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요괴, 요(妖)
부산.
서울에서는 몇 시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도시다.
하지만 백유현은 깊은 밤, 인적이 드문 폐건물 옥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의 옆에는 차사, 강효와 문광이 시립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끊임없이 백유현을 흘끗거리는 것으로 보아 뭔가 걱정되는 것이 있는 듯했다.
그러다 참다못해 강효가 앞으로 나서며 조심히 말했다.
“소주...좀 더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시는 것이 어떠하신지...”
폐건물은 4층.
백유현은 그를 보며 씩 웃었다.
“괜찮아. 어차피 이 정도에서 떨어져도 다치지도 않을 건데. 이왕 시험해볼 거, 제대로 해보고 싶어. 강효.”
그 말에 강효가 더 이상 말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은 여전했다.
백유현의 말대로, 그의 신체 능력치라면 4층에서 추락해도 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주의 몸에 조금이라도 생채기라도 난다면...
휘이이이-
걱정 어린 표정의 둘을 뒤로 하고 백유현은 가슴을 펴고 앞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시내의 불빛들이 보였다.
그리고 알맞게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다.
시바의 또 다른 화신, 폭풍신 루드라의 권능이 발동되어서 그런지 그 바람의 결 하나, 하나가 온전히 읽혔다.
그것은 정말 기이한 경험이었다.
파아앗-
그리고 그 순간, 백유현의 등 뒤에서 반투명한 날개가 돋아나 활짝 펼쳐졌다.
마치 바람의 결로 만든 듯, 반투명하면서도 부드러운 날개를 바람이 부는 힘에 따라 이리저리 너울거리고 있었다.
이것이 시바가 강제로 권능 이전을 한 ‘폭풍 날개’.
그 이름에 비하면 너무도 부드럽고 가냘파 보이는 날개였다.
백유현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내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폭풍을 다스리는 루드라의 권능이 제대로 발현이 된다면, 그는 허공을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주!”
강효와 문광이 동시에 움직여 백유현이 서 있던 옥상 난간으로 몸을 날렸다.
아직까지 떠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분명히 그가 추락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둘의 표정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잔뜩 굳어졌다.
추락했다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야 했다.
그런데...
파아앗-
그 때였다.
누군가 아래서부터 맹렬하게 솟구치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소주!”
“크크크! 이것 좀 보라고!
백유현이었다.
콰콰콰콰!
놀랍게도 그의 등 뒤에 달려 있던 두 날개는 이미 더 이상 부드럽고 유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 무엇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강맹한 돌풍을 일으키면서 주변의 공기를 밀어내고 있는 거대한 폭풍의 날개!
백유현은 그 날개의 힘으로 허공 높이 치솟아 올랐던 것이었다.
파가가가각!
불과 4층 높이에서 잠시 머물렀던 그는 갑자기 쏜살 같이 위로 솟구쳤다.
그의 주변에는 매서운 용권풍(龍卷風)이 휘몰아쳐 마치 백유현이 폭풍의 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파아앙-
그는 있는 힘껏 폭풍 날개를 휘저었다.
그 순간 그의 피부가 찢겨 나갈 듯한 고통이 느껴지며, 무시무시한 속도감이 그를 덮쳤다.
콰콰콰콰콰-
강화되어 있는 그의 신체 능력치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날던 그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척-
강효와 문광이 기다리고 있는 4층 건물 옥상.
그는 가볍게 그곳에 내려섰다.
“소주...”
그들을 보며 백유현이 싱긋 웃었다.
“걱정 마. 바람의 힘을 온전히 다스리는데 성공했으니까.”
그 말에 둘의 표정이 그제야 좀 풀렸다.
백유현의 말뜻은 바로, 그가 온전한 비행 능력을 얻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각성자라 해도, 비행의 능력까지 불멸자에게서 받은 각성자는 아직까진 없다.
그 중 최초가 바로 백유현.
그는 천금을 주고도 바꾸지 못할 힘을 얻은 것이다.
