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30화 (30/166)

30. 준비는 끝났다

- 아니야! 좀 더 빠르게 파고들어!

- 그렇게 느려선 히라카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 정신 안 차릴 거야!

- 이런! 아까 뭘 봤어! 놈들의 반응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점을 미리 예측해서 움직여라! 특히 원숭이 형(形)의 몬스터들은 더욱 더!

머릿속에 수많은 외침과 전투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그 모든 것은 한 군데 어우러졌다가 흩어지길 반복했고, 수도 없이 많은 잔상(殘像)을 만들어내는가 싶더니 곧 하나의 단단한 형상을 이루었다.

팟-

그 순간 두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겨 있던 백유현의 눈이 번쩍 뜨였다.

“후우!”

거친 숨이 새어나왔다.

얼마나 실전과 같은 가상 전투를 벌였던지, 그의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히라카와의 싸움을 몸소 보여주었던 두 교관이 돌아간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백유현은 두 교관을 교대로 상대하며 히라카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체득(體得)했고 몇 시간 전부터는 그 경험을 토대로 가상 전투에 빠져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수백, 수천 번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전투.

히라카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빨랐고, 더욱 강했으며, 더욱 영악했다.

백유현은 다시 망치를 손에 쥐었다.

망치의 모양은 장도리를 좀 더 길게 만들고, 머리 부분을 좀 더 크게 키운 듯했다.

보다 가볍지만, 한 번 제대로 박히면 치명타를 입힐 수 있게 고안된 망치였다.

히라카는 빠르다.

순발력 19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두 교관이 보여준 히라카의 움직임은 무시무시했다.

그렇다고 악력이 약한 것도 아니다.

김수성이 히라카의 힘이 이 정도라며 보여주었던 힘은 백유현의 근력 19로도 한 순간 주도권을 잃고 휘청거렸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놈은 영악하다는 것이었다.

예상이 안 되는 움직임.

마치 야생의 원숭이를 상대하는 듯한,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움직임은 백유현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파앙-

그 순간, 가만히 허공을 노려보며 서 있던 백유현이 갑자기 망치를 들고 허공을 짧게 후려쳤다.

파스스-

그의 눈앞에 떠올라 있던 히라카의 모습이 사라져갔다.

망치는 정확하게 히라카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방법을 찾아냈어!’

히라카는 레벨 7에 대응하는 몬스터다.

즉, 백유현이 찾는 레벨 6의 원숭이 영체보다 모든 부분에서 상위호환이라는 뜻.

백유현은 수도 없는 가상 전투를 겪은 뒤에, 히라카를 잡는 법을 찾아냈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조셉.

조셉은 지금 백유현의 옆에 없었다.

그는 아마도 지금쯤 죽어라 ‘발로’ 뛰고 있을 것이다.

‘조셉, 부탁해요.’

백유현이 조셉에게 맡긴 임무는 사실 그로서도 반신반의하며 조셉에게 말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조셉이 가능하다고 했으니 곧 답을 찾아올 것이었다.

백유현은 다시 두 눈을 감고 가상 전투에 빠져들었다.

방법을 찾아냈다고는 해도, 그것을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그가 무아지경에 몰입한 사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삼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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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터미널 넘버 K-782.

팀 대항전 우승자 세 명에게만 주어지는 특전 중의 특전.

물론 이 특전의 배후에는 조명재가 후계자로 있는 대한그룹이 있었지만, 어쨌든 수많은 훈련생들은 그들을 엄청나게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 진짜 좋겠다! 소드 포스와 함께 하는 실전 훈련이라니!”

“야, 소드 포스하면 노블레스 채널에서도 유명한 실전 서바이벌 교관이잖아! 나도 저런 사람들한테 배우고 싶다! 아, 진짜 부럽다!”

“그러게! 이번에 I-9080 터미널 공략 영상은 10억 뷰 찍었다며? 대단하지 않냐?”

“소드 포스니까 그럴 만도 하지!

아직 소드 포스는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고, 훈련생들은 소드 포스를 기다리며 서로를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자, 모두들 조용.”

그리고 잠시 후, 팀장 황정국이 단상 위에 섰다.

그 옆으로 우승자 세 명이 나란히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소드 포스다!”

우승자와 같이 등장한 다섯 명의 각성자들.

바로 그들이 국내 랭킹 20위의 소드 포스였다.

동시에 실전 서바이벌 스트리머로 해외에서도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인이기도 했다. 원래 싸움을 잘하는 것과, 그 싸움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재능이었다.

