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탈퇴
“그러니까...”
백유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조셉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법이 있다고요?”
조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전부군요. 단, 당신이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기억해 두세요. 미래는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후후! 그럼.”
조셉은 다시 허공에 스며들듯 사라졌다.
백유현은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떠올렸다.
‘무간(無間).’
그의 말대로 방법이 있었다.
과연 무간지옥에서의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일단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생각을 정한 백유현은 방을 나섰다.
----------
“지금...뭐라고...?”
팀장 황정국이 눈살을 찌푸리며 눈앞에 서 있는 백유현을 바라보았다.
백유현은 그의 두 눈을 담담히 바라보며 말했다.
“베타 프로젝트 팀을 탈퇴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니, 그 이유가 뭐냐는 뜻이야.”
“따로 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요.”
황정국은 눈살을 더욱 깊게 찌푸렸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여기서 성적이 좋지 않다거나, 뭐 왕따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면 이해라도 해보려 노력할 테지만 백유현의 경우는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성적이 최상위였고, 왕따는커녕 이제 다른 훈련생들이 그를 경외시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황정국은 그게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다.
“정말 내 상식으로는 너를 이해하려고 해도 잘 안 되어서 묻는 건데...가만히 있어도 팀-엑스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걷어차고 굳이 나가야 할 그 이유라는 게 뭐야? 각성자라면 누구나 탐내는 그 기회를 말이야.”
백유현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건 곧 알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이곳을 나가겠다는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후우...”
황정국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백유현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본인의 의사가 정 그렇다면...하지만 기억해둬라. 베타 프로젝트 팀을 한 번 나간 이상, 절대 다시 되돌아올 수는 없다.”
“예, 알고 있습니다.”
백유현은 이번에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건 이미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안하고 결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럼 답은 하나다.
“알겠다. 백유현 훈련생은 이 시간부로 베타 프로젝트 팀에서 제외됨을 분명하게 말하겠다. 좋아, 그럼 가보도록 해.”
“예,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팀장님.”
“됐어. 얼른 가기나 해. 어딜 가서든 다치지 말고.”
황정국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은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사실 그는 백유현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무척 탐이 났던 것이 사실이었다.
조명재나 진성우, 진성연 남매보다 더욱 매력적인 놈이 바로 백유현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가 제 발로 팀을 나간단다.
그러니 아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백유현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문밖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김수성과 김승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너, 괜찮겠어?”
김수성이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교관님. 그리고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백유현은 두 교관에게도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정말 고마운 두 사람이었다.
김수성이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보니까 이미 결심이 선 모양인데 어쩔 수 없지. 자, 가자. 퇴소까지는 우리 몫이니까.”
아마 김수성도 아쉬움이 큰 모양이었다.
일반적으로 훈련생이 퇴소한다고 해서 교관이 직접 나서서 챙겨주진 않으니까.
“너, 인마! 어디 가서든 다치거나 그러면 안 돼! 요새 뉴스에 각성자들이 자꾸 다친다고 하는 거, 다 다른 각성자들 얼굴에 먹칠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다치지 말고...”
말은 그렇게 해도, 속 깊은 김수성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알아 들은 백유현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김수성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곧...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교관님.’
당당히 팀-엑스 대회의 정식 멤버로서 출전하는 그 때까지, 백유현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가슴 당당히 펴고 나가! 자식, 나중에 또 보자!”
짐을 다 챙긴 백유현을 향해 김수성이 크게 외쳤다.
백유현은 다시 한 번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김수성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씨, 여긴 또 왜 이리 추워? 김승미 교관, 에어컨 틀었어?”
“아니요, 그런데 정말 왜 이리 춥죠?”
둘은 갑작스레 드는 한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등을 돌려 걸어가는 백유현은 씩 웃었다.
“앞장서겠사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차사, 강효가 나타나 그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철컹-
그와 동시에 스르르 검집으로 빨려드는 절명(絶命)의 검명(劍鳴)이 맑게 울렸다.
[부유령 사냥에 성공하여 3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명부의 척살자’ 호칭의 효과로 9 경험치가 더해집니다]
[부유령 사냥에 성공하여 2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
[부유령 247위(位)를 잡고 총 10,74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떠오르는 창.
차사, 강효가 베어버린 수많은 귀신들의 경험치가 백유현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각성자 레벨이 6으로 올라갑니다]
[무작위 신체 능력치 1이 올라갑니다. 순발력 1 증가]
[가용한 신체 능력치 3이 주어집니다]
[백유현 상태 능력치 수치]
각성자 레벨 : 6
[근력 21] [지구력 14] [순발력 22] [행운 12]
[정신력 15] [지력 21] [근성 18] [체력 14]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가용 신체 능력치 14
(지력 적용 불가)
[다음 레벨까지 7,390 경험치가 남았습니다]
....
