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김무준
팀-엑스 대회 추가 선발전 접수를 마치고 난 백유현은 완전히 달라진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세단에 올라탔다.
어딜 가나, 이제는 백유현을 신기한 눈으로 혹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고, 그는 완전히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추가 선발전 접수대에서도 접수원들조차도 접수처에 나타난 백유현을 보며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을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분명 놀람과 기대감이었다.
‘후우...’
백유현은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을 떠올리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중이란 참 재미있는 존재다.
과거에는 귀신을 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그렇게 멸시하고 구박하더니, 이제는 우러러 본다.
‘재밌네.’
생각에 잠겨 있던 백유현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접수처에서 언뜻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은, 어쩌면 그저 흘려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백유현의 뇌리 속에는 매우 강렬하게 각인이 되어 있었다.
- 이번에 김무준도 나온다며? 와, 이번 추가 선발전 장난 아니겠는데?
- 원거리 딜러 쪽에는 전지윤이 출전한다고 하니 이변이 없는 한 원거리 딜러 쪽은 전지윤이 될 가능성이 엄청 높을 거고...문제는 근거리 딜러네? 김무준에, 원주환에, 이번에 백유현까지...와 진짜 재미있겠는데?
- 누구든 떨어지면 진짜 억울하겠다! 하긴 셋 중에 누가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김무준이나 백유현이나 다 100레벨 이상인데다가 김무준은 노블레스 멤버스 본부에서 직접 나서서 겨우 설득한 거라며? 그리고 실전으로 따지면 아직 90레벨 대이긴 하지만 원주환의 실력도 만만치 않고!
이번 팀-엑스 대회에 사람들의 이목이 죄다 몰려 있는 만큼, 그 기대감과 관심은 정말 엄청났다.
선발전에 출전 등록한 각성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이미 그들 중 누가 선발될 것인지 예측하는 분석가들도 많았다.
수많은 유튜브 스트리머들은 연신 새로운 속보를 가지고 분석을 했고, TV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추가 선발전에 접수를 마친 이상, 이제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백유현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것은 단 하나.
‘괴물’이라 불리는 김무준의 등장이었다.
괴물이라 불리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원래 각성자가 되기 전부터, 종합 격투기 선수로 활동했었던 데다가 각종 무도(武道)에 심취해 홀로 산 속에 들어가 온갖 수련을 하던 괴인이 바로 김무준이다.
그런 그가 한 불멸자와 계약을 하고 나서 완벽한 ‘괴물’이 된 것이었다.
알려진 바로, 그 불멸자는 바로 관성제군(關聖帝君), 즉 무신(武神) 관우였다.
관우는 인간이었지만, 죽어 신(神)이 되었으며 지금은 티어 3등급의 불멸자로 김무준과 계약을 한 상태였다.
평생 무(武)를 연마하며 결국 무신의 자리에 오른 관우와 계약을 하면서 김무준은 그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완성된 김무준의 힘은 저번 팀-엑스 대회에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며 드러났고, 그의 압도적인 힘에 세계 순위권의 각성자들도 상당히 애를 먹었었다.
하지만 그는 저번 팀-엑스 대회가 끝난 후 돌연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알고 보니 역시 ‘그’ 다웠다.
세계 대회에서 일본의 또 다른 괴물 각성자, 요시모토에게 아쉽게 패한 후 그 충격에 은둔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은둔을 하면서도 그냥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한 자루 창을 들고 다니며, 난이도가 높은 카오스 터미널을 찾아 수련하고, 또 수련한 것이다.
그야말로 괴물이 더욱 성장했다는 뜻.
그래서 노블레스 멤버스 한국본부의 전략본부에서는 그를 찾아 겨우 설득해 이번 선발전에 참가시키게 된 것이다.
‘김무준의 예전 레벨은 107...’
백유현과 비교하면 3레벨 위다.
하지만 백유현의 지금 신체 능력치는 110레벨 이상의 각성자와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셉의 스포일러가 있는 이상, 압도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김무준을 떠올리니 백유현은 거대한 태산이 앞을 가로막은 듯 답답했다.
백유현은 각성하기 전부터도 김무준의 전투 영상을 수도 없이 봐왔었다.
그의 야수와도 같은 잔인성과 지치지 않는 공격성은 정말이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한 마리의 맹수가 먹잇감을 집요하게 노리며 덤벼드는 것처럼, 그는 잔인했고 강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지금까지 수련을 계속한 그는 얼마나 또 강해져 있을까?
‘후우...’
일단 가장 먼저 넘어서야할 산이 생겼다.
김무준을 넘어서지 못하면, 팀-엑스 대회는 갈 수가 없다.
‘할 수 있어.’
하지만 백유현도 과거의 백유현이 아니다.
그에게도 불멸자 염라가 있었고, 불멸자 조셉이 있었으며 막야(莫耶)가 있다.
그리고 숨겨진 또 하나의 힘.
‘불사의 재생.’
그것이 있는 한, 그는 두 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러니 백유현도 약하지 않다.
부우웅-
그 동안 세단은 조용히 그의 오피스텔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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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준이 왜 이번 선발전에 나오는 겁니까!”
정재호 부장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이건 핵심 간부에 들어가는 그조차도 모르던 일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최고 간부들의 모임인 원탁회(圓卓會)에서 직권으로 결정한 사항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원탁회의 간부 중 하나인 한정수에게 와서 얼굴이 일그러진 채 따져 묻고 있었다.
