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더블 카오스
쿠르릉-
“크웨에엑!”
“크와아악!”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많은 몬스터들이 잔뜩 흥분한 채 한 사내를 뒤쫓고 있었다.
그 앞에서 빠르게 내달리는 사내는 흘끗 뒤를 살피더니 나직하게 내뱉었다.
“쉴더, 몰이 성공. 코드 원, 다음 지시를.”
- 목표물 포착, 라이플 지원하라.
무전기에서 박성진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그에 이어 천무현의 목소리가 깨끗하게 전달되었다.
- 라이플, 셋업 완료!
천무현은 이미 높다란 절벽 위에 올라가서 기다란 저격총 한 자루의 조준경에 눈을 갖다 대고 있었다.
그의 무전을 들은 코드 원, 박성진이 지시를 내렸다.
- 파이어!
철컹-
방아쇠가 당겨지고, 강렬한 반동과 함께 총구에서는 불꽃이 뿜어졌다.
타아앙-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콰콰콰쾅!
그의 눈앞에 있던 모든 것이 엄청난 폭발에 휩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폭격기가 클러스터 밤(cluster bomb, 집속탄)을 내리꽂은 듯, 탄환이 수백 개로 쪼개지며 천무현이 노리고 있던 목표지가 모조리 화염으로 뒤덮인 것이었다.
그 안에서 몬스터들은 뜨거운 불꽃이 녹아들며 소멸하고 있었다.
- 쉴더, 귀환한다.
그리고 놈들을 완벽하게 유인한 서브 탱커, 주세광이 나직하게 무전을 날려 왔다.
- 오케이.
딸깍-
코드 원, 박성진이 오케이 사인을 주고 무전을 끊었다.
이것이 치우의 사냥법.
눈 깜빡할 사이에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들을 해치워 버린 엄청난 광경이었다.
치우(蚩尤).
대한민국 최고의 각성자들이 모여 있는 치우, 그 중에서도 최강의 팀인 알파 팀의 호흡은 완벽했다.
소형 무전기를 통해 전달되는 박성진의 정확한 전술 지시와, 그에 곧바로 반응하는 팀원들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던 것이었다.
이들은 코드명으로 서로를 불렀는데, 원거리 딜러인 천무현은 총을 쓰는 관계로 라이플, 박성진은 코드 원, 서브 탱커이자 근거리 딜러인 주세광은 쉴더(Shielder), 근거리 딜러인 김현성은 소드 맨, 그리고 힐러이자 보조 딜러인 김수향은 에피오네로 통칭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백유현에게 세컨드 소드 맨이라는 새로운 코드명이 주어졌다.
“대단하군요.”
백유현은 솔직히 감탄했다.
이게 팀의 힘이었다.
박성진의 완벽한 지시. 그리고 그에 따른 환상적인 팀원들의 몸놀림.
이제까지 거의 혼자 사냥만 해왔던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던 것이었다. 그 때, 모의 전술 사냥을 마친 팀원들이 돌아왔다.
“아, 아깝네요. 아직 숙련도가 부족해서인지 일격에 섬멸하는 것은 실패했어요.”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여준 천무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나도 오랜만에 해서인지 몇 놈 놓쳤어. 그놈들까지 잡았으면 딱 좋았을 텐데.”
“아아, 겸손들 하셔라. 당신들 알고 있지? 나, 알파 팀에 합류한 이후로 놀고만 있는 거. 나도 일 좀 줘. 이러다가 에피오네(Epione)가 계약 해지할 지경이야.”
고통을 달래주는 치유의 여신, 에피오네를 계약자로 둔 김수향이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박성진이 굵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피오네도 바빠질 때가 곧 올 거니까 그 때 가서 우는 소리 하지 마. 지금은 그저 몸 풀기 정도니까. 그건 그렇고...저쪽이 뭔가 이상한데?”
