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균열 강화
파앗-
백유현과 두 차사는 날듯이 길을 내달렸다.
뭔가 이상했다.
주변이 온통 음산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는 것도 그랬고, 여우의 냄새가 나는데 망유계의 망자들의 느낌 또한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랬다.
그 때, 백유현의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특급 포고(布告)]
[염라(閻羅) : 망유계의 망자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허나, 놈들의 능력치가 비정상적으로 측정되는 바, 주의하여 그들을 추격하여 섬멸하라. 그 중에서도 우두머리 망자의 힘은 차사들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니 더욱 주의하라]
[임무 완료 조건 : 망유계의 망자의 소멸, 우두머리 망자의 소멸]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15 포인트, 염라와의 친밀도 80, 사자육전 이용 등급 1등급 특진]
[염라가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이틀입니다]
[임무 정보 : 차사들의 망자향(亡者香)으로 추적한 결과, 구미호의 근처에 망유계의 망자들이 대거 출몰한 것이 파악되었다. 놈들의 힘은 비정상적으로 강하며,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최종 보고되었다. 그 이상은 일반 차사들조차 접근이 위험하여, 명부에서는 급히 나찰(羅刹)급 추살 차사를 급파한 상태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확실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나찰급 추살 차사의 이름이 거론되질 않나, 사자육전의 이용 등급을 한 단계 올려주겠다지 않나...
그만큼 이번 임무가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백유현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놈들이 있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는데, 왜 구미호 옆에 몰려들었단 말인가?
그 때 차사, 강효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역시 염라의 특급 포고의 내용을 이미 읽은 상태였다.
“요괴, 요(妖)는 예로부터 사람을 홀려 미치게 하고 일순간 성정을 발화(發火)시키는 것을 즐겼사옵니다. 성정이 발화된 인간은 힘이 비약적으로 강해져,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살육(殺戮)을 저지르다 급기야 자신의 목숨조차 끊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었지요.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망유계의 망자들이 강화된 것은 아무래도 구미호의 힘이 작용된 것이 아닐까 싶사옵니다.”
강효의 말에 옆에 있던 문광도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소인 역시 그리 생각하옵니다. 요망한 요괴의 힘이 망유계의 망자들에게 미쳤다면 이건 필시 보통 일이 아니옵니다. 소주.”
“그렇다면, 구미호가 놈들을 부리고 있다? 그런 뜻이야?”
“추측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소주.”
백유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구미호 정도가 망유계의 망자들을 부릴 수 있는 실력이 있어?”
그는 그게 의문이었다.
분명 염라의 의뢰에 보면 구미호는 그 정도 힘은 없어 보였다.
그랬다면 염라의 의뢰 자체가 달라졌을 테니까.
하지만 차사들은 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때, 백유현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 혹시!’
균열(龜裂).
맞다.
균열의 힘이 몬스터들이나 망자들에게 미치면 어떻게 되는지 그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망유계의 망자들이 이 근처에 그냥 나타났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얘기는 어디서인가 균열이 생겨났고, 그 여파로 구미호가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구미호는 그 힘으로 망유계의 망자들을 부리고 있는 것이 확실했고.
‘이런...!’
임무가 한층 어려워졌다.
백유현이 싸늘하게 눈빛을 발한 순간, 또 하나의 창이 떴다.
‘응?’
난 데 없는 상태 창에 백유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상태 창의 제목을 보는 순간 백유현은 어이가 없어졌다.
[명령 하달]
명령 하달.
임무도 아니고, 퀘스트도 아니고, 명령 하달이다.
이것만 봐도 이 임무창이 누구의 것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런 오만한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는 ‘그’ 밖에 없었으니까.
[시바 : 마음에 드는 제물을 찾았다. 하루 속히 제단에 놈의 피를 올려라]
임무 내용도 간단하다.
시바답게, 일단 뭔가를 죽이라는 명쾌한 명령.
[임무 완료 조건 : 망자들의 우두머리를 처치]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10 포인트, 시바와의 친밀도 1, 성난 흰 소]
[시바가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은 없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하루입니다]
[임무 실패 시 : 수명이 하루 줄어든다]
[임무 정보 : 시바가 오랜 만에 마음에 드는 제물을 발견하고는 몸이 달아 있다. 어서 놈의 숨통을 끊어 시바의 제단에 올리자.]
간단하고, 명료하며, 명확하다.
그리고 할 말이 없다.
백유현은 한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일단 보상.
이런 임무를 맡기면서 보상을 준다는 게 겨우 시바와의 친밀도가 1이 올라간다.
거기다 추가 보상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쾌남.
그리고...
‘성난 흰 소는 또 뭐야?’
자기처럼 소를 타고 다니라는 건가?
그런데 더욱 문제는 임무가 실패하면 주어지는 대가다.
백유현이 기가 막힌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무려...
수명이 ‘하루’가 줄어든다.
‘허...참!’
시바답다.
그런데 그게 이해는 가는데, 어이가 없었다.
이젠 보상을 바라고 임무를 완료하는 행복한 시절은 지나갔다.
죽지 않으려면 제대로 해야 되는 것이다.
이게 시바와 계약한 각성자의 운명이었다.
백유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된다.
그래, 까짓 거 하면 된다.
“강효...”
“하명하시옵소서.”
정말 알 수가 없는 시바였다.
하지만 이제 오히려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구미호든, 망자들의 우두머리든 모두 다 처치해야 할 일만 남았다.
