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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드 맨! 리퍼 뒤!
코드 원, 박성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드 맨, 김현성이 백유현의 뒤쪽에서 나타나더니 그에게 달려들던 몬스터들을 베어냈다.
- 처치 완료. 리퍼는 계속 가라!
- 리퍼, 임무 완료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역시 다들 노련한 각성자들인지라, 백유현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가 지금 시간에 쫓기고 있을 것이라는 것과, 자신들이 모르는 어떤 특수한 임무를 수행 중이라는 것을.
아무리 봐도, 백유현이 검을 휘두르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뭔가 끔찍한 비명 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가 싶더니, 백유현은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와 계약했다는 염라의 임무인 듯, 자신들은 모르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세상에는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나는 법.
그것을 다 따져들면 한도 끝도 없다.
차라리 지금처럼, 백유현이 자신의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그들이 알고 있는 백유현의 성격 상, 저렇게 뭔가에 쫓기듯 서두르는 것을 보면 아마 타임 어택(Time Attack)이 걸려 있거나, 매우 중요한 임무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박성진의 물음에 백유현은 흘끗 상태 창을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앞으로 3시간 7분 24초 남았습니다.”
- 처치해야 할 목표물은?
“172 마리...하지만 점점 수가 줄어 찾기가 힘듭니다.”
-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나?
백유현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대답했다.
지금, 팀원들에게는 모든 것이 솔직해야 했다.
아니면 타임 어택이 실패할 수도 있었다.
물론 3시간은 절대 짧은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이 K-780 터미널은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었고, 가장 문제는 조셉의 스포일러는 ‘빙의되지 않은’ 망자들에게만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
불멸의 수행자가 내건 임무를 완료하려면, 이미 빙의되어 있는 몬스터들도 처치해서 그 안의 망자들도 제거해야 한다.
“빙의된 몬스터들을 찾아야 합니다.”
- 빙의(憑依)? 그렇다면 지금 너는 귀신을 잡고 있다는 얘기야?
“네. 저에게는 귀신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몬스터들에게 빙의한 귀신들도 잡아내야 하는데, 놈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그래? 언뜻 이해는 가지 않지만 그건 차차 듣기로 하고...일단 네 말대로라면, 이곳에 빙의된 몬스터들이 있다는 뜻인데...그럼 혹시 아까 보였던 그런 놈들인 건가? 두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뿜어지던 놈들 말이야.
맞다.
이번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망자들에게 빙의를 당하면, 바로 그런 특징이 생겨난다.
물론 보통 악령들에게 빙의되어도 눈빛이 달라지지만, 시퍼렇게 광채를 뿜어내고 그렇진 않다. 유독 이번의 망자들에게 빙의가 되면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몬스터들을 알파 팀이 처치해주면, 강효가 그 안의 망자들을 끄집어내서 목을 베었다. 그래서 백유현은 놈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다른 놈들을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 맞습니다. 코드 원.
- 좋아, 그런 거라면 맡겨! 라이플, 들었나?
- 라져! 그거면 이쪽 전문이죠. 후후!
그리고 뒤쪽에 있던 라이플, 천무현이 갑자기 하늘에 대고 라이플을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쳐 올라간 탄환은 바로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한 발의 조명탄.
그런데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퍼퍼퍼펑!
하늘 높이 치솟은 조명탄의 불빛이 갑자기 수백, 수천 개로 쪼개지더니 사방으로 뻗어나간 것이었다.
- 아가스의 아흔아홉마리의 사냥개, 발동 완료!
아가스는 천무현과 계약한 인도의 신, 아르주나가 거느렸던 종자(從者)다.
인도 설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아가스는, 아르주나가 천무현과 계약하면서 권능 이전을 통해 종속시킨 자로서, 그는 아흔아홉마리의 사냥개를 끌고 다니면서 아르주나의 사냥감을 탐색하고, 또한 추적했다고 전해졌다.