“음? 그러게요? 저쪽에 왜 저런 기이한 에너지 클라우드가 떠 있지? 저거, 쇼크 이전에 나타난다는 경고운(警告雲) 아닌가요?”
터미널 안에서 또 다른 쇼크가 발생하는 터미널 쇼크.
그런데 이 터미널 쇼크 이전에는 가끔 기이한 구름이 뜰 때가 있었다.
그것을 바로 에너지 클라우드, 혹은 경고운이라 불렀다.
문제는 경고운이 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
그런데 지금, 불규칙한 에너지들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구름 조각이 저 편에 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본 백유현은 조셉의 말을 떠올렸다.
‘더블 카오스...!’
더블 카오스는 일반적인 터미널 쇼크와는 그 수준이 달랐다.
터미널 쇼크는 몇몇 몬스터만 등장하고 말 때도 있지만, 더블 카오스는 카오스 터미널 내부의 모든 몬스터들을 각성시키고, 강화시킨다.
“다들 조심하세요.”
백유현은 막야를 빼들며 나직하게 경고했다.
“응? 무슨 소리야? 아, 너 설마...!”
백유현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팀원들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지금 뭔가를 경고하고 있다는 것은,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니까.
“다들 쇼크 대비해!”
박성진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노련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쇼크가 아니었다.
지금 닥쳐오는 것은 바로...
백유현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고오오오오-
“끼에에엑!”
“크에엑!”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어! 젠장, 정말 쇼크가 닥치려나보군!”
주세광이 방패를 단단하게 그러잡으며 인상을 썼고, 박성진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놈들이 이쪽으로 향한다! 이런, 수가 엄청난데? 몇 천 마리는 되겠어. 각자 위치 잡아!”
아무리 그들이 강력한 힘을 가진 치우의 알파 팀이라고는 하지만, 100레벨 이상의 몬스터가 수천 마리 이상이 달려드는 것을 일격에 멈춰 세울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은 팀-엑스 대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
어떻게 해서든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 라이플, 셋업 완료!
“에피오네, 셋업 끝.”
- 쉴더, 앞에서 놈들의 힘을 분산시켜보겠다! 라이플, 지원해!
그들은 이미 자리를 잡으려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콰콰콰콰쾅!
콰르르르!
“크윽!”
“으윽!”
갑자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더니, 카오스 터미널 전체가 미친 듯 뒤흔들렸다.
그 강력한 진동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팀원들도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릴 정도였다.
- 다들 정신 차려!
박성진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강타했고, 팀원들은 이를 악물었다.
“키에에엑!”
“캬아아악!”
그런데 정면을 바라보던 그들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 젠장, 쇼크가 아니었어...!
그들 눈앞에서 달려들던 몬스터들의 외형과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새로운 균열이 저 끝에 생겨나 있었고, 그 균열에서는 음산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와 카오스 터미널 K-780 전체에 가득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이건...
주세광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박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더블 카오스다.
- 난리 났군요. 더블 카오스라니.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
더블 카오스가 발생했다면 적어도 이 안의 몬스터들이 단번에 10레벨 이상씩 강화되었으리라 보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을 향해 몰려드는 수천에 가까운 몬스터들은 그야말로 재앙(災殃)이라는 뜻.
- 포지션 지켜. 에피로네. 쉴더 뒤로 붙어! 라이플, 최대한 타격을 줘야 하니 플레어 스톰 준비. 그리고 소드 맨!
- 소드 맨, 대기 중. 목표의 오른쪽으로 파고들어가겠다.
- 좋아, 세컨드 소드 맨...
- 세컨드 소드 맨, 목표의 왼쪽에서 파고들겠습니다.
어느새 백유현도 사라져 있었다.
박성진은 저 멀리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백유현. 너의 힘을 보여줘 봐라.’
강화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진 버텨볼만 하다.
아니, 차라리 이런 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오히려 알파 팀에 큰 이득이다.
실전과 다름없는 훈련 상황은 그들로서도 반기는 일이었으니까.
