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알파 팀
카오스 터미널 넘버 K-780.
대한민국에서도 내로라하는 고난이도 터미널 중 하나였다.
평균 몬스터 레벨은 최하 100에서 130까지 다양했으며, 이곳의 보스 몹은 이니카스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이니카스야말로 백유현이 잡아야 할 퀘스트 몹이었다.
K-780 터미널은 강원도의 한 야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터미널 정보는 비공개.
뭐 당연한 얘기였다.
카오스 터미널은 그 재생 주기가 각각 다르다.
최단 1시간에서 최장 일주일 이상씩 걸리는 등, 특성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점을 노려 각성자 출현 초기부터, 타국의 터미널에 잠입하여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사라지는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났었다.
그렇게 되면, 테러 대상국의 고 레벨 각성자들은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고, 더욱 엄격한 출입국심사와 함께 국가터미널관리국을 신설해 터미널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그런 시스템이 꽤 잘되어 있는 편이었다.
IT 강국으로 이름난 국가답게 최신 인프라가 바로 구축이 되었다.
그 덕분에 실시간으로 터미널 공략 정보가 뜨기도 하고, 터미널의 이용 가능 여부 역시 빠르게 전달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몇몇 터미널은 그 정보가 아예 차단된 곳도 있었다.
그런 곳은 국가에서 직접 엄격하게 관리하는 곳이었다.
K-780 터미널은 바로 그런 곳 중 하나였다.
특히 팀-엑스 대회를 앞둔 지금, 고 레벨 각성자들의 사냥터이자, 훈련 장소로 예정된 터미널들은 모조리 정보가 비공개로 돌려졌다.
그래서 가봐야 터미널의 이용 가능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백유현이 최대한 빠르게 K-780 터미널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부우웅-
그가 탄 세단은 고속도로를 달려 강원도의 한 산 속에 도착했다.
몇 년 전, 엄청난 지진파와 함께 생겨난 거대한 균열.
K-780 터미널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는 터미널관리국의 보안관리소가 보였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가서 좀 쉬시다 오세요.”
백유현은 기사에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산을 내려갔다.
백유현은 가방을 챙기고 관리소로 향했다.
그 안에 일단의 사람들이 먼저 와 있는 것이 보였다.
운이 좋지 않았다.
‘이런...!’
백유현이 서둘러 이곳으로 온 것은 현재, 저 안에 있을 이니카스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조셉의 말에 따르면, 더블 카오스가 발생할 때 있었던 이니카스만 블러드스톤을 준다고 했으니까.
차후에 재생될 이니카스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지금 더블 카오스는 발생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곧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들어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미리 온 각성자들이 있었다니...
그 때, 관리소 안에 있던 누군가도 백유현을 보더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 형, 저기 백유현 아니에요?”
그에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건장한 사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응? 백유현이 왜 여길 와...어? 진짜 백유현이잖아?”
그리고 옆에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있던 미녀가 어느샌가 눈을 뜨고 호기심이 어린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뭐야, 진짜 저 녀석이잖아?”
그녀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성진 오빠, 이거 우리만 가는 거 맞아?”
성진이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 최강의 팀이라 불리는 치우.
바로 팀-엑스 대회의 대표팀인 치우의 일원들이 여기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저 녀석이 여긴 무슨 일이지? 그것도 혼자서?”
여긴 이제 갓 100레벨대가 올 곳이 아니다.
저번에 자이언트 스콜피온을 단신으로 잡아낸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지만, 여긴 차원이 다른 곳.
치우의 수장, 박성진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여어, 오랜만이다. 백유현.”
두툼한 손을 내미는 그를 보며 백유현도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하니 여기에 ‘치우’가 있을 줄이야!
그것도 치우 중에서도 최고라 불리는 알파 팀이...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미녀, 김수향, 그리고 눈앞의 박성진, 원거리 딜러로 이름 높은 천무현, 서브 탱커이자 근거리 딜러인 주세광, 그리고...
그들을 둘러보던 백유현의 시선이 한 사람에 가서 멎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는 한 남자.
키가 훤칠했으며, 상당히 준수한 용모를 가진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각성자였다.
‘김현성...!’
대한민국 여자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이름.
그리고 그 인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정도의 실력을 가진 최강의 검(劍).
그가 바로 치우의 검이라 불리는 김현성이었다.
아마 이곳에서 비밀 특훈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박성진 대장님.”
그 말에 박성진이 피식 웃으며 백유현의 어깨를 툭 쳤다.
