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덫 - 1권 끝-
소드 포스와, 강화된 팀 대항전의 보상 공고가 끝나고 각 팀의 대표들이 모여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제부터 진짜 팀 대항전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각 팀은 필승을 위해서 수많은 전략을 짜고, 전술을 논의하게 될 테니까.
“흐음...!”
제 9팀의 고성재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그는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것 같은데...상관없지. 난 우리 팀이 이기기만 하면 되니까.”
그 앞에는 원래 선발되었던 최고 연장자 강윤호 대신 조명재가 서 있었다.
조명재 역시 상당히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고성재의 말에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
고성재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래.”
백유현도 조명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도 이미 상황을 눈치 채고 있었다.
‘대기업의 힘이 무섭긴 하네. 이런 것도 바꾸는 게 가능하고.’
“넌 뭘 봐?”
그 때, 조명재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백유현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 많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뭐? 이 새끼가!”
“그런데 이러고 있을 시간 없지 않나? 니네 아버지가 빽까지 써가면서 올려준 자리인데 이길 생각 먼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진짜 죽고 싶어?”
조명재가 으르렁거리며 한 발 성큼 다가들었지만, 백유현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조명재와 자신의 상태 창이 떠올라 있었다.
[조명재의 신체 능력치]
각성자 레벨 5
[근력 18] [지구력 16] [순발력 16] [행운 15]
[정신력 14] [지력 15] [근성 13] [체력 12]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12]
[백유현의 신체 능력치]
각성자 레벨 4
[근력 18] [지구력 12] [순발력 16] [행운 10]
[정신력 13] [지력 19] [근성 16] [체력 11]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가용 신체 능력치 4
(지력 적용 불가)
‘너와 내 능력치 차이는 이젠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조명재. 그리고 내가 이 4 포인트를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넌 내 손에 죽을 수도 있지.’
아직 남은 신체 능력치 4 포인트.
이것을 순발력에 그대로 때려 박으면 조명재는 백유현의 그림자를 밟는 것도 힘들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백유현은 전과는 달리 조명재의 으름장에도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조명재. 난 꼭 이번 팀 대항전에서 우승을 해야겠어. 그러니까 괜한 시간 낭비 하지 말자고.”
조명재는 눈살을 구기며 백유현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 뭐야?’
분명 이틀 전만 해도 자신에게 처 맞다가 죽어가던 놈이었다.
후반부에는 뭘 어떻게 했는지 제법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싸움이 계속되었다면 아마 놈은 자신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백유현은 뭔가 달랐다.
똑같은 놈이긴 한데, 뭔가 풍겨내는 분위기가 확 달라진 느낌?
“그래, 우리 그것부터 좀 정해보자고. 아무리 그래도 진성연, 진성우 남매가 너무 걸려. 그리고 그쪽 팀에는 걔네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
고성재 또한 백유현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그랬다.
진성우의 제 10팀에는 진성우 말고도 이번 선발전에서 두각을 드러낸 변우식이 있었다. 변우식은 근력 특화형의 각성자였는데 그 전에도 레슬링을 해서 상당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장준식과 마찬가지로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뜻.
하지만 장준식과 다른 점은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순발력 또한 높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진성연의 제 4팀에도 괴물 하나가 더 있었다.
여자인 이혜미.
순발력 특화형의 각성자인 이혜미는 오히려 9조의 고성재를 압도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극한의 스피드의 정점.
순간적으로 적의 빈틈을 파고들어 치명타를 먹이는 그녀의 솜씨는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진성연조차 초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고전을 했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셋이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내가 알아본 결과, 진성연은 전체 밸런스 형의 각성자야. 근력이면 근력, 순발력이면 순발력...뭐 하나 떨어지는 게 없어. 게다가 전투 경험도 풍부한데다가 전투에 임해서는 절대 흥분하는 법이 없지. 정신력 또한 높다는 뜻이야. 꽤 까다로운 적이지.”
백유현은 이미 그녀의 능력치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충격은 사실 상당했다.
고작 레벨 5 짜리가 이 정도의 완벽한 밸런스를 지니고 있었다니!
그대로만 성장하면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각성자가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진성연의 신체 능력치]
각성자 레벨 5
[근력 17] [지구력 14] [순발력 17] [행운 15]
[정신력 16] [지력 15] [근성 15] [체력 13]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
백유현이 기억하고 있는 수치였다.
행운이나 지력은 타고나는 것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진성우도 비슷했다.
괜히 천재 남매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절대 쉬운 싸움이 아니라는 뜻.
조명재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신경 꺼. 진성연, 진성우 둘 다 내가 잡아낼 테니.”
“아니, 그것보단 말이야.”
백유현은 고성재 쪽을 바라보았다.
“응? 나는 왜?”
백유현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팀 대항전의 승리 조건은 2선승제야. 누가 2번을 이기냐지. 그렇다면 고성재, 네가 상대의 에이스와 붙는 것이 나아. 나머지 둘은 조명재와 내가 상대하면 될 거고.”
백유현이 이번 싸움을 이기기 위해 머리를 굴린 결과였다.
약자를 적의 강자와 붙이고, 이쪽의 강자로서 적의 약자들을 잡아먹는다.
백유현과 조명재의 신체 능력치는 비슷하니 두 번을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그것이 백유현의 계산이었다.
설령 적의 에이스에게 고성재가 지더라도, 두 번을 이기면 된다.
그런데 고성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이해가 되는데...우리 팀의 약자는 내가 아니라 너잖아. 백유현. 너...지금 겨우 레벨 1이면서...”
