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파괴의 신
망자들을 처치하면서 떠오른 정보는 빠짐없이 염라에게 전달이 되고 있었다.
그것들을 종합해보면, 명부(冥府)와는 또 다른 어떤 세계의 망자들이 이쪽에 유입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놈들의 신체적 능력은 인간들보다는 훨씬 강하며, 각성자들 정도라야 대적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
그리고 더욱 문제는, 균열(龜裂)을 통한 침투가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앞으로는 더욱 강력한 존재들이 균열을 통해 등장할 것이라는 것.
도대체 어떤 차원의, 어떤 존재들이 지구상으로 유입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백유현은 자신이 처음에 잡았던 귀신 개들도 그 쪽 차원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명부에서 그를 주목했던 것이었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염라가 다스리는 명부의 근간이 뒤흔들리는 일이었고, 수많은 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이승조차 균열(龜裂)에 의해 침습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들이 직접 계약자를 찾아 나선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어떤 불멸자들도 인간들에게 확실한 대답을 해주지 않고 있었는데, 아마 그들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각성자들은 카오스 터미널이라 불리는 균열 속에서 싸움을 벌였고, 그로 인해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막아야 해!’
망자들을 잡아내면서 그 점은 확실하게 백유현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고 있었다.
절대적인 위험이 곧 닥친다는 것.
염라를 비롯한 불멸자들이 약한 게 아니다.
지금 균열을 이 세계에 박아 넣고 침습하려는 존재들이 강한 것이었다.
그러니 불멸자들도 지금 대응책을 찾기에 부심한 것이다.
“소주!”
그 때, 강효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미 백유현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 있었다.
그의 두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눈앞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망자들이 서 있었던 것이었다.
“드디어 찾았네.”
순간, 백유현은 눈살을 와락 구겼다.
‘한 놈이 없어!’
그의 눈앞에 서 있는 망자는 세 마리 뿐.
한 놈이 없어진 것이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백유현은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어디로!’
한 놈이 어디로 갔을까?
그 때, 백유현은 조셉의 화살표 하나가 뒤로 차츰차츰 옮겨지는 것을 발견했다.
한 놈이 뒤로 빠졌다는 뜻이었다.
그 쪽은...
그 때, 조셉의 스포일러 ‘미래를 쓰는 자’가 떠올랐다.
[한쪽으로 빠진 군장(軍將)의 망령 그라이스는 이니카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뒤에서 맹렬한 싸움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아랑곳없이 거대한 뱀, 이니카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빌어먹을!’
조셉은 경고를 하고 있었다.
뒤로 빠진 놈은 군장(軍將), 즉 대장급의 망령이었는데 놈이 이니카스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세 놈을 베고 달려가야 했다.
하지만 그게 쉬워보이지는 않았다.
‘이 놈들...보통 놈들이 아니야!’
백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 리퍼, 무슨 일이야?
그 때, 백유현이 갑자기 멈춰 서자 뒤에서 무전이 날아들었다.
백유현은 표정을 굳히며 천천히 대답했다.
“더 이상 오지 마세요.”
스릉-
막야가 날카로운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이어졌다.
“위험합니다.”
뒤에서 백유현의 무전을 듣던 박성진이 눈살을 구겼다.
뭔가 일이 있는 게 틀림없는데, 그게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왜 백유현의 표정이 저렇게 잔뜩 굳어 있는 것일까?
“강효.”
“하명하시옵소서.”
“놈들을 벨 수 있겠어?”
그 말에 강효가 잠시 멈칫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서 있는 세 놈은 지금까지의 망자들과는 달리, 비록 다 낡긴 했지만 철갑을 걸치고 있었고 제법 그럴 듯한 대검까지 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중세의 기사들과도 같은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는 놈들이었다.
그런데 순간, 강효가 매서운 눈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차사, 강효. 성심을 다하겠나이다.”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막야를 들고 놈들과 대치하려는 찰나였다.
[불멸자 염라(閻羅)의 권능을 자각했습니다]
[권능, 호령(號令)를 자각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권능의 자각으로, 염라의 권능이 계약자 백유현에게 전이(轉移)되기 시작합니다]
‘권능 자각!’
염라의 권능, 호령(號令)!
왜 이 순간, 갑자기 그의 권능이 전이되기 시작한단 말인가!
그 때, 차사 강효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대왕의 은혜이옵니다. 소주.”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염라의 권능이 전이되기 시작했음을.
