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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잡고 폭렙업-39화 (39/166)

39. 마무리

아직 5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 동안 백유현은 밀린 일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오피스텔에서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백유현은 블랙 카드를 들고 집을 나섰다.

기사가 대기하고 있다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여기로 좀 부탁할게요.”

백유현은 미리 적어 놓은 주소를 내밀었다.

“예. 알겠습니다.”

기사는 부드럽게 차를 몰았다.

그 동안 백유현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그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 동안 익숙한 장면이 창밖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차가 멈춰섰다.

“다 왔습니다.”

기사의 말에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집.

오랜만에 와보는 집이었다.

지금은 고가의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집이라 불렀던 곳이었다.

백유현은 다 낡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그 소리가 오늘따라 낯설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그 동안 불어날 대로 불어난 주귀(酒鬼)들의 모습을.

놈들은 지붕에 매달려 있기도 하고, 서로 싸움박질을 하기도 하며 우글거리고 있었다.

백유현은 놈들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 내뱉었다.

“강효.”

파스스스-

그의 뒤에서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그림자의 두 눈에서도 진한 살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하명하시옵소서.”

“저 잡귀들...모조리 쓸어버려.”

강효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월직차사로서 바라던 바의 명령이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차가운 한 마디가 툭- 떨어졌다.

“존명.”

차사의 기척을 느낀 잡귀들이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상대는 월직차사, 강효.

그의 주박술(注泊術)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촤앗!

강효의 서슬 퍼런 처단이 이어졌고, 잡귀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그 사이를 백유현이 천천히 걸어갔다.

이 길의 끝에 아버지가 있다.

이 세상,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유일한 혈육.

지금은 죽일 듯 미운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있을 때는 꽤나 좋았던 사람이다.

백유현은 현관문 앞에 서서 잠시 멈춰섰다.

수도 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

‘엄마.’

엄마가 살아 돌아왔을 때, 지금의 아버지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무너질까?

그래서 온 것이다.

그 아버지를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려.

이제까지 아버지를 괴롭히고 술에 미치게 만들었던 주귀들은 이미 강효에 의해 모조리 소멸되었다.

힘이 약했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아버지.”

저 만치 초점이 없는 눈으로 티브이를 보며 술을 마시던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잠을 못 잤는지 두 눈의 실핏줄이 다 터진 채 손을 덜덜 떨고 있는 사내.

순간 백유현은 아버지의 두 눈에 안도의 빛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는 화를 벌컥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 놈의 자식, 한 번 나갔으면 아무데서나 콱 죽어버릴 것이지, 들어오긴 왜 들어와!”

그래, 한 순간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백유현은 따로 방법을 강구해두었다.

띵동 -

“경찰입니다. 백준길 씨 댁 맞습니까?”

“들어오세요.”

제복을 입은 경찰 둘과 파란 색 옷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둘이 안으로 들어섰다.

“신고자 되십니까?”

“예. 아들 백유현입니다.”

경찰 중 하나가 백유현에게 묻다가 백준길의 상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이상은 여쭤보지 않아도 되겠군요. 이쪽은 긴급구호센터 직원 분들입니다. 절차에 따라 이쪽에서 아버님을 맡게 될 겁니다.”

“백준길 씨, 저희와 함께 가시지요.”

“이거 놔! 네 놈들 뭐하는 놈들이야!”

백준길이 발악을 했지만, 건장한 사내 둘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 새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야, 백유현!”

백준길이 핏발이 선 눈으로 백유현을 노려보며 거품을 물었지만, 백유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버지를 언제까지 그냥 방치해둘 수도 없는 노릇.

그는 알콜 중독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센터에 들어가서 한동안 재활치료와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강효.”

“하명하시옵소서.”

주변의 잡귀들까지 모조리 쓸어버린 강효가 어느새 그의 뒤에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한테 차사의 인(印)을 찍어줄 수 있어?”

차사의 인.

이것은 보통 산 사람에게 찍는 것이 아니라, 악귀들을 좇을 때 다른 차사들이 보고 따라올 수 있게 찍는 인을 말했다.

그런데 차사의 인이 찍힌 구역에는 잡귀들이 모조리 도망가기 때문에 축귀(逐鬼)의 힘까지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버지에게 차사의 인을 찍으면 주귀들이 절대 얼씬하지 못할 것이다.

