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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잡고 폭렙업-32화 (32/166)

32. 염라(閻羅)

콰쾅-

뒤에서는 여전히 엄청난 폭음과 함께, 통비원후가 날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워어억!”

백유현은 그 소리를 뒤로 하고 죽을힘을 다해 절벽으로 향하는 길을 올랐다.

통비원후가 갑자기 난입해서 날뛰어서인지 몬스터들은 싹 다 자취를 감춘 채였다.

본능적으로 상위 포식자(捕食者)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덕분에 백유현은 빠르게 구름 절벽의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헉, 헉!”

신체 능력치가 일반인의 한계를 훨씬 벗어난 백유현이었지만 에너지 소모가 상당했다.

하지만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통비원후가 소드 포스에게 시선을 빼앗겨 아래에 붙들려 있지만, 언제 이쪽으로 날아들지 모른다.

애초에 놈의 목표는 바로 원혼(?魂)이 된 육이미후.

정확하게 말하면 놈이 가지고 있는 생사부(生死簿)다.

놈은 그 생사부를 빼앗아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릴 생각이니까.

마치 그 예전에 제천대성 손오공이 그랬던 것처럼.

‘어디냐!’

백유현의 두 눈이 사방을 훑었다.

분명히 이쪽이다.

순간 그는 두 눈을 번뜩였다.

저 쪽, 뭔가가 보였다.

거대하지 않은, 하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존재.

[분류 명칭 : 육이미후]

[예상 레벨 : Lv6]

[특징 : 제천대성의 흉내를 내다가 그에게 죽어 지옥에 떨어진 원숭이. 본신의 능력이 상당히 소멸되었으며, 지금은 그 날랜 몸놀림만 남아 있다. 생사부를 훔쳐 달아나 명부(冥府)의 추격을 받는 상태.]

[레벨 6에 대응하지만 방심은 금물. 한 때 제천대성과도 호각을 이뤘던 강자다]

육이미후.

놈이었다.

놈의 허리춤에는 풀들을 꼬아 만든 줄에 매달린 한 권의 책이 있었고, 몸집은 일반 고릴라 정도였다. 한 때는 황금빛 털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을 온 몸은 지옥의 겁화(劫火)에 모조리 그을려 시커먼 털이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놈의 두 눈에서는 지독한 원독(怨毒)이 시퍼렇게 뿜어지고 있었다.

자신을 지옥에 처넣은 제천대성과, 석가여래에 대한 복수심이 그대로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미안하지만 여기까지야. 육이미후.”

백유현은 그 눈빛을 담담하게 받으며 가방을 벗고 망치를 꺼내 손에 쥐었다.

손잡이가 유난히 긴 망치였다.

예전, 기사들이 적의 기사들의 갑옷을 부수고, 그 안의 육체를 박살내기 위해 만들어진 워 해머(War hammer)였다.

"크르르르-“

육이미후는 백유현을 향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며 위협을 가했다.

금세라도 덤벼들 모양새였다.

파앗-

그런데 먼저 움직인 것은 백유현 쪽이었다.

그는 바닥을 거칠게 밟으며 바로 놈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콰앙!

백유현이 휘두른 망치가 육이미후가 있던 땅바닥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캬캬캭!”

역시 육이미후는 만만치 않았다.

놈은 어느새 백유현의 공격을 피해내고는 그의 뒤를 노리고 덤벼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백유현은 이미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다르지 않아!’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수많은 가상전투.

그 전투에서 겪어봤던 상황이다.

스윽-

백유현은 침착하게 움직였다.

등 뒤에서 덤벼드는 육이미후의 공격 경로를 예상해 옆으로 살짝 비켰다가 다시 한 번 망치를 후려친 것이었다.

파앙-

아슬아슬하게 육이미후를 스쳐 지나간 망치가 허공을 크게 때렸다.

육이미후의 성난 눈동자가 다시 백유현을 향한 순간, 백유현이 어느새 꺼내든 단검이 놈의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촤앗!

