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막야(莫耶)
“하앗!”
빠각-
“크에에엑!”
백유현에게 달려들던 팔비귀(八臂鬼) 하나가 머리통이 터져나가며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고꾸라졌다.
[팔비귀 사냥에 성공하여 2,40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명부의 척살자’ 호칭의 효과로 720 경험치가 더해집니다]
[‘염라의 아패’ 효과로 720 경험치가 더해집니다]
....
[각성자 레벨이 56으로 올라갑니다]
[무작위 신체 능력치 2가 올라갑니다. 인내력 2 증가]
[가용한 신체 능력치 4가 주어집니다]
정신없이 싸우는 가운데, 백유현의 레벨업 또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무간 지옥의 폐쇄까지 앞으로 16일 4시간 32분 41초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벌써 보름이 넘게 흘러 있었다.
그 동안 백유현이 올린 레벨은 무려 47.
“하아앗!”
하지만 백유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팔비귀들을 잡아나갔다.
콰앙-
“크에엑!”
레벨 57의 팔비귀들은 백유현이 휘두르는 망치에 머리가 박살이 나며 쓰러졌다.
얼마나 그렇게 팔비귀들을 잡아나갔을까, 갑자기 백유현의 눈앞에 뭔가 떠올랐다.
[불멸자 염라(閻羅)의 권능을 자각했습니다]
‘음?’
사방에서 팔비귀들이 달려드는 통에, 백유현은 그 메시지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뭔가 큰 일이 벌어진 것은 확실했다.
백유현은 강효를 흘끗 보며 외쳤다.
“강효! 잠시만 뒤로 빠지자!”
“차사, 강효! 명을 받듭니다!”
끼이이이잇-
파각- 촤앗!
강효의 손에 들린 절명(絶命)이 무시무시한 검명을 토해냈고 팔비귀들이 수도 없이 베어져 나갔다. 그 틈을 타서 백유현은 충분하게 거리를 벌리고 뒤로 빠졌다.
[팔비귀 사냥에 성공하여 2,40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
덕분에 경험치가 또 한번 몰아서 들어왔다.
백유현은 그냥 무턱대고 귀신을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무간지옥에는 군데군데 귀신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을 강효는 망혼대(望魂臺)라고 불렀다.
지옥 옥졸들이 올라가서 귀신들을 감시하고, 심심하면 내려가서 도륙내기 위해 대기하는 곳이라는 그의 설명이 있었다.
그곳에는 신기하게 귀신들이 접근하지 못했다.
“후우...”
아까 봐두었던 망혼대에 도달한 백유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그는 쉴 생각이 없었다.
어서 눈앞에 뜬 창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불멸자 염라(閻羅)의 권능을 자각했습니다]
[권능, 단죄(斷罪)를 자각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권능의 자각으로, 염라의 권능이 계약자 백유현에게 전이(轉移)되기 시작합니다]
[전이 3 퍼센트 완료]
‘단죄!’
그렇게도 기다려왔던 염라의 권능 중 하나를 자각한 것이다.
각성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계약한 불멸자의 권능을 자각하는 것.
원래는 친밀도에 따라서 결정되곤 하는데, 그것도 어떤 불멸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괴팍한 불멸자를 만나면 아무리 친밀도가 높다고 해도 권능을 제대로 전이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반대로 친밀도가 낮지만 권능을 자각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염라와의 친밀도는 현재 58.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적절한 친밀도인데 벌써 ‘단죄(斷罪)’라는 권능을 자각한 것이다.
“경하 드리옵니다. 소주!”
차사, 강효도 뭔가를 느꼈는지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염라의 권능이 백유현에게 전이되고 있는 것을 느낀 듯했다.
백유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다 강효 네 덕분이야. 덕분에 이런 좋은 일까지 생겼네.”
불멸자의 권능을 각성했다는 것은, 그 각성자가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다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뜻.
백유현은 기분 좋게, 새로 자각한 염라의 권능에 대해서 세세히 들여다보았다.
[권능 : 단죄(斷罪) 1단계]
[권능의 주인 : 염라(閻羅)]
[염라의 권능 중 하나인 단죄는 악독한 귀신을 한칼에 쳐 처단하기 위한 염라의 고유 권능이다. 악귀를 단죄할 때 생기는 고통은 주변의 다른 귀신들에게 확률적으로 전이가 되기도 한다. 단죄 1단계 현재 고통 전이 확률 11%. 고통이 전이가 되면 첫 데미지의 20퍼센트가 가해진다. 단죄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확률과 전이되는 데미지 량이 오른다]
[단죄 발동 시 무기 공격력이 20 퍼센트, 공속이 15퍼센트 증가하며, 절삭력(切削力)이 50 퍼센트 증가한다. 동시에, 염라의 격노(激怒) 효과로 반경 20미터 안의 모든 대상의 체력이 30 퍼센트가 깎인다. 단, 괴수(魁首)급의 악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단죄 1단계 현재, 단죄 발동 시 효력이 5분간 지속한다. 재발동 대기 시간 20분]
[주의 : 염라의 권능, 단죄는 날붙이 무기에만 적용된다.]
