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잡고 폭렙업-13화 (13/166)

13. 망치의 춤

“이 새끼...뒤지고 싶냐?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뭐, 지금 죽여줄까?”

그런데 조명재 옆에 있던 고등학생 하나가 백유현을 윽박지르듯 말했다.

그 때, 백유현은 흠칫 표정을 굳히더니 이내 씩 웃었다.

‘재밌네?’

[당신에게 적개심을 보인 존재에게 ‘죽음을 수습하는 자‘가 적의를 드러냅니다]

지금 이 곳에서는, 그만이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차사(差使).

평범하게 죽은 귀신과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를 뿜어내는 차사 하나가 흐릿한 모습으로 놈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명백한 적의(敵意).

흔히 저승사자라 불리는 일직차사, 월직차사는 백유현이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봐왔던 존재였다. 그들은 저렇듯 항상 검은 안개로 몸을 감추어 산자의 눈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데 어제 지옥견을 잡고 떴던 임무완료 창에서 보았던 ‘죽음을 수습하는 자’가 바로 차사였다니!

아무래도 지금 백유현이 명부(冥府)의 누군가 내건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라 그런지, 차사가 백유현을 협박하는 고등학생에게 내비치는 적의는 매우 적나라했다.

저렇게까지 적의를 드러낸 차사는 백유현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차사는 이승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에 명백한 한계가 있었지만, 일직차사가 아닌 월직차사인 경우에는 자신의 판단에 의해 산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하늘에서 강림하는 일직차사와는 달리, 월직차사는 야차(野次)와도 같이 사납고 나찰(羅刹)보다 잔인하다.

저승길을 담당하는 일직차사는 천계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사나움이 덜하지만, 이승에서 강제로 혼을 끌어내어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담당하는 월직차사의 경우, 혼백이 시신에서 나오길 거부하면 들고 다니는 칼로 혼의 목을 쳐버리기도 하는 포악한 차사였다.

그래서 월직차사를 다른 말로 살생령(殺生靈)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차사가 뿜어내는 살기를 느끼며 백유현은 지금 한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누구든 백유현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면, 아마 월직차사로 짐작되는 저 차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나 더.

저 정도의 차사를 붙어두었다는 것은, 명부에서도 그 위치가 매우 높은 불멸자로 짐작되는 존재가 백유현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아마 병원에서 보았던 ‘썩어 문드러진 자들의 왕’이 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어쩌면...

저승의 왕이라 불리는 ‘그’ 일수도 있었다.

1티어 불멸자 중에서도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각성자 중에서 그 누구도 아직까지 계약을 하지 못한 존재.

염라(閻羅).

하지만 아직까진 확실하지 않았다.

그건 이제부터 확인해야 할 문제였다.

“어이, 적당히 해둬라. 잊었어? 지금부터는 팀별 평가라는 거.”

그 때 교관 하나가 와서 경고를 주었다.

조명재를 비롯한 그 무리가 백유현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백유현은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귀신을 보며, 귀신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리고 ‘썩어가는 존재의 피’를 마셔 엄청난 능력까지 얻었다.

그런 그가 저런 저급한 협박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그 동안 11팀까지 호명이 다 끝났다.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은 역시 쌍둥이 남매 중 오빠인 진성우가 속한 10팀, 그리고 동생 진성연이 속한 4팀, 조명재가 속한 9팀이었다.

나머지는 딱히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제까지 벌어진 수많은 팀 엑스 대회에서 그 점은 숱하게 증명이 되어 왔다.

불과 작년만 해도 세계 최고의 각성자 중 하나인 영국의 아이작이 이끄는 영국 팀이 예선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하기도 했고, 최초의 팀 엑스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러시아 팀이 4강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자, 오늘부터 각자 팀별로 안면을 잘 익혀두도록 해라. 네 옆에 있는 동료가 위기 시에 너희들의 목숨을 구해줄 수도 있다는 것 언제나 명심하고! 한 달 후, 카오스 터미널에서의 실전 훈련 전까지, 팀워크를 다져두도록! 오늘은 일단 이걸로 마치겠다! 각자 모자란 훈련을 더할 사람들은 남아서 더 하고! 이상!”

베타 프로젝트 팀장 황정국의 말에 각성자들이 팀별로 뿔뿔이 흩어졌다.

평소 잘 모르고 지냈던 팀원들과 어색한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벌써부터 열띤 토론이 벌어진 팀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다.

“야, 신입! 너 깡 세더라?”

그런데 그 때, 누군가 백유현에게 슬쩍 다가와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백유현이 돌아보니 예쁘장하게 생긴 여고생 하나가 서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단발에, 또렷한 검은 눈동자가 매력적인 여고생이었다.

“반갑다! 나는 윤세연! 나도 9팀이야!”

“아...나는 백유현.”

“너 2학년이지? 나도 2학년! 우리 친구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건 비밀이야!”

윤세연이 혀를 내밀고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백유현은 피식 웃었다.

윤세연은 웃다 말고, 갑자기 백유현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아, 그런데 조명재, 쟤 재수 없지 않냐? 어휴, 지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뭐, 난 신경 안 써.”

빈말이 아니라, 백유현은 정말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얼른 지옥견 두 마리를 찾아서 소멸시켜야 했고, 어쩌면 염라일지도 모르는 불멸자와 계약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했다.

“너 좀 멋지다? 앞으로 잘해보자!”

“그래. 잘 부탁해.”

