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름 : 장준식]
[종족 : 인간, 각성자]
[대상의 계약자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조셉과의 더 높은 친밀도가 요구됩니다]
[나이 : 18, 각성자 레벨 4]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유도를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 수련하고 있는 유도 유단자. 특히 순간적으로 파고들며 균형을 무너뜨리는 엎어치기는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상의 신체 능력치]
[근력 20] [지구력 8] [순발력 8] [행운 8]
[정신력 10] [지력 9] [근성 14] [체력 13]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3]
[대상에 대한 공략법]
[잡히면 죽는다. 하지만 순발력이 피계약자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그 점을 공략하라. -J-]
(찡긋)
‘찡긋은 뭐야? 푸흐!’
스포일러라는 권능은 대단한 것이었다.
장준식에 대해서 떠올리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백유현의 눈앞에 펼쳐지는 상태 창.
상대의 신체 능력치는 물론, 놈에 대한 공략법까지 뜬다.
조셉은 사실 어마어마한 능력의 소유자였던 것이었다.
일단 장준식이 자신에 비해 어떤 점이 강하고, 어떤 점이 뒤떨어진다는 것을 손바닥 보듯 훤하게 알게 된 백유현은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지력이 낮아서 변칙 공격에 약할 것이고, 순발력이 떨어져 백유현의 움직임을 따라잡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게다가 지구력이 약해서 백유현의 회피 동작에 몇 번 공격이 실패하면 놈의 체력은 금방 바닥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이 새끼, 뒤지고 싶지? 응?”
장준식이 눈알을 부라리며 백유현에게 다가왔다.
그 때, 강윤호가 나서며 말했다.
“뭘 그리 서둘러? 어차피 이제 싸우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도 일단 정식으로 하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장준식이 백유현을 가만히 노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새끼, 금방 묵사발을 내주마. 딱 기다려!”
“자, 그럼 1번하고 2번부터 시작하자고. 누구야? 1번, 2번?”
“접니다.”
“어이쿠, 저네요!”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안경을 쓴 이십대의 남자와 역시 안경을 쓴 이십대 후반의 여자.
두 사람은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편이어서 다들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었다.
하지만 어제 있었던 팀워크 강화훈련에서 둘은 전혀 의외의 면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강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성재랑 지민이구나. 어째 비슷한 애들끼리 만났네?”
고성재와 이지민.
둘은 순발력이 발군이었다.
그리고 지력 또한 막상막하.
지력 테스트 면에서는 백유현이 워낙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에 둘이 묻힌 경향이 있었지만, 다른 팀에 있었더라면 아마 엄청난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자, 시작해볼까요? 지민씨?”
그 말에 이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그리고 둘 다 약속이라도 한 듯 안경을 벗었다.
그 순간, 둘에게서는 이제까지의 모범생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고성재의 두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고, 이지민의 입가에는 차가우면서도 도도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백유현은 둘의 능력치를 떠올렸다.
[고성재의 신체 능력치]
[근력 12] [지구력 10] [순발력 16] [행운 11]
[정신력 12] [지력 15] [근성 12] [체력 8]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7]
[이지민의 신체 능력치]
[근력 9] [지구력 9] [순발력 17] [행운 13]
[정신력 11] [지력 15] [근성 10] [체력 6]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6]
‘장난 아니네!’
둘 다 어제의 모습으로 봐서는 순발력 수치가 꽤 높을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확인해 보니 이건 뭐 엄청났다.
백유현도 이들에게는 완전히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둘 중 누가 이길까?
백유현은 진지하게 둘의 능력치를 분석했다.
‘순발력이 고성재가 1이 떨어지지만, 근력이 훨씬 앞선다. 그 얘기는 한 방의 데미지가 크게 들어간다는 거고, 체력이 약한 이지민은 견딜 수 없다는 뜻이지. 이건 이지민에게 있어 상당히 불리한 싸움이야. 믿을 것은 행운. 하지만 행운 수치 13으로 행운이 발동될 확률이 극히 낮은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싸움은 볼 것도 없이 고성재의 승리다.
다른 각성자들은 타인의 신체 능력치 수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싸움에 대한 분석은 오로지 백유현만 가능했다.
그만큼 조셉의 권능, 스포일러는 그야말로 막강한 위력을 가졌던 것이다.
타인의 신체 능력치 수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곧 앞으로의 판세를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메리트였다.
