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역살마(疫殺魔)
“후우...만금(萬金)의 가치를 지닌 막야를 이렇게 잃다니 억울하기 짝이 없군. 그나저나 대단하구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어찌 막야를 알아본 것인지?”
한숨을 내쉬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도척의 말에 백유현이 빙긋 웃어 보였다.
“결국 인연이 될 운명이었나 보죠. 그런데 사자육전에서는 주로 어떤 것을 팔죠?”
그 말에 도척이 음침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것, 저것. 사자(死者)의 부장품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6등품에서는 별 볼 것이 없어 보이겠지만, 1등품, 특등품으로 올라가면 아마 볼만 할 거요. 대신 그만큼 비싼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대가라...”
“세상 모든 것에는 다 대가가 필요한 법이오. 사자육전에서도 예외는 아니지.”
“여기선 어떤 것을 대가로 받는 거죠?”
백유현의 물음에 도척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뭔가 서늘하면서도 섬뜩한 눈빛.
그리고 그는 이내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백유현을 가리켰다.
“거기 있잖소. 망자의 찌꺼기. 그거, 맛이 기가 막히거든. 클클!”
백유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표정을 흠칫 굳혔다.
몸 곳곳에 망자들의 잔해(殘骸)가 잔뜩 묻어 있었던 것이었다.
[망자의 잔해, 육편(肉片)]
[망자들이 죽으면서 남긴 찌꺼기. 망자(亡者)의 혼을 소멸시키면 일정 확률로 얻을 수 있다. 사자육전의 도척은 육편을 화폐로 받는다]
[현재 소지 육편 1,780]
그제야 사자육전의 화폐라고 할 수 있는 육편에 대한 설명과 현재 육편의 개수가 떴다.
살아생전, 인간을 산 채로 회를 쳐 먹고 특히 간을 날 것으로 먹기를 좋아했다는 도척이다. 그 끔찍하고 역겨운 버릇을 여기서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백유현도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자육전에서 물건을 사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1,780 육편으로는 뭘 살 수 있지?’
백유현은 사자육전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6등품이라지만, 특이한 물품이 많았다.
그 중, 약재 쪽을 둘러보던 백유현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호정단(護精丹)?’
6등품의 약재, 환단의 분류 중에 호정단이라는 이름의 단약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백유현은 호정단에 시선을 고정하자, 호정단에 관한 설명이 눈앞에 떠올랐다.
[호정단(護精丹)]
[진나라의 서복(徐福)이 만든 불로불사의 영약 중, 초기 실패작. 진시황을 비롯한 진나라의 고급 관료들은 서복이 행방불명되었다고 알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는 결국 불로불사의 영약을 만들어냈으며, 그 제조법과 그 제조법으로 만들어낸 한 알의 영약은 그와 함께 영원히 침묵 속에 묻혀 있다. 서복은 영약을 먹기 전에 그 동안의 피로와 중독(中毒)으로 급사(急死)했으며 그리하여 불로불사의 영약의 제조법과 영약은 영영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되었다.]
[실패작이라고는 하지만, 호정단은 꽤 뛰어난 각성제이기도 하다. 한 알을 섭취하면 한 시간 동안 집중력과 지구력이 크게 늘어난다. 그리고 피로도가 증가하는 속도가 상당히 억제된다.]
[한 알 당 500 육편]
백유현은 두 눈을 빛냈다.
‘이거다!’
다른 약재는 실전된 질병 치료약 등 현재 백유현과는 별로 상관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호정단은 꽤 뛰어난 각성제.
진나라의 서복이 불로불사의 영약을 만들다 실패한 환약이긴 하지만, 상당한 효능을 가진 듯했다.
그리고 지금 백유현에게 필요한 것이 딱 그것이었다.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그러면서도 놀라운 집중력과 지구력을 보장해줄 수 있는 약.
“이거, 세 알 주세요.”
한 알 당 500 육편이면 호정단을 세 개 살 수 있다.
그럼 세 시간 동안은 정말 미친 듯 싸우기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안 살 이유가 없다.
도척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클클거렸다.