알콜 중독자들이 재발하는 이유가 바로 주귀들이 달라붙어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재발을 가장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강효는 잠시 멈칫했다가 바로 대답했다.

“소주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파앗-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백유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이곳, 이 아파트는 엄마와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오랜 만에 이곳에 오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후우...”

하지만 예전처럼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에게는 확고한 목표가 생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한참 후 집을 다시 나선 백유현의 표정은 이미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어느덧 성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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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문제를 해결한 백유현이 향한 곳은 학교였다.

물론 노블레스 멤버스에서 통보가 갔겠지만, 마무리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하고 싶었다.

백유현은 다른 아이들을 고려해 세단을 학교에서 먼 곳에 대기시켜 놓고 걸어서 교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마침, 점심시간이었던지라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축구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어딜 가나 문제아들은 있는 법.

“새끼, 똑바로 해라? 어? 아, 시펄, 돈도 없는 새끼가 말도 존나 안 들어, 씨발!”

인적이 드문 학교 뒤 편, 대여섯 명의 학생에 둘러싸인 채 한 학생이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어찌나 얻어맞았는지, 코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고 옷도 온통 피투성이였다.

“야, 최명호. 이거 어떻게 해서 된 거라고?”

이미 많이 두들겨 맞은 최명호는 몸을 잔뜩 웅크리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넘어져서...”

“아씨, 목소리 존나 안 들린다? 뭐라고?”

“나, 나 혼자 걸어가다 계단에서 넘어져서...”

“그래, 시팔! 말 똑바로 해라? 문제 만들지 말고! 어?”

“야, 김창우! 그만하고 한 대 빨러 가자.”

김창우는 험상궂게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하, 새끼. 존나 말 안 듣네. 아니냐, 준혁아?”

키가 190 센티미터가 넘는 강준혁을 바라보며 김창우가 히죽 웃어 보였다.

강준혁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김창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새끼...여깄다! 저 새끼 존나 거지더라.”

김창우는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 강준혁에게 내밀었다.

“한 장 더.”

김창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씨, 거지의 똥꼬까지 빨아 먹어라. 난 어떻게 살라고. 자!”

김창우는 몰래 숨겨뒀던 만 원짜리 하나를 강준혁에게 내밀었다.

“가자.”

강준혁의 말에 김창우를 비롯한 똘마니들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들은 오래 가지 않아 걸음을 우뚝 멈췄다.

김창우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고, 강준혁은 싸늘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예전과 달라진 게 없네. 누군 때리고, 누군 맞고...”

“우와, 이 새끼, 이게 누구야! 우리 백유현 아니야? 아, 시팔! 야, 너 결석이 좀 길더라? 너 없으니깐 우리가 얼마나 재미 없었는 줄 아냐?”

김창우가 반갑다는 얼굴로 백유현에게 다가갔다.

그 때 그는 갑자기 오싹한 기운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어씨, 근데 갑자기 왜 이렇게 추워?”

백유현이 씩 웃었다.

“그야 당연하지. 너 지금 진짜 죽을 뻔 했거든”

아마 김창우는 자신의 옆에서 차사, 강효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백유현이 각성자가 되었고, 베타 프로젝트 팀에 들어갔다는 것은 대부분 모르고 있는 듯했다.

아직 본인이 와서 수속하기 전이니 학교 내에서도 핵심 교사들만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백유현의 말을 들은 김창우가 눈살을 와락 구겼다.

“아, 또 그 재수 없는 소리냐? 이 시팔 새끼가 한 동안 안 보이더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응?”

김창우가 다시 나섰지만, 이번에는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백유현이 강효를 제지한 것이다.

“그래서 난 여기가 참 좋아. 변하질 않거든. 누군 때리고, 누군 맞고...공평하지 않아?”

백유현의 말에 김창우가 인상을 험악하게 쓰더니 앞으로 나섰다.

“이 새끼가...”

빠각-

콰당탕!

그 순간, 인상을 쓰며 백유현에게 다가가던 김창우가 자기 혼자 휙 날아가더니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창우야!”

깜짝 놀란 다른 녀석들이 김창우를 살펴보니, 녀석의 턱은 완전히 나가 있었고 이빨이 몇 개 박살이 난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김창우는 자기 혼자 턱이 나가고 이빨이 박살난 채 혼절한 것이었다.

“저 시팔 새끼가!”