그 때, 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역시 순발력 강화형 각성자들답게 싸움은 눈을 믿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누가 어떻게 공격을 하고, 방어를 하는지 채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공격이 이어졌던 것이었다.
파악-
“꺄악!”
하지만 역시 백유현의 예상대로 이지민이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둘의 순발력이 비슷했기 때문에 고성재의 공격을 이지민이 잘 막아냈지만, 고성재의 근력이 훨씬 앞서기 때문에 그 동안 쌓인 데미지를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근력에 이어 근성과 체력도 약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역시 예상대로네.’
백유현은 판세를 날카롭게 분석해나갔다 그리고 다음은 3번과 4번의 싸움이 이어졌다.
‘보나마나야. 모든 게 3번 이덕성이 앞선다. 싸움은 금방 끝날 거야.’
콰당탕!
그의 생각대로 4번 정현도가 땅바닥에 처박히면서 싸움이 끝났다.
그리고 그 다음 순서는...
“어? 명재, 네가 5번이었어?”
조명재가 5번 번호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상대는...
“어, 이건 뭐야? 윤세연이 6번? 푸하하! 이거 엄청 재미있겠는데?”
“야, 저 계집애 어떻게 하냐? 쟤 죽겠는데?”
다들 놀라거나, 윤세연을 비웃거나 하며 이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백유현은 달랐다.
‘아니, 아니야! 이건...!’
윤세연.
조명재에 비해서는 그 유명세가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항간에는 조명재에 비견되는 천재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신비에 감싸인 인물.
[조명재의 신체 능력치]
[근력 18] [지구력 16] [순발력 16] [행운 15]
[정신력 14] [지력 15] [근성 13] [체력 12]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12]
[윤세연의 신체 능력치]
[근력 16] [지구력 19] [순발력 18] [행운 14]
[정신력 14] [지력 16] [근성 14] [체력 10]
이후 추가될 수 있는 능력 슬롯 수 [10]
모든 수치를 볼 수 있는 백유현은 이 싸움은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근력이 윤세연이 밀린다 해도, 순발력으로 그것을 상쇄할 수 있어. 게다가 윤세연이 머리를 좀 더 쓴다면 지구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조명재가 힘이 빠질 수도 있는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초반에 조명재가 휘몰아쳐서 잡지 못하면 윤세연도 꽤 해볼 만 해!’
의외의 수치였다.
사실 이 베타 프로젝트 팀 내의 훈련생들은 자신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상대의 신체 능력치 수치를 알 수가 없다.
교관들이나 팀장은 몰라도, 훈련생들은 각자의 수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팀 엑스 대회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팀 엑스 대회에 나가는 각성자들의 신체 능력치는 극비로 붙여져 있었고, 그 때문에 수많은 작전이 나오게 된 것이다.
같이 참가하게 되는 각성자 레벨 5 짜리도 그래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 한 번, 러시아가 엽기적인 전략으로 체력을 극대화해서 찍은 다섯 명의 레벨 5 짜리들의 각성자들만 데리고 출전했었던 적이 있었다.
덕분에 상대 팀은 예상외의 허점을 제대로 찔리면서 그 해 우승은 러시아가 가져가게 되었던 것이다. 다만 그런 것은 제왕적인 독재가 가능한 러시아니까 가능했던 것이고, 그 뒤로 그런 편법에 대한 대처법이 나오면서 다시는 나올 수가 없게 되었지만.
하지만 백유현은 그를 완벽하게 파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셉의 스포일러.
이게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백유현은 시간이 갈수록 너무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명재야, 죽여버려!”
“대련이라고 살살하지 말고 이 참에 본때 좀 보여줘!”
“야, 본때 보여줄 시간이나 있겠냐? 5초 버티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조명재의 측근들이 약을 올리면서 외쳤지만, 윤세연의 표정은 전혀 미동이 없었다.
조명재라는 강자가 눈앞에 있는데도 그녀는 매우 차분했던 것이었다.
‘역시...윤세연은 알고 있어. 자신의 능력치를 알고 있으니까, 조명재와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레벨 5에서 올릴 수 있는 신체 능력치는 한계가 있으니까.’
미국의 천재 각성자 루시가 레벨 5 때, 전 능력치 평균 19 정도를 찍었었다.
