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40화 (40/166)

40. 균열

학교와 아버지 일을 마무리 지은 백유현은 오피스텔로 돌아오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절망과 악몽으로 가득했던 등굣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지금, 백유현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 때는 죽음만을 떠올렸던 때가 있었다.

엄마가 비명에 돌아가시면서 그는 혼자가 되었고 더 이상 그는 이 각박한 삶을 버텨낼 힘이 없었다.

그나마 그가 의지할 수 있었던 존재인 아버지마저 주귀(酒鬼)들에게 홀려 알콜 중독자가 되면서 백유현의 삶은 철저하게 망가졌다.

거기다가 귀신을 본다는 이유로 왕따가 되어 살아가야 했던 학교에서조차 친구들은 그를 보면 외면하거나 무시했다.

그런 상황에서 삶을 더 이상 이어간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우연인지 뭔지는 몰라도, 엄마의 무덤을 찾아간 이후 그는 완전히 달라졌고, 지금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일 분, 일 초라도 더 살고 싶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 엄마를 반드시 되살리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는 단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그 동안 세단은 그의 어두운 과거가 서려 있는 등굣길을 벗어나, 시내로 접어들었다.

곳곳에 높은 빌딩이 수도 없이 서 있는 이곳은 서울에서도 상당한 번화가인 강남역 부근이었다.

부우웅-

세단은 매우 부드럽게 강남역을 지나 오피스텔로 향했다.

그런데 창밖을 바라보던 백유현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노려보듯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잠깐, 세워주세요!”

차를 세운 백유현은 갑자기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설마!’

강남역.

그것도 사람이 가장 붐비는 이 시간에, 높다란 빌딩들이 밀집되어 있는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한 둘이 아닌, 수도 없이 많은 그림자들이!

백유현은 황급히 강효를 불렀다.

“강효!”

“찾으셨나이까?”

백유현은 그림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뭐야! 저 자들, 차사(差使) 맞지? 아니, 왜 차사들이 저기에 있어? 하나 둘도 아니고...수백이나!”

그가 본 것은 다름 아닌, 검은 안개로 몸을 가리고 있는 저승차사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석고상처럼 강남역 부근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빌딩들을 빙 둘러싸고 미동도 없이 서 있었던 것이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강효가 대답이 없었다.

백유현은 고개를 홱 돌렸다.

“왜 대답이 없어!”

강효는 묵묵히 침묵을 지키다 잠시 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승의 법도(法度)이옵니다. 소주...”

“아니, 무슨 일이냐고 묻잖아! 강효!”

“소주...”

그 때, 미동도 없이 서 있던 차사들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것도 짜기라도 한 듯, 한쪽 방향을 향해 일제히.

백유현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들이 움직인다는 것은...그것은...!

“망할!”

백유현이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세상이 자신에게 해준 것이 없다 해도,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갈 참이다.

한편으로는 이것 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니 관여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힘들었을 때 그들이 해준 게 뭐가 있었던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후우...!’

차사가 움직인다는 것은 곧 ‘죽음’이 닥친다는 뜻.

특히 지금처럼 사자(死者)의 이름을 세 번 부르지도 않고 움직인다는 것은 대규모 ‘급사(急死)’를 뜻함이다.

수도 없는 떼죽음. 바로 그것을.

즉...

저들이 둘러싸고 있는 빌딩들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뜻.

하지만 백유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맞다.

이건 저승의 법도.

죽을 때가 되면, 차사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었다.

그건 그들의 운명이었으니까.

자신이 차사를 본다고 해서, 그들의 일을 방해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백유현은 고개를 돌리며 뒤로 돌아서려 했다.

그 때였다.

콰콰콰콰쾅!

번쩍-

그 때, 갑자기 백유현의 앞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리더니 눈이 멀 듯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미친 듯한 폭풍이 밀어닥쳤다.

“크윽!”

그 엄청난 에너지의 폭발에 휩쓸려 백유현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콰콰콰콰쾃!

뒤로 날아가 처박힐 뻔한 백유현은 가까스로 자세를 잡고 미친 듯 몰아치는 칼바람을 버텨냈다.

“꺄아아악!”

“으아악!”

드드드드-

콰콰콰콰쾅!

섬광과 함께 일어난 거대한 폭발은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며 스치는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백유현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빠아앙- 빠앙-

위잉- 위잉-

강남역 근처를 지나던 자동차들이 허공으로 치솟더니 그대로 땅을 향해 곤두박질을 치질 않나, 거대한 빌딩이 그대로 무너지질 않나...

그 아래에 지나던 사람들은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고 숨이 끊어지기도 하고, 무너지는 빌딩에서 뛰어내리다 죽는 사람도 있었다.