“잘 고르셨소! 아주 좋은 약이지. 막야를 든 검사라면, 아마 죽어라 피를 보고 싶어질 테니 가장 잘 맞는 약일 거요. 클클클!”
도척은 호정단 세알을 백유현에게 건넸다.
순간 백유현이 가지고 있던 육편 중 1,500 육편이 빠져나갔다.
“좋군. 자, 오늘은 기회를 다 썼으니 다음에 또 오시오. 사자육전은 늘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소. 크흐흐!”
거래가 끝나자, 도척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사자육전의 문이 닫혔다.
파앗-
그와 동시에 백유현은 망혼대에 다시 돌아왔다.
아마 처음 거래는 두 번이 한계인 듯했다.
어차피 육편이 더 이상 없어서 살 것도 없었다.
백유현은 손에 들려 있는 호정단과 막야를 바라보았다.
막야는 매우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검집에 들어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도 그 예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는 막야의 원혼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귀기만큼은 여전했다.
‘잘 부탁한다. 막야.’
이제 그의 검이 되어줄 막야를 향해 나직하게 중얼거린 백유현이었다.
스릉-
그리고 그는 막야를 빼들었다.
시릴 듯한 날카로운 예기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좋아!”
백유현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손에 잡히는 검 자루의 묵직한 느낌과, 완벽하게 무게 중심을 이루는 막야의 검신.
비록 청동검이긴 했어도, 현재까지 전해지는 그 어떤 강철 검보다 예리하며 강도가 높은 검. 그래서 천하막야라 불리던 것이 아니던가?
백유현은 호정단 하나를 꺼내 입 안에 털어 넣고는 우적우적 씹었다.
싸한 냄새와 함께 상쾌한 맛이 입 안 가득 감돌았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이 치솟았다.
이것이 호정단!
“강효.”
“하명하시옵소서.”
“다시 시작할 시간이야!”
강효의 입가에도 싸늘한 미소가 맺혔다.
“명령을 받드옵니다.”
파앗-
백유현과 강효가 팔비귀가 득시글거리는 아수라장으로 몸을 날렸다.
“하아앗!”
막야의 서슬 퍼런 빛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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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야(莫耶)를 든 자, 피를 갈구하게 될 것이다- 라던 도척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검에 깃든 막야의 원혼은 이미 떠났으되, 그녀의 원독이 워낙 깊어서인지 이미 검 자체에 귀기(鬼氣)가 잔뜩 서려 있어, 귀신들의 피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파삭-
촤앗!
검은 마치 스스로 움직이듯 팔비귀를 베고, 또 베었다.
막야의 절삭력이 얼마나 좋은지, 백유현이 그저 검을 들고 휘둘렀을 뿐인데도 팔비귀들의 목과 팔다리가 그냥 잘려 나갔다.
뼈가 걸리는 느낌도 없었다.
원혼이라고는 하지만, 지옥인지라 실체화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야는 그 모든 것을 너무도 매끄럽게 베어나간 것이다.
그리고 막야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귀신의 울부짖음과 같은 검명(劍鳴)이 울렸다.
끼아아아-
파삭!
귀신의 검에 베인 원귀들이 수도 없이 쓰러져 갔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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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역귀(瘟疫鬼) 사냥에 성공하여 7,20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명부의 척살자’ 호칭의 효과로 2,160 경험치가 더해집니다]
[‘염라의 아패’ 효과로 2,160 경험치가 더해집니다]
....
[각성자 레벨이 97로 올라갑니다]
[가용한 신체 능력치 2가 주어집니다]
...
[무간 지옥의 폐쇄까지 앞으로 3일 22분 42초가 남았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무간 지옥에서의 시간이 3일 밖에 남질 않았다.
그 가운데 백유현의 레벨은 97로 올랐다.
어마어마한 결과였다.
만약, 그가 막야를 들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뒤로 계속 호정단을 보충하며 싸우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로 올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차사, 강효의 도움까지 있었으니...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백유현은 오늘도 이를 악물고 막야를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다.
수도 없는 온역귀, 즉 역병 귀신들과의 싸움이 벌어지고 수많은 온역귀가 죽어 나자빠졌다.
그는 지금 무간 지옥의 안쪽으로 조금씩 파고 들어가는 중이었다.
