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간장(干將)
파가각-
백유현과 차사, 강효는 계속 해서 무간 지옥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지 않아, 목이 잘린 하나의 거대한 시귀(尸鬼)를 만날 수 있었다.
[분류 명칭 : 절수귀]
[예상 레벨 : Lv110]
[특징 : 목이 잘려나간 귀신. 놈의 목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엄청나게 포악한 성격이다]
[도척이 의뢰한 특별 청탁의 대상]
백유현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놈이다.
역시 이름 그대로 목이 달아나 몸뚱이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귀신.
그런데 그래 봬도 레벨은 110이다.
하지만 놈의 앞에 선 백유현은 가볍게 웃었다.
“드디어 찾았다. 그럼 시작해볼까?”
일초라도 빨리 놈을 잡아서 무혼단을 얻어야 했다.
무혼단이나 호정단의 효력은 시간의 제약이 걸린 무간 지옥에서는 필수적이었으니까.
파각-
그 때였다.
머리도 없이 어디를 쳐다보는지도 모르는 놈의 몸뚱이가 갑자기 허공을 격해 백유현에게로 쇄도했다.
“...!”
백유현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놈의 속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던 것이었다.
순식간에 눈앞으로 날아드는 놈의 다리를 보며, 백유현은 날카로운 빛을 뿜어냈다.
놈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상대는 백유현.
놈은 지금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것이다.
‘빛을 가르는 검...’
철컹-
막야가 움직였다.
번쩍-
촤앗!
순간적으로 절수귀와 백유현의 자리가 바뀌었고, 절수귀는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네가 아무리 빨라도, 사휘(死輝)보다 빠를 수는 없어.’
단 일격.
죽음으로 인도하는 검은 광채가 번뜩이고 나자, 절수귀의 몸이 반 토막이 나서 나뒹굴고 있었다.
빛을 가른다고 해서 실제적으로 빛보다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사휘는 충분히 무시무시한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소주!”
쩌엉-
툭- 데구르르
갑자기 백유현의 뒤쪽으로 차사, 강효가 뛰어들며 절명을 가로 그었고 그 앞에 흉측하기 이를 데 없는 목 하나가 떨어졌다.
절수귀의 잘려나간 목인 듯했다.
그런데 강효의 표정이 묘했다.
“성장하셨사옵니다. 소주.”
철컹-
그의 뒤에서 한 자루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가 천천히 검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막야였다.
놈의 목을 베어낸 것은 강효가 아니었다.
강효가 절수귀의 목을 베어내기 전에, 백유현이 들고 있던 막야가 무시무시한 섬광을 그려내며 목을 베어버린 것이었다.
강효의 말에 백유현은 희미하게 웃었다.
“고맙다, 강효. 내 뒤를 지켜줘서.”
평소 무감정한 강효의 입가에도 이질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금세 사라졌다.
‘언제고 그럴 것이옵니다. 소주.’
백유현의 등을 보며 속으로 혼잣말처럼 내뱉은 강효였다.
“가자! 도척에게로.”
“예, 소주!”
파앗-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던 배경이 완전히 뒤바뀌며 다시 사자육전의 음산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 앞에 도척이 클클- 거리며 두 손을 비비고 있었다.
“이것 참, 하루는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오. 도령, 기대 이상이구려?”
백유현은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도척의 두 눈을 보며 뭔가를 내밀었다.
“여기.”
백유현이 내민 것은 ‘쫄깃한 귀’ 와 ‘알맞게 삭은 내장’ 이었다.
둘 다 특별히 획득한 아이템이었고, 도척 역시 그것을 보더니 입이 귀에 걸린 채 활짝 웃어 보였다.
“클클클! 좋아, 아주 좋아! 드디어 이 별미를 먹을 수 있게 되는구먼! 도령,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럼 내, 그 보답은 톡톡히 해드리리다!”
[도척이 10분의 시간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면 도척과의 친밀도가 올라가며, 예상 못한 보상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도척이 저렇게 군침까지 흘리는데 10분 정도는 들어줄만 했다.
“딱 10분입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크크크!”
백유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도척은 절수귀의 귀와 내장을 가지고 입 안으로 우걱우걱 밀어 넣기 시작했다.
끔찍한 광경에 백유현은 눈을 돌렸고, 강효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10분이 흘러, 도척은 매우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트름을 하더니 입 주변을 옷 소매로 슥슥 닦았다.
“크크크, 이거 별미로군, 별미야! 덕분에 오늘 아주 흡족한 날이 되었소이다!”
“시간이 없으니 무혼단이나 먼저...”
그런데 갑자기 도척이 백유현의 말을 끊고 나섰다.
“어허, 너무 급하시오. 도령. 무혼단 따위야 나중에 가져가도 될 일. 내 도령 덕분에 기분이 좋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까 하는데...”
도척의 말에 백유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는데, 이 자는 도대체 뭘 또 원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나중에 듣고 먼저 무혼단을...”
그런데 도척이 다시 한 번 백유현의 말을 잘랐다.
“도령 안에 있는 그 자에 대한 이야기요.”
백유현은 노려보듯 도척을 바라보았다.
척준경.
도척은 바로 그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척준경은 지옥에서는 모르지만, 이 사자육전에 와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 뭔가의 금제(禁制)가 걸려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어느 여인네가 애타게 찾는 지아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러면서 도척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백유현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막야를 흘끗 가리켰다.
‘막...야? 막야에 대한 이야기라고?’
막야는 검(劍)이지만 따지고 보면 ‘여성(女性)’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막야의 지아비라 함은...!
‘설마!’
백유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도척이 음산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 지아비의 이름은 ‘간장(干將)’. 바로 자검(雌劍), 막야의 짝이기도 하다오.”