백유현은 윤세연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보던 조명재의 패거리 중 하나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허, 시펄, 아주 똑같은 것들끼리 지랄 났네! 저 윤세연, 저것도 완전 알아주는 또라이 년이잖아? 어휴, 진짜 우리 팀 명재 너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냐?”

그 때 조명재가 그를 흘끗 보더니 차갑게 내뱉었다.

“너나 잘해. 제대로 못했다간 니들도 죽여 버린다.”

“응? 그, 그래! 미안!”

조명재가 흘끗 백유현 쪽을 바라보았다가 몸을 돌려 사라졌다.

“저 새끼 왜 저러냐?”

조명재에게 욕을 먹은 녀석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야, 김성국. 너 좀 분위기 좀 봐가면서 나대. 명재 기분 안 좋은 거 알면서! 멍청한 새끼.”

“아씨, 지가 조명재면 조명재지, 만날 지랄이야. 기분 잡치게.”

“하여튼 재수 존나 없네. 명재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더니 레벨 1짜리 놈하고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윤세연 저건 그래도 실력이라도 봐줄만 하지.”

“아, 나도 모르겠다. 일단 가서 한대 존나 빨아야겠다. 야, 가자!”

“그래, 가자! 이럴 때일수록 니코틴이 필요한 거다. 크크!”

녀석들은 다시 무리 지어 어디론가 향했다.

윤세연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저런 자식들과 한 팀이라니 진짜 머리가 다 아프네. 진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앞이 캄캄한 거 있지? 아, 아무튼 나도 개인 훈련 스케줄이 있어서 가볼게! 늦으면 교관님이 화내거든. 어휴, 쉴 틈도 없어, 진짜!”

“그래, 다음에 보자.”

이곳에서는 자비를 부담하면 개인 훈련 스케줄을 따로 짤 수가 있다.

그 ‘자비’라는 것이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가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런 것을 보면 윤세연도 상당한 재력가 출신인 게 분명했다.

“하여튼 고딩들이란.”

그런데 이번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 하나가 다가와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윤세연, 쟤 왜 저러는지 모르지? 쟤 대한그룹하고 라이벌인 제일그룹의 윤동식 회장의 유일한 손녀딸이거든. 어떻게 보면 조명재하고 많이 닮아 있지. 그나저나 저 둘이 같은 팀이라니 참 골치 아프게 됐네.”

“아...그렇군요.”

역시 머리가 아픈 관계들이었다.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다.

“나도 9조다. 이름은 강윤호. 나이는 서른 둘. 이곳에서 최고령이지!”

“반갑습니다.”

뭔가 인상 좋아 보이는 그를 보며 백유현이 강윤호의 손을 맞잡았다.

강윤호가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더니 말했다.

“알겠지만 이곳은 정글이야. 그것도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조금만 삐끗하면 숨통이 끊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조심해라. 백유현. 그 말 해주고 싶었다. 특히, 명재 저 녀석한테 찍히는 건 웬만하면 피하고. 원래 그렇잖아?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니까. 아무튼 잘 지내보자.”

“예. 아저...”

“형님.”

“네, 형님.”

강윤호가 씩 웃으며 백유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굿 보이. 그럼 나는 간다.”

백유현이 고개를 숙여 보이자, 강윤호가 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많던 각성자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서 어느덧 이 넓은 강당에는 얼마 남지 않았다.

각자 훈련 스케줄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백유현은 각성자 중에서는 혼자 남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가 밀회를 즐길 시간이군? 흐흐.”

김수성이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제 술이 안 깨셨어요? 선배?”

그리고 김승미가 그 옆에서 따라왔다.

“각성자에게 숙취 따위가 있을 리가! 자, 백유현. 오늘도 진하게 즐겨볼까? 응?”

백유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가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끼, 기합 한 번 마음에 드네! 자, 가자!”

김수성이 백유현의 등을 힘차게 두드리더니 어깨동무를 하고 훈련 동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르는 김승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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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오늘은 불사의 재생이 발동되지 않았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48시간이니 아직 24시간 이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오늘은 고작 이거 하고 퍼지는 거냐?”

“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유현의 근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는 다리가 덜덜 떨리는 가운데서도 일어서려 애를 썼다.

김수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녀석의 상태는 어제와 확연히 달랐다.

“됐고, 오늘은 가서 쉬도록 해라. 더 이상의 훈련은 의미가 없으니.”

백유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지금까지의 훈련은 정말이지 수십 번이라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것이었다.

그것을 백유현은 이를 악물며 독기로 버텨낸 것이었다.

“오늘은 뜨거운 물에 몸 푹 담그고 자라. 아니면 내일 죽어난다. 자, 그럼 우린 퇴근해볼까, 김승미 교관?”

“네. 선배님.”

두 교관은 퇴근했다.

백유현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훈련 동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힘들다.

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그는 숨을 고르다가 물을 한 컵 따라 마시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그의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도 다른 라이벌들 또한 훈련을 멈추지 않고 있을 테니까.

그들보다 늦었으니, 그들보다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 훈련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윽-

백유현은 무기 진열대에서 어제보다 조금 더 큰 망치를 집어 들었다.

여전히 묵직함이 느껴졌지만, 근력 1이 강화가 되어서인지 감당할 수준은 되었다.

이 정도면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낼 수 있다.

‘자, 해보자!’

지옥견을 잡기 위해 그는 오늘도 망치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다시금 움직였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그림들을 현실로 그려내며.

어제 있었던 지옥견과의 전투가 수도 없이 반복이 되며 그의 대응이 더욱 정교해지고,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망치의 춤은 깊은 밤이 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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