파아앗-
백유현이 의지를 거두자, 폭풍 날개가 사라졌다.
“강효, 문광. 잘 따라와야겠는데? 잘못하다간 길 잃어버릴 수도 있겠어.”
강효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차사들은 귀문(鬼門)을 통해 움직이옵니다. 소인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그리 크지 않으니 염려 마시옵소서.”
백유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 맞다. 귀문이 있었지. 그런데 강효. 내가 부탁한 것은 어떻게 됐어?”
강효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백유현이 그들에게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망유계의 망자들의 동태였다.
그들은 비단 K-780 터미널에만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백유현의 추측에 강효나 문광 역시 동의를 했었다.
그래서 백유현은 그들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지시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망유계의 망자들의 동태가 파악되면, 지체 없이 보고하라는.
이번 일은 그냥 넘겨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명부(冥府)와의 긴밀한 협조 아래, 망유계의 망자들을 잡아야 했다.
놈들의 강력한 빙의 능력을 감안해 본다면, 더욱 더.
하지만 아직까진 명부의 차사들이 제대로 파악한 정보는 많이 없었다.
아마 정보가 있었더라도, 신중하게 접근하려 할 것이다.
“모든 차사들과 귀졸(鬼卒)들이 사방에 풀려나 놈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이미 대왕께 보고가 되어 있는 몇몇 사안이 있다고 들었사오나, 그 사안들에 대해선 아직 함구령이 풀리지 않아, 소주께도 보고 드리지 못하고 있는 점 용서하시옵소서.”
명부도 상당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그거면 됐다.
“보고가 들어오면 지체 없이 나에게 전달해 줘. 지금은 나 밖에 그 일을 해결할 사람이 없으니까.”
“명을 받잡나이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둘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견마지로의 충(忠)을 다하겠나이다.”
“좋아,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무간이 열리기 전까지 시바가 요구한 제물을 잡으러 가볼까? 이 근처에 가까운 50레벨 대 이상 터미널 있는 것 같던데, 그쪽으로 움직이자고.”
루드라의 폭풍 날개가 있는 이상, 이제 세단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를 수행하는 차사, 강효와 문광 역시 물리적인 이동 수단은 무용지물.
이제는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것이다.
일단 백유현은 시바가 말한 ‘약하지 않은’ 제물들의 하한선이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위해 50레벨 대 터미널을 검색했다.
그리고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K-349 터미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태를 보니, 아직 누구도 공략을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가자. 강효, 문광.”
파앗-
백유현의 몸이 다시금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콰콰콰쾃!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후, 그는 K-349 터미널 앞에 도착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차사 강효와 문광이 안개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그들은 세계 곳곳에 뚫려 있는 무수한 귀문(鬼門)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빠르게 따라올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백유현은 그들을 보며 씩 웃어보이고는 말했다.
“들어가자.”
그들 셋은 터미널 안으로 통하는 균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키에에엑!”
“크에엑!”
그들이 들어서자, 터미널 안의 몬스터들이 발광을 하며 침입자를 경계했다.
백유현이 일부러 자신의 살기를 거두지 않고 오히려 사방으로 퍼뜨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시작해볼까?”
파앗-
백유현이 땅을 거칠게 밟았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속으로 내달렸다.
번쩍-
촤앗-
막야가 몬스터들의 목을 베어내고, 심장을 도려내며 수많은 목숨을 거두었다.
스릉- 촤앗!
그 뒤를 절명이,
콰직! 콰드득!
그리고 그 뒤를 언월도가 따랐다.
차사 두 명이 붙으니까, 사냥속도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빨랐다.
게다가 어차피 여기는 50레벨 사냥터.
느릴 이유가 없었다.
[불멸자, 시바가 제물의 피를 싫어합니다]
[불멸자, 시바가 당신을 못마땅하게 바라봅니다]
그런데 시바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떠올랐다.
어떤 몬스터의 피는 ‘뭐 이 정도는 받아준다’ 라는 식의 반응이었고, 어떤 피는 ‘매우 못마땅하게 당신을 바라 봅니다’ 라는 격한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백유현은 그 반응을 분석했다.