[권능 : 호령(號令) 1단계]
[권능의 주인 : 염라(閻羅)]
[염라의 권능 중 하나인 호령은 차사(差使)를 부리는 절대적인 명령이다. 첫 번째 호령이 발동되면, 수행 차사 일 위(位)와 수호 차사 이십 위(位)가 소환된다. 단계가 오를수록 소환되는 차사의 수가 늘어난다. 수행 차사는 단계가 올라도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소환된 수행 차사는 계약자에게 영구적으로 종속되어 임무를 수행한다]
파스스-
그와 동시에 백유현의 주변에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며 검은 그림자들이 불쑥 솟아났다.
그들은 일제히 백유현에게 부복하며 나직하게 외쳤다.
“소주를 뵙사옵니다.”
차사.
백유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는 사이, 강효가 그들 중 하나를 보며 말했다.
“왔는가?”
체구가 당당하고, 다부져 보이는 한 명의 차사.
그를 바라보는 강효의 눈빛에는 이례적으로 친근함이 서려 있었다.
“문광.”
문광이라 불린 차사가 고개를 들며 일어나더니 백유현에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차사, 문광. 대왕의 명을 받잡고 소주를 수행하기 위해 왔사옵니다. 어떤 명이든 내리시옵소서.”
강효가 말했다.
“문광은 바위보다 단단하고, 태풍보다 거세며, 칼날보다 날카로운 자이옵니다. 그의 언월도는 거악(巨惡)을 베어내고, 사특(邪慝)을 멸하며 불의를 흩어내어, 대왕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사옵니다. 소주께 상당한 힘이 되어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수행 차사, 문광.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십위의 수호 차사.
염라의 호령은 매우 시기적절하게 전이가 되었고, 백유현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은 힘이 생겨난 것이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힘을 얻었다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차사, 강효, 차사, 문광! 따라라!”
“존명!”
펄럭-
백유현의 외침에 따라 절명을 든 강효가 오른쪽으로, 언월도를 든 문광이 왼쪽으로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날았다.
그리고 나머지 수호 차사들은 백유현을 호위하듯 그의 뒤쪽으로 쫙 펼쳐졌다.
“가자!”
파아앗-
백유현은 막야를 들고 정면을 향해 내달렸다.
끼이이이-
막야는 소름끼치는 귀신 소리를 울려내며 거칠게 허공을 갈랐다.
카앙-
역시 만만한 놈들은 아니었는지, 망자들 중 하나가 백유현의 검을 받아냈다.
그런데 백유현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꺼져.”
번쩍-
모든 것을 베어내는 일검(一劍), 사휘!
그 광채가 번뜩인 순간, 망자의 목을 스치고 막야의 칼날이 매섭게 솟구쳤다.
푸하악!
철갑으로 둘러싸인 목 부근이 매끈하게 베어져 나가며, 시퍼런 핏물이 뿜어졌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철갑이 사휘의 위력을 상당부분 줄여주었던 것이었다.
그 때였다.
펄럭-
콰직!
어느새 접근했는지, 강효가 번개와 같은 속도로 놈의 목덜미에 절명을 박아 넣었다.
더 이상 보호해줄 철갑이 사라진 놈의 목에 절명이 깊숙하게 파고들자, 망자는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촤앗!
하지만 강효는 틈을 놓치지 않고 절명을 그대로 그어 버렸다.
망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콰앙-
그 순간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휭- 휭-
옆쪽에서 눈이 사납게 찢어진 문광이 언월도를 무자비하게 휘두르며 두 망자와 대결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역시 강효가 말한 대로, 그는 태풍보다 거셌고 바위보다 단단했다.
그 언월도에 실린 힘이 어찌나 강맹했던지, 그 공격을 대검으로 막아낸 망자들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을 정도였다.
마치 과거, 홀로 전장을 휩쓸고 다녔다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를 보는 듯한 강맹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천년거암(千年巨巖)처럼 굳건한 방어가 매우 돋보였다.
말하자면 강력한 칼과 단단한 방패를 동시에 들고 있는 맹장(猛將)의 느낌?
강효가 날카로운 검이라면, 문광은 단단한 방패의 느낌이 훨씬 강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문광이 휘두른 언월도는 두 망자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였고, 두 망자가 문광의 힘을 못 이기고 밀려나는 사이, 강효가 그들의 뒤로 움직였다.
파각-
그리고 한 놈의 가슴팍에 구멍이 뚫렸다.
단단한 철갑이었지만, 절명의 예리함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번쩍-
백유현도 동시에 움직이며, 남은 한 놈의 목덜미에다 사휘를 박아 넣었다.
콰당탕-
파가가각!
그 뒤를 따라, 수호 차사들이 두 망자들에게 무자비한 난도질을 가했다.
한 번 죽음을 내리기로 결정한 이상, 무자비한 죽음을 내리는 염라의 성정을 이어받은 차사들의 행동이었다.
