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불멸자 대 불멸자
장내는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선발전에서 메인으로 꼽히는 대결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엑스 대회 추가 선발전은 사실 이 두 사람의 출현에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관우의 계약자, 김무준.
그리고 떠오르는 신성, 백유현.
두 사람이 첫 경기에서 충돌하는 지금 이 순간, 모든 이목이 그들에게 쏠려 있었다.
워낙 흥미진진한 승부가 기대되는 경기라, 그 결과를 놓고 상당한 판돈이 걸려 있을 정도였다.
도박사들에 따르면 9:1로 김무준의 우세였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김무준이 이기긴 하겠지만 쉽게 이기진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래서 흥미진진하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 ‘맹수’ 김무준과 막상막하의 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신성(新星)이라니.
다만 녀석이 고등학생이 아니고, 좀 더 일찍 나타나기만 했어도 9:1의 승부는 7:3 혹은 6:4로 상당히 뒤집혔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김무준’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판돈은 자연스레 김무준 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왁자지껄한 바깥의 소리들을 들으며 백유현은 조용히 눈을 떴다.
‘준비는 끝났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백유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막야를 들었다.
지이잉-
막야가 가늘게 떨려왔다.
백유현은 막야를 달래려는 듯 손을 뻗어 조용히 검신을 쓰다듬었다.
“백유현 씨, 경기가 곧 시작됩니다.”
그 때, 진행요원이 라커룸의 문을 열고 들어와서 상황을 알렸다.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길지 않은 복도를 걸어 나간 순간, 엄청난 외침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와아아아!”
그와 함께 후끈한 열기까지 동시에 전해졌다.
저 쪽에서는 김무준이, 이쪽에서는 백유현이 등장하는 모습이 거대한 LED 모니터에 잡혔기 때문이었다.
“김무준! 김무준!”
“백유현, 백유현!”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 목이 터져라 응원을 시작했다.
그 사이를 백유현은 고요하게 걸어 나갔다.
자신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연신 그의 이름을 외치는 고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순간 그는 그 무엇보다 고요했으며, 무엇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이 그의 검의(劍意).
그 안에 깊숙하게 가라앉아 있는 살의가 폭사되는 순간, 싸움은 시작될 것이다.
“양측 선수 앞으로!”
드디어 중앙에 마련된 거대한 경기장 가운데서 주심이 양쪽 팔을 들었다.
선수 입장이 시작된 것이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백유현과 김무준은 서로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경기장에 입장했다.
경기장은 상당히 넓어서, 그 안에서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둘 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김무준은 마치 사냥을 하기 직전의 맹수와 같은 사나움이 그 안에 녹아들어 있었고, 백유현은 오히려 눈빛에서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양측 선수, 준비!”
준비 외침이 울렸다.
김무준은 관우의 계약자답게, 등 뒤에는 언월도를, 그리고 손에는 짧은 단창(短槍)을 들고 있었다.
과거에는 거대한 도를 쓰더니, 좀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했다.
관우의 힘을 상당부분 전이 받았다는 것이다.
즉,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뜻.
그 앞에 선 백유현은 청동검, 막야를 들고 있었다.
김무준의 손에 들린 단창에 충돌하기만 해도 박살이 날 것 같은 고색창연한 검.
하지만 그 가치를 안다면, 그 누구도 그 검을 가볍게 보지 못할 것이다.
백유현은 이미 조셉의 스포일러로 김무준에 대한 신체 능력치 수치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다.
[김무준의 상태 능력치 수치]
현재 레벨 107
[근력 124] [지구력 82] [순발력 104] [행운 45]
[정신력 35] [지력 19] [근성 34] [체력 91] [인내심 10]
[동화력 48]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7]
그에 반해 백유현의 상태 능력치는 아래와 같았다.
[백유현의 상태 능력치 수치]
현재 레벨 104
[근력 115] [지구력 77] [순발력 114] [행운 31]
[정신력 41] [지력 24] [근성 25] [체력 71] [인내심 6]
[동화력 100]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김무준은 백유현에 비해 근력에서 9가 앞서고, 지구력에서 5가 앞선다.
하지만 순발력에서 10이 모자라고, 정신력과 지력이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체력이 20 차이라서, 그 차이가 상당한 변수가 될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 승부를 걸어볼 만한 것은 순발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쪽은 맞지 않고, 상대를 베어내는 영리한 공격.
하지만 백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이미 김무준도 예측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무준은 상대보다 모자란 순발력을, 기가 막힌 타이밍에 후려친 일격으로 상쇄하는 괴물이었다. 전투 센스가 엄청나다는 뜻이다.
놈을 상대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가령...
“시작!”
그 순간 호각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백유현의 두 눈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그는 이미 김무준의 눈앞까지 치달아 있었다.
번쩍!
카앙-
순간적으로 둘의 위치가 바뀌었다.
백유현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막야를 베었고, 김무준은 단창으로 그것을 막아냈다.
뚝- 뚝-
백유현은 무표정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막야의 검날을 타고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무준의 팔뚝에 기다란 혈선이 그어져 있었고, 김무준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서 있었다.
‘역시...그냥은 안 당하겠다는 거네.’
살의(殺意)를 담은 막야는 김무준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노리며 날아들었지만, 김무준은 그 짧은 순간 단창으로 막야의 칼날을 쳐낸 것이었다.
하지만 백유현의 검이 워낙 빨라서, 김무준의 팔뚝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일단 먼저 피를 본 것은 김무준이었다.
피를 본 김무준의 눈빛이 서서히 뒤바뀌었다.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두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피어올랐고, 그의 전신에서도 엄청난 살기가 뿜어졌다.
“애송이.”