육이미후의 가슴에 길게 칼자국이 새겨졌다.

놈은 갑작스런 반격에 당황했는지 뒤로 살짝 물러났다.

하지만 백유현은 놈에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몰아칠 때는 죽을 때까지 몰아쳐야 한다.

그것이 이제까지 백유현이 싸워오면서 배운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파각!

단검이 다시 한 번 허공을 갈랐다.

놈의 목을 노리고 날아든 단검은 매우 날카롭고 정확했다.

육이미후는 어쩔 수 없이 뒤로 풀쩍 물러서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놈의 머리통을 향해 망치가 떨어져 내렸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계산.

이것이 백유현이 그 동안 수도 없이 연습을 해왔던 공격이었다.

육이미후 역시 그 공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허공만 쳐다볼 뿐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콰앙!

그 순간, 놈의 머리통을 향해 망치가 무서운 기세로 내리 찍혔다.

“키에엑!”

육이미후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런 육이미후를 향해 백유현은 다시 쇄도해 들어갔다.

그의 손에 들린 망치가 육이미후의 전신을 강타했다.

한 번 치명타를 입히니, 그 뒤는 거의 완벽하게 백유현의 페이스대로 흘러갔다.

게다가 둔기(鈍器)류의 특성상, 머리에 제대로 데미지를 가하면 그 데미지를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육이미후는 지금 신나게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이다.

콰앙! 쾅!

망치가 미친 듯 허공을 갈랐고, 육이미후의 머리통이 박살이 나며 피가 솟구치고 뼈가 산산조각이 났다.

두개골, 견갑골, 늑골...

모든 뼈들이 백유현이 휘두르는 망치에 맞아 박살이 나는 가운데 육이미후가 힘을 잃고 휘청거렸다.

“잘 가라!”

백유현은 그런 놈을 향해 망치를 크게 휘둘러 찍었다.

콰앙-

육이미후의 턱이 홱- 뒤로 돌아가며 순간적으로 놈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콰당탕!

하지만 그것도 잠시, 놈은 그대로 뒤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백유현은 놈에게로 다가갔다.

놈의 머리통은 완전히 깨져 있었고, 푸르스름한 피와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털들이 하나씩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멸(消滅).

놈의 영체가 소멸되고 있었다.

파앗-

[육이미후의 사냥에 성공하여 70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명부의 척살자’ 호칭의 효과로 350 경험치가 더해집니다]

놈을 잡았다는 알림 창이 떴다.

그리고...

[얼굴 없는 자의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육이미후를 소멸시켜라! 1/1]

[얼굴 없는 자의 임무를 완료하여 1,500의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다음 레벨까지 3,870 경험치가 남았습니다]

[당신에 대한 명부(冥府)의 관심도가 최고조에 달합니다]

[긴급 임무 완료 보상으로 얼굴 없는 자와의 친밀도가 30 올라갑니다]

[긴급 포고 임무 완료 보상으로 얼굴 없는 자와의 친밀도가 20 올라갑니다]

[긴급 임무 완료의 추가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치가 1씩 올라갑니다]

[근력이 19에서 20으로...]

....

[긴급 포고 임무 완료의 추가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치가 1씩 올라갑니다]

[근력이 20에서 21로...]

...

[긴급 임무 완료 보상으로 가용 신체 능력치가 5 올라갑니다]

[긴급 포고 임무 완료 보상으로 가용 신체 능력치가 3 올라갑니다]

각성자 레벨 : 5

[근력 21] [지구력 14] [순발력 21] [행운 12]

[정신력 15] [지력 21] [근성 18] [체력 14]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가용 신체 능력치 11

(지력 적용 불가)

[둔기류(鈍器流)의 숙련도가 20 올라갑니다. 다음 레벨까지 90의 숙련도가 필요합니다]

긴급 임무 완료 보상과, 그에 추가된 긴급 포고 임무 완료 보상이 쭉 떴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아니었다.

