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지옥(地獄),무간(無間)
지옥, 무간(無間)
백유현은 그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크게 숨을 골랐다.
망치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자, 강효.”
하지만 언제까지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는 베타 프로젝트 팀에서 챙겨서 나온 서바이벌 백팩을 짊어지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백팩에는 최소 한 달간 버틸 수 있는 전투식량과 갖가지 도구들이 들어 있어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파앗-
강효가 무간의 균열 안으로 사라지고, 그 뒤를 따라 백유현이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주변이 아득해지며 시야가 시커멓게 변하더니, 곧 기이한 광경과 소음이 그를 맞았다.
“끄아아악!”
“끼아아악!”
수많은 비명과 아우성.
그리고 매캐하게 타오르는 노린내.
사방으로 미친 듯 뛰어다니는 망자(亡者)들.
놈들은 백유현이 나타나자, 실핏줄이 몽땅 다 터져 핏물로 가득한 두 눈으로 그를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크흐흐...”
그리고 소름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백유현의 눈앞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무간(無間) 지옥에 현현(顯現)하였습니다]
[현현(顯現)의 대가로 지옥 망자들의 원한이 당신에게로 집중됩니다]
[무간 지옥, 일회차가 시작됩니다]
[염라의 아패(牙牌)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지금부터 망자들을 처치하고 얻는 경험치에 30% 의 경험치를 더 얻습니다]
[제한조건 : 무간 지옥에 있을 시]
[무간 지옥의 문이 앞으로 32일 1시간 19분 45초 동안 개방됩니다]
[그 후에는 이승으로 강제 송환됩니다]
[이승의 현재 시각 : 14시 32분 15초]
[예상 강제 송환 시각 : 14시 34분 18초]
[지옥, 무간 재개방 시간이 앞으로 144 시간 남았습니다. (이승 기준)]
엄청난 내용이었다.
여기에서 망자들을 잡으면 명부의 척살자 효과와 함께 무려 60%의 경험치를 더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여기서 한 달이 넘게 있는데 현실에서는 고작 2분 가량이 흐른다.
그런데 무간지옥의 재개방 시간은 이승 시간으로 앞으로 6일.
그 때까지는 너무 텀이 긴 데다가 언제 선발전이 벌어질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이 경험치를 올려야 한다.
[사자의 부장품을 파는 사자육전(死者六廛)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사자육전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창이 떴다.
사자육전은 이승이나 저승이나 동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모든 정보는 다 얻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싸우는 것뿐.
백유현은 망치와 단검을 단단히 챙겨들었다.
그는 두 눈에서 강렬한 눈빛을 뿜어냈다.
“자, 강효! 서두르자!”
파팟-
강효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날듯이 허공을 갈랐다.
“크웨에에엑!”
그리고 그에게 수많은 망자들이 달려들었다.
[지옥망자]
[등급 : 12등급]
[보잘 것 없는 지옥의 망자들. 어딜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다]
[각성자 대응 레벨 3]
[특성 : 무리지어 다니며 크게 소리치고 세를 과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빈 수레가 요란한 법. 초보자에게는 더 없이 좋은 사냥감]
백유현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정보창이었다.
빠각-
지옥망자들 안에 뛰어든 백유현의 망치가 미친 듯 허공을 갈랐다.
[지옥망자 사냥에 성공하여 4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명부의 척살자’ 호칭의 효과로 12 경험치가 더해집니다]
[‘염라의 아패’ 효과로 12경험치가 더해집니다]
[지옥망자 사냥에 성공하여 2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
백유현의 눈앞에는 수도 없이 많은 경험치 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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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지옥은 간격이 없다는 이름처럼, 엄청나게 거대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죄인들이 떨어진 곳이니만큼 그 규모는 감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옥망자들도 징그럽게 많았다.
백유현도 수도 없는 지옥망자들을 잡고서야 겨우 안으로 조금 파고 들 수 있었다.
그 동안 레벨은 9로 올라 있었다.
차사, 강효에 베어낸 망자들의 경험치까지 합친 것이었다.
[백유현 상태 능력치 수치]
각성자 레벨 : 9
[근력 21] [지구력 14] [순발력 22] [행운 13]
[정신력 15] [지력 21] [근성 19] [체력 15]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가용 신체 능력치 26
(지력 적용 불가)
[다음 레벨까지 16,900 경험치가 남았습니다]
가용 신체 능력치가 26 포인트가 쌓여 있었고, 근성에 1 체력에 1이 올라 제법 볼만한 상태치가 되었지만 백유현은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문제는 시간 대비 효율이었다.
‘벌써 두 시간이 흘렀어. 그런데 겨우 2레벨 올린 건 손해가 커.’
물론 죽어라 싸울 수 있는 건 좋았다.
하지만 너무 약하다.
망자들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얻는 경험치도 적을 수밖에.
더군다나 명부의 척살자 효과와 염라의 아패 효과가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따져보면 여기는 백유현의 성에 차질 않았다.
‘뭔가 더 필요하다.’
백유현은 강효를 바라보았다.
“강효.”
“하명하시옵소서.”
그 많은 망자들을 베고도 숨 하나 찬 기색이 없는 강효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좀 더 센 곳 없어?”
강효가 백유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 그의 행동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그가 놀랐다는 뜻.
그런데 갑자기 강효가 씩 웃어 보였다.
이번에는 백유현이 흠칫 놀랐다.
“신입 차사들이 대왕께 꾸지람을 듣고 나면 꼭 들러서 손을 푸는 곳이 있는데, 가보시겠나이까?”
뜻밖의 표정으로 뜻밖의 대사를 던진 강효였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인간적인 대사.
“어...어! 그래, 그게 좋겠어.”
