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일몰(日沒)
[무간(無間) 지옥에 현현(顯現)하였습니다]
[현현(顯現)의 대가로 지옥 망자들의 원한이 당신에게로 집중됩니다]
[무간 지옥, 이회차가 시작됩니다]
[염라의 아패(牙牌)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지금부터 망자들을 처치하고 얻는 경험치에 30% 의 경험치를 더 얻습니다]
[제한조건 : 무간 지옥에 있을 시]
[무간 지옥의 문이 앞으로 30일 2시간 29분 32초 동안 개방됩니다]
[그 후에는 이승으로 강제 송환됩니다]
[이승의 현재 시각 : 14시 46분 19초]
[예상 강제 송환 시각 : 14시 49분 08초]
[지옥, 무간 재개방 시간이 앞으로 192 시간 남았습니다. (이승 기준)]
무간 지옥이 열렸다.
눈앞의 창을 살펴본 백유현은 몇 가지 변동 사항을 발견했다.
일회 차와 다른 점은 개방 지속 시간과 재개방 시간이었다.
‘이틀 정도가 줄었네. 그리고 재개방 시간은 대략 이틀이 늘었고...’
무간 지옥의 개방 지속 시간이 이틀 줄었고, 그에 반해 재개방 대기 시간은 이틀이 늘었다.
무한정으로 무간 지옥이 개방되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실제적으로 흐르는 시간도 약 1분가량 늘었다.
나중에 가서 조건이 변동될 수는 있겠지만, 일단은 좀 더 빡빡하게 조건이 바뀐 것은 사실이었다.
‘일단, 그 전에...’
백유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쓸 계획을 이미 완벽하게 세워놓고 있었다.
‘사자육전 개방.’
파앗-
이번에는 처음부터 호정단을 사서 최대의 효율을 뽑을 생각이었다.
“여어, 이게 누구시오?”
주변의 풍경이 바뀌더니, 어느새 도척이 음흉하게 웃으며 백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정단, 되는대로.”
지금 백유현이 가진 육편은 4,210 개.
이거면 호정단을 8개는 살 수 있다.
그런데 도척이 검게 썩어가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이것 보시오, 도령. 도령은 이제 5등품의 물건을 살 수 있는데 굳이 호정단을 구입할 이유가 있겠소? 내 좋은 물건을 하나 추천해드리지. 크흐흐!”
도척은 진열대를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하나의 환약(丸藥)이었는데 호정단보다는 좀 더 작고, 금빛을 띠고 있었다.
“무혼단(巫魂丹)이라고 부르는 물건이오. 불로불사의 영약 중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물건이지. 가격은 한 개당 700 육편이지만, 호정단의 두 배에 해당하는 효과를 볼 수 있소. 어떠시오? 구미가 좀 당기지 않으시오?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호정단의 가격으로 열 개 정도는 드릴 수 있소이다.”
호정단의 두 배에 해당하는 효과라면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가격은 겨우 200 육편(肉片)차이.
게다가 도척의 부탁을 들어주면 호정단과 똑같은 가격으로 열 개를 구입할 수 있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부탁이 뭐죠?”
도척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절수귀(切首鬼)라는 놈이 있소. 듣자니 놈의 살점이 기가 막힌다고 들었소. 쫀득, 쫀득! 그 쫄깃한 맛이라면 죽어도 좋다는 옥졸 놈들이 한둘이 아니더구려. 크크, 내 이 육전에 묶여 나갈 수가 없으니 도령이 대신 구해다 주면 어떻겠소? 그럼 무혼단 열 개 정도는 내, 통 크게 내어드리리다.”
‘절수귀라...’
백유현은 차사, 강효를 바라보며 물었다.
“강효, 네 의견은?”
“해가 될 것이 없다 사료되옵니다. 소주.”
강효까지 거들고 나섰다.
그럼 정말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받아들이죠.”
도척이 클클 거리며 웃었다.
“후회 하지 않으실 거요!”
그 때, 백유현의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떴다.
[특별 청탁(請託)]
[도척 : 절수귀를 잡아, 그 육편을 가져 오시오. 흐흐...]
