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33화 (33/166)

33. 특별 포고

"좋아, 그럼.“

백유현이 씩 웃었다.

그거면 됐다.

그럼 이제부터 남은 것은 염라와의 친밀도를 높이는 것.

즉, 그가 의뢰하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가자, 강효.”

“받들겠습니다. 소주.”

“아, 그런데 강효.”

“하명하시옵소서.”

백유현은 강효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내 의사를 읽을 수 있어?”

“가능하옵니다. 차사가 혼령과 대화를 나눌 때 그리 하옵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혼령은 육체가 없는데 어찌 차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좋아, 그럼 너도 생각으로 대화를 하도록 하자. 다른 사람들 보기에 좀 그렇잖아. 허공에 대고 말하는 거.”

“알겠사옵니다.”

조셉과 비슷한 이유였다.

“그럼 내려가자. 지금쯤 통비원후도 사라졌을 테니까.”

“앞장서겠사옵니다.”

강효는 한 자루의 검을 품고 백유현의 앞으로 나섰다.

귀기(鬼氣)가 뿜어져 나올 정도로 잔뜩 서린 그의 검은 차사에게 주어지는 절명(絶命)이라는 검이었다.

그것도 검 자루와 검 집이 유독 시커먼 것으로 보아, 꽤 높은 직위의 월직차사에게만 주어지는 검. 염라는 계약자인 백유현에게 든든한 호위차사를 붙여둔 것이다.

백유현과 강효는 그렇게 다시 구름 절벽을 내려왔다.

그런데 아래에서는 뜻밖의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뭐야, 이건!’

소드 포스.

대한민국 내 각성자들의 팀 중에서도 20위에 랭크된 강자.

그들은 지금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다.

“야, 인마! 이문종! 정신 좀 차려봐! 이문종!”

원거리 딜러인 이문종이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고, 그의 입가에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팀장인 정종길은 다급한 표정으로 그를 흔들고 있었고, 힐러라고 했던 김현서는 이문종에게 달라붙어 뭔가를 시전하고 있었다.

파아앗-

하지만 이문종이 입은 타격이 꽤 컸던지, 반복되는 치유에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크으...”

그리고 또 한 명.

양소윤이 한쪽 무릎을 꽉 누른 채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다리도 온통 피범벅이었다.

문광식이 급히 구급함을 꺼내 응급조치를 취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바로 나아질 부상이 아닌 듯했다.

“야, 너 어디 갔다 왔어?”

그러던 중, 고성재가 백유현을 발견하고는 급히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여기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갑자기 거대 원숭이 놈이 엄청나게 날뛰어서 이문종 선배 정말 죽을 뻔했다고! 그 자식 와, 정말 옆에서 보는데 내가 죽는 줄 알았다!”

상황을 보아하니, 통비원후가 보통 난장을 쳐놓은 것이 아닌 듯했다.

그리고 고성재의 말을 들어보니, 놈이 갑자기 미친 듯 발광한 게 자신이 육이미후를 소멸시키고 난 직후인 듯했다.

그럼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간다.

육이미후가 소멸되고, 놈이 가지고 있던 생사부를 명부에서 회수해갔을 테니, 그것을 노리고 난입했던 통비원후가 날뛰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한 순간에 소드 포스도 버티지 못하고 쓸려 버린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이문종이 치명상을 입은 것이고.

“그런데 원숭이는?”

백유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고성재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 갑자기 모두를 죽일 듯이 날뛰더니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 아씨, 아직도 살 떨린다. 이 자식, 또 갑자기 나타나는 거 아냐? 구조대는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무서워 죽겠네!”

백유현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자신이 조금만 늦었어도 아마 더 크게 봉변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저기다!”

그 때, 입구 쪽에서 무장을 한 스무 명 정도의 각성자들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노블레스 멤버스에서 운용하는 구조대였다.

“이런! 상처가 너무 깊어! 그리고 이쪽은 아예 의식이 없다! 어서 옮겨야 해!”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1조, 2조! 사주경계하고 3조와 4조는 부상자들을 긴급 후송한다! 서둘러!”

이문종과 양소윤이 들것에 옮겨져 빠르게 후송이 되었고, 그 뒤를 나머지 인원이 따랐다.

카오스 터미널 넘버 K-782.