그런데 소드 포스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잘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웬만한 각성자 팀보다 훨씬 유명했다.

그 소드 포스가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팀 대항전에서 우승한 제 9팀의 조명재, 백유현, 고성재 이 세 사람은 이제 소드 포스와 K-782 터미널에 가서 삼박 사일 동안 함께 지내며 실전에 대한 밀착 교육을 받게 된다. 다들 이 세 사람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기원해주길 바란다. 이상!”

훈련생들은 박수를 쳤고, 백유현과 두 사람은 소드 포스와 함께 단상을 내려왔다.

단상을 내려오면서 누군가 백유현에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반갑다. 소드 포스 팀장 정준길이다. 이번에 좀 멋지더라?”

“그러게. 너무 섹시한 거 있지? 호호! 특히 명재 얘랑 싸울 때 그 눈빛! 진짜 반할 뻔 했다니까?”

“쯧, 소윤아. 아직 애다. 애.”

소윤이라 불린 여성 헌터가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애도 언젠간 어른이 되는 법이지. 안 그래? 유현 군?”

상당히 매혹적인 여성이었다.

만약 뭇 남성들의 이상형이 있다면, 바로 이 여자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백유현은 그런 그녀 앞에서도 그저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얘 말 돌리는 거 좀 봐. 더 마음에 드는데? 호호호!”

양소윤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고, 소드 포스의 다른 팀원들은 쓰게 웃었다.

“야, 신경 쓰지 마라. 소윤이 얘, 그래도 친해지고 나면 괜찮은 애니까. 아무튼 다들 반갑다. 나는 소드 포스의 이문종이다. 포지션은 원거리 딜러. 준길이 형은 리더이자 탱커, 소윤이는 근거리 딜러 겸 누커, 저쪽 말없는 형은 문광식이라고 딜러야. 그리고 이쪽은 또 다른 여성 멤버 김현서. 불멸자의 특성에 따라 우리 팀에서는 힐링을 맡고 있지. 물론, 가시 몽둥이를 든 힐러.”

또 한 명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성 각성자가 백유현 쪽을 흘끗 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이문종이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말했다.

“어휴, 둘이 좀 섞어 놓으면 좋겠구먼. 한 쪽은 너무 뜨겁질 않나, 또 한 쪽은 너무 차갑지 않나...하지만 나쁜 애들은 아니야. 걱정 마.”

“자, 이쪽으로 가지.”

그들이 인사를 나누는 것을 바라보던 황정국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정말로 카오스 터미널 넘버 K-782 에 가야할 시간이었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거대한 한 대의 밴 앞에 도착했다.

마치 장갑차를 연상케 하는 단단한 외양에, 몸체가 온통 검은색으로 상당히 세련된 밴.

덩치도 어마어마한데다가 외양에서 뿜어내는 포스는 더욱 압도적이어서 불리는 이름.

‘비스트(Beast)!'

미국 대통령이 타고 다니는 차의 코드명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밴.

이름난 헌터들이 타고 다닌다는 최고의 밴이었다.

수납력, 방어력, 가속력...

모든 분야에서 끝판왕으로 알려진 유명한 밴이었다.

그 앞에 선 황정국이 나직하게 말했다.

“생존 장비 키트는 각자의 배낭 속에 들어 있다. 모두 다 최고급 형이고, 무슨 일이 있을 시에는 상당히 도움이 될 거다. 그리고 무기는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골라 쓰면 된다. 비스트에는 없는 무기가 없으니까. 자, 그럼 이제부터는 소드 포스에서 맡지.”

“예, 황정국 팀장님. 요 꼬맹이들 잘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부탁하네.”

“걱정 마십시오! 아주 제대로 된 사냥꾼으로 키워서 돌려보내드리겠습니다.”

황정국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백유현을 비롯한 세 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팀 대항 대회 우승 특전으로 너희들이 가기는 한다만 그래도 카오스 터미널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소드 포스와 함께 가니 걱정은 안 한다만, 그래도 최악의 경우는 늘 대비하고 있도록 해. 터미널 쇼크도 늘 염두에 두고.”

터미널 쇼크(terminal Shock).

카오스 터미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각성자들은 불멸자들과 협력해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온 힘을 쏟아왔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각성자 레벨 대응 터미널의 등급표가 작성되기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터미널 쇼크였다.