“대장은 무슨. 이젠 같은 팀이니까 형이라고 불러.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왔을 것 같진 않은데.”
“네. K-780 카오스 터미널...최하 100레벨에서 최대 130 레벨의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죠.”
거침없이 대답하는 백유현의 말에 박성진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걸 알면서도 왔다고? 그것도 혼자? 가만 있어봐, 100레벨대면 감마 팀에서 케어해야 되는 거 아니야? 광현이 이 자식, 왜 애를 혼자 놔둬?”
치우 안에 소속된 팀은 총 다섯 개.
각 팀에 다섯 명씩 총 스물다섯 명이다.
이것은 팀-엑스 대회에 참전하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치우에서는 레벨 대에 맞게 팀을 꾸렸고, 그래서 100레벨대로 추측되는 백유현은 감마 팀에서 케어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왜 여길 나타난 것일까?
“저...100레벨 대 아닙니다.”
백유현의 말에 박성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100레벨 대가 아니라고? 그 때, 그 움직임...물론 뛰어나긴 했지만 잘 봐줘도 110 레벨은 넘지 않아 보였는데? 김무준하고 싸웠을 때도 그랬고.”
“맞아! 저 녀석, 김무준을 이기긴 했지만 완전히 압도하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그렇다는 얘기는 김무준과 별로 레벨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뜻인데...?”
역시 박성진의 눈은 날카로웠다.
대한민국 최고의 각성자, 김현성을 발굴해낸 자답게 백유현의 레벨 대도 얼추 맞춘 것이다.
그리고 옆에 있던 다른 각성자들도 눈빛이 날카로웠다.
백유현은 희미하게 웃었다.
팀 ‘치우’에 들어온 이상 조만간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 말해야 될 때가 올 것이다.
미리 말한다고 손해 볼 것은 없다.
“제 레벨은 지금...정확하게 132레벨입니다.”
박성진이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뒤에 있던 각성자들도 놀란 얼굴로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1...132레벨? 뭐야, 진짜야?”
천무현이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는 채 중얼거렸다.
원거리 딜러의 특성상, 알파 팀에서 그가 가장 레벨이 낮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레벨 또한 117.
“와...뭐야? 너, 얼마 전까지 레벨 1이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132라고? 허...!”
서브 탱커이자, 부팀장인 주세광이 다가와서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다 알고 있었다.
이번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키며 선발전을 통과한 백유현의 놀라운 과거에 대해서.
그래서 한 동안은 그들끼리도 그에 대해 뜨거운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상상을 초월하는 답변이 나온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할 리는 없고...거 참, 알 수 없는 일이네...”
박성진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어머, 이렇게 되면 정말 궁금해질 수밖에 없잖아?”
김수향이 백유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도대체 어떤 불멸자와 계약을 한 거야? 그게 아니고선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매우 타당하고, 날카로운 추리였다.
사실 그것밖에 답이 없기도 했고.
백유현은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어차피 같은 팀이 되었으니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으니까.
“염라(閻羅)입니다.”
“응? 누구?”
주세광이 잘 못 들었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의 뒤에서는 난리가 났다.
“여, 여, 염라? 염라라고?”
천무현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질문을 한 김수향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리고 박성진...
“염라라면...세계 공인 1티어...그것도 최상위급의 불멸자잖아? 상제(上帝)나 제우스(Zeus)와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예상되었던...!”
아쉽게도 옥황상제와 제우스는 이미 계약자가 있었다.
더욱 아쉬운 것은, 그들과 계약을 한 각성자들의 자질이 조금만 더 뛰어났다면 옥황상제와 제우스의 무시무시한 힘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의 동화력이 상당히 낮은 바람에, 최고의 불멸자들과 계약을 했음에도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그 둘이 이번에 자신의 나라를 대표해 팀-엑스 대회에 나온다.
중국의 리(李)와 독일의 귄터(Gunter)가 바로 그들이었다.
상제와 계약한 각성자는 리, 제우스와 계약한 각성자는 귄터.
계약한 불멸자의 힘이 하도 강력하다 보니, 평범한 동화력을 지닌 그들조차 최고의 각성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염라(閻羅)라니.
“아니, 잠깐만! 그게 사실이라면...불과 얼마 전까지 레벨 1에 불과했던 네가 132 레벨이 되었다는 데는 염라의 힘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뜻인데?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주세광의 말에 다른 각성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계약한 불멸자는 염라, 하나가 아닐 거고요.”
그 때,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던 김현성이 걸어 나왔다.
그는 백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에는 최소, 미래를 읽는 권능을 가진 불멸자와도 계약한 것으로도 보였거든.”