“다른 놈은 몰라도...김무준이 아닌 것은 잘 알지 않습니까! 놈은...!”
정재호도 김무준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놈의 짐승 같은 투기(鬪氣)와 그 무시무시한 싸움 실력은 마치 지옥의 야차(夜叉)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그런데 그래서 문제였다.
팀-엑스 대회는 대회 명에서도 보듯, 팀(Team) 대항전이다.
기본적으로 팀원들과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
그런데 놈은 마치 호랑이처럼 한 번 피가 끓어오르면 아군이건 적군이건 가리지 않고 물어뜯는다.
저번 팀-엑스 대회에서도 그랬지 않았던가!
일본의 요시모토에게 밀리기 시작하자, 놈은 폭주했고 결국 팀 치우(蚩尤)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탈락의 고배(苦杯)를 마시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 놈을 또 왜!
“어쩔 수 없지 않나! 양소윤이 빠져 버린 이상, 누구라도 들어갔어야 할 상황이야. 하지만 근거리 딜러의 엔트리에 양소윤 이상으로 잘 해줄 각성자가 누가 있었느냔 말이지. 원주환? 녀석의 싸움실력은 인정하지만, 이제 겨우 92레벨이야. 적 팀에 실력 좋은 원거리 딜러에게 노출되면 끝이란 말일세.”
정재호가 미간을 와락 구기며 말했다.
“지금...백유현이라는 좋은 재목이 등장했습니다! 실력으로도, 인지도 면에서도 모든 것이 양소윤을 능가했으면 능가했지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녀석이지요! 아니, 애초에 백유현이 있었더라면 양소윤이 선발되지 않았겠지요. 그 정도로 둘은 수준 차이가 나니까!”
한정수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정재호를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이미 전략팀에서 보고서를 작성한 내용을 토대로 은밀히 움직인 결과야! 백유현, 그 소년이 이번에 상당한 두각을 드러낸 것은 인정하네만, 이미 김무준을 영입한 후의 일이야. 지금 와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다른 자를 찾아 보셨어야지요...! 김무준 놈은...언제고 다시 팀을 갈가리 찢어버릴 놈입니다. 예전보다 더 위험해져 돌아온 놈이란 말입니다. 유현이 뿐만 아니라, 팀까지 그렇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자네 걱정은 알고 있네! 하지만 김현성이나 박성진이 그 점을 잘 커버할 것이라 믿네. 그리고 말이야, 그 백유현이라는 소년이 김무준을 꺾는다면...문제가 될 게 없지 않나?”
정재호의 두 눈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그리고 한참 후 그의 입을 비집고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김무준이 피에 젖은 야차(夜叉)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유현이가...설령 놈과 싸워 이기더라도 이미 모든 것이 갈기갈기 찢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선발전이라는 것이 원래 그럴 수밖에 없지. 자네, 그만 하게. 적당히 해두란 말이야.”
정재호가 가만히 한정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선배님 말씀대로 선발전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하지만 이번 일...분명히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그는 거칠게 몸을 돌려 방은 나섰다.
“빌어먹을!”
김무준이라는 맹수에게 백유현을 던져 주다니!
백유현이 최근 두각을 드러내며 엄청난 활약을 한 것은 알지만, 김무준은 이미 괴물의 수준을 넘어섰다.
놈은 피에 굶주린 지옥의 야차.
따라서 백유현이 놈에게 걸리면 갈기갈기 찢겨나갈 확률이 높다.
싸움에 미쳐 있는 김무준에게 백유현은 부숴서 박살내야 할 존재였으니까.
정재호가 거칠게 걸음을 옮겼다.
안타깝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백유현이 덜 다치길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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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無間)은 삼일 후에 열린다.
그 동안 백유현은 고난이도 카오스 터미널을 찾아다니며 경험치를 쌓고, 전투 감각을 일깨웠다.
그와 동시에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오피스텔에서 깊은 명상에 빠져들며 가상 전투를 벌였다.
그의 가상 전투의 적은 이미 어느 순간부터 김무준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영상을 반복해서 본 결과, 김무준의 몸짓 하나, 움직임 하나, 하나가 그의 뇌리 속에 또렷하게 각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김무준과 싸우며 때로는 짓밟히기도 하고, 때론 온 몸이 박살이 나기도 하면서 수도 없는 전투를 치렀다.
처음에는 연전연패였지만, 갈수록 조금씩 무승부가 나오기도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간혹 백유현이 이기는 결과가 드디어 나오기 시작했다.
‘후우...’
가상 전투를 끝내고 백유현은 두 눈을 번쩍 떴다.
아무리 가상 전투를 벌여도, 맹수처럼 달려드는 김무준을 쉽게 이길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가 뿜어내는 위압감은 압도적이었고, 그의 거친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백유현이 이기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광경에서는 늘 백유현 역시 상당한 치명상을 입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소문으로 김무준이 피에 굶주린 야차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강력하고 무서운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백유현은 그와의 가상 전투를 벌이면서 오히려 더욱 오기가 생겼다.
‘그래...김무준. 당신이 야차라면...'
백유현의 두 눈이 날카로운 빛을 내뿜었다.
'나는 지옥에서 그 야차들을 잡고 살아남았어. 그러니까...반드시 당신을 넘어서 주겠어. 김무준, 반드시!'
선발전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