원래 시바의 반응은 매우 단순했기 때문에 분석하는 것도 어렵진 않았다.
그래서 백유현은 오래지 않아 시바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제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대략 60레벨 이상의 몬스터. 그렇다면 시바가 원하는 최하의 몬스터는 60레벨이군.’
[시바가 270 개의 제물의 피에 만족합니다]
백유현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270개 중 200개 이상은 저번에 K-780 터미널을 마무리하면서 올린 개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70개의 제물에 대해서만 시바의 만족을 이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시바의 확고한 기준을 알았으니, 이제 그를 충족시켜주면 될 일이니까.
파가가각-
백유현과 두 차사는 오래지 않아 K-349 터미널의 모든 생명체를 몰살시켰다.
워낙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셋이다 보니, 50레벨대의 몬스터들로서는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균열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이 터미널을 초토화하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10분.
균열 밖으로 걸어 나오는 백유현의 눈에 하나의 창이 떠올라 있었다.
[시바가 320 개의 제물의 피에 만족합니다]
한 터미널에서 120개라. 나쁘지 않다.
‘다음은...’
부산에 내려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잡아둘 생각이었다.
다음은 염라가 내건 또 하나의 포고.
검림마인 중, 척준경을 내주는 조건으로 걸었던 대가였다.
백유현이 그것을 떠올린 이유는 간단했다.
시바의 피의 갈증을 채워주고, 염라의 임무도 동시에 완료시킬 수 있는 좋은 임무였으니까.
게다가 그 부근에는 70레벨 대 터미널인 K-2902 터미널이 있었다.
하지만 산세가 워낙 험준해 그쪽으로는 잘 안 가려고 하기 때문에, 지금도 역시나 비어 있었다.
‘요괴, 요(妖). 다음은 너다.’
다음 타깃은 요괴 요.
바로, 강원도 일대에서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구미호였다.
차를 타면 몇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제 백유현에게는 거리의 문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뒤쪽의 으슥한 야산에 올라가서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쳤다.
파앗-
폭풍 날개가 펼쳐지며, 그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콰콰콰쾃!
그리고 어느새 익숙해진 동작으로 그는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요괴, 요의 위치는 이미 파악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한 줄기 섬광처럼,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
차사들이 보고한 요괴, 요의 마지막 자취를 좇아 강원도에 도착하니, 주변은 매우 음산하고 어두컴컴한 기운으로 짓눌려 있었다.
아무리 깊은 밤중이라 하더라도, 이건 절대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것 봐라?’
하지만 백유현은 그 기운에 전혀 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에 언제 나타났는지, 차사 강효와 문광이 따르고 있었다.
문광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나직하게 내뱉었다.
“여우의 냄새가 진동을 하옵니다.”
“방향은?”
문광이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이옵니다.”
“좋아, 빚지고는 못사니까...얼른 대왕께 진 빚도 갚아야겠지? 서두르자.”
그 때 차사, 강효가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소주, 잠시만 멈추시옵소서.”
“응? 왜 그래?”
차사, 강효가 인상을 찌푸림과 동시에 문광도 인상이 와락 구겨져서 주변을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이 주변...놈들이 있사옵니다.”
“놈? 설마...?”
백유현도 미간을 좁혔다.
이들이 말하는 놈들이란 구미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망유계의 망자들.
바로 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힘은 저번에 조우했던 놈들 이상! 저희가 앞장서겠나이다.”
차사들은 본능적인 직감으로 망자들에 대한 파악까지 완벽하게 마치고는 백유현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저번보다 강한 자들이라고?’
강효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꽤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왜 구미호가 있는 곳에 있단 말인가?
그 역시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도 바로 강효의 경고를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몸을 스치고 흐르는 짙은 안개.
‘지독한 귀기(鬼氣)가 서려 있어!’
백유현은 상대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간파했다.
그들은 조심히 산중의 길을 걸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