지금 발동된 것이, 목표 추적술 중에서 최상위권의 권능에 속한다는 천무현의 권능이었다.
설정된 특색 하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추적하는 아흔아홉마리의 사냥개 하나면, 빙의된 몬스터들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 라이플, 위치 추적 유지하고! 어차피 리퍼가 없으면 놈들을 베어내는 것은 무의미하니, 쉴더, 네가 가서 몰아와! 라이플과의 지정 교신 유지하고!
- 오케이, 쉴더 명령 접수 완료! 이탈합니다!
- 에피오네, 네 포지션은?
에피오네.
즉, 힐러인 김수향에게 물은 것이었다.
박성진의 말에 김수향의 대답이 들려왔다.
- 안 그래도 쉴더와 코드 원 중간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어느 쪽이든 즉각 치유 지원 가능합니다.
- 좋아. 리퍼!
이번엔 다시 백유현을 부른 박성진이었다.
“예. 코드 원.”
- 마음껏 달려. 다른 건 우리가 한다. 넌 네 할 일을 해.
든든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각성자들이 백유현의 등 뒤를 봐주고 있다.
백유현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좋다.
이거면 할 수 있다.
- 알겠습니다!
파가각!
그리고 그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 그는 허공을 가르며 망자들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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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세계의 죄인 98/556]
[남은 시간 02:02:16]
팀의 도움으로, 그리고 조셉의 극한에 다다른 스포일러로 백유현은 불멸의 수행자의 임무를 계속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극심한 피로가 찾아들고 있었다.
무간 지옥에서는 무혼단을 먹으면서 싸웠기에 피로를 느끼는 간격이 매우 길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내달렸고, 또한 있는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약한 지구력을 무혼단으로 커버하던 백유현이었기에, 수많은 적을 베어낸 지금은 온 몸의 근육이 뒤틀리는 듯 고통이 느껴졌고, 극심한 피로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성진이 갑자기 무전을 날렸다.
- 에피오네!
- 에피오네 대기중.
- 각성 치유 몇 번 남았어?
쌓인 피로도를 경감해주고, 근력과 집중력을 강화시켜주는 고급 치유 능력인 각성 치유.
에피오네를 계약자로 둔 김수향은 그 각성 치유를 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각성자였다.
하지만 각성 치유는 상당한 재사용 대기 시간을 가졌고, 그 게이지가 차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 열 두 시간 내로 세 번 남았어요.
박성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충분해. 리퍼에게 한 방 놔줘! 녀석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 오케이! 리퍼에게 접근합니다.
각성 치유를 지금 백유현에게 쓴다는 것은 박성진으로서도, 김수향으로서도 큰 결심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
백유현이 아니고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한 몬스터들에게 빙의를 서슴없이 행하는 망자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그렇다는 얘기는, 자신들에게도 충분히 빙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건 자신들이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백유현을 믿는 수밖에.
파앗-
어느새 백유현에게 접근한 에피오네, 김수향이 각성 치유를 그에게 걸어주었다.
“흐윽!”
백유현은 순간적으로 몸을 떨더니 이내 표정이 평온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극도의 피로감이 쌓여 있던 그의 얼굴이 어느새 차분해졌고, 힘이 빠져 보이던 발걸음에도 힘이 실렸다.
[각성 치유를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세 시간 동안 집중력과 지구력이 크게 올라,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근력이 15 퍼센트 강화되며, 받는 충격량이 다소 감소됩니다.]
‘후우...!’
백유현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차분하게 내쉬었다.
좋다. 이 정도면.
김수향이 싱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힘내. 우리 꼬맹이!”
백유현이 쓴 웃음을 지었다.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김수향의 각성 치유는 가히 무혼단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자, 다시 시작해볼까?’
전방을 노려보는 백유현의 두 눈이 매서운 빛을 발했다.
조셉의 화살표는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남은 이세계의 죄인 87/556]
[남은 시간 01:48:16]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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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현과 알파 팀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였다.