[임무 완료 조건 : 절수귀의 소멸, 절수귀의 육편(특수) 획득]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1, 도척과의 친밀도 40, 무혼단 열 개의 염가 제공]
[도척이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하루입니다]
[임무 정보 : 도척은 쫀득, 쫀득. 쫄깃한 절수귀의 살점을 떠올리며 임무를 의뢰해왔다. 입맛을 다시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면, 무혼단 열 개를 염가에 제공해준다고 한다. 임무를 완료해서 도척과의 친밀도를 높여두면, 후에 좋은 일(?)이 생겨날 지도 모른다]
백유현이 임무를 받자, 도척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호정단 하나를 내밀었다.
“일단 이걸 하나 가져가시오. 셈은 나중에 한꺼번에 하는 걸로 하겠소.”
백유현은 호정단을 받아들였다.
파앗-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집중력과 지구력이 크게 올라,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됩니다. 피로도가 상승하는 속도가 상당히 억제되어, 부작용이 크게 줄어듭니다]
호정단의 효과가 발동되었다.
이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가자, 강효.”
“명을 받잡나이다.”
파앗-
백유현은 사자육전을 돌려보내고, 일회 차에서 멈췄던 그 자리로 돌아왔다.
“키에에엑!”
“캬아악!”
눈앞에 수많은 귀신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백유현이 막야를 들고 내달리려는 찰나였다.
- 아이야, 기다려라.
척준경이었다.
백유현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척준경의 말이 이어졌다.
- 보아하니, 네게는 지금 만부부당(萬夫不當)의 검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생각되는구나. 아니더냐?
척준경은 백유현에게 빙의 상태로 계속 있었으니, 그 동안의 사정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수많은 지옥 귀신 앞에선 백유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만부부당(萬夫不當), 일기당천(一騎當千).
지금 백유현에게 가장 필요한 힘.
무턱대고 우글거리는 지옥 귀신 속에 들어가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검으로 놈들을 압살하는 무력(武力).
그것이 지금 백유현에게 가장 필요한 힘이었다.
“맞습니다. 장군.”
- 그렇다면, 너에게 하나의 검을 전수하마.
척준경.
그는 자신의 절기를 아낌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아마 백유현이 자신의 가르침을 곧잘 따라오는 것이 기특한 모양이었다.
하긴 후손도, 후예도 없이 스러져간 최강의 무인인 척준경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에 대한 한이 남아 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 최고의 후계자가 생긴 것이다.
- 이것은 여진(女眞)의 도적떼들의 목을 벨 때 썼던 검으로, 여진의 도적떼들은 놈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나를 보고 크게 두려워하며 이렇게 불렀었다. 찬란히 떠오른 해를 베어내는 검이라 하여...
척준경의 말이 천천히, 하지만 확연하게 이어졌다.
- 일몰(日沒). 나는 놈들의 태양을 베어냈고 결국 그들을 몰락시켰으니, 이 검이야말로 만부부당의 검. 이에 나는 네게 이 검을 전수하고자 한다.
‘일몰...’
척준경이 괜히 한반도 최강의 무인이라 불렸던 것이 아니다.
그의 불가사의한 무력은, 그 당시 그야말로 태양처럼 떠오르던 여진족을 공포로 몰아넣었으며 그들을 일순간 압도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검의 달인이라 불렸을 만큼 강력한 척준경의 검(劍)이 있었다.
그 무적의 검이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백유현에게 이어지려는 순간이었다.
- 살검을 익힌 자, 일몰 역시 그에 다르지 않으니 익히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네 살의(殺意)를 끌어올려 한 순간 뿜어내라. 사휘의 광채가 사방에 흩뿌려질 때, 일몰은 완성될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말하자면, 사휘(死輝)를 수십, 수백으로 쪼개 사방에 뿌려내는 검이 바로 일몰이라는 뜻이었다. 말은 쉽지만, 그 과정이 엄청나게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백유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 좋다. 가거라.
백유현은 눈앞에서 득시글거리는 지옥 귀신들을 노려보았다.
파앗-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콰콰콰쾃!
다음 순간, 그는 지옥 귀신들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번쩍!
한 줄기, 검은 광채가 사방에 뻗어나갔다.