‘아...’

백유현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균열(龜裂).

바로 새로운 카오스 터미널이 생성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서울 한 복판, 강남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카오스 터미널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쿠오오오-

마치 태풍의 눈처럼, 거대한 구멍 하나가 허공에 생겨났다.

그것이 바로 원인을 알 수 없는 균열의 시작점.

그리고 이제 곧 ‘역습(逆襲)’이 시작된다.

카오스 터미널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이쪽 차원과 저쪽 차원이 완벽하게 나뉘지만, 균열 생성 초기에는 그 벽(壁)이 없기 때문에 터미널 안쪽에서 다른 차원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준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백유현은 눈살을 와락 구겼다.

그렇다는 얘기는 이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뜻이다.

백유현은 주먹을 꽉 쥐며 눈앞의 광경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들이 밉다 해도, 자신이 힘들 때 그들이 도와준 것이 없다 해도, 그냥 보고 모른 척 지나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잠깐...잠깐만이야.’

조금 있으면 군부대와 함께, 각성자들이 온다.

그리고 고 레벨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가디언(Guardian)’이 곧 도착할 것이다.

그 때까지 만이다.

그 뒤로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니지만, 그 전까지만 막아준다.

어차피 지금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백유현에게 전혀 위협도 되지 않는 최소 5에서 최대 50레벨까지의 몬스터들이 고작일 테니까.

그냥 경험치 얻는다 생각하고 싸우면 된다.

마음을 정한 백유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아직 차사들이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곧 이 일대는 더욱 극심한 아수라장이 된다는 뜻이다.

“강효.”

백유현은 나직하게 강효를 불렀다.

“차사, 강효. 소주의 명을 받잡나이다!”

“곧 놈들이 몰려온다. 우리 할 일이 뭔지는 알겠지?”

스릉-

강효가 절명을 뽑아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존재에 대한 처단은 이미 허락되어 있다.

그러니 인과율을 어기는 것도, 업보를 쌓는 것도 아니다.

“명을 받듭니다. 소주.”

백유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파각-

주변을 휩쓸던 후폭풍이 차차 사라지고, 균열 저 너머에서 뭔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크워어어!”

“키에에엑!”

“꺄아악!”

“사람 살려!”

수많은 몬스터들.

그리고 그 몬스터에 쫓기며 비명을 내지르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

‘당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야. 이것은 나를 위한 것...’

백유현의 두 눈이 진득한 살기로 물들었다.

키이이잉-

그의 손에는 어느덧 막야가 귀신의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섬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모조리 베어주겠어! 한 놈도 남기지 않고!’

“꺄아아악!”

그의 앞쪽에서 한 여자가 미친 듯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

얼마나 공포에 질렸는지,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고 신발도 다 잃어버린 채 맨발로 뛰고 있는 그녀를 스쳐 지나가며 백유현은 그대로 검을 내리 그었다.

파각!

“크웨에엑!”

그와 동시에, 여자를 쫓아오던 몬스터 하나가 깔끔하게 베어져 나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크와악!”

그런 백유현을 향해 옆에서 몬스터 하나가 사납게 달려들었다.

스릉-

쩌억-

그 순간, 놈은 아가리를 활짝 벌린 채로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강효의 손에 들린 절명이 맑은 검명을 울려내고 있었다.

“가자.”

“존명.”

지금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몬스터들이다.

겨우 레벨 5나 10. 혹은 높아봐야 40에서 50.

일반인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이지만, 도심지인 서울이라 하더라도 갑작스런 균열에 대한 대비책은 완벽하게 세워져 있다.

오 분 안으로 그 대비책이 발동될 것이기 때문에 놈들은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러니 그 때까지만 놈들을 베어내면 된다.

콰쾅!

그 때, 저쪽에 있던 빌딩 하나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등장한 하나의 거대한 몬스터...

‘저건!’

빌딩을 무너뜨릴 만큼 거대한 한 마리의 전갈!

놈의 꼬리는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꼬리들은 무시무시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놈이 나타남과 동시에 갑자기 백유현의 눈앞에 하나의 알림창이 떴다.

[긴급 포고(布告)]

[염라(閻羅) : 명부(冥府)에 생긴 거대한 혼돈의 균열을 틈타 탈옥한 수많은 마물(魔物) 중 일부의 흔적이 감지되었다. 망령 도수(倒壽)를 찾아 소멸시켜라!]

