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29화 (29/166)

29. 조셉이여, 일하라

“아하...”

조셉은 한 시도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턱을 괸 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했다. 그러더니 그는 백유현을 홱 돌아보았다.

“아니, 그러니까...지금 백유현 군께서는 저에게 새로운 스포일러의 응용법을 제안함과 동시에, 그것을 ‘명령’ 하신 거지요?”

백유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따지면 명령은 아니지만요. 부탁에 가깝죠.”

“흐음! 부탁이라.”

조셉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거,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이미 짐작하고 계신 거 같고. 그렇다면 좋습니다! 이에 대한 대가는 장부에 확실하게 적어놓도록 하죠.”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

불멸자의 힘을 빌려 쓰면, 그에 대한 대가가 분명 필요하다.

그것을 ‘업보력(業報力, Karma)이라고 부른다.

지금에야 조셉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권능을 그냥 빌려주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도 대가를 받으려 할 것이다.

업보력은 카오스 터미널에서의 사냥을 통해, 혹은 계약한 불멸자들이 주는 임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간혹 다른 통로를 통해서도 얻는다.

다만 불멸자들은 자신의 권능을 빌려 쓰지 못하는 5레벨 이하의 각성자에게는 임무 완료를 해도 업보력을 주지 않는다.

카오스 터미널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진 경험치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업보력으로 불멸자들에게 역으로 임무를 의뢰할 수 있다.

지금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사실 정해진 미래를 보면 더 좋겠지만, 이 경우에는 유현 군의 말이 맞겠네요. 놈이 숨어 버렸고, 그 이유로 놈을 잡지를 못하는 미래가 존재한다면 결국 아무리 저라고 해도 놈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리고 사실...”

조셉이 백유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와서 말인데...유현 군의 말을 듣고 나서 수백 가지의 미래를 보고 왔지요. 맞아요. 유현 군은 놈을 찾지 못해요. 어느 미래든 유현 군의 입장에서는 놈을 잡지 못하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제가 보았던 조명재의 미래라면 조명재가 놈을 잡긴 하는데...이미 미래가 뒤틀려 버렸으니 놈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알 수 없겠네요. 그 미래는 사라져 버렸고 지금 남은 것은 ‘놈을 조명재가 잡았었다’ 라는 사실 뿐이니까. 어디서, 라든지 언제, 라든지 하는 정보는 남아 있질 않아요.”

조셉이 다시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역시 그 수밖에 없군요. 이대로 갔다간 유현 군은 어떤 경우에도 놈을 못 찾을 테니 제가 돕는 게 맞겠지요. 좋습니다! 1,000 업보력을 담보로 능력을 빌려드리죠!”

“1,000 업보력이라면...”

“카오스 터미널의 몬스터들을 최소 수백 마리는 잡아야 얻을 수 있는 포인트죠.”

백유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없다.

그 대가로 카오스 터미널에서 최소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잡아야 그걸 갚을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

“자, 그럼 이제부터 백유현 군이 카오스 터미널에서 얻는 업보력은 즉시 차감됩니다. 동의하시죠?”

조셉의 말에 백유현이 오른 손을 내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셉이 그런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조셉은 허공에 불멸자의 인을 그려냈다.

파앗!

푸른빛이 뿜어지고는 계약이 완료되었다.

“좋습니다. 그럼. 많이 바빠지겠지만 덕분에 심심하지는 않겠군요. 대신, 제가 유현 군의 의뢰를 수행하는 순간에는 스포일러가 발동되지 않을 수 있어요. 엄청난 수의 변수와 상황들을 직접 살피고 와야 하는 거니까.”

“알아들었어요.”

조셉은 다짐을 두듯 백유현에게 말했고,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데 역시 미래의 당신이든, 지금의 당신이든 머리가 비상한 것은 똑같네요.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뭐, 일단 감탄했습니다. 후후! 자, 그럼 저는 잠시 쉬어 두도록 할까요? 이제 곧 엄청나게 바빠질 것 같으니 말입니다.”

“부탁합니다. 조셉.”

“걱정 말아요. 이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 유현 군이나 그 때까지 준비 잘하고 있길.”

조셉은 한 번 웃어 보이더니 다시 사라졌다.

백유현은 참았던 숨을 내쉬며 침대에 벌렁 누웠다.

“후우, 하나는 해결됐고 다음은...녀석을 어떻게 상대하느냐 인데...”

일단 조셉에게 임무를 의뢰했으니 그는 분명 답을 가져올 것이다.

조셉이 찾은 방법으로 원숭이의 흔적을 찾게 되면, 그 다음 문제는 그 원숭이를 어떻게 잡느냐- 라는 문제가 남는다.

