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브라만, 달리다
- 이번 사태의 해결에는 팀-엑스 대회 대한민국 대표 팀인 치우의 알파 팀이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 정부에서 공표한 바로는, 이번 일은 근처 균열에서 발생한 유독 가스에 의해 벌어진 집단 환각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근처에 있던 관중들이나 기자들도 환각에 노출 되어 있었다는 발표에 시민들은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독 가스에 중독되어 벌어진 해프닝으로 최종 정리가 되었다.
사실 정부에서는 알파 팀과의 면밀한 후속 대화를 통해, 다른 차원의 망자들이 대거 유입이 되었으며 그 망자들에 의한 빙의 때문에 이번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그대로 뉴스에 내보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정부는 고심 끝에 유독 가스를 이유로 이번 사태를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언제까지 덮여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으니까.
“저희들도 이번 사태에 대한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 저희도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아, 그런데 제가 아까 말씀드린 사안은...”
“당연히 모든 것을 오픈하고 협조할 것입니다. 안 그래도 이미 요원들을 보내 정보를 수집 중입니다.”
장관.
국가각성자관리부의 장관, 송명길이 직접 자리에 앉아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알파 팀의 수장, 박성진에게 한 가지를 확실하게 약속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번 일과 유사한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로스차일드의 더블 그레이스가 왜 여기에 왔었는지.
거기다 더해 또 하나.
그들의 능력은 어떤 것인지.
이것은 백유현이 요청한 것이었다.
그런데 송명길 장관은 그에 대한 지원을 흔쾌히 수락했다.
어차피 대통령부터가 이번 사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알파 팀과 거리를 두는 것은 옳지 않은 판단이었다.
서로 공조하는 분위기로 가는 것이 좋았다.
“걱정 마십시오. 정부에서도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사안입니다.”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장관님의 말씀을 들으니 든든하군요.”
“하하하! 그리 말씀해주시니 제 어깨가 으쓱해지는 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팀-엑스 대회에서...아시지요? 하하!”
송명길이 호탕하게 웃어보이더니 손을 내밀었다.
박성진은 그 손을 맞잡았다.
“최선을 다해야지요. 이번에는 다른 나라에서도 저희를 만만하게 보다간 큰 코 다칠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스케쥴이 있어 이만 가봐야겠군요. 후속 조치에 관해서는 요원을 보내겠습니다.”
“예, 장관님.”
이번 일이 그냥 노블레스 멤버스에서만 해결되는 사안이 아니라, 국가적인 대재앙으로 번질 뻔한 일이었기에 대한민국 정부와 긴밀한 협조 체계를 이어가려는 것이었다.
장관은 문을 열고 사라졌고, 이 자리에는 알파 팀만 남았다.
“후우, 일단 우리도 본부에 보고해서 영계와 관련된 불멸자을 추려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혹시 모르잖아. 권능 요청으로 유현이처럼 귀신을 볼 수 있을 지. 그러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그리고 유현이와 같은 케이스로, 나면서부터 귀신을 볼 수 있는 각성자들이 있을 수도 있지. 좋아, 이럴 게 아니라 협조 요청해놓자고. 이런 시스템이 잡혀 있어야 유사시에도 빠르게 대처하지.”
박성진은 팀원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유사시를 대비한 시스템 구축은 매우 필요한 일이었다.
“자, 그건 그거고...이제 모인 김에 악마의 도시로 가보는 게 어떻겠어? 다들 좀이 쑤셔 하는 표정들 같아 보이는데.”
그 말에 주세광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오호, 그거 정말입니까? 저야 좋죠!”
천무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혼자 훈련하려니 심심하기도 했는데 잘 됐네요.”
김수형과 김현성도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백유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태를 수습할 때도 느꼈지만, 이런 전투에서 ‘팀’이라는 존재는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혼자서 싸울 수도 있지만 이렇게 훌륭한 팀을 놔두고 혼자 싸우는 것은 비효율적이었으니까.
팀원들이 다 동의하자 박성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가보자고. 근데...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박성진이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소는 도대체 뭐냐? 유현이 꺼 같은데.”
창 밖.
아주 널찍한 명당을 차지하고 엎드려서는 여유자적하게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한 마리의 흰 소. 한국의 황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고귀하고도 우아해 보이기까지 한 그 소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했다.
백유현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제가 이번에 얻은 탈 것입니다.”
“탈 것? 저런 소를 타고 다닌다고?”
“엥, 그런데 저 녀석 어딘가 모르게 인도 느낌 나는데?”
“어? 인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유현이...시바하고 계약했잖아? 혹시 저 소?”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시바가 준 소죠. 사실은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겠어요. 아직 한 번도 안 타봐서.”
“와, 부럽긴 한데...이상하게 안 땡기네? 소면 완전 느릴 텐데...”
“하긴 시바도 소를 타고 다니긴 하는데...이상하게 저도 안 땡기네요.”
‘소’라는 동물에 다들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한 마디씩 했다.
그런데 그건 백유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웬만한 거리는 폭풍의 날개로 날아가면 되니까.
그러니 지금 흰 소, 브라만은 저렇게 놀고먹는 아주 팔자 좋은 신세가 된 것이다.
“뭐, 걷다 보면 다리도 아플 수 있겠지. 그 때 살짝 타면 되지 뭐. 아니면 짐 올려놓으면 딱 좋겠다. 등판 넓은 것 좀 봐.”