이것은 팀 엑스 대회가 끝난 후에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쏟아진 논문에서는 레벨 5 정도에서 찍을 수 있는 최대 능력치가 대략적으로 제시가 되었다.
그것을 토대로 윤세연은 영악하게 조명재의 신체 능력치를 분석한 것이다.
그러니 저런 담담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이겠지.
“자, 시작!”
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조명재가 빠르게 윤세연에게 접근하며 킥을 날렸다.
그가 자랑하는 3초 킥이었다.
뛰어난 순발력과 근력으로 날아드는 그 킥을 막아낸 동 레벨 각성자들이 드물 정도의 빠르고 정확한 킥!
그 킥 하나만큼은 조명재보다 무려 몇 단계가 더 높은 상위 각성자들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만큼 무서운 킥이었다.
조명재는 애초에 싸움을 길게 끌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앗-
킥이 날아듦과 동시에, 윤세연의 발이 미끄러지듯 뒤로 밀려났다.
“...!”
조명재의 표정에 찰나 간, 놀라움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와 반대로 윤세연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력한 한 방을 이미 준비한 여유 있는 자의 미소.
그리고...
파팟!
빠악!
윤세연의 발이 빠르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그녀의 주먹이 매섭게 허공을 갈랐다.
파스스-
“운이 좋았네?”
윤세연이 자신의 주먹을 가까스로 막아낸 조명재를 보며 씩 웃었다.
조명재의 표정에서도 아까와는 달리 날카로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진지해진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며 윤세연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자, 난 기권!”
그 말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팀원들이 놀란 외침을 터뜨렸다.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제 명재 반격 차례인데, 비겁하다!”
윤세연이 그런 그들을 보며 쏘아붙였다.
“멍청한 놈들은 좀 닥치고 있어. 얘, 나랑 싸우면 둘 중 하나는 분명 크게 상한다고. 그러면 우리 팀이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 팀을 위해 내가 희생한다, 그거야. 분하지만 이 자식이 나보다는 우승 확률이 높으니까.”
“너...”
조명재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윤세연이 저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진성우가 있었다.
“난 진성연은 몰라도, 성우 저 녀석을 이길 자신이 없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나로서는 안 돼. 하지만 너라면 가능하겠지. 그래서 양보하는 거니 착각하지 마. 또 싸워보고 싶으면 나중에 따로 개별 시합이 있으니까 그 때 도전하던가.”
현명한 판단이다.
사실 백유현은 이 싸움을 근소한 차이로 조명재가 이길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아마 윤세연은 지금 말은 안하고 있지만, 같은 결론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제대로 싸움이 붙으면 윤세연도 살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명재나 윤세연이나 크게 다치게 되고 조명재가 올라가더라도 또 다른 천재들이 있는 다른 팀에 질 가능성이 높다.
그 점까지 염두에 두고 윤세연은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개별 시합.
이번에 놓친 상점은 그 때를 복구할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 때, 우승의 상점은 지금보다 훨씬 크니까.
아예 타격을 입는 것을 미리 차단하고, 한 가지를 제대로 선택하여 거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똑똑하네...’
윤세연 입장에서는 최고의 선택이다.
이렇게 되면, 조명재에게도 한 방 제대로 먹인 셈이 되고 덕분에 손 안대고 코도 풀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팀별 대항전에서 결승까지 가게 될 확률이 높은 조명재의 체력을 갉아먹으면서, 자신은 편안하게 체력을 보존할 수 있다.
‘무섭구나.’
처음 인사를 했을 때, 귀엽기만 했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번 대련에서 많은 것을 얻어갔다.
그리고 조명재는 상대의 기권을 받아놓고도 찝찝하게 된 셈이었고.
아무튼 조명재는 그런 윤세연을 노려보고는 그냥 제 자리로 돌아갔다.
“자, 그럼 다음은!”
강윤호가 백유현을 흘끗 바라보았다.
“7번, 그리고 8번.”
백유현이 앞으로 나섰다.
그 앞에 장준식 또한 백유현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이죽거렸다.
“이 새끼, 제발 살려달라는 소리가 나오게 해주마!”
백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싸움을 보며, 장준식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머릿속으로 가상 전투를 몇 번이고 벌였었다.
실전과 가상 전투는 다르지만, 그래도 효과는 없지 않을 것이다.
“자, 7번, 8번! 시작!”
싸움이 시작되었다.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