물론 김창우가 혼자 그랬을 리는 없으니 당연히 백유현의 짓일 것이다.

김창우의 친구 셋이 눈이 뒤집혀서 백유현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 때 강준혁이 손을 내밀어 녀석들을 제지했다.

그러더니 두 눈에서 서늘한 눈빛을 뿜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이 새끼 봐라? 싸움 좀 배웠냐?”

강준혁도 복싱으로 상당히 단련된 몸이다.

백유현이 어떻게 했는지는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의 주먹에 김창우가 박살이 났다는 것쯤은 안다.

“뭐, 조금?”

“하, 이 새끼 눈빛 여전하네. 시팔...그 때나 지금이나...”

순간 강준혁의 두 눈에서 살기가 폭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스텝을 밟아나가며 주먹을 내질렀다.

“존나 마음에 안 든...”

빠각-

그 순간 스텝을 밟으며 파고들던 강준혁의 몸이 허공에 부웅- 떠올랐다.

콰당탕!

그리고 그 역시 그대로 뒤로 날아가 처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상당한 복싱실력과, 오랜 격투기 수련으로 단련된 강준혁이 김창우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날아가 처박힌 것이다.

퍽- 퍽퍽-

그리고 나머지 세 명도 전광석화와 같은 주먹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가 박살이 나고, 지독한 고통에 얼굴이 퉁퉁 부어 오른 녀석들이 다시 깨어난 것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강준혁과 김창우, 그리고 세 명의 똘마니들은 그들의 눈앞에 백유현이 빙긋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몸을 움찔 떨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과 한 달 만에 백유현은 그들이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그것도 마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듯.

이 경우에 결론은 단 하나다.

‘각성자...!’

백유현이 각성했다는 뜻이다.

그제야 녀석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깃들었다.

백유현이 각성자라면 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상대는커녕, 멀리서 보고 도망가야 할 존재니까. 백유현이 웃는 얼굴로 다가오더니, 퉁퉁 부은 강준혁의 뺨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준혁, 이거 어떻게 해서 된 거라고?”

강준혁이 눈살을 와락 구겼다.

이런 굴욕적인 상황을 자신이 당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각성자인 백유현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린 채 이를 악물며 죽어도 뱉기 싫은 문장을 뱉어냈다.

“너...넘어져서.”

그는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백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고? 잘 안 들려.”

“넘...어져서. 나...나 혼자 넘어져서 그런 거다.”

“나머지들은?”

“우, 우리도! 그냥 계단 내려가다가 다들 넘어져서 다친 거야! 그, 그래!”

백유현이 씩 웃었다.

“그래, 그 동안 고마웠다. 친구들. 난 오늘부로 이 학교 관두지만, 종종 들를게.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놔두고 어떻게 그냥 잊고 살 수 있겠어? 안 그래?”

백유현의 부드러운 협박에 강준혁을 비롯한 네 명은 죽을상이 되었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 그래!”

“반가웠다. 그럼 잘 살아라. 아, 그리고...”

백유현은 등을 돌려 걸어가다 말고 다시 강준혁 등을 바라보았다.

“조심해. 너희들의 뒤에...정말 녀석들이 노리고 있거든.”

움찔-

거짓말이 아니었다.

녀석들의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잡귀들이 우글거리며 호시탐탐 녀석들의 생기를 빨아먹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니까.

백유현은 그 광경을 보며 씩 웃었다.

그는 놈들을 적당하게 봐준 게 아니었다.

아까 놈들을 패면서 백유현은 놈들에게 썩은 선지의 흔적을 남겼고, 그로 인해 당분간 수많은 귀신들이 놈들에게 달려들 것이다.

'한동안 고생 좀 할 거다.'

최소 한 달은 매일 귀신이 나오는 악몽에 시달려야 할 거다.

매번 가위에 눌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그렇게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가야겠지.

그것이 백유현이 놈들에게 내린 벌이었다.

독기를 품은 귀신들의 장난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지는 백유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정말 놈들은 죽고 싶을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지의 흔적이 사라져 귀신들이 사라진다 해도, 놈들은 이제 학교에서는 유명무실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백유현이 다시 찾아온다고 한 이상, 놈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테니까.

이것으로 백유현은 학교와 아버지, 두 가지를 모두 다 마무리 지었다.

‘이제는...’

이제는 선발전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선발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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