김무준이 백유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됐겠지?”
철컹-
단창이 백유현을 정확하게 노리며 허공에서 꼿꼿하게 섰다.
그 앞에 선 백유현은 마치 거대한 천신(天神)이 들고 있는 창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지만, 이내 정신을 바로 차릴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백유현 역시 검을 바로 쥐었다.
‘장군의 검에 비하면 멀었어.’
살기를 정형화 하여 상대에게 환각(幻覺)을 일으키는 수법은 이미 척준경이 보여준 적이 있었다. 지금 김무준의 창이 무섭긴 했지만, 척준경의 극의(極意)에 달한 검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파카악!
순간 김무준의 눈썹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단창이 마치 기다란 장창처럼 쭉 늘어나며 백유현을 덮쳐왔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찔러 들어오는 창이었지만, 백유현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고요하게 걸음을 밟아나갔다.
이미 이 공격은 가상 전투에서 수도 없이 겪어봤던 것이었다.
유튜브에 있는 김무준의 공격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빈도수를 자랑하며 튀어나오는 쾌속 공격. 그 때는 도(刀)를 썼지만, 창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파카카캉!
하지만 역시 김무준의 공격은 매우 날카로워서, 잘 피하던 백유현도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막야를 들어 막아내야 했다.
“...”
창에 실린 힘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백유현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나 있었다.
역시 근력 차이가 있다 보니 창에 실린 힘을 채 해소하진 못한 것이다.
백유현은 잠시 자세를 바로 하고, 호흡을 다시 잡아나갔다.
‘후우...’
번쩍-
그가 호흡을 짧게 내쉰 순간, 순간적으로 막야가 허공을 격해 김무준의 가슴팍을 노리고 짓쳐 들어갔다.
“흐읍!”
가공할 살기의 폭발에, 김무준조차 두 눈을 부릅떴을 정도였다.
그는 사실 지금 매우 놀라고 있었다.
고작 고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놈이, 어떻게 이런 살기를 내뿜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고대의 검의 달인이나 뿜어낼 수 있는 정제된 살기!
촤라라랏!
카앙-
그는 단창을 휘둘러 급히 막야를 막아냈다.
‘으윽!’
그런데 놀랍게도 검을 막아낸 김무준의 발이 뒤로 밀려났다.
‘어떻게 이런!’
딱 봐도 근력은 자신이 강해 보이는데, 엉뚱한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이것이...’
백유현은 다시 막야를 뒤로 한껏 빼며 김무준에게서 시선을 고정했다.
방금의 공격은 김무준의 시선을 끌기 위한 미끼!
그가 뚫어야 할 곳은 단 한 곳.
김무준의 목덜미였다.
‘나의 살검(殺劍)...’
파각-
또 한 번 막야가 날카롭게 김무준에게로 향했다.
그 속도는 가히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
‘나의 사휘(死輝)다!’
번쩍-
허공에 검은 섬광이 그려졌다.
촤앗-
그리고 핏물이 튀었다.
백유현은 김무준을 스쳐 지나갔고, 뒤에 남은 김무준은 목덜미를 손으로 부여잡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 뭐야!”
“어, 어떻게 된 거야!”
관중석이 술렁였을 정도로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
각성자의 보호를 위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바로 회복할 수 있도록, 의료진과 각종 영약들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주심은 빠르게 경기를 중지시키려 했다.
지금은 조금만 백유현의 검이 깊게 파고들었어도, 김무준은 즉사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것은 반칙이 아니다.
오히려 정정당당한 승부!
사휘가 그 찬란한 광채를 드러낸 순간, 승부가 백유현 쪽으로 확 기울어 버렸고 주심은 사태 파악을 위해 김무준에게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 때였다.
고오오오오-
김무준의 전신에서 거대한 기운이 피어오르며, 그의 전신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두 눈이 양쪽으로 길게 찢어졌고, 얼굴이 붉은 대춧빛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헉, 저건!”
“설마, 불멸자 강신(降神)! 김무준이 저 정도 경지에 올라 있었다니!”
그리고 김무준의 목에서 뿜어지던 피도 어느 순간부터 멈춰 있었다.
- 운장(雲長). 놈이로군.
백유현은 자신의 몸속에서 거친 흥분에 몸을 떨고 있는 척준경을 느낄 수 있었다.
무신의 이름을 지닌 두 존재.
그 이름을 걸고 싸우는 이 싸움에, 척준경이 흥분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아마 그는 기회가 된다면, 현신해서 관우와 싸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척준경은 강신을 할 수 없다.
관우의 혼이 강신한 김무준의 두 눈에서는 번개가 치는 듯 보는 이의 심장을 멎게 하는 강렬한 눈빛이 쏟아졌고, 보통 김무준의 체구에서 더욱 더 커진 거대한 몸집은 절로 백유현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철컹-
그의 손에 들린 언월도.
그것은 관우가 쓰던 청룡언월도를 본 따서 만들어, 무게중심이나 길이 등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관우가 현신(現身)한 지금, 승부는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니, 오히려 백유현 쪽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한 얘기였다.
상대는 강신을 하면서 힘이 상당히 깎였다고는 하지만, 무신이라 불리는 관우였고 이쪽은 아직 고등학생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백유현이 피식 웃었다.
그의 옆에 누군가 둥실 떠올라 있었던 것이었다.
“여어, 저쪽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여기도 제대로 한 번 해봐야죠?”
조셉.
그였다.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불멸자는 불멸자로. 자, 이제부터 조셉의 마법을 시작해볼까요?”
아직까지 발동하지 않고 있었던 백유현의 권능.
‘스포일러, 미래를 쓰는 자' 가 발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