“레벨 1이면서 조명재와 비등하게 싸우기도 했었지. 물론 시간이 더 있었으면 내가 졌겠지만.”
조명재가 백유현을 노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걱정 마. 나는 절대 질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까. 나를 믿어줬으면 해.”
고성재가 안경을 치켜 올리더니 백유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역시 지력 15의 소유자다.
결코 멍청하지 않다는 뜻.
사실 이번에 가장 큰 파란을 일으킨 것은 바로 눈앞의 이 백유현.
전력을 다한 조명재와 그렇게 호각을 이루며 싸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조명재와 진성우 남매의 능력치가 비슷하다고 치면, 백유현은 진성우 남매에게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에이스들을 제외한 다른 녀석들은?
‘흠.’
장준식이 놈에게 무너진 것을 떠올린 고성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었다면 장준식에게 그렇게 이길 자신이 없었다.
“좋아, 난 동의! 어차피 팀이 우승해야 상점도 받고, 카오스 터미널도 가는 거니까. 기꺼이 전략적인 희생을 하도록 하지.”
명쾌한 답변이었다.
백유현은 조명재를 바라보았다.
“자, 조명재. 너는?”
조명재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딴 비겁한 수를 쓰고 우승할 바엔...”
“우승을 못하면.”
백유현이 그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너의 아버지가 좋아하실까?”
“이 새끼...말조심해!”
조명재가 눈살을 와락 구기며 그를 노려보았다.
“생각을 좀 해봤어. 왜 대한그룹에서 무리수를 둬가면서 너를 팀 대항전에 올렸는지. 답은 금방 나오더라고. 팀-엑스 대회. 그거, 대한그룹이 이번에 최대 후원사지?”
“뭐...?”
조명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백유현은 계속 해서 말을 이었다.
“돈이 안 되는 곳에는 절대 붙지 않는 그 동안의 대한그룹의 행보를 봤을 때...이번 팀-엑스 대회는 엄청나게 흥행할 거라는 판단이 섰겠지. 그래서 최고 액수의 후원을 한 거고. 당연할 거야. 이번 팀-엑스 대회는 사상 최고의 각성자들이 죄다 모이니까. 그런데 그 자리에 대한그룹의 후계자가 서 있다면?”
백유현이 씩 웃었다.
“안 그래도 후계 문제로 골 아픈 상황에서 후계자가 당당하게 그 대회의 일원으로 참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엄청난 홍보효과와 함께 분위기 역전이 가능해지겠지.”
대한그룹의 후계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조명재는 유일한 상속자이긴 하지만 그를 둘러싼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당장만 해도 파를 갈라 싸움을 걸어오는 이사진들이 있었고, 여론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 대한그룹에서는 팀-엑스 대회를 통해 이미지 쇄신을 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 팀 대항전으로 모든 게 정해지지는 않겠지만, 팀 내 우승도 하지 못한 후계자를 누가 주목해줄까? 황태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화려한 경력이 따라 붙어야 하는 거잖아. 안 그래?”
백유현의 말에 조명재가 입술을 질끈 물었다.
놈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그를 둘러싼 상황은 분명 그러했으니까.
“그러니까 적당히 합의해. 그리고 이건 비겁한 게 아니고, 지혜로운 거야.”
약자를 보내 강자를 상대하게 하는 방법은 예로부터 내로라하는 명장들이 써왔던 병법이다.
백유현은 그것을 응용했을 뿐.
조명재는 한참을 침묵하고 있다가 툭- 내뱉었다.
“제대로 못하면 넌 내 손에 죽는다?”
백유현이 웃었다.
“그럼 합의된 걸로! 좋아, 그럼 이제부터 세부적인 계획을 짜볼까?”
백유현은 출전 선수 명단을 펼쳐들고 고성재, 조명재와 함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문제는 대진표.
대진표 운에 따라 싸움이 쉬워질지 아닐지가 정해질 것이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특성상, 1조부터 8조까지는 어쩔 수 없이 피 터지는 경쟁이 예상되었고, 9조와 10조는 무난한, 11조는 어부지리의 부전승을 노리고 결승을 노려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순서는 당일 제비뽑기로 결정이 되기 때문에 누구도 예측불가.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부터 백유현이 짜는 것은 바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필승’할 수 있는 최선의 전술이었다. 그의 지력이 한껏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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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늦어서야 모든 게 끝났다.
이제 내일.
팀 대항전이 시작된다.
하루 종일 고성재, 조명재와 있다 보니 피곤했지만 숙소로 향하는 백유현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제 곧 우승을 위한 싸움이 시작될 거고, 그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그가 그렇게 확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일의 그는, 지금과는 또 달라져 있을 테니까.
“그어어어-”
자신의 방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백유현은 씩 웃었다.
덜컥-
그리고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예상대로네.’
예상대로 ‘놈’들이 몰려와 있었다.
머리가 반쪽이 쪼개진 귀신, 남의 팔을 뜯어 먹는 귀신, 심지어 개나 고양이의 귀신들까지.
방의 한쪽에는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귀신들은 바로 그곳에 몰려와 있었다.
탁자 한 가운데는 선지의 썩은 내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그것이 귀신들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둘레에는 소금이 둘러져 있어 귀신들은 선지를 먹지는 못하고 주변에만 와글와글 몰려있었다.
그가 방을 개조하면서 만들어둔 장치였다.
이렇게 하면 그가 없는 동안, 귀신들이 자연히 알아서 모일 수 있을 거라 예상했고 그게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자, 그럼 사냥을 시작해볼까?’
그는 망치를 집어 들었다.
퍼걱-
그리고 사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