백유현이 달리면 알파 팀도 달렸고, 백유현이 서면 알파 팀도 섰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의 가장 큰 포인트는 바로 백유현을 어떤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을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백유현의 임무 수행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남은 이세계의 죄인 67/556]
[남은 시간 01:27:16]
사실 망자들을 찾아 소멸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놈들을 찾아 달리는 시간이었다.
K-780 터미널의 내부가 너무 넓은 관계로 놈들을 찾아 달리는 시간조차 상당히 소모가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조셉의 스포일러와, 천무현의 권능으로 찾아낸 망자들은 상당한 거리에 서로 떨어져 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빨리 잡는다 해도, 이동하는 거리가 있는 이상 타임 어택이 실패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둬야했다.
그 때였다.
-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도착했어요! 하하하!
무전을 통해 쉴더, 주세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몬스터들을 잔뜩 몰아왔을 때 그가 내는 특유의 목소리였다.
박성진이 씩 웃었다.
- 라이플, 할 일이 생겼다. 그리고 리퍼. 너도.
- 이거, 쉴더가 엄청난 일을 해냈는데요? 한 마리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몰아왔네요. 크크크!
한 동안 쉴더, 주세광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라이플, 천무현과 교신을 하면서 몬스터들을 죄다 쓸어온 모양이었다.
- 아, 근데 빙의되지 않은 놈들도 좀 섞여 있다! 어쩌다 보니! 푸하하!
주세광이 웃음을 터뜨렸고, 나머지 팀원들도 피식 웃었다.
그게 뭐가 대수겠는가?
다 쓸어 버리면 될 일인데.
- 자, 라이플. 준비해.
- 라져. 한 방에 다 날려드리죠.
끼릭-
자리를 잡은 라이플, 천무현이 조준경에 눈을 갖다댔다.
그리고 방아쇠가 당겨졌다.
콰아앙-
이번에는 마치 대구경 저격총으로 사격을 하면 나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천무현이 제대로 마음을 먹었다는 얘기다.
쐐애애애앳-
콰콰콰콰쾃!
엄청난 속도로 하늘 높이 솟구친 탄환이 수도 없이 쪼개지면서 보랏빛 불꽃으로 불타올랐다.
천무현이 그것을 보며 씩 웃었다.
“자, 즐겨들 보라고. 광기의 파티를.”
바이올렛 뱅큇(Violet banquet).
말 그대로 보랏빛 광기로 물든 연회가 개최되려는 찰나였다.
콰콰콰쾅!
그 보랏빛 불꽃들은 불길한 죽음을 담고 땅 위로 쏟아져 내렸다.
“크웨에에엑!”
“쿠에엑!”
쉴더, 주세광이 몰아온 수많은 몬스터들이 그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 발작을 해도, 마구 뛰어다녀도 광기의 파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놈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무시무시한 공격이 펼쳐진 것이었다.
파앗-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불꽃 위로 솟구친 한 사람이 있었다.
한쪽 손에는 사나운 귀기를 뿜어내는 검을 들고, 두 눈에서는 짙은 살의를 가득 품은 소년.
“죄다 죽어버려.”
번쩍-
소년의 흰 이가 드러난 것과 동시에, 허공에서는 수백 갈래의 검은 광채가 번뜩였다.
일몰(日沒).
그 가공할 죽음의 검은 죽어가는 몬스터들에게서 벗어나려던 수많은 망자들을 모조리 쪼개 놓았다.
“크아아아-”
“흐어어-”
수많은 망자들이 온 몸에 베여 나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척-
땅에 내려선 백유현의 두 눈이 묘한 빛을 발했다.
[남은 이세계의 죄인 4/556]
[남은 시간 01:22:16]
남은 망자 네 마리.
그리고 백유현의 눈앞에는 조셉이 시공간에 각인시켜 놓은 네 개의 화살표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화살표는 모두 똑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놈들이 같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파앗-
백유현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놈들 중 하나가 아마, 이니카스에게 빙의할 것이다.
그 전에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