고작 각성자 10레벨에 대응하는 이 조그만 터미널에서 이런 대참사가 일어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의외의 커다란 파장을 불러왔다.

---------------

팀 대항 대회 우승자 세 명은 바로 베타 프로젝트 팀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베타 프로젝트 팀도 발칵 뒤집혀 있었다.

“헐, 소드 포스 팀이 그렇게 당할 줄이야!”

“와, 말도 안 돼! 하필이면 거기서 터미널 쇼크가 일어나냐?”

“야, 난입한 몬스터가 110레벨 보스 급이었다며? 그것도 갑자기 각성해서 소드 포스도 한순간에 밀렸다던데?”

벌써 소식이 팀 내에 쫙 돌았던 것이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냐?”

팀장인 황정국을 만나 그 간의 일을 설명하고 숙소로 향하는 백유현에게 교관 김수성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것을 보니, 진심으로 백유현을 걱정해주는 듯했다.

“네, 다행히...”

김수성이 백유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후, 그래. 다행이다. 가서 좀 쉬어라. 충격이 컸을 텐데.”

“예, 교관님. 감사합니다.”

백유현은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숙소로 향했다.

“그어어어-”

그의 방 안에는 미끼에 걸려든 수많은 영체들이 우글대고 있다가, 차사 강효를 보자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흩어지려 했다.

“박(搏)!”

그 순간 차사 강효가 손가락을 움직여 하나의 인을 맺자, 사방으로 흩어지려던 영체들의 발이 덜컥 멈췄다.

“좋은데?”

백유현이 씩 웃었다.

어차피 피 냄새에 이끌려 이렇게 끌려 들어오는 영체들은 악귀(惡鬼)에 가깝다.

생전에 악한 일을 벌여왔거나, 악인이었던 경우에 죽어서도 피 냄새에 이끌리니까.

마치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짐승처럼.

그래서 백유현은 영체들을 소멸시키는데 별 다른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데 놈들을 보던 백유현은 문득 궁금증이 떠올라 강효에게 물었다.

“강효.”

“예, 소주.”

“명부에 뭔가 일이 생긴 거야? 자꾸 염라께서 의뢰하시는 일들을 보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강효가 살짝 표정을 굳히더니 대답했다.

“예, 어차피 아셔야 할 일이니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이승에 생긴 거대한 변화처럼, 명부의 곳곳에도 상당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옵니다. 대왕께서는 그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고 계시옵니다. 지옥(地獄)의 벽이 부서지면서 마인들이 이승으로 탈출하는 바람에 명부에는 전에 없는 엄중한 경계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 아마 대왕께서 곧 소주께 또 다른 임무를 내리실 것이라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겠지. 마인들이 이승으로 도망 왔다면 잡아야 할 테니까. 그런데 차사들은 왜 놈들을 좇지 않는 거야? 영체니까 차사들도 상대가 가능할 텐데.”

“그것이...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옵니다. 이승과 저승은 완전히 다른 세계. 차사에게는 제약이 걸리게 되어 약화되는 문제도 있고, 특히 놈들이 산 사람의 몸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그 때에는 명부의 힘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렵사옵니다.”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악령들이 빙의(憑依)를 한다면 명부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겠지.

이승의 존재가 그 악령들을 빼내지 않는 이상.

“그래서 염라께서는 내가 필요했던 것이군. 알겠어.”

다른 불멸자들도 각자의 사정에 의해 계약자들을 필요로 했다.

그런 것처럼, 염라도 명부의 문제를 해결해줄 이승의 존재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백유현이었다.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강효가 갑자기 미간을 살짝 굳히더니 넓은 소맷자락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붉은 천이 둘둘 말려 있는 전서(傳書)였다.

“소주. 대왕의 친서가 도착했사옵니다.”

강효는 공손히 두 손으로 친서를 백유현에게 내밀었다.

백유현이 의아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자, 친서를 단단히 묶고 있던 황금빛 끈이 스르르 풀리며 눈앞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임무 창과는 전혀 달랐다.

[특별 포고(布告)]

[염라(閻羅) : 명부(冥府)에 생긴 거대한 혼돈의 균열을 틈타 탈옥한 수많은 마물(魔物) 중 일부의 흔적이 확보가 되었다. 망령 수사(修蛇), 망령 고(鼓)의 흔적을 찾아 그들을 소멸시켜라.]

