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불멸의 수행자
화살표는 계속해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백유현은 어느 순간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강효를 돌아보며 물었다.
“강효, 느껴져?”
강효 역시 주변을 살피며 대답했다.
그의 표정 역시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아마 영기(靈氣)를 느낄 수 있는 차사이니만큼, 그 정도가 더욱 큰 듯했다.
“소주, 위험한 기척이 느껴지옵니다. 주의하시는 것이...”
백유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느낌은 지옥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 훨씬 강했고, 훨씬 음울했다.
‘강해...!’
본능적으로 위협감이 들 정도다.
백유현은 주변을 살피며 화살표를 따라갔다.
아마 조셉도 죽을힘을 다해 화살표를 새겨 넣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남겨 놓고 온 일행이 걱정되긴 했지만, 조셉이 몇 시간은 별 일 없을 것이라고 했으니 믿고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언제든 호출할 수 있도록 무전기도 점검해두었다.
어쨌든 지금은 혼자 움직이는 것이 맞았다.
영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백유현 혼자였고, 놈들을 제거할 수 있는 것도 그 혼자였으니까.
다른 팀원들이 와도 할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망자들에게 빙의된 몬스터들은 지금 조셉이 요령껏 피해가게 화살표로 표시해두고 있었으니, 몬스터들과 조우할 일도 없었다.
“가자. 강효.”
파앗-
백유현은 다시 앞서 나갔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걸음을 우뚝 멈췄다.
스릉-
그 순간 차사, 강효가 절명을 빼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주.”
“괜찮아. 강효.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백유현이 강효를 부드럽게 밀어내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한 마디 내뱉었다.
“재미있는 놈들이네?”
그의 눈앞에는 수십 위(位)의 망자들이 서 있었다.
그런데 보통 망자와는 전혀 달랐다.
보통의 망자라면 벌써 차사를 보고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모습도 다르다.
뭔가 더욱 기이한 느낌.
두 눈에서 시퍼런 광망을 뿜어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놈들은 백유현이 보아왔던 그 어떤 귀신과도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놈들도 백유현과 강효의 힘을 알아차렸는지 바로 들어오진 않고 있었다.
“역시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로구나.”
그들을 가만히 살피던 차사, 강효가 나직하게 내뱉었다.
명부(冥府)의 존재인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하게 보통 망자는 아니었다.
“강효, 저 놈들을 알아?”
강효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말했다.
“몇 달 전, 명부에 갑작스런 균열(龜裂)이 일어난 적이 있사온데, 그 당시 몇몇 이질적인 망자들의 혼이 발견되었사옵니다. 그들은 검림마인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때문에 수많은 차사들이 소멸되었었지요. 대왕께서는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시려 애를 쓰셨으나, 결국 그에 실패하고 그들을 소멸시키는데 만족하셨어야 했사옵니다.”
“음...그 때 나타난 놈들이 저 놈들이다?”
“맞사옵니다. 저들의 등장은 균열의 등장과도 맥을 같이 하옵니다. 이승에서 저들과 같은 형태를 한 자들에게 죽임을 당한 망자들의 탄원이 염라청을 가득 메운 적이 있었사옵니다. 하여 대왕께서 소주를 특사(特使)로 지명하시게 된 것이옵니다.”
염라가 자신에게 임무를 주고, 계약을 한 이면에 이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놈들을 잡아야 하는 거고.”
명부의 법도를 어기고 다니는 괴이한 망자들.
이미 명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놈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명부를 넘어서, 이승에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 때, 백유현의 눈앞에 갑자기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불멸의 수행자가 당신에게 높은 관심을 보입니다]
‘음? 불멸의 수행자라니?’
이 상황에서 갑자기 떠오른 누군가의 주시.
이미 불멸자 둘과 계약을 맺긴 했지만, 불멸자 셋과 계약을 맺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물론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하겠지만.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 벌어졌다.
[불멸의 수행자가 당신에게 임무를 주려 합니다]
[??? : 이세계의 죄인(罪人)들을 몰살시켜라]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7 포인트, 불멸의 수행자와의 친밀도 20, 귀안인(鬼眼印)의 술식]
[불멸의 수행자가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다섯 시간입니다]
[임무 정보 : 창조의 순간부터 수행을 시작한 불멸의 수행자가 당신을 매우 관심 있게 보고 있다. 그는 이세계의 존재를 매우 싫어하여, 그들의 존재를 몰살시켜 주길 원한다. K-780 터미널의 모든 이세계의 죄인을 소멸시켜라]
정말 의외의 경우였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불멸자 다섯과도 계약을 맺은 각성자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그 불멸자들이 낮은 티어였을 경우였다.
그런데 지금 불멸자가 내건 보상을 보니 꽤 높은 티어에 속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그가 갑자기 백유현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기이한 보상을 내걸고 있었다.
높은 신체 능력치와, 친밀도 그리고 귀안인.
‘귀안인이 뭐지?’
백유현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는 다시 다른 생각에 빠졌다.
문제는 계약의 조건.
불멸자들이 몇 명이든, 그들과 계약을 맺는 조건에는 제한이 없다.
능력만 되면 백 명의 불멸자와 계약을 맺어도 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철저하게 따른다.
즉 불멸자가 의뢰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거나하면 계약이 파기 되며, 그에 대한 부작용이 따르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각성자 발생 초기에는 욕심껏 불멸자들과 계약을 했다가 사달이 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수명이 줄기도 하고, 능력치가 크게 하락하기도 하는 등, 부작용이 상당히 따랐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조셉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스포일러를 쓰느라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계약, 하세요. 오직 당신만이 계약할 수 있는 불멸자니까.”
