, 조셉과의 친밀도 50, 수수께끼의 상자]

[조셉이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임무 정보 : 여덟 카르마의 혼종을 잡아야 한다. 놈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없는 상황. 하지만 부지런히 망자들을 잡다 보면 언젠가는 만날 수도? 조셉이 준 단 한 가지 정보는 놈이 잔혹한 살귀(殺鬼)라는 것, 그리고 놈이 뿜어내는 오러의 색이 짙푸른 색이라는 것. 나머지는 알아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보상이 제법 기대가 되었다.

수수께끼의 상자, 신체 포인트, 친밀도.

거기다 추가 보상 확률까지 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문제는 ‘놈이 도대체 누구’ 냐는 것이었다.

기존의 퀘스트에 비해 너무도 빈약한 정보를 가지고 찾아내야 하는 문제가 백유현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그 때, 또 하나의 창이 새롭게 떠올랐다.

[특별 포고]

[염라 : 망자, 무명(無明)을 잡아라]

[임무 완료 조건 : 망자, 무명의 소멸]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6 포인트, 염라와의 친밀도 50, 망자의 완갑]

[염라가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임무 정보 : 망자, 무명을 잡아야 한다. 차사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염라는 부산 지역에서 한 망자의 자취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그 망자는 이 세계의 망자가 아닌, 망유계의 존재로 이름이 없다. 하지만 단 하나의 특색이 있으니 놈의 목에 달린 수많은 해골이 그것이다. 그 해골들은 생전에 놈이 죽였던 수많은 생명체들과, 근시일 내에 놈에게 잡아먹힌 망자들의 원혼이 뭉쳐져 만들어 진 것. 놈이 향신이 되기 전에 얼른 처치해라]

거의 동시에 떠오른 임무.

조셉은 ‘여덟 카르마의 혼종’, 염라는 ‘망자, 무명’.

대충 보면 둘이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정보가 달랐다.

그렇다면 이 부근에 강력한 포식자 둘이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할 일이 생겼군. 그거면 됐어.’

팀원들이 오기 전에 일단 놈들의 자취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는 일단 메시지로 박성진에게 임무를 위해 잠시 늦는다고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는 차사, 강효를 보며 말했다.

“강효. 대왕께서 찾으시는 놈은 어디에 있을까? 그에 대해 좀 알아봐 주겠어?”

조셉의 퀘스트에 등장하는 놈은 일단 정보가 너무 없다.

그렇다면 일단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는 놈을 먼저 잡는다.

그런데 그 때, 차사 하나가 앞으로 불쑥 나서더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차사, 유견. 무명에 대한 정보를 아뢰겠사옵니다.”

운 좋게도 망자, 무명에 대해 알고 있는 차사가 있었다.

염라의 명이 포고 형태인지라, 차사들도 그 내용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사, 유견은 말을 이었다.

“망자, 무명으로 보이는 자는 금정산에서 마지막 자취를 감추었사옵니다. 허나 망자향으로 추적한 결과, 놈은 금정산 일대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사옵니다.”

금정산.

부산의 금정산에는 무슨 일이 있었지?

백유현인 살짝 미간을 찌푸림과 동시에, 강효가 입을 열었다.

“소주. 아주 예전 금정산에는 하나의 허주가 자리를 잡고 앉아 수많은 귀신들을 불러들인 적이 있사옵니다. 그 때 이후로, 그곳은 귀기가 넘치는 음산한 곳이 되었고 그 뒤로도 산 사람들과 귀신들이 이끌려가 음기가 가득하여 차사들도 섣불리 접근하기가 어려워 지금까지 방치가 되어 온 것이옵니다.”

백유현도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 금정산에 자리 잡았던 하나의 흉가.

삼천리 성당이라 불렸던 그곳에는 수만은 귀신들이 몰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저 사진으로만 보기에도 음산함이 느껴질 정도니...

그러니 그런 망자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망유계의 망자가 욕심낼 만한 곳이었다.

“좋아, 여기부터 잡자.”

“명을 받잡나이다.”

일단 염라의 포고를 수행하다보면, 조셉의 퀘스트도 어떻게든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백유현은 브라만 위에 올라타고 그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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