백유현의 눈앞에는 또 다른 창이 떠 있었다.

검붉은 색의 안개에 휩싸여 있는 하나의 커다란 창.

[얼굴 없는 자가 당신에게 계약을 제안합니다]

[계약 대상 불멸자]

[염라(閻羅)]

간단한 세 줄.

그런데 여기에 깃든 의미는 엄청난 것이었다.

염라(閻羅).

무려 1티어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불멸자와의 계약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유현에게는 그것보다 더욱 소중한 의미가 있었다.

‘엄마...’

갑작스레 비명에 간 엄마.

백유현은 엄마의 미소를 떠올리며 애써 북받치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을 받아들이겠다는 표시였다.

파앗-

그 순간 그의 주변에 자욱한 검은 안개가 깔렸다.

그리고...

“존명(尊命)!”

수도 없이 많은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그에게 부복했다.

[불멸자 염라(閻羅)와의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불멸자의 특성 : 염라는 지옥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저승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자(死者)의 세계를 다스리는 그의 힘은 이승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하다]

[염라의 아패(牙牌)를 획득하였습니다]

[염라의 아패를 획득함으로 당신은 차사에 대한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부릴 수 있는 차사가 늘어납니다. 현재 레벨 1]

[차사 강효가 당신을 호위합니다]

[팔대 지옥의 문(門) 중 하나가 당신에게 열립니다]

[지옥, 무간(無間)의 문이 개방되었습니다]

[당신은 일정 시간 무간지옥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무간지옥의 시간은 현세와 같지 않으며, 현세의 1분은 무간지옥에서는 보름에 해당합니다]

[염라와의 친밀도가 오르면 무간지옥에서의 시간이 늘어납니다]

[사자(死者)의 부장품(副葬品)을 구입할 수 있는 사자육전(死者六廛)이 개방되었습니다]

[당신은 현재 레벨 1로, 6등품의 물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특전!

백유현이 염라와의 계약으로 인한 특전에 놀라 있는 사이, 그의 뒤에서 누군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차사, 강효이옵니다.”

백유현이 뒤를 돌아보자, 훤칠하게 생긴 저승차사 하나가 서 있었다.

그런데 백유현은 그에게서 뿜어지는 분위기가 왠지 낯익었다.

“혹시...?”

백유현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강효가 고개를 숙였다.

“맞사옵니다. 제가 이제까지 소주(小主)를 호위하였사옵니다.”

소주(小主).

즉, 작은 주인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주군은 염라이니 그와 계약한 백유현이 작은 주인이 되는 것이다.

백유현은 강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월직차사겠군요.”

“말씀 낮추소서. 어찌 제가 소주께 그런 존대를 받을 수 있겠나이까. 그리고 저는 월직차사가 맞사옵니다.”

강효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백유현은 씩 웃었다.

‘그랬구나! 나를 따라다니던 검은 그림자가 강효였어. 월직차사라...믿음직한데?’

멀끔하게 생겼지만, 강효는 월직차사다.

즉, 산 사람의 영혼의 목도 잘라낼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

다만 그에 대한 업보도 분명히 받긴 하겠지만, 그만큼 강력한 존재라는 뜻이었다.

“물어볼 게 있어...강효.”

말을 낮추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편해 보여 백유현은 사양치 않고 말을 낮췄다.

“예, 소주.”

백유현은 긴장된 표정으로 강효를 보며 말했다.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이었고, 그 때문에 이제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것이 아닌가?

물론 조셉이 말해주긴 했지만, 백유현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혹여.”

백유현은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염라께서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어?”

그 말에 강효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지금은 백유현에게 종속된 차사라고는 하지만, 그의 두 눈에서 느껴지는 눈빛은 섬뜩,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왕께서는 불가(不可)하신 일이 없으시옵니다. 소주.”

쿵-

백유현의 가슴 한 구석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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