브라만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풀만 질겅거리며 씹고 있었다.
“자, 다들 출발하자고. 지금부터는 다들 모여서 다니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게 좋겠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니.”
대외적으로는 유독 가스의 핑계를 댔지만 혹시 모른다.
박성진의 말처럼 이번과 같은 사고가 터지면 그들이 바로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알파 팀은 웬만하면 뭉쳐 다니기로 한 것이다.
“전용기 공항에 대기 중이니까 같이 타고 갈 사람은 같이 가고.”
역시 대한민국 넘버원 팀답게, 전용기도 구비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 전용기는 이들이 구입한 게 아니었다.
항공사에서 지원을 해준 것이다.
그만큼 치우, 알파 팀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매우 드높았다.
“저는 따로 가겠습니다.”
“뭐, 저도. 이번에 구입한 세단이 워낙 마음에 들어서. 가는 동안만이라도 조금 쉬고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전용기를 타고 다니기로 결정한 사람은 박성진 혼자였다.
뭐 당연한 얘기였다.
외국 나가는 것도 아니고, 국내에서 움직이는데 전용기까지 타고 갈 일은 별로 없었으니까.
편안하게 누워서 잘 수 있는 세단을 타고 가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박성진은 멋쩍게 입맛을 다시더니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뭐 그럼 가서 보자고. 옆길로 새지 말고. 늘 GPS 켜놔. 비상시국이니까.”
“예, 대장.”
“그럼 그 때 보죠.”
“유현이는 저 소 끌고 오느라 고생 좀 하겠다.”
주세광의 말에 백유현이 희미하게 웃었다.
사실 그게 걱정이긴 했다.
저 거대한 덩치의 브라만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 지.
안 데리고 갈 수도 없다.
도대체 저 소를 어디에 맡긴단 말인가?
‘트럭을 하나 사야 하나?’
그가 갈등하는 순간, 팀원들이 움직였다.
백유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아직 결정이 서질 않았다.
브라만.
저 놈의 소를 어떻게 해야 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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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푸르륵-”
백유현이 밖으로 나서자, 브라만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주섬주섬 일어났다.
놈의 눈망울을 보자, 백유현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브라만, 이걸 어떻게 하지? 널 맡길 데도 없고 그렇다고 놔두고 갈 수도 없고, 데리고 가자니...”
백유현은 차마 뒷이야기를 못하고 꿀꺽 삼켰다.
너무 느려서 못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것이다.
“푸륵?”
그런데 브라만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녀석이 천천히 돌며 등을 백유현에게 보이더니 그 자리에 풀썩 앉았다.
“응? 타라고?”
백유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 옆에서 차사 문광이 앞으로 나섰다.
“예, 맞사옵니다. 소주. 소가 소주께 타시라고 등을 대주고 있는 것이옵니다.”
“응?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문광이 멋쩍은 미소를 순간 지었다가 금세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소싯적, 소를 친 기억이 남아 있사옵니다.”
“차사는 기억이 다 지워지는 게 아니구나?”
“일부의 기억이 남아 있긴 하옵니다. 그런데 정말 소를 타고 가실 생각이신지요?”
백유현이 난처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네 말을 들으니 더 거절을 못하겠잖아.”
“잠시만 탔다가 내리시옵소서. 저 소가...”
문광이 갑자기 백유현에게 다가오더니 귀엣말로 말했다.
“성격이 워낙 거칠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말이옵니다.”
백유현이 피식 웃었다.
하긴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자신이야 뭐 날아가면 되니까 여유는 충분하다.
“에휴, 그래. 이왕지사 받은 거니 한 번 타보긴 하자. 등짝이 넓어서 편안해 보이긴 하다.”
백유현은 성큼성큼 걸어 브라만의 등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브라만을 어루만졌다.
“그래, 잠시만 걷자. 그게 네 소원이라면.”
그가 브라만의 등 뒤에 앉자, 브라만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 거대한 덩치가 움직이는데도 백유현은 조금의 요동도 느끼지 못했다.
‘와, 이거 생각보다 다른데?’
마치 엄청나게 조용하고 부드러운 세단을 탄 느낌?
“푸륵-”
그런데 브라만이 잠시 귀를 쫑긋거리더니 투레질을 했다.
또각.
그리고 놈은 엉뚱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 방향은...
‘뭐야? 설마...아니겠지?’
놈은 정확하게 남쪽을 향해 서 있었다.
마치 그 쪽을 향해 가겠다는 것처럼.
그리고...
또각, 또각.
한 발짝, 두 발짝 움직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아니, 흐릿해진 것이 아니라 미친 듯한 속도로 뒤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콰콰콰콰쾃!
‘어어엇!’
백유현은 크게 놀랐다.
브라만.
놈이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모든 물리적 법칙을 무시한 채, 공간을 접어 버리면서.
공간을 뛰어넘어 달리는 소.
브라만의 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고, 그들은 벌써 서울을 벗어나 경기 외곽으로 빠졌고 다음 순간 충청도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었다.
백유현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이 브라만.
모든 흰 소의 제왕.
이러니 난디와도 감히 비교가 될 정도였던 것이다.
콰콰콰콰쾃!
놈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부산의 짠 바다 냄새가 풍겨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