“서두르자.”
“존명.”
그들 셋이 움직였다.
주변에는 어느덧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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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검은 그림자 두 개가 나타났다.
복색은 차사 강효나 차사 문광과 비슷했지만, 그들의 두 눈에서는 시뻘건 혈광이 쏟아지고 있었고 검은 갓 속의 정수리 쪽에는 하나의 뿔이 솟아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백유현이 사라진 쪽을 노려보았다.
스스스-
그리고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달리지도, 서두르지도 않는데 그의 신형은 미끄러지듯 빠르게 사라졌다.
그 뒤를 또 하나의 그림자가 따랐다.
둘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주변에는 또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달조차 그 빛을 잃은 음산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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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알고 있어.”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음산한 기운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백유현은 자신이 엄청나게 위험한 곳에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굳이 시바의 협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균열의 영향을 받은 구미호가 살아 있고, 그녀가 망유계의 망자들을 다스리는 것이 확인된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강효는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놈들의 기척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백유현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왼쪽에 적어도 서른. 그리고 오른쪽에는 백이 넘는다. 살기가 무시무시하게 요동치고 있어.’
척준경에게 살의(殺意)를 일으키는 방법을 배운 백유현이다.
그 뒤부터, 그는 살기를 읽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했다.
사방이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어도, 그래서 그는 정확하게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의 살기를 간파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지금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균열...저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적어도 120레벨 이상의 존재들이야!’
앞쪽 멀리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균열의 파장.
그 안에 엄청난 수의 망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을 그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여우는?”
백유현이 심언(心言)으로 물었다.
차사 강효나 문광은 바로 그 말을 알아들었다.
“저 쪽에서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강효가 가리킨 쪽은 바로 균열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를 잡으려면 결국 그 쪽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군.’
답이 없다.
지금은 정면 돌파를 하는 수밖에.
“준비해.”
그의 손에는 이미 막야가 들려 있었다.
칠거면 빠르게 치는 것이 낫다.
스스스-
강효와 문광 역시 좌우로 나뉘어 소리 없이 움직였다.
파앗-
그 순간 백유현이 땅을 박차고 뛰었다.
그가 향한 곳은 오른쪽.
“문광!”
“차사, 문광! 소주의 명을 받잡나이다.”
콰앙-
문광의 언월도가 번쩍 빛을 내더니, 그의 전신에서 기이한 기운이 폭사되어 나왔다.
콰콰콰콰쾃!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문광 역시 탱커들처럼 도발을 쓸 수가 있었다.
바위처럼 단단한 그의 방어력을 방패삼아 적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공격을 온전히 다 받아내는 형태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도발에 당해 유인된 적들에게 내리꽂히는 그의 언월도는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문광을 천년거암보다 단단하며, 몰아치는 폭풍보다 거세다고 한 것이다.
“크에에엑!”
“키이익!”
망자들의 두 눈에서 시퍼런 광망이 뿜어지더니, 놈들이 문광에게로 미친 듯 달려들었다.
“오너라!”
문광이 소리 높여 외쳤다.
일백이 넘는 망자들이 문광을 완전히 둘러싼 것은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놈들이 헐벗은 외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만만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균열의 바깥쪽에 있는 이 망자들도 대략 110레벨은 넘어 보였으니까.
놈들의 손에 들린 녹슨 도끼와 칼이 문광의 머리 위로 무수하게 떨어졌다.
카카카캉-
수많은 공격이 집중되었지만, 문광은 태산처럼 버티고 서서 그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번쩍-
뭔가 그들을 스치고 지나가는가 싶더니, 허공에 한 줄기 검은 광채가 번뜩였다.
그리고...
파아앗!
그 광채가 갑자기 치솟아 올랐다.
콰콰콰콰쾃!
다음 순간, 검은 광채가 수백 갈래로 쪼개지더니 지상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이것이 일몰(日沒).
태양을 떨어뜨린다는 척준경의 비장의 검술이었다.
파가가각!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무시무시한 칼날의 빗속에서 망자들이 몸이 모조리 터져나가며 죽어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염라의 ‘각성’이 발동이 되어야 일몰 역시 발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는데 이번이 시바의 강압에 의한 모든 신체 능력치 10 퍼센트 증가로 인해 이제는 각성이 발동하지 않아도 일몰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키에엑!”
파스스-
문광에게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있던 망자들이 녹아내렸고, 그 사이로 백유현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그는 다시 한쪽을 향해 내달렸다.
카앙! 캉-
그곳에는 수십 구의 망자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차사, 강효가 있었다.
강효는 침착하게 놈들을 쓰러뜨리고는 있었지만, 그 중에 꽤나 강한 놈이 섞여 있었는지 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서걱-
그 순간 강효를 향해 덤벼들던 놈의 목을 막야의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촤아아아앗!
그리고 그 주변의 모든 것이 무참하게 베여 나갔다.
지독스러운 쾌검이 펼쳐진 것이었다.
“강효. 괜찮지?”
차사, 강효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아직 무탈하옵니다. 소주.”
백유현도 그를 보며 씩 웃었다.
“그럼 됐어. 가자. 아직 싸움 안 끝났어.”
강효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따르겠나이다.”
이제는 강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기 때문에, 문광이 앞장서고 백유현과 강효가 그 뒤를 따랐다.
스릉-
허공을 스치는 막야가 나직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