역시 간파당한 것은 확실한 듯했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그렇게 됐죠.”
박성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나직하게 내뱉었다.
“허어, 동시 계약까지...뭐, 이론상으로는 계약할 수 있는 불멸자의 수에는 제한이 없다고는 하지만...둘 이상의 불멸자와 계약한 존재는 상당히 드무니까.”
“재미있네요. 팀장.”
김현성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 아이, 우리가 데려가죠. 아마 뭔가 할 일이 있어서 온 것 같은데.”
김현성의 말에 박성진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면 다른 팀에서 한 명 빠지게 된다. 그걸 모르고 있진 않을 텐데?”
김현성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치우의 최대 전력은 알파 팀 아니었어요? 우리가 승부를 보지 못하면...”
그 순간, 김현성의 입가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모두가 전멸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침묵이 흘렀다.
그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유현의 레벨이 132라는 것이 맞는다면, 그리고 그가 계약한 불멸자가 염라가 맞는다면...
그는 알파 팀에 들어올 자격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기존 알파 팀에서 빠질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구조 자체를 바꾸는 수밖에.
“난 찬성. 현성이도 부담을 좀 줄여야 할 필요성도 있고.”
김수향이 살짝 손을 들었다.
“맞아. 이번에도 현성이 형한테만 모든 공격이 몰릴 수도 있어. 아무리 성진이 형하고 세광이가 커버를 한다 해도, 그건 분명히 우리 측의 손해야. 나도 찬성.”
“그래...일리가 있어. 현성이한테 몰린 틈을 타서, 또 하나의 검이 적의 심장을 찌른다...나쁘지 않은데? 마치 예전 축구에서 메시와 호날두가 같이 뛰는 느낌이잖아? 누굴 막아도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뭐, 유현이 실력은 좀 더 봐야겠지만.”
팀원들이 한 마디씩 거들자, 박성진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전술적인 움직임이라...나쁘지 않군. 다른 나라에서도 이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좋아, 그럼 백유현을 알파 팀에 합류시키는 건 나도 찬성. 그런데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겠지. 넌 어때? 백유현.”
박성진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건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치우의 알파 팀에 합류한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지니니까.
‘알파 팀이라.’
나쁘지 않다.
사실 치우에 들어간 것도 망령 고와 망령 수사를 잡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치우의 선봉이라 불리는 알파 팀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지금 백유현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박성진은 의아한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알파 팀의 합류를 권하는 것은 대한민국 각성자라면 누구나 꿈에 그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조건을 내건다?
“이곳의 보스 몹은 제가 잡겠습니다.”
“보스 몹이라. 130레벨의 이니카스를 말하는 거군.”
“네.”
“잡아야 할 이유는...뭐 물어볼 것도 없겠지. 불멸자와 관련이 되어 있을 테니. 그런데 괜찮겠어?”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약간 과장을 보태 말했다.
“네, 그것이 조건이어서요.”
팀원과 같이 잡으면 백유현이야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혼자 이니카스를 잡기로 미리 못을 박아둔 것이었다.
박성진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 보였다.
“뭐, 그런 거라면 상관없지. 어차피 72시간 후면 또 재생될 테니까. 이니카스는 특수 네임드 몹이 아니거든.”
말 그대로였다.
카오스 터미널은 72시간 후 재생이 될 것이다.
그 안의 모든 몬스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의 이니카스가 아니면 백유현에게 의미가 없다.
놈만이 블러드스톤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사실을 모르는 박성진은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사실, 백유현에게도 알파 팀의 존재는 꽤 힘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더블 카오스(Double chaos).
그랬다.
이제 곧 더블 카오스가 발생하면, K-780 안의 모든 몬스터들은 모조리 강화된다.
백유현 혼자였다면 분명, 그것도 부담이 됐겠지만 알파 팀이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
그 때 박성진이 백유현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백유현, 하나는 정확하게 말해두자. 네 존재가 우리 팀에 해가 된다 싶으면 난 바로 널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돌려 보낼 거다. 이의 없지?”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예.”
“흠...좋아. 그럼 이제부터 우리와 같이 움직이자. 너도 네 할 일을 하고. 그게 훨씬 수월할 거다. 어차피 호흡도 맞춰봐야 하는데 잘 됐네.”
“알겠습니다.”
“좋아, 가자고. 각오 단단히 하고. 자, 알파 팀, 움직여!”
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역시 최고의 팀답게 호흡이 척척 맞았다.
백유현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치우.
그 강력함을 눈앞에서 확인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