“앞장서겠나이다. 따르소서.”
어딘가 모르게 신나 보이는 강효의 모습을 보며 백유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괜찮을 걸까?’
지금 강효의 모습으로는 뭔가 불안한 게 사실.
하지만 호위차사인 그가 설마 염라의 계약자인 백유현을 죽을 곳에 데려가진 않을 테니 믿어보는 수밖에.
‘그런데 저 녀석, 너무 신나 있는 거 같은데?’
그래도 불안했다.
강효가 처음으로 웃었다.
왜 하필 옛 말에 웃는 귀신을 보면 무시무시한 일이 닥친다는 얘기가 떠오른 걸까?
백유현은 등줄기가 서늘했다.
‘설마.’
하지만 백유현은 반신반의하며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기보다는 나을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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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이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적어도 웃는 귀신을 보면 무시무시한 일이 닥친다는 얘기는 진짜였다.
“으아아악!”
백유현은 혼비백산하여 뛰어다니기 바빴다.
“크어어억!”
그런 그를 따라 수많은 귀신들이 달려들었다.
초입부의 지옥망자와는 전혀 다른 공격성을 지닌 놈들이었다.
입은 양옆으로 길게 찢어져 쩍 벌어져 있었고, 그 안에 무수한 이빨이 나 있는 귀신들.
[지옥아귀]
[등급 : 10등급]
[양옆으로 찢어진 입과 날카로운 이빨로 서로를 잡아먹으려 끝없이 싸우는 귀신들. 탐욕과 욕심에 타락한 자들이 변한 모습이다]
[각성자 대응 레벨 12]
[특성 : 수 없이 나 있는 이빨에 물리면 그대로 살덩이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예리하다. 그 이빨을 통해 시독(屍毒)이 옮을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놈들의 집착은 무시무시할 정도이니, 절대 다수의 적을 만들지 말 것]
신입 차사들의 화풀이 대상이 바로 이 지옥아귀였다니!
백유현도 레벨 9의 각성자였지만, 레벨 12나 되는 지옥아귀들이 한 마리도 아니고, 엄청난 숫자가 미친 듯 덤벼드는 통에 그는 제대로 싸워볼 수도 없었다.
파가가각-
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쉴 틈도 없이 경험치 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지옥아귀 사냥에 성공하여 20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명부의 척살자’ 호칭의 효과로 60 경험치가 더해집니다]
[‘염라의 아패’ 효과로 60경험치가 더해집니다]
[지옥아귀 사냥에 성공하여 20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
차사, 강효.
그의 손에 들린 절명(絶命)이 모든 것을 베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껏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풀어내듯, 그는 미친 듯한 살풀이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경험치는 엄청나게 오르고 있었지만, 지옥아귀는 조금도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죽어도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지옥의 특성상, 아직 10등급에 불과한 지옥아귀들은 계속해서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크윽!”
계속해서 뒤로 밀리던 백유현은 어느 순간 이를 악물었다.
저 앞에 서서 늠름하게(?) 검을 휘두르는 강효를 보니 억울한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 나도 물러서지 않아!”
놈들이 12레벨의 귀신들이긴 했지만, 백유현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백유현은 자신의 상태창을 띄웠다.
[백유현 상태 능력치 수치]
각성자 레벨 : 9
[근력 21] [지구력 14] [순발력 22] [행운 13]
[정신력 15] [지력 21] [근성 19] [체력 15]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가용 신체 능력치 26
(지력 적용 불가)
고작 2레벨 차이면 신체 능력치를 때려 부어서라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백유현은 근력에 7, 지구력에 3, 순발력에 12, 나머지는 체력에 모조리 신체 능력치를 때려 부었다.
그냥 이 순간만 모면하기 위한 판단은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 팀-엑스 대회에 나갈 때를 대비해서 어떻게 능력치를 배분해야 할 지 정확하게 계획하고 있었고, 지금 그대로 수치를 올리고 있었다.
[백유현 상태 능력치 수치]
각성자 레벨 : 9
[근력 28] [지구력 17] [순발력 34] [행운 13]
[정신력 15] [지력 21] [근성 19] [체력 19]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가용 신체 능력치 0
(지력 적용 불가)
결과창이 떴다.
무시무시한 수치.
백유현은 망치를 들고 한 번 휘둘러보았다.
아까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욱 가볍고 날렵해졌다.
방금 전이라면 한 방 때리고 말 것을, 순식간에 높아진 순발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세 방을 때릴 수 있을 정도로 공격 속도가 올랐다.
근력을 올려 순간 데미지도 꽤 올랐고, 지구력과 체력이 올라 오랫동안 놈들과 싸워도 지치지 않을 체력이 확보되었다.
이제 남은 건 죽어라 싸우는 것뿐.
“좋아, 다 덤벼!”
이번에는 오히려 백유현이 놈들에게 덤벼들었다.
빠각- 빠악-
그리고 귀신들의 머리통이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쫓기기에만 바빴던 백유현이 이제는 놈들의 사이를 절묘하게 파고들며 놈들의 머리통을 부수고 있었다.
촤앗-
검을 휘둘러 지옥아귀 한 마리를 베어낸 차사, 강효가 그런 백유현의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임무는 백유현을 호위하는 것도 있지만,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이른 바, 그는 이곳 지옥에서만큼은 교관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더 강해지시옵소서. 소주.’
백유현은 이곳, 무간에서 자신의 한계와 수도 없이 부딪히면서 성장할 것이다.
그것이 염라가 무간의 문을 열어준 이유였으니까.
빠악- 콰앙-
그 동안 백유현은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망치를 거칠게 휘두르고 있었다.
수많은 지옥아귀들이 그의 손에 박살이 나고, 또 되살아나길 반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