파스스-
그에 따라 두 마리의 망자들이 온 몸에 피 칠갑을 하고는 소멸되었다.
“크워어어-”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서 거대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이 세 망자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용도였을까, 군장 그라이스가 이미 이니카스에게 빙의를 성공한 듯했다.
쿠쿠쿠쿠쿠-
이 거대한 K-780 터미널의 진정한 보스.
이니카스가 두 눈에서 시퍼런 불꽃을 피워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속도는 가히 엄청나서, 순식간에 백유현의 눈앞으로 쇄도해 들어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돌진에 백유현이 채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소주!”
차사, 문광과 강효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고, 수호 차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였다.
“네 상대는 나다!”
콰아앙-
갑자기 누군가 그 사이로 뛰어들더니 거대한 방패를 땅에 꽂아 넣으며 외쳤다.
“와라!”
콰콰콰콰콰쾅!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더니, 엄청난 기파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콰앙-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백유현을 노려보며 달려들던 이니카스가 갑자기 방패를 든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쪽으로 머리를 처박은 것이었다.
와스스스스-
그 엄청난 충격을 막아낸 사내, 박성진이 방패를 들며 나직하게 말했다.
“자, 이제 우리 턴이군. 다들 준비됐나?”
- 라이플, 셋업 완료.
- 소드 맨, 목표물의 왼쪽 옆구리로 접근 중.
- 쉴더, 리퍼를 보호하겠다.
- 에피오네, 코드 원 백업 완료.
역시 알파 팀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박성진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크게 울렸다.
“자, 라이플! 사정 봐주지 마라! 파이어!”
타아아앙-
쐐애애애앳-
파각-
박성진의 공격 명령에, 라이플 천무현이 기다렸다는 듯 방아쇠를 당겼고 한발의 탄환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와 이니카스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크에에에엑!”
퍼퍼퍼퍼퍼펑!
그리고 놈의 머리통 안에서 무수한 폭발이 일어났다.
- 자, 처음 봤는데 인사는 제대로 해야지! 내 헬로우 버스터(Hello burster) 맛이 어때?
천무현이 씩 웃었다.
그런데 이니카스는 그 맹렬한 공격에도 아랑 곳 없이 두 눈에서 시퍼런 불꽃을 피워 올리며 일행들을 노려보더니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덤벼들었다.
"키에에에엑!“
그 모습을 보고 천무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일반적인 놈이었으면 이 한 방으로 죽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역시 강화된 이니카스인지라 쉽지 않았다.
“하, 자식 더럽게 까칠하네.”
철컹-
그는 다시 장전을 하고는 조준경에 눈을 갖다 댔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조준경에 누군가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났던 것이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어쭈, 이 녀석 봐라?”
- 더 리퍼, 목표물 포착 완료.
백유현이었다.
그의 무전이 나직하게 이어졌다.
- 이제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 무전에 박성진이 굵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차피 그 놈, 네 것이었으니까.”
그는 다시 지시를 내렸다.
- 포지션만 잡고 빠져. 이제부터 더 리퍼의 단독 사냥이다.
- 라져!
파앗-
이니카스의 옆쪽으로 접근하던 소드 맨, 김현성도 혹여 있을 이니카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대기하던 쉴더 주세광도, 뒤에서 조준경을 노려보던 천무현도 모두 다 대기 자세로 돌아갔다.
이제부터는 더 리퍼, 백유현의 싸움이었으니까.
진정한 동료라면 그 싸움을 지켜봐주는 것이 도리였다.
“문광!”
“차사, 문광!”
“놈을 막아서라!”
“차사, 문광! 명령을 받잡나이다.”
파앗-
문광이 거대한 언월도를 들고 이니카스 앞을 가로막았다.
콰아앙-
콰콰콰콰쾃!
미친 듯 달려들던 이니카스와 문광이 정면충돌했다.
엄청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문광의 발이 땅을 깊숙하게 파고들며 뒤로 계속해서 밀려났다.
“끄어어어어!”
하지만 문광은 이마에서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끌어내며 이니카스의 가공할 힘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 때, 백유현과 강효가 양쪽으로 갈라져 이니카스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파아앗-
스스스-
십 위(位)의 차사들 역시 백유현을 빈틈없이 호위하며 그 뒤를 따랐다.
백유현은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이니카스의 머리통을 바라보며 두 눈을 번뜩였다.
문광이 만들어준 이 기회를 놓칠 생각 따윈 없었다.
‘한 번에...’
끼이이이-
그가 쥐고 있는 막야가 귀신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승부를 본다!’
그리고 백유현은 한 순간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죽어엇!”
번쩍-
콰콰콰쾃!
혼신의 힘을 다한 사휘(死輝)가 번뜩였다.
그리고...