‘원숭이라...’

똑똑똑-

한참 골몰해 있는 사이,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백유현이 나가보니, 팀장 황정국과 교관 김수성, 그리고 김승미가 서 있었다.

“어? 무슨 일로...”

백유현은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좀 들어가도 되겠지?”

황정국이 백유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쑥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다 뭐야?”

다른 훈련생들의 방과는 전혀 다르다.

가구란 가구는 죄다 벽에 붙여져 있고, 벽에는 갖가지 살벌한 무기들이 달려 있다.

마치 방 안에 들어서는 무언가의 머리통을 뎅겅 잘라버릴 듯한 도끼나, 한 번 찔리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듯 벽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미늘창들...

“오우...살벌한데? 이런 곳에서 수련을 해서 그렇게 강해진 거야? 아, 그리고 여긴 왜 이렇게 추운 거야? 너, 더위 타냐? 무슨 에어컨을 이렇게 빵빵하게 틀어놓은 거야?"

김수성도 놀란 얼굴로 말했다.

황정국이 다시 백유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한 가지 확실히 할 게 있어서 왔다.”

“네.”

백유현이 대답하자, 황정국이 그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이번 팀 대회 말이야.”

사실 백유현은 언젠가는 황정국이 그렇게 물어볼 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자고 일어났더니?”

“제 레벨이 올라 있었습니다.”

“뭐...?”

황정국은 물론, 김수성과 김승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유현은 한 술 더 떠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자신이 귀신을 보고, 귀신들을 잡아서 레벨을 올렸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봐야 믿어주는 사람도 없을 거고, 그걸 설득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걸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도 했고.

그러니 어차피 말이 안 되는 거, 자고 일어나니 강해졌다- 로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아니, 그게 가능해? 그럼 지금 레벨은 몇인데?”

김수성의 질문에 백유현이 대답했다.

“레벨 5입니다.”

“뭐...? 5레벨이라고?”

세 사람은 경악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백유현은 레벨 1짜리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사이에 레벨 5가 되었단 말인가?

레벨 1짜리들이 경험치를 쌓는 방법은 상위 각성자들과 비슷하지만, 훨씬 힘들다.

그럴 수밖에 없다.

레벨 1이라고 해봐야, 원래 자신의 신체 능력치에 겨우 1씩 밖에 수치가 붙지 않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처음 겪는 몬스터들과 죽어라 싸워서 이겨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초보자용 카오스 터미널은 전국에 많긴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건 어려운 거다.

그리고 경험치는 철저하게 자신의 손으로 공격하고, 회피하고, 방어하는 동작이 정확하게 반영이 되어 계산이 되어 들어오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끌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 K-782 카오스 터미널에 소드 포스와 함께 가더라도 올릴 수 있는 경험치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대신 아직 장비가 완성이 안 된 각성자들이라면 그 안에서 재료를 얻어 장비나 무구를 만들 수 있다.

어떤 카오스 터미널이든 노블레스 멤버스 블랙마켓에서도 팔지 않는 특수하고도 희귀한 재료들도 나오기 때문에, 그래서 각성자들은 계속 해서 카오스 터미널을 공략하는 것이다.

아무튼 레벨 1로 각성해서, 레벨 5가 되기까지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각성자로 거듭나게 된다.

조명재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각성자가 노블레스 멤버스와 정부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이 시기를 보내며 레벨을 올리게 되는데, 백유현은 그 과정을 생략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레벨 5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라니...

팀장 황정국은 백유현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상황파악을 위해서 스캔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어때, 동의할 수 있겠어?”

백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좋아. 김 교관. 유현 군을 스캔실로 데리고 오게.”

“아, 알겠습니다. 팀장님.”

이번 팀 대항전에서 대파란을 일으킨 백유현.

그에게는 엄청난 수수께끼가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황정국은 이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스캔을 제의했고, 백유현은 별 주저함 없이 응했다.

그리고 김수성이나 김승미도 그 결과가 매우 궁금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도대체 백유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를 스캔실로 데려가는 김수성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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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은 오래지 않아 완료가 되었다.

그리고 황정국은 인상을 와락 구기며 눈앞의 결과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알파 파장 퓨어 화이트, 베타 파장 퓨어 화이트.

이건 뭐 전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셰타 파장이 검출이 되었어?’

그는 백유현을 보며 물었다.

“백유현, 불멸자와 계약을 했나?”

“네. 여기에 들어와서 계약을 했습니다.”

“티어는?”

“그게...7티어입니다.”

“뭐...!”