[각성자 레벨이 7로 올라갑니다]
[무작위 신체 능력치 1이 올라갑니다. 행운 1 증가]
[가용한 신체 능력치 4가 주어집니다]
[백유현 상태 능력치 수치]
각성자 레벨 : 7
[근력 21] [지구력 14] [순발력 22] [행운 13]
[정신력 15] [지력 21] [근성 18] [체력 14]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가용 신체 능력치 18
(지력 적용 불가)
[다음 레벨까지 9,870 경험치가 남았습니다]
백유현이 베타 프로젝트 팀을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
그 동안 모인 귀신들을 잡고 무려 순식간에 2레벨이 오른 백유현이었다.
‘자, 이제 무간(無間)의 문을 열어볼까?’
백유현에게 주어진 시간은 예상컨대 얼마 없었다.
이문종과 양소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한 선발전은 곧 치러질 듯했으니까.
그 전까지 레벨을 올려야 했다.
그러니 백유현이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은 하루라도 빨리 무간으로 가서 싸우는 것이었다.
그것이 백유현이 팀-엑스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베타 프로젝트 팀을 스스로 박차고 나온 백유현은 원래 받아야 할 보상을 모조리 수령하고는 노블레스 멤버스 본부를 나섰다.
정재호 부장과 강서현 팀장이 그를 만류했지만, 백유현은 확고했다.
결국 그는 VVVIP 블랙 카드와 최고급 70평형 오피스텔 두 채, 노블레스 블랙마켓 이용권까지 받아들고 본부를 나설 수 있었다.
훈련은 끝까지 마치진 않았지만, 팀장 황정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어차피 베타 프로젝트 팀에서 있어봐야 백유현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덧붙인.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최고급형 세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기사까지.
백유현은 세단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어차피 주어지는 거,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제 집으로 가주세요.”
“예.”
차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최고급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기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짐은 제가 가지고 올라갈게요. 가보셔도 좋습니다.”
기사가 깍듯하게 그에게 예의를 갖췄다.
“그럼, 편한 시간 되십시오.”
오피스텔.
이제부터 그의 집이 될 그곳을 바라보며 백유현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강효.”
“하명하시옵소서.”
백유현은 오피스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 무간(無間)의 문을 열어도 될까?”
강효가 무감정한 눈빛으로 오피스텔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소주께서 하신다는데 저들이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다만 소주께서 내리신 하문에 답을 드리자면, 시취(尸臭)가 조금 흘러나올 수는 있어도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오니 너무 괘념치 않으셔도 될 것이옵니다.”
“그래? 뭐 그 정도면...”
조금의 냄새 정도면 이런 고급 오피스텔의 환기 시스템이면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것이다. 선지가 썩어가는 냄새도 정화시킨 베타 프로젝트 팀의 숙소를 생각해보면 얼추 비교가 가능한 부분.
“그리고 말이야, 강효. 무간은 어떤 곳이야?”
강효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대답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이 모여 있는 곳...일 분 일 초가 고통으로 가득하나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이옵니다. 그곳에 떨어진 원귀들은 지독한 복수심으로 물들어 있으며, 무간지옥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강력한 마기와 복수심에 사로잡힌 마물들이 수두룩한 곳이라, 안쪽으로는 일반 차사들조차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옵니다.”
백유현이 다시 강효에게 물었다.
“나 정도가 그 곳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강효가 고개를 숙였다.
“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현재의 소주께서는 초입부분에서도 상당한 고초를 겪으실 것이라 예상되옵니다.”
백유현이 쓴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알겠어. 그 정도면. 일단 들어가자.”
강효가 다시 백유현의 앞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걷기 시작했다.
백유현이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
오피스텔 안은 굉장히 넓었다.
고급스러운 가구에 화려한 인테리어.
하지만 백유현은 그런 것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그는 가구들을 한쪽으로 싹 밀어버렸다.
가상훈련을 할 때에도 공간이 어느 정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오피스텔은 그에게 있어서 잠을 자는 공간 정도의 의미였다.
안의 가구를 싹 치운 백유현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간이었다.
‘자, 시작하자!’
백유현은 염라의 권능으로 무간(無間)지옥의 문을 열었다.
드드드드드-
순간 주변이 엄청나게 흔들리며 백유현의 눈앞에 거대한 홀이 생겨났다.
음침하고 거무튀튀한, 그 안에서 갑자기 피로 물든 원귀가 튀어나올 듯 음산한 구멍.
그리고 그 구멍에서는 유황(硫黃)냄새가 은은히 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차사, 강효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는 절명(絶命)이 들려 있었다.
“소인이 앞장설 것이옵니다. 소주께서는 뒤에 따르소서.”
차사, 강효조차 긴장하게 만드는 지옥.
무간(無間)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