기이이이-
절명(絶命)이 사납게 포효하며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어둠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절명의 봉인이 해제되며 나타나는 기현상.
즉, 절명-극(極)이 발동된 것이었다.
‘이 몸의 모든 힘을 다하여...’
차사, 강효의 두 눈 또한 번뜩였다.
‘소주의 앞을 가로막은 모든 것을 베어내겠나이다!’
파칫-
촤앗!
그리고 허공에서 백유현과 강효가 서로 스쳐 지나가며 자리를 바꿨다.
백유현의 막야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강효의 절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파각- 촤앗!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십 위(位)의 차사들 또한 이니카스의 비늘 위로 검을 찔러 넣으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쩌저적-
그 순간, 이니카스의 머리통을 가득 덮고 있던 강철 비늘들 사이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쇳덩어리가 쪼개지는 듯.
백유현과 강효는 뒤를 돌아 그쪽을 바라보았다.
“키에에에엑!”
이니카스의 두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뿜어지며 놈은 더욱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푸하아악!
갑자기 놈의 머리통이 쪼개져 나가며, 엄청난 핏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백유현의 사휘가 가르고 지나간 자리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시 다른 곳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크에에엑!”
이니카스는 고통에 못 이겨 마구 몸부림쳤다.
콰쾅! 쾅!
워낙 거대한 몸집의 몬스터인지라, 주변이 지진이라도 난 듯 온통 뒤흔들렸다.
철컹-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백유현은 막야를 칼집에 집어넣었다.
이미 사휘는 놈의 두개골을 쪼개고, 뇌를 베어냈다.
그것은 백유현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아앗!”
그 순간, 문광이 거대한 외침을 내지르며 언월도를 높이 치켜들더니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쾅!
그 한 방에, 미친 듯 몸부림치던 이니카스의 몸이 한 차례 크게 경직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놈의 몸이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콰당탕!
K-780 터미널의 절대적인 왕, 이니카스가 쓰러졌다.
저벅, 저벅.
백유현은 그 앞으로 다가갔다.
문광이 마지막에 언월도를 내리찍은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뚝- 뚝-
그의 언월도 끝에 망자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이니카스에 빙의해 있던 군장, 그라이스였다.
이니카스가 위기에 처하자, 도망가려다 문광에게 딱 걸린 것이었다.
백유현은 그 앞으로 가더니 차갑게 놈을 노려보았다.
임무의 마지막이었다.
군장, 그라이스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백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가라.”
촤앙-
막야가 다시금 핏물을 뿌렸다.
파스스-
군장, 그라이스는 두 팔을 허우적대더니 그대로 허공에 녹아 들어갔다.
[남은 이세계의 죄인 0/556]
[남은 시간 00:55:02]
임무가 완료되었다.
염라의 임무도, 불멸의 수행자의 임무도.
그리고 창이 떠올랐다.
[불멸의 수행자가 당신과 계약을 맺고자 합니다. 응하시겠습니까?]
백유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파격적인 상황이었다.
단 한 번의 임무로 계약을 제의하다니.
불멸자의 성격에 따라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희귀한 일이었다.
상당수의 불멸자들은 보통 계약자들을 몇 번의 시험하는 과정을 거쳐서 계약을 진행하니까.
그런데 바로 계약을 하자는 것은 두 가지.
백유현이 엄청 맘에 들었거나, 아니면 불멸자의 성정이 엄청나게 급하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어쨌든 백유현으로서는 이 계약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불멸의 수행자와의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불멸의 수행자가 현현(顯現)합니다]
현현(顯現)!
이 불멸자는 너무도 특이했다.
계약을 했다고 바로 이 세계에 현현할 정도라니!
그것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강력한 권능을 지닌 불멸자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현하고 있는 불멸자를 바라보던 백유현은 경악했다.
이건...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말도 안 돼!’
그 뿐만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던 알파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도대체!
쿠쿠쿠쿠쿠-
마치 천지가 개벽이라도 하는 듯, 주변이 미친 듯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그것을 느낄 수조차 없었다.
지금 주변을 모두 압도하며 나타나고 있는 존재...그는...!
파아앗-
거대한 한 마리의 황소를 타고 있는 한 사내.
그리고 짙푸른 피부색에 고행자의 복색을 하고, 머리에는 초승달을 달고 있는 존재.
그는 분노한 두 눈을 들며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 이 세계의 파괴는 오로지 나의 손에 의해서만 이뤄질 것이다. 다른 이의 간섭은 용납지 않을 것이니, 계약자는 고개를 들어 나의 힘을 받으라!
극도로 분노한 얼굴의 그는 바로...
‘파괴신 시바...’
파괴신 시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정립한다는 극강의 불멸자.
그가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