“뭐라고?”
“그 자는...엄마와...중요한...그러니까...”
조셉이 뭐라고 하는 듯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목소리가 끊어져 들려왔다.
“조셉!”
그러다 조셉이 다시 사라졌다.
사실 불멸자가 현세에 현현(顯現)하는 것도 상당한 힘을 써야 하는 일.
극에 달한 스포일러를 쓰느라 조셉은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백유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셉이 저토록 확실하게 말할 정도면, 놓쳐서는 안 될 듯했다.
그리고 조셉의 말 중에 들려왔던 ‘엄마’라는 단어가 묘하게 걸렸다.
아무래도 엄마와도 관련이 되어 있는 불멸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임무를 받아들입니다]
[남은 이세계의 죄인 556/556]
[남은 시간 05:00:00]
결국 임무를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이젠 남은 것은...
스릉-
백유현은 막야를 꺼내 들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짙은 살기가 폭사되어 나오고 있었다.
“더더욱 너희들을 살려두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겼네.”
파앗-
그와 동시에 백유현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의 두 눈빛이 싸늘하게 내리꽂혔다.
“죽어.”
파각!
막야가 허공을 갈랐다.
푸른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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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컹-
이세계의 죄인이라 불리는 망자들을 다 잡아낸 백유현은 막야를 다시 칼집에 꽂아 넣었다.
놈들의 피는 푸른 색.
그렇다는 것은 확실하게 놈들은 이쪽 세계의 존재들이 아니었다.
파앗-
그리고 놈들을 해치우자, 하나의 창이 떴다.
[정체불명의 망자들의 대한 단서를 입수하였습니다]
[...그들이 살던 세계는...모든 혼돈(混沌)과 악(惡), 어둠이 모여 있는 세계. 그곳은...오로지 살육(殺戮)만이 존재하는...]
[불멸자 염라에게 입수한 정보를 전달합니다]
정체불명의 망자들을 해치우면 입수된 정보가 자동으로 염라에게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남은 이세계의 죄인 502/556]
[남은 시간 04:52:18]
아직 잡아야 할 죄인들이 502 마리나 남았다.
염라의 포고와 겹쳐 있는 임무.
백유현으로서는 일석이조의 임무였지만, 이쪽은 시간이 부족했다.
그만큼 K-780 던전은 엄청나게 넓었고, 놈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조셉의 권능이 있었다.
세 불멸자의 공통된 목표.
백유현은 그곳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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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캉-
불꽃이 튄다.
번쩍-
그리고 검은 광채가 허공에서 번뜩였다.
촤앗!
사휘가 스치고 지나간 영체 하나가 그대로 소멸했다.
“하아앗!”
하지만 백유현은 틈을 주지 않고 사방에 우글거리는 놈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슈아아앗-
번쩍-
콰콰콰콰쾃!
다음 순간, 그 안에서 수십 개의 검은 광채가 폭사되어 나왔다.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사신의 광휘.
일몰에 휩쓸린 영체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모조리 소멸되었다.
촤앗-
그리고 그 가공할 기세에 눌려 뒤로 물러서는 놈들 뒤로 검은 그림자가 흐릿하게 나타나더니, 놈들의 목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절명(絶命).
숨통을 끊는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절명은 영체들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았다.
“좋았어, 강효!”
앞에서는 백유현이, 뒤에서는 강효가 숨통을 조여오는 바람에 영체들은 도망가지도 못하고 소멸을 맞이해야 했다.
막야를 피하면 절명이, 절명을 피하면 막야가 그들을 베어냈고, 또 베어냈다.
그 순간에도 카운트는 계속 되고 있었다.
[남은 이세계의 죄인 375/556]
[남은 시간 04:12:18]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크와아아악!”
“쿠웨에엑!”
이미 몬스터들에 빙의한 망자들.
놈들이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망자들만 처치하면 될 거라 생각해서 그냥 왔지만, 이제는 망자의 빙의된 몬스터들을 처단해야 한다.
그럼 처음 계획과 상당히 틀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 컸다.
백유현이 쓰게 입맛을 다셨을 때였다.
타아아앙-
콰콰콰콰쾅!
저 멀리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불벼락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웨에엑!”
“키에엑!”
불벼락은 정확하게 백유현에게 달려들던 몬스터들에게 적중했다.
놈들은 이글거리는 불길에 녹아들어가며 발버둥을 쳤지만, 더 이상 전진하지는 못했다.
- 헤이, 더 리퍼. 우리 몰래 어딜 간 거야? 걱정했잖아.
- 리퍼, 괜찮아? 누나가 호 해줄까?
- 감당 안 되겠으면 뒤로 와라. 이 형님이 지켜줄 테니.
그리고...
“놈들은 내게 맡기고 네 할 일 해라. 아마도 우리가 돕지 못할 어떤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소드 맨, 김현성.
그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백유현은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김현성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어서 가. 우리도 뒤따를 테니.”
“예, 선배님!”
든든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팀, 치우의 알파 팀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파앗-
그리고 백유현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 라이플, 리퍼 왼쪽 다 날려 버려!
- 라져 댓!
콰콰콰콰쾅!
백유현에게 접근하는 모든 몬스터들은 모조리 처단당하고 있었다.
파가각!
덕분에 백유현은 아무 걱정 없이 자신의 앞에 있는 영체들만을 베어내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치우의 알파 팀.
그들의 사냥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