백유현은 말을 잇지 못하고 도척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사자육전에 있다 보면 망자(亡者)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알게 되지. 도령 안에 있는 척가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그 자가 생전에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벌였는지...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세상에 모를 것이 없게 되지.”
도척이 이빨 사이에 낀 고깃조각을 손톱으로 빼내며 말을 이었다.
백유현의 바라보는 도척의 두 눈에서 기이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척가가 본래, 쌍검(雙劍)의 달인이었다는 사실은 아시오? 그의 검은 하나가 아닌 두 자루. 그 두 자루의 검으로 그는 정점에 올라설 수 있게 된 것이오. 클클.”
하긴 그랬다.
척준경이 처음 나타났을 때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분명 한 자루가 아닌 두 자루.
하지만 백유현에게는 한 자루 검을 쓰는 법을 전수했었기에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사휘니 일몰이니...그 자의 진정한 힘은 바로 두 자루의 검을 온전히 쓸 수 있을 때 제대로 나오는 법이지. 즉, 도령은 아직...”
도척이 날카롭게 백유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대로 된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뜻이오.”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클클 거리며 웃었다.
“클클클! 내 재미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요. 절수귀의 맛있는 고기를 가져다주어 살짝 귀띔해 준 것 뿐이니 어디 가서 말하진 마시오. 클클! 아, 하나를 미처 말하지 않았군! 웅검(雄劍), 간장 말이오. 간장은 바로 여기, 사자육전에 있다오. 단, 1등품이라 아직 도령이 가져가기엔 무리가 있지. 열심히 하시오. 간장을 얻는 순간, 도령은 천하제일의 검법과 함께 최고의 자웅검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클클!”
도척은 이번에는 귀를 후비고는 손톱을 튕겨내더니 말했다.
“나중에 절수귀의 고기를 한 번 더 가져오시오. 이 정도면 내가 너무 손해를 본 듯하여, 마음이 편하질 않구려. 흐흐. 자, 그리고 여기 있소! 무혼단 열 개. 이런, 시간이 다 되었군. 살펴 가시오.”
도척이 음산하게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파앗-
그러자, 다시 배경이 바뀌었다.
사자육전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백유현은 잠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최고의 명검, 간장의 행방과 척준경의 제대로 된 힘.
도척의 그 말을 듣자, 백유현은 뭔가 온 몸에 짜릿한 기운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더 강해질 수 있다...’
쌍검의 달인, 척준경의 힘은 쌍검을 쓸 때 백 퍼센트 발휘되는 것.
그러기 위해서 백유현은 간장검까지 얻어야 하는 숙제가 생긴 것이다.
‘일단 1등품의 품목을 사기 위해서는...’
다른 건 필요 없다.
무조건 염라가 주는 임무를 완수하는 수밖에는.
백유현은 무혼단 하나를 까서 입에 넣고 씹었다.
파아앗-
그러자 온 몸에 힘이 솟았다.
[지금부터 두 시간 동안 집중력과 지구력이 크게 올라,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로 인해 피로도가 쌓이지 않습니다. 더불어 얻는 경험치가 5 퍼센트 추가됩니다]
‘이것이 무혼단!’
상태 창만 봐도 무혼단이 얼마나 강력한 효능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다.
“강효!”
“명을 받잡나이다.”
“가자!”
파앗-
둘은 다시 무간 지옥의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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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 지옥에서의 한 달은 순식간에 지났다.
“하아, 하아!”
그 동안 백유현의 모습은 엄청나게 바뀌어 있었다.
고등학생이지만, 수염이 꽤 자랐고 입고 있던 옷은 이미 해지고 찢어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덥수룩하게 자란 그의 머리카락 속에서 뿜어지는 눈빛.
그 눈빛만큼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또 한 번 무간 지옥에서 크게 성장한 것이다.
[백유현의 상태 능력치 수치]
현재 레벨 132
[근력 135] [지구력 85] [순발력 144] [행운 31]
[정신력 41] [지력 24] [근성 25] [체력 92] [인내심 6]
[동화력 100]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가용 신체 능력치 0
한 달의 시간 동안 백유현은 104레벨에서 132레벨이 되었다.
그 동안 오른 신체 능력치는 무려 79 포인트.
1레벨을 올릴 때마다 2에서 3의 포인트가 주어졌고, 간간히 주어지는 염라의 포고나 도척의 청탁을 완료하면서 추가 포인트를 쌓은 것이었다.
그 때 백유현의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떴다.
[무간 지옥의 문이 폐쇄됩니다]
[무간 지옥, 이회 차 종료]
[이승으로 소환됩니다]
[이승의 현재 시각 : 14시 49분 08초]
[지옥, 무간 재개방 시간이 앞으로 192 시간 남았습니다. (이승 기준)]
파앗-
그리고 그는 균열을 통해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다.
째깍- 째깍-
시계 초침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바깥세상이 보였다.
지옥도만이 펼쳐져 있던 아수라장이 아닌, 평온해 보이는 서울 도심의 풍경.
무혼단과 염라의 아패, 그리고 명부의 척살자 효과로 그는 목표로 했던 130 레벨을 넘어 132레벨을 달성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이니카스를 대적해볼만하다.
‘쉴 여유는 없겠어.’
조셉의 스페셜 퀘스트는 단 일주일간만 주어진다.
그 동안 이니카스를 잡아 블러드스톤을 획득해야 한다.
백유현은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를 질끈 묶고, 샤워를 한 뒤 옷을 다시 갈아입었다.
그리고 사냥용 백팩에 비상식량 등을 다시 보충해놓고는 검을 들었다.
또 한 번의 싸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