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정체불명의 망자들
알파 팀은 계속해서 터미널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런데 K-780 터미널 자체가 애초에 초거대형으로 분류될 정도로 거대한 곳이었고, 안쪽으로 갈수록 강화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와서 전진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캠프를 꾸리자.”
하지만 이런 일은 각성자들에게는 빈번한 일이었다.
어차피 박성진도 하루 안에 K-780 터미널을 클리어할 생각은 없었다.
“무현이는 감시자 세워놓고, 세광이도 감지 토기인(土器人)을 박아 놔. 언제 몬스터들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천무현의 권능, 쉬지 않는 파수꾼이 발동이 되었고, 주세광의 특수 아이템 감지 토기인도 사방에 꼼꼼하게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열 시간 동안 감시자 다섯 기와, 작은 토기 인형 스무 개가 주변을 완벽하게 감지하여 위험이 발생할 시, 바로 경고를 해줄 것이다.
역시 알파 팀다웠다.
이렇게 되면 모든 팀원이 걱정 없이 쉴 수 있게 되니까.
“일단 눈 좀 붙여두자고. 포지션에 대한 완벽한 적응 훈련은 내일 다시 하도록 하고.”
박성진의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무기를 품에 안고, 바로 눕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기대어 자면서 일이 벌어지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했다.
모든 일에 완벽함을 기하는 노련함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유현이, 너도 좀 자둬. 피로를 풀어둬야 내일도 싸울 수 있어.”
“네.”
주세광의 말에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역시도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간 지옥에서는 호정단이나 무혼단의 효과 덕택에 피로감이 쌓이는 것을 해소할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쿠웅-
그 때 저 멀리서 둔중한 폭발음과 함께, 지면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팀원들은 심각하게 생각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애프터 쇼크(Aftershocks)인가? 역시 더블 카오스라 쉽게 끝나질 않는구먼.”
쉽게 말하면 거대한 지진이 한 번 발생했는데, 그 진동파가 계속 남아 여진(餘震)이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초거대 터미널 자체가 뒤바뀔 정도로 큰 충격이 발생한 만큼, 애프터 쇼크가 발생할 확률도 매우 높았다.
“잠들 자자고.”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번 쇼크가 발생한 곳에 또 한 번의 쇼크가 발생하는 경우는 아예 보고된 적이 없었다.
그러니 팀원들은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눈을 붙였다.
백유현도 나무 등걸에 기대 가만히 눈을 붙였다.
그러다 갑자기 기이한 느낌이 들어 눈을 번쩍 뜨니, 팀원들은 다 잠에 빠져 있었고 강효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아 백유현은 물었다.
“강효, 무슨 일이야?”
“소주...명부(冥府)에서 연통이 왔사온데...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옵니다.”
“기이한 일?”
백유현은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말이야? 기이한 일이라니.”
“생사부(生死簿)에 적히지 않은 망자들이 출몰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뭐?”
생사부에 적히지 않은 망자들이 출현했다는 말에 백유현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생사부에 그 생(生)과 몰(歿)이 적혀 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염라가 있는 이상, 그리고 지옥이 있는 이상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생사부에 적히지 않은 망자들이 출현하고 있다?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차사, 강효는 어딘가를 바라보며 심각하게 입을 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그 망자의 무리가 이곳에도 있다는 하급 차사들의 보고이옵니다.”
백유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곳에?”
강효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주. 아무래도 아까의 폭발에 경계가 무너지면서 유입된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허나 더욱 문제는...”
강효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놈들이 이 안의 괴수들에게 빙의(憑依)를 시작한 것 같다는 보고가...”
“설마!”
백유현이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생각만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기에, 주변의 팀원들에게는 별 영향이 없었다.
차사, 강효가 팀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놔뒀다간,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무리들을 만날 수도 있을 듯하옵니다. 게다가 소주께서 노리시는 그 괴수에게도 빙의가 시작되면 아마...”
“역시...그래서였군요. 당신이 이길 수 없는 미래가 계속 보였던 것이.”
그 때, 조셉이 백유현의 옆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도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무슨 말이야, 조셉?”
백유현의 말에 조셉이 말을 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선행(先行)하는 능력에 조금씩 차질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니, 결과는 맞는데 과정이 보이질 않는다고 해야 하나? 터미널 쇼크나 더블 카오스 같은, 균열이 일어날 때마다 그런 일이 반복되어 왔지요.”
조셉의 말에 백유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였을까?
저번에 조셉이 스페셜 퀘스트를 줬을 때도 그의 표정은 뭔가 불안해 보였었다.
“저번에 말씀드렸죠? 유현 군이 무간에 갔다 온 변수까지 계산했어도 계속해서 이니카스를 이기지 못하는 미래가 보였다는 거...사실 그 때도 결과만 보였지, 그 과정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런 현상이라면 그게 설명이 될 수도...”
백유현은 침묵을 지켰다.
만약, 이니카스에게 또 다른 강력한 존재가 빙의를 한다면?
그건 그냥 이니카스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저번에 자이언트 스콜피온에 망령, 도수가 빙의한 것처럼 이니카스는 훨씬 강하고 사납게 변모할 테니까.
그런데 더욱 큰 문제가 있었다.
백유현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는 건...나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잖아.”
어디의 존재인지 모르는 망자들의 영체(靈體)들이 몬스터들에게 빙의를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망자들의 영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백유현 하나 뿐.