그 말에 황정국과 김수성, 김승미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왜 7티어를? 아니, 너 정도라면 더 좋은 조건의 불멸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을 텐데 왜?”

“사정을 다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백유현의 대답에 세 사람은 다시금 눈살을 찌푸렸다.

백유현과 같은 천재가 왜 굳이 7티어의 불멸자와 계약을 했을까?

벌써 그에게 관심을 보였을 더 높은 등급의 불멸자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일에 대해 백유현에게 더 이상 물을 수는 없다.

각성자 각자는 자신의 판단에 의해 불멸자와의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었고,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능력만 된다면 다수의 불멸자와 계약을 맺는 것도 가능하기도 했고.

‘후우...이건 도대체!’

황정국은 계속해서 드러나는 황당한 진실에 충격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모니터 가득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유현의 능력치였다.

[백유현 상태 능력치 수치]

각성자 레벨 : 5

[근력 19] [지구력 12] [순발력 19] [행운 10]

[정신력 13] [지력 19] [근성 16] [체력 12]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그는 백유현의 상태 능력치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이 정도면 그가 어떻게 진성우나 진성연을 그렇게 압도할 수 있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갔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이런 엄청난 수치를 단지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얻었다고? 허, 참!’

백유현의 현재 능력치 옆에는 그가 베타 프로젝트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능력치 창 또한 떠 있었다.

그 때와 비교하면 그는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해져 있었다.

‘이게 그 누구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알파 파장, 퓨어 화이트의 힘인가! 인간의 잠재력이...이 정도였단 말이야?’

눈앞에 똑똑하게 보고서도 믿기가 어려운 광경.

‘아무튼 엄청나게 무서운 녀석인 건 틀림없어. 이대로 성장을 하면 팀-엑스 대회에서도...아, 가만!’

황정국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멈추고 백유현에게 물었다.

“백유현. 그런데 지금도 잠을 자고 일어나면 경험치가 올라가나?”

백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한 동안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뭐 이젠 안 올라가나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음...그렇다면 일단 알겠다. 대신 앞으로 또 다른 상황이 발생하면 반드시 보고하도록.”

베타 프로젝트 팀에서는 레벨 5의 각성자 다섯 명만 팀-엑스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규정상 황정국은 그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여기서 백유현의 경험치가 더 올라가 버리면 골치가 아파진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황정국을 바라보며 백유현이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후후!’

이미 백유현은 완벽하게 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었으니까.

방금 전만 해도 그의 방에는 미끼에 끌려든 수많은 귀신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김수성이 춥다고 느낀 것이었다.

경험치가 필요하면 놈들을 잡으면 된다.

하지만 아직까진 아니었다.

“좋아, 가봐.”

“예, 팀장님.”

백유현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하지만 그는 바로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스캔실에서 나오던 김수성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붙잡았다.

“교관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응? 이번에는 또 뭐냐!”

왠지 불길함이 든 김수성이 그를 경계하듯 말했다.

백유현은 그를 보며 물었다.

“원숭이는 어떻게 잡아야 됩니까? 한 레벨 6짜리 원숭이라면 말입니다.”

김수성이 눈살을 팍 구겼다.

저번엔 개더니 이번엔 원숭이인가!

하지만 방금 전, 스캔실에서 황정국은 백유현에게 모든 것을 협조하되 그를 특별히 잘 지켜보라는 말을 했었다.

‘크으, 내 팔자야!’

김수성은 뒤 따라 나오던 김승미를 한 번 흘끗 바라보았다.

“김승미 교관. 히라카(Hyraka)...아니다. 이번엔 내가 히라카의 역할을 맡도록 하지. 자네는 히라카를 어떻게 때려잡는지 아주 완벽하게 가르쳐 주도록.”

저번에 개와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인 도르가의 흉내를 내라고 했다가, 김승미가 보여준 엄청난 뒤끝을 떠올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이 직접 히라카의 역할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등쌀에 시달리느니 이게 낫다.

“네? 히라카를요?”

“그래, 이 눈앞의 열정 넘치는 훈련생께서 알고 싶어 하시니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거다. 젠장, 이 짬밥에 원숭이 흉내까지 내게 생겼구먼! 자, 어서 가자고!”

김수성은 투덜거리며 앞장섰다.

김승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고, 백유현은 그 둘을 보며 씩 웃었다.

히라카.

원숭이 형태의 몬스터인 놈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익히다 보면, 분명 방법이 나올 것이다.

생사부를 훔쳐서 K-782 터미널에 숨은 녀석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백유현은 남은 시간 동안 그 방법을 찾는데 모든 시간을 투자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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