----------
촤앗- 촤앗!
사휘는 연신 뿜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몰은 좀처럼 발동되지 않았다.
사휘를 뿌려내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았지만, 일몰은 극히 어려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유현은 일회 차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련되고 효율적인 검으로, 순식간에 지옥 귀신들을 모조리 베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파가각!
[50 소울 스톤을 획득하였습니다]
[20 소울 스톤을 획득하였습니다]
....
소울 스톤도 계속해서 모이기 시작했고, 육편도 꽤 쏠쏠하게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엄청난 것은 경험치.
명부의 척살자 호칭과 염라의 아패 효과로 인해 그의 경험치는 그야말로 미친 듯 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간 지옥이 무시무시한 이유는, 바로 무간 지옥에서만 적용되는 두 가지 효과와, 그 효과들이 쉴 새 없이 발동될 수 있는 무간 지옥만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귀신을 베어내면 경험치가 폭발적으로 오르는 백유현의 특성상, 무간 지옥은 그에게 딱 안성맞춤의 공간.
그리고 조셉을 위한 소울 스톤과, 사자육전에서 쓸 수 있는 육편 또한 꽤 오르고 있으니 무간 지옥은 정말이지 최고의 사냥터였다.
하지만 백유현은 아직 목이 말랐다.
모르면 몰랐으되, 척준경이 전수한 비장의 검술, 일몰(日沒)을 알게 된 이상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아앗!”
번쩍-
하지만 아무리 사휘를 흩뿌려 보아도 일몰은 도저히 발동되지 않았다.
파각!
백유현에게 달려들던 지옥 귀신의 목 하나가 날아갔다.
순간, 그의 눈앞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권능, 염라의 ‘단죄’가 발동되었습니다]
[공격력이 20 퍼센트, 공속이 15퍼센트 증가하며, 절삭력(切削力)이 50 퍼센트 증가합니다. 염라의 격노(激怒) 효과로 반경 20미터 안의 모든 적대 대상의 체력이 30 퍼센트가 깎입니다]
퍼퍼펑!
“키에에엑!”
“키엑!”
염라의 권능, 단죄가 발동된 것이다.
동시에 백유현의 주변에 있던 모든 지옥 귀신들의 몸이 터져 나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염라의 격노 효과까지 발동된 결과였다.
당장 즉사하진 않았지만, 놈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파앗-
그 순간, 백유현은 우글거리는 지옥 귀신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번쩍-
그런데 그 때 지옥 귀신들 속에서 수십 개의 검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촤아아앗!
후드득!
순식간에 갈려 나간 지옥 귀신들의 몸뚱이.
그리고 허공 높이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수많은 살덩이의 파편들...
그 가운데서 백유현은 멍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이것이...’
사휘(死輝)가 아니었다.
방금 전 그것은...!
‘일...몰!’
주변의 모든 귀신들이 싹 쓸려 나가 있었다.
아무리 사휘를 쓸 수 있고, 살검을 깨달은 백유현이라 하더라도 한 순간에 이런 광경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단 한 칼에 수십, 수백의 귀신을 쓸어버릴 수 있는 검은 하나 뿐.
일몰(日沒).
- 잘했다.
온 몸의 근육이 뒤틀리는 격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백유현은 지금 그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일몰을 깨달았다.
그 두근거림과 흥분은 백유현을 일순간 멍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일몰이 발동된 것일까?
백유현은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빛보다 빠른 검...그것만이 빛을 베어낼 수 있으니...’
염라의 권능, 단죄.
그로 인해 올라간 공격 속도가 일몰을 가능케 만든 것이다.
척준경도 백유현이 그 해답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린 듯했다.
백유현의 입 꼬리가 슥 올라갔다.
해답을 알아냈으니, 이제는 무자비한 살육만 남았다.
“강효.”
“하명하시옵소서.”
백유현이 입을 열었다.
“가자, 모조리 쓸어버리러.”
한 명의 인간과, 그 뒤를 따르는 하나의 차사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더 많은, 그리고 더 강한 지옥 귀신을 찾기 위해.
번쩍-
무간 지옥에 때 아닌 태양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