[임무 완료 조건 : 망령 도수의 소멸]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5 포인트, 염라와의 친밀도 30]

[염라가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경험치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이틀입니다]

[임무 정보 :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마물, 망령 도수가 균열을 통해 나타난 이 세계의 존재와 융화된 것으로 보인다. 도수의 정(精)은 이 세계의 존재와 완전히 융화되어, 그 영체가 사라졌으나 죽을 때까지 싸우는 특유의 포악성은 그대로 이 세계의 존재에 전이(轉移)가 된 것으로 보인다. 놈을 처단하여 명부의 질서를 회복하라!]

카오스 터미널.

즉, 균열(龜裂)에서 낮은 확률로 나타난다는 보스 급 몬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놈은 고 레벨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가디언들이 오지 않으면 절대 막을 수 없는 존재.

때마침 도착한 군부대나 일반 각성자들로는 역부족인 상대!

하급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 출동한 군부대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었다.

“저, 저것은!”

“말도 안 돼! 왜 저런 놈이 여기에!”

그들이 가진 화력으로는 일반 몬스터들을 처치하는데도 버겁다.

그런데 보스 급 몬스터라니!

“다들 정신 차려!”

지휘관이 크게 외쳤다.

“우리가 밀리면 끝이다! 놈을 향해 집중사를 퍼붓는다! 총알이건 뭐건 다 때려 박아!”

그 말에 군인들도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이미 때는 늦었다.

놈은 이쪽을 발견하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고, 일반 몬스터들도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씨발, 모조리 쏴 죽여!”

“으아아아아!”

그들은 미친 듯 방아쇠를 당겼다.

투타타타타타-

퍼퍼퍼퍼퍽!

군인들은 몰려드는 공포심을 떨쳐 내기 위해 악을 쓰며 사방으로 총을 쏴댔다.

일반 몬스터들이 수도 없이 쓰러지고, 놈들의 피로 주변이 온통 물들었지만 문제는 자이언트 스콜피온이었다.

놈의 두꺼운 갑각은 탄환을 모조리 튕겨내며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던 것이었다.

“으으으으...!”

“크윽!”

군인들의 얼굴에 짙은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물러서지 마라, 우리가 물러서면..."

슈아아악!

콰콰쾅!

지휘관이 크게 일갈을 내질렀지만, 그의 몸은 갑자기 내리꽂힌 자이언트 스콜피언의 꼬리에 갈가리 찢겨 나갔다.

“대대장님!”

군인들이 사색이 되었지만, 그들의 운명도 대대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이언트 스콜피온은 주변 모두를 초토화시키며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쾅!

콰드드득!

“으아악!”

지금 출동한 군부대는 무장등급 5레벨.

하지만 꽤 높은 등급의 그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화력으로 저지할 수 있는 것은 40레벨의 몬스터가 고작.

110레벨의 보스 몬스터에게 통할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콰직! 콰쾅! 콰앙-

그들이 공포에 질려 물러나는 순간에도 자이언트 스콜피온의 다섯 개의 꼬리는 무작위로 군부대의 군인들과 그 주변의 각성자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긴급 출동한 각성자들도 최고 레벨이 60.

놈을 막아낼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었다.

“으아악! 사, 살려줘!”

“크아악!”

여기저기서 아비규환이 일어나고, 아수라장이 펼쳐진 가운데 군인들도, 각성자들도 무력하게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자이언트 스콜피온은 미친 듯 덤벼들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 가공할 파괴력!

그 모든 것을 갖춘 자이언트 스콜피온의 공격에 모두가 넋이 나가 있을 그 때였다.

파앗-

하나의 그림자가 그들 위로 스쳐 지나갔다.

키이잉-

그 뒤를 따라 마치 귀신의 음산한 울음소리인 듯한 기이한 소리가 길게 꼬리를 끌며 들려왔다.

그리고...

“저, 저럴 수가!”

“뭐, 뭐야! 벌써 가디언이 온 건가!”

믿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파캉-

군인들과 각성자들 머리 위로 내리꽂히던 거대한 자이언트 스콜피온의 꼬리를 허공에서 쳐낸 한 명의 검사.

그는 자이언트 스콜피온의 그 가공할 힘을 맞받아치고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파앗-

“와봐, 죽여줄 테니.”

피에 물든 비명을 내지르는 검, 막야를 든 검사, 백유현이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의 눈앞에는 하나의 창이 떠올라 있었다.

[권능, 염라의 ‘단죄’가 발동되었습니다]

[공격력이 20 퍼센트, 공속이 15퍼센트 증가하며, 절삭력(切削力)이 50 퍼센트 증가합니다. 염라의 격노(激怒) 효과로 반경 20미터 안의 모든 적대 대상의 체력이 30 퍼센트가 깎입니다]

[단죄는 5분간 지속됩니다]

백유현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강효, 시작하자.”

막야(??)가 거칠게 몸을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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