내로라하는 알파 팀이었지만, 영체를 볼 수 없는 이상 대응할 방법도 제한적이다.
“소주, 대왕의 전서(傳書)가 도착했사옵니다.”
염라의 전서.
즉, 임무다.
백유현은 서둘러 전서를 건네받았다.
[특별 포고(布告)]
[염라(閻羅) : 생사부에 적히지 않은 망자들의 출현이 감지되었다. 명부의 차사들이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으나, 지금까지 얻은 정보는 단 하나. 균열(龜裂)과 관련이 있다는 것 뿐. 허나, 놈들이 이승과 명부에 미칠 영향력이 대단히 클 것으로 판단되는 바, 놈들을 잡아 정보를 수집하라!]
[임무 완료 조건 : K-780 터미널에 출몰한 정체불명 망자들을 처치하여 유의미한 정보를 수집]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5 포인트, 염라와의 친밀도 30]
[염라가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임무 정보 : 생사부에 적히지 않은 망자들이 준동하고 있다. 이들을 잡아 차사들에게 인계하면 정보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명부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파악할 때까지 정체불명의 망자들을 잡아서 인계하자]
‘후우...’
그 어느 때보다 백유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염라조차도 상황을 모르고 있는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백유현은 순간적으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걱정만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드러난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망자들이 몬스터에 빙의하기 시작했다면 큰일이다.
놈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조셉이 의뢰한 스페셜 퀘스트를 완수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백유현은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을 데려갈 수는 없다.
망자들의 영체도 보이지 않는데 데려가봐야 무용지물.
백유현에게는 더 좋은 생각이 있었다.
“조셉.”
“네, 유현군.”
“힘 좀 써줘야겠어.”
캄캄한 밤길에서 그래도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손에 들려 있는 하나의 등불이 있기 때문이다. 백유현은 조셉에게 그 등불이 되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조셉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어차피 제 목숨도 달린 일이니...”
그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제 인생 최고의 ‘미래를 쓰는 자’를 준비하도록 하죠.”
“좋아. 내가 원하는 건...”
“아직 빙의하지 않은 망자들. 접수했어요.”
역시 조셉은 바로 말을 알아들었다.
지금 백유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빙의한 몬스터들을 잡는 것이 아니었다.
빙의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망자들을 잡아내야 했다.
특히, 이니카스에게 빙의할 것으로 예상되는 놈 또한.
그리고 조셉이 미래를 알려주면, 괜히 쓸 데 없는 싸움을 피해 망령들만 잡을 수 있다.
백유현의 생각을 완벽하게 읽은 조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셉의 마법, 미래를 쓰는 자. 준비 완료.”
그의 말에 백유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괜찮겠지?"
조셉 또한 알파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몇 시간은 괜찮을 겁니다."
"그래, 그럼..."
백유현은 강효 쪽을 돌아보았다.
“강효.”
“차사, 강효. 명을 받잡나이다.”
“가자.”
“앞장서겠나이다. 소주.”
차사, 강효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앞장섰고 백유현이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파앗-
그리고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화살표가 떴다.
캄캄한 밤길, 홀로 의지되는 하나의 등불.
조셉의 스포일러가 발동한 것이다.
파스스-
그 화살표를 따라, 백유현은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퀴퀴한 어둠이 그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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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현은 오늘도 땀을 내려 주변을 뛰고 있었다.
그녀는 올해 스물여섯의 각성자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
6등급의 불멸자와 계약했다는 열등감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헉, 헉!’
스마트 와치를 보니, 벌써 50 킬로미터를 뛰었다.
보통 사람이면 벌써 혀를 빼물고 쓰러졌을 정도의 강도였지만 이미 일반인의 한계를 벗어난 그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도 20 킬로미터를 더 뛸 생각이었다.
그렇게 컨디션을 조절하며 뛰던 그녀는 갑자기 눈앞에 뭔가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흠칫 놀란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서서 뚫어져라 앞을 바라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뭐야? 힘들어서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이어폰을 끼고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파앗!
“꺄악!”
그녀는 마치 거대한 트럭과 충돌한 듯한 충격을 느끼고는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극심한 고통을 느낀 그녀는 몸을 가누려 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느껴지는 것은 머릿속에 울리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 뿐.
- 흐흐흐흐...
“누, 누구야!”
하지만 대답은 없었고, 그녀는 점차 숨이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크, 크윽!"
그녀는 발버둥을 치며 누군가의 손길을 뿌리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몸을 차지하려 드는 힘은 막강했고, 그녀는 그 앞에서 무력했다.
그녀와 계약한 불멸자 역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6등급의 불멸자여서 그런지, 아예 숨어버린 듯했다.
그만큼 그녀의 몸을 차지하려는 망령의 힘은 강력했다.
그녀의 몸은 점차 축 늘어졌다.
- 흐흐흐흐...
그리고 한참 후, 그녀는 다시 일어났다.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눈빛.
살의(殺意)에 가득 찬 시뻘건 혈광(血光)이 뿜어지고 있었다.
툭- 툭- 툭툭툭-
그리고 그녀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이어폰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파스스스-
그리고 한참 뒤, 차사 하나가 그 자리에 도착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명부(冥府).
그들 역시 움직이고 있었다.
생사부에 적히지 않은 망자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이제는 무시하기에는 너무 많은 망자들이 이 땅에 출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