설명만 봐도 엄청난 권능이었다.
단죄가 발동만 해도, 주변 반경 20미터 안의 모든 대상의 체력이 무려 30 퍼센트가 깎여 나가며 공격력 증가, 공속 증가, 절삭력 증가 등의 버프가 걸린다.
게다가 더욱 무서운 것은 고통 전이.
고통 전이까지 발동되면, 단죄는 몰이사냥의 꽃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권능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날붙이 무기에만 적용된다고?’
날붙이 무기, 즉 검이나 도, 창 같은 날(edge)이 있는 무기에만 적용된다는 뜻이다.
백유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애초에 망치를 선택한 것은, 예전에 힘이 모자랐을 때 어떻게 하면 몬스터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을까 해서였다.
이런 좋은 권능을 얻었는데 굳이 망치를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버리지 뭐.’
백유현은 망치를 흘끗 보았다.
수많은 악귀들의 체액과 피로 번들거리는 망치.
망치는 파괴력이 꽤 좋았지만, 사실 일대 다의 싸움에서는 좀처럼 위력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불멸자의 권능이나, 100레벨이 넘어서 얻을 수 있는 광역기가 없이는 일대 다의 싸움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무기.
검도 비슷하긴 하지만, 검은 대신 50레벨에 얻을 수 있는 꿰뚫기나 70레벨에 얻을 수 있는 모아 베기 등의 하급 기술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기를 바꾼다 해도 이미 얻은 망치의 숙련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더 생겼다.
‘검이 없군.’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었지만, 백유현은 그것도 쉽게 풀어냈다.
‘사자육전이 있었지!’
아직 한 번도 사자육전을 개방한 적은 없다.
백유현은 잠시 쉬어갈 겸 사자육전을 개방했다.
파앗-
짤랑- 짤랑-
그러자 쇠 방울 소리가 울리며 백유현을 둘러싼 풍경이 확 바뀌었다.
커다란 성황당(城隍堂)의 내부 같은 곳에 수많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성황당의 곳곳에는 음침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거미줄이 수도 없이 쳐져 있었다.
“어서 오시오.”
그리고 차사(差使)와 비슷한 차림새의 한 사내가 나타나 백유현에게 음침한 시선을 보냈다.
차사, 강효는 그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그 이상 아무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 사내는 백유현을 물끄러미 보더니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산 자가 사자육전에 들어오다니 뜻밖이군. 생기 서린 호흡은 정말 오랜만이야. 흐흐!”
“소주께 해를 끼칠 생각을 했다간 네 놈의 목을 날려 버릴 것이다. 도척(盜?).”
도척.
중국의 전설적인 도둑, 도척이 바로 그였던 것이었다.
도척은 강효의 서릿발 돋는 경고에,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진정 하시게. 강효. 내 어찌 대왕의 인(印)을 받은 자를 해치려 하겠나. 크흐흐!”
그리고는 백유현을 향해 음산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골라 보시오. 보아하니...당신은 검을 찾는 것 같은데 검은 저 쪽에 있소. 단, 당신은 1등급이라 6등품의 물품밖에 볼 수 없다는 걸 명심하시오. 아, 이번 한 번만큼은 대왕께서 단 하나의 물건을 거저 주라 했으니 맘껏 골라보시오.”
백유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도척이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눈앞의 인물이 그 유명한 도척이든 뭐든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얼른 쓸 만한 검을 찾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그가 도척이 가리킨 쪽으로 향하자, 다시 풍경이 바뀌었다.
사방의 벽면이 모조리 검과 도(刀)로 가득 찬 커다란 방으로 바뀐 것이다.
“어디, 잘 골라 보시오.”
도척은 희대의 도둑이자, 공자(孔子)마저 논리로 꾸짖어 쫓아낸 비상한 머리를 가진 자였다.
인육을 즐겨 먹은 엽기적인 살인마이기도 했고, 온갖 기행(奇行)을 일삼은 괴짜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그는 사자육전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가 이 안에 뭘 숨겨 놨을 지는 아무도 모를 일.
하지만 분명히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찾고 싶어 하던 보물들이 분명 이 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백유현은 이미 그런 느낌을 확실히 받고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이곳은 저승의 사자육전.
그 죽은 자들이 입을 열어 자신의 부장품들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죄다 말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흐음...’
백유현은 안쪽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강효는 이쪽으로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도척 옆에서 그를 감시하듯 노려보고 있었다.
벽에는 과연 수많은 검(劍)들이 걸려 있었다.
매우 오래된 고색창연한 검부터, 비교적 최근의 검까지.