이런 걸 이겨내지 못하면 팀-엑스 대회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 코드 원, 중앙에서 커버하겠다. 건투를 빈다.
- 옛설!
- 오케이.
팀원들은 더욱 강력해진 몬스터들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백유현 또한 막야를 손에 쥐고 내달렸다.
한층 포악해지고, 한층 강화된 몬스터들이 미친 듯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쿠우웅-
그 순간, 코드 원 박성진이 있는 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반투명한 구체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크웨엑!”
“크와아악!”
메인 탱커, 박성진의 가진 권능.
‘성스러운 도발’이 발동한 것이다.
몬스터들의 시선이 죄다 그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도발에 휩싸인 놈들은 방향을 바꿔 박성진 쪽으로 미친 듯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아앙-
그 때 저 멀리서 강력한 격발음이 들려왔다.
슈웃-
콰콰콰콰쾅!
“키에엑!”
“캬아악!”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더니 수많은 몬스터들이 화염에 휩싸여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천무현의 지원 사격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 소드 맨, 진입!
그 와중에 소드 맨, 김현성이 진입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럼 질 수 없다.
백유현 역시 무전을 날렸다.
- 세컨드 소드 맨, 진입하겠습니다.
- 가운데서 보자, 세컨드 소드 맨.
김현성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운데서라...’
그 짤막한 한 마디에 묘한 느낌을 받은 백유현은 그대로 내달렸다.
그 말이 마치 승부를 보자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럼...’
백유현은 막야를 들고 몬스터들 한 가운데로 쇄도해 들어갔다.
파앗-
공중으로 떠오른 그의 두 눈이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응해드리죠! 김현성 선배!’
콰앗-
번쩍-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이자, 최고의 각성자라 불리는 김현성과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사방에 검은 광채가 번뜩이고, 수많은 몬스터들이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갔다.
강화가 되어든 아니든 상관이 없이, 백유현의 검은 놈들의 목을 정확하게 날렸고, 단 일격에 깔끔하게 몬스터들은 휘청거리다가 쓰러졌다.
사휘(死輝).
죽음의 광채가 수도 없는 몬스터들을 잡아먹는 사이, 그의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권능, 염라의 ‘단죄’가 발동되었습니다]
[공격력이 20 퍼센트, 공속이 15퍼센트 증가하며, 절삭력(切削力)이 50 퍼센트 증가합니다. 염라의 격노(激怒) 효과로 반경 20미터 안의 모든 적대 대상의 체력이 30 퍼센트가 깎입니다]
퍼퍼퍼퍼펑!
“키에에엑!”
“크에엑!”
반경 20미터 안의 모든 몬스터들의 근육이 찢기고, 피부가 터져 나가며 놈들은 고통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염라의 격노에 노출된 까닭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단죄가 발동된 이상, 백유현에게는 한 가지 더 쓸 수 있는 기술이 생겨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파앗-
백유현의 몸이 허공 높이 솟구쳤다.
키이이이-
그의 손에 들린 막야가 귀신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그리고...
번쩍-
파가가가각!
태양을 떨어뜨린다는 척준경의 비장의 기술.
일몰(日沒)이 발동되었다.
수십 갈래로 갈라진 검은 광채가 주변을 모조리 휩쓸었고, 그 광채에 노출된 몬스터들은 피를 뿜으며 쓰러져 갔다.
그리고 그 뒤를 누군가 따라붙었다.
“강효...”
“차사, 강효. 소주를 도와 귀태(鬼胎)의 존재들을 섬멸할 것이옵니다.”
강효는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몬스터들에게는 특별히 살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좋아. 가자.”
“존명!”
파가각!
그 둘은 미친 듯 움직였다.
막야가 귀신울음을 토해내는 곳에서도, 절명이 시퍼런 살기를 뿜어내는 곳에서도...
그 모든 곳에는 죽음이 따라붙고 있었다.
김현성 대 백유현.
그들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