[임무 완료 조건 : 망령 수사, 망령 고의 영체 소멸]

[임무 완료 보상 : 신체 능력치 15 포인트, 염라와의 친밀도 100]

[염라가 임무를 의뢰해 왔습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제한 조건 : 임무 완수 기간은 석 달입니다]

[임무 정보 : 거대한 구렁이의 영, 망령 수사는 뱀의 허물을 벗어 강력한 힘을 일부 되찾았다고 한다. 이승의 균열 중 하나에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마지막으로 놈을 목격했던 차사의 보고에 따르면 더 이상 영체(靈體)가 아닌,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목격지는 카오스 터미널 J-1791 부근. 즉, 일본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망령 고의 행방이 묘연하여 차사의 망자향(亡者香)으로 추적한 결과, 놈은...]

그 뒤를 읽어가는 백유현의 표정이 와락 굳어졌다.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각성자, 세르게이 갈라예프의 몸에 빙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놈의 빙의를 풀고, 소멸시켜라]

빙의.

그것도 엄연히 불멸자가 있는 각성자에게 빙의라니.

망령 고(鼓)는 용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마물이었다.

과거에 황제의 사자에게 퇴치당해 죽었는데, 놈의 원혼이 탈옥해서 이승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각성자 세르게이의 몸으로 빙의한 상태.

‘골치 아프군.’

백유현은 방마다 놓여 있는 컴퓨터를 사용해 러시아의 각성자, 세르게이 갈라예프에 대해 검색을 해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올 초, 갑작스레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세르게이 갈라예프는 러시아 팀-엑스 대회의 대표선수 중 하나였고, 현재 러시아 각성자 순위 27위에 112 레벨의 강자였다.

사실 그 전까지의 정보는 거의 없었는데, 갑작스레 요 몇 달간 반짝 떠오른 러시아의 신예 스타였다.

얼굴도 잘 생겼고,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성격도 화끈해서 상당한 팬이 있는 유명인.

“강효.”

“예, 소주.”

“명부에 균열이 생긴 것이 언제부터였지?”

“그것이...작년 초겨울이었사옵니다.”

“고가 탈옥한 것은?”

“작년 섣달그믐...그러니까, 올해 초이옵니다.”

백유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랬겠지.”

갑작스레 세르게이 갈라예프가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올해 초.

망령 고(鼓)가 진짜 세르게이 갈라예프의 혼을 잡아먹고 대신 자리를 한 그 때부터다.

그런데 망령 고도, 망령 수사도 공교롭게 팀-엑스 대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번에 팀-엑스 대회가 열리는 장소도 일본이었고, 거기에 러시아 대표로 세르게이가 참가하니까.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지금 레벨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팀-엑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레벨 5의 각성자로 참가하는 것은 이미 확정적이었으니까.

그런데 고작 레벨 5로 레벨 112의 강자를 어떻게 잡아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J-1791 터미널도 검색해보니 각성자 100 레벨 대응 터미널이었다.

적어도 100레벨은 되어야 뭘 해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겠지요.”

그 때, 조셉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차앙-

순간 강효의 절명(絶命)이 뽑혀 나왔다.

서늘한 기운이 방 안 가득 감돌았을 정도로, 그 속도는 빨랐고 살벌했다.

강효는 조셉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괴이한 놈이로구나. 명부에 속했으되, 생사부에는 이름이 없는 자라니.”

조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지요. 나야, 아직 살아 있는 인간이니.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삐릭-

조셉이 TV를 켰다.

그러자 속보가 나왔다.

“무슨...?”

조셉이 왜 TV를 켜는지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백유현은 뉴스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 현재 이문종 씨는 노블레스 멤버스 VIP 센터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의식을 회복한다 해도 전신의 뼈가 으스러진 중상을 입어서 팀-엑스 대회의 출전 여부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더해 같은 소드 포스 팀의 양소윤 씨까지 오른쪽 다리의 골절로 한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요, 이에 팀-엑스 한국 대표팀 ‘치우’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느라 부심한 상태입니다.

조셉이 백유현 쪽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이거,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어요? 당신에게도...”

조셉이 그에게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지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조셉은 백유현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은 저 중 한 자리를 곧 차지하게 될 거라는 얘깁니다. 유현 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