강력한 적이 계속해서 나왔지만, 백유현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백유현에게는 이득이었으니까.
싸움이 힘겨울수록 얻는 것은 많아진다.
파가가각-
“키에엑!”
“키엑!”
[권능, 염라의 ‘단죄’가 발동되었습니다]
[공격력이 20 퍼센트, 공속이 15퍼센트 증가하며, 절삭력(切削力)이 50 퍼센트 증가합니다. 염라의 격노(激怒) 효과로 반경 20미터 안의 모든 대상의 체력이 30 퍼센트가 깎입니다]
[단죄는 5분간 지속됩니다]
수도 없는 온역귀들을 베어 넘기는 순간, 염라의 권능 ‘단죄’가 발동했다.
역시나 단죄는 엄청난 권능이었다.
파가가가가각!
백유현의 손에 들린 막야가 그야말로 미친 듯 허공을 누비고 다니며, 온역귀들을 모조리 베어나갔고, 그 순간에 고통 전이가 이뤄지며 수많은 온역귀들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막야를 손에 쥐고 있는 이 순간, 염라의 권능, 단죄까지 발동되자 정말 짜릿할 정도로 손맛이 가히 환상적으로 전해져왔다.
그야말로 추풍낙엽(秋風落葉)!
막야를 쥔 백유현 앞에서 각성자 레벨 대응 99의 온역귀들도 무차별하게 쓰러져갈 뿐이었다.
파각-
그런데 막야가 시퍼런 빛을 뿜어내며 마지막 남은 온역귀의 목을 쳐서 날렸을 때였다.
[포고(布告)]
[염라(閻羅) : 명부(冥府)에 생긴 균열에서 새어나온 힘은 지옥 귀신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이르렀다. 이에 온역귀의 우두머리인 역살마(疫殺魔) 역시 그 힘에 노출이 되어 더욱 더 강해져, 수십 명의 옥졸들이 놈에게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명을 내리노니, 역살마를 처치하라]
[임무 완료 조건 : 역살마의 소멸]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5 포인트, 염라와의 친밀도 25]
[염라가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경험치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삼일입니다]
[임무 정보 : 온역귀들의 우두머리인 역살마가 균열에서 뿜어진 힘에 자극 받아 광폭화(狂暴化)하여 지옥 옥졸들을 살해하고 구역을 벗어나 날뛰고 있다. 역살마는 변이(變異)의 영향으로 기존보다 모든 능력치가 더욱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는 차사의 보고다]
파앗-
그 때 별안간 강효가 백유현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소주, 물러서시옵소서.”
그의 손에 들린 절명(絶命)이 계속해서 울음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백유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강력한 적이 나타났을 때, 절명은 저렇게 울곤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절명이 아니라, 백유현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강한 놈이야.”
“맞사옵니다. 온역귀들의 대장, 역살마(疫殺魔)의 냄새가 진동을 하옵니다.”
강효조차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온역귀의 구역에 이른 이후부터 강효의 얼굴에서도 여유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라는 뜻.
그리고 그만큼 백유현이 성장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쿵-
그 때, 갑자기 땅이 울렸다.
그리고 짙은 안개 저 너머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거대하고도 거대한 그림자.
백유현은 물론, 강효도 미간을 좁히며 그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강력한 적이다.
그림자만 봐도 그것이 느껴졌다.
“크웨에에엑!”
콰쾅!
그런데 그 그림자가 갑자기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얼굴 전체가 완전히 썩어 들어가는 끔찍한 몰골에, 시체들이 덕지덕지 뭉쳐져서 만들어진 거대한 시귀(尸鬼).
키가 십 미터가 넘는 역살마는 누런 두 눈알을 뒤룩거리더니, 백유현과 강효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다시 한 번 괴성을 내질렀다.
“꾸웨에에엑!”
“강효!”
순간 백유현은 놈을 향해 튕기듯 바닥을 차며 내달렸다.
“존명!”
파각-
그와 동시에, 차사, 강효도 절명을 손에 쥐고 백유현의 반대편으로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절명과 막야.
두 명검을 든 둘은 역살귀의 양옆으로 갈라져 쇄도해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