하지만 역시 6등품이라 크게 와 닿는 것은 없었다.
날이 예리하게 서 있는 검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끌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왠지 그런 검들을 잡았다간 곧 후회할 것 같은 느낌?
백유현은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방을 한 번 다시 둘러보았다.
그 때, 하나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각양각생의 검들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 검은 마치 고요하게 잠든 듯 아예 색조차 없었다. 그저 시커먼 안개가 휩싸여 있는 듯한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검.
그리고 녹이 잔뜩 슬어, 다른 사람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검이 한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어찌나 깊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짙은 음산함마저 감돌고 있는 그 검이 백유현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이다.
백유현이 그 검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그런 검을 가지고 얼마나 버티겠소? 그거 가지곤 쥐새끼 대가리도 못 자를 것이오! 클클클!”
도척이 음산하게 웃음을 지었다가 강효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고 곧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 외형은 잔뜩 녹이 슬어 있어 검으로서 가치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런데 순간 백유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도척의 말이 맞다.
하지만...
“그럴 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 검을 집어 들었다.
투투툭-
시뻘건 녹이 떨어졌다.
순간 도척이 눈살을 와락 구겼다.
“내, 말하지 않았소? 그 검은...”
그 때 백유현이 그의 말을 잘랐다.
“맞아요. 이 검은...막야(莫耶). 오나라 합려의 명으로 명장(明匠) 간장이 만든 검이죠. 검을 만들기 위해 불길 속에 몸을 던진 간장의 아내, 막야의 원혼이 서려 있는.”
막야.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합려의 명으로 검을 만드는 명장, 간장이 만들다가 실패를 거듭하다 결국 간장의 아내인 막야가 불꽃 속에 몸을 던져 완성해낸 희대의 명검 중 한 자루였다. 그 때 탄생한 두 자루의 명검 중 간장을 웅검(雄劍), 막야를 자검(雌劍)이라 불렀는데 두 자루의 검은 그 뒤로 주인이 없이 사라져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 그걸 어떻게...!”
도척은 두 눈을 부릅떴다.
막야 같은 명검이 왜 6등품으로 분류되었는지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백유현의 말대로, 막야에는 간장의 아내였던 여인, 막야의 원혼이 깃들어 있어 아무도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명검이라 하더라도, 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그래서 누군가 귀기가 잔뜩 서린 막야를 보고, 오나라가 망할 것을 예언했을 정도였다.
백유현이 씩 웃었다.
그가 어떻게 알 수 있었냐고?
그건 간단했다.
그의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떠올라 있었으니까.
[막야(莫耶)]
[간장의 아내, 막야의 원혼이 서려 있는 명검. 모든 것을 잘라낼 수 있는 날카로움을 지녔으나, 원혼의 귀기로 누구도 손 댈 수 없는 저주의 검이 되었다. 원혼을 달래어 성불시킬 수 있다면, 막야의 예기(銳氣)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미안해요. 아주머니.’
굳이 조셉의 스포일러가 아니더라도 백유현의 두 눈에는 똑똑하게 보였다.
다 녹슨 막야검의 검신 속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한 여인의 영혼이.
그녀의 두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얼굴이 죄다 녹아내린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검에 깃든 그녀의 원한이 너무도 깊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는 떠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도척에 의해 사자육전의 한 구석에 처박힌 신세가 되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검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믿어주시겠어요? 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그토록 힘들게 만드신 이 검...제가 잘 써볼게요.’
검에 깃든 막야의 원혼이 백유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한참 후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는 피눈물 대신 투명한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뜨거운 불속에서 녹아버린 두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자, 백유현의 가슴 한 구석도 찡해왔다.
그리고 그는 검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막야의 원혼은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더 이상, 이 아픈 기억 속에 머무르지 않고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가기로.
그 동안 검속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던 막야의 원혼이 스르르 빠져나왔다.
“대왕께 인도하여라.”
언제 왔는지, 차사 둘이 백유현의 뒤에 서 있었다.
강효가 그들에게 명을 내렸다.
“단, 성심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두 차사는 여인, 막야의 혼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막야는 오랜 세월의 원한을 풀고 멀고 먼 저승길을 떠났을 것이다.
파스스스-
그리고 막야를 가득 뒤덮고 있던 녹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
백유현은 두 눈을 부릅떴다.
녹이 사라진 막야의 검신에서 눈이 멀 듯 광채가 뿜어지더니, 세상 어디에도 없을 예리한 보검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백유현의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막야(莫耶)]
[귀(鬼)를 베어내고, 신(神)을 쪼갤 수 있는 명검. 절삭력이 뛰어나 단단한 바위조차 베어낼 정도이다. 자검, 막야를 지닌 자는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공격력 : 297 (무속성)
절삭력 : 270
내구도 : 250/250
[???], [???], [???]
명검, 막야가 손에 들어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