수많은 불멸자들조차 카오스 터미널의 정확한 유래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았고, 때문에 안전하다 여겨졌던 저레벨 대응 카오스 터미널에서도 갑작스런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마치 고요하던 바다가 순간적으로 뒤집혀 거대한 해일을 토해내는 것처럼, 저레벨에 대응하는 카오스 터미널에 거대한 균열이 뚫리며 상상을 초월하는 포식자(捕食者)들이 출현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해서 황정국은 한 번 더 주의를 주고 있었다.

“팀장님 말씀대로 너희들, 우리 뒤를 꼭 잘 따라 다녀야 한다? 터미널 쇼크도 그렇지만, 6레벨 대응 터미널인 K-782 자체에도 무서운 놈들이 많으니까! 알겠지?”

“예.”

소드 포스 팀장, 정준길도 황정국의 말을 받아 세 명의 훈련생들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백유현과 두 사람이 대답하자, 빙긋 웃더니 말했다.

“그럼 가자! 자, 황정국 팀장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자네만 믿네.”

“예!”

백유현을 비롯한 세 사람도 황정국에게 인사를 하고 밴에 올랐다.

역시 비스트라는 이름답게 상당한 덩치였고, 덕분에 실내는 매우 아늑했다.

백유현은 그 중 한 자리를 골라 편하게 앉았다.

절로 긴장이 풀리는 편안한 시트가 그의 몸을 감쌌다.

‘흠...’

생사부를 훔쳐 달아난 놈.

바로 그 놈을 잡기 위해 그는 이제까지 수많은 가상 전투를 벌여왔다.

그리고 머릿속의 이미지는 그대로 그의 손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한 듯 느껴져 눈을 감았을 때였다.

“후우,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백유현이 눈을 떠보니, 조셉이 싱긋 웃는 얼굴로 그의 눈앞에 반쯤 허리를 굽힌 자세로 서 있었다.

백유현은 그를 보며 가만히 생각을 떠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조셉과 대화가 가능했으니까.

“부탁한 일은요?”

조셉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누굽니까? 영겁의 변화를 기억하는 자, 조셉이란 말이죠. 하하!”

그는 잠시 웃더니 다시 백유현과 눈을 마주쳤다.

“놈을 찾아냈습니다. 역시, 당신의 짐작대로였어요. 과거로 돌아가 일일이 포인트를 싹 다 뒤졌더니 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시간을 여행하는 자, 조셉은 미래의 일만 알 수 있는 걸까?

미래로 가서 무슨 일이 알 수 있다면, 반대로 과거로 돌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백유현이 의뢰한 임무는 바로 이 하나의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사실, 이 얘기는 지금까지는 하나의 ‘가정’ 이었고 그래서 백유현도 반신반의하며 조셉에게 임무를 의뢰한 것이지만, 조셉은 그것을 해낸 것이었다.

“시공간에 각인된 놈의 흔적을 따라가 보니, 놈이 은신해 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여기. K-782 터미널에서 구름 절벽이라 불리는 이 높은 산꼭대기죠.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터미널에 들어가면 눈앞에 놈을 향해 이정표가 떠오를 겁니다. 그것만 따라 가시면 되요. 당신은. 내가 시공간에 각인시켜 놓은 표식이니까.”

조셉은 마치 홀로그램을 펼치듯 영상 하나를 펼쳐 보이고는 말했다.

그런데 조셉은 말을 하다 말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죠. 그곳에 들어간 이후의 당신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질 않아요. 분명 놈과 만나는 모습은 있는데...그 전의 상황이 이상하게 흐릿해요. 뭔지 모르겠네...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너무 돌아다니느라 집중력이 떨어졌나?”

조셉은 잠시 턱을 어루만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뭐, 당신이 놈을 만나는 것은 확실하니까. 후우, 일단 저는 좀 쉬어야겠군요. 하도 돌아다녔더니 너무 피곤해서 말이죠. 아마 당분간은 제가 나타나지 않아도 너무 서운해 하진 마시길! 후후!”

그리고 조셉이 사라졌다.

백유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셉이 없어도, 이제 그 원숭이 놈을 찾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놈의 흔적을 따라가는 표식을 시공간에 새겨 두었다하니...

그런데 조셉의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조셉조차도 보지 못했던 미래가 있다는 사실.

‘음...’

하지만 결과가 좋으니 더 이상 생각할 것은 없어 보였다.

백유현은 기분 좋게 달리는 비스트